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계속되는 위기의 돌연변이, <붕괴>

     

동아시아의 한일 자유무역 갈등은 사실, 더 넓은 범위에서의 미중 무역 마찰, 멕시코에 대한 이민 규제, 대서양 건너 이민자들에 대한 규제와 영국 브렉시트,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우익 포퓰리즘이라는 커다란 글로벌 현상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 무역 갈등,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시작?

올여름 휴가 시즌에 권하는 책 7권을 뽑아보았다. 2020년을 앞두고 지난 10년 동안 일어났던 사회변화 키워드를 알려줄 만한 책 가운데 올해 출간되거나 번역된 책들이다. 그중 여섯 권은 『일자리의 미래(원저는 The Job)』, 『우버 혁명(원저는 Uberland)』, 『블록체인 해설서』, 『AI 마인드(원제는 Architects of Intelligence)』, 『정의의 아이디어』,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였다. 마지막으로 지난 10년을 결산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책으로 최고의 경제사학자 아담 투즈가 집필한 역작 『붕괴』를 추천한다. 2018년에 영어판이 출간되었고 올해 2019년 2월에 번역판이 나왔다.

이 책은 2006년 민주당 계열의 브루킹스 연구소가 발행한 해밀턴 프로젝트를 가지고 화두를 던진다. 정확히는 2007년 금융 위기가 구체화 될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트럼프 정권이 1년 정도 집권한 2017년에 글을 마무리한다. 그 시기를 결산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도입부에서 밝히고 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위기의 반복이 아닌 위기의 돌연변이와 전이다. 2007년에서 2012년까지 이어진 금융 위기와 경제 위기는 2013년과 2017년 사이에 냉전 시대 질서 이후의 포괄적인 정치적, 지정학적 위기로 변모되어 나타난다.”

2019년 여름 한국 사회는 온통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 제외)로 인해 더욱 뜨겁게 보내고 있다. 정계는 물론이고 시민 사회까지 일본의 무모한 행동에 대한 규탄이 이어지고 있고, 하루를 멀다하고 긴박하게 정부 대책들과 대일 비판 메시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한일 자유무역 갈등은 사실, 더 넓은 범위에서의 미중 무역 마찰, 멕시코에 대한 이민 규제, 대서양 건너 이민자들에 대한 규제와 영국 브렉시트,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우익 포퓰리즘이라는 커다란 글로벌 현상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모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들이다. 금융 위기가 유럽 위기로, 대침체로, 다시 정치적 반동과 포퓰리즘으로, 보호주의 무역 발흥과 국가 간 갈등으로 끊임없이 겉모습을 달리하며 위기를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그 곁가지로 한반도에서 불거져 나온 것을 한일 무역 갈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동아시아에서 한·미·일을 단단히 묶어 주었던 정치 군사동맹,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물질적 토대로서의 한·미·일 경제 의존 관계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급변한 글로벌 상황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 경제 관계가 10년 동안 양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다.


“시스템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조작된 것”

여하튼 이 책은 지난 10년 세계 경제사의 굵직한 사건들인 2008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 2010~2012년 유럽국가채무 위기, 2016년 브렉시트와 트럼프 집권으로 상징되는 우익 포퓰리즘의 부상을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낸 850여 쪽의 대작이다. 저자는 우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하면서 당시 정점이 되었던 2007년 8월 9일 프랑스 파리바 은행의 일부 펀드사업 자산동결조치와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를 전후한 과정을 매우 정밀하게 재구성해낸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질문했다고 하는, “왜 금융위기 발발을 예측하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당시 신용평가 회사의 한 직원이 2006년 12월 동료에게 보냈던 이 메일을 인용하면서 반박하고 있는 점이다. “우리 모두 부자가 되어 이 모래성이 무너질 때쯤에는 은퇴할 수 있기를 바라자고 ^^” 한 마디로 금융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던 내부자들은 모르고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학자들의 수많은 주장과 달리 월가 점령 운동가들이 “시스템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듯이 당시 위기는 예방 가능한 인재였다.

또한 저자는 금융 기업의 위선을 다시 한번 확실히 보여준다. “1970년대 이후로 금융업계 대변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자유 시장경제와 규제 완화였지만, 이제 와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시스템 붕괴라는 위협으로부터 이 사회의 금융 인프라 구조를 구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마치 전쟁이라는 비상사태가 닥친 것 같은 표현을 쓰면서 말이다.”

저자는 위와 같이 금융 위기를 진단한 후 그 뒤 수습과 결말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덧붙인다. 그는 금융 위기 수습대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평가를 하는데, 그 뿌리를 (정당하게도) 오바마 경제 참모들로부터 이끌어내는 점이 돋보인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의 위기대책 책임자들이 사실상 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1990년대의 금융 규제 완화의 설계자들이었다고 비판한다. “2009년 봄이 되어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오바마 행정부 안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역사적 유산은 루스벨트도 케네디도 아닌 1990년대 클린턴 민주당 정부의 유산이었다.” 게다가 “오바마 측근들은 자신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루빈에게 크게 의지했다. 래리 서머스와 팀 가이트너, 그리고 백악관 예산국 국장 피터 오재그는 모두 다 1990년대 재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그 결과 그들은 250만 미국 시민들의 가구가 집을 압류당하는 와중에서도 은행들과 주요 사기업에 구제 금융을 집중 투입해서 성공적으로(?) 이들을 구원해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에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이 보호해준 것만큼의 대가를 거의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제 제기한다. 더 나아가 금융 규제 관련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실적이라고 할 도드 프랭크 법에 대해서도 꽤 회의적인 평가를 덧붙인다. “2010년 7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효력을 발휘한 도드 프랭크 법안은 1930년대 이후 금융규제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법안으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2013년 7월 그러니까 법안이 통과된 지 3년가량 지났을 때도 398개 규정 중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규정은 55개에 불과”했다는 점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이다

저자가 두 번째로 파고 들어가는 주제는 2010년 5월 19일 그리스 정부의 국가 부도 위기로부터 본격화된 유럽 위기다. 미국 발 금융 위기와 유럽 위기를 동시에 비중 있게 다루는 서적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은 독보적으로 빛나는데 그것은 단지 두 주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은 아니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많은 이들의 관심의 초점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였다. 이 책의 저자는 정작 중요한 관계의 초점을 대서양 양쪽에 맞춘다.

“세계 금융의 중심축은 아시아와 미국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이었다. 실제로 6개의 가장 중요한 국경 간 은행 거래에서 5개가 유럽과 관련되어 있었다.”, “사실 유럽의 금융자본주의는 심지어 더 놀라울 정도로 과도하게 성장했으며 그런 성장의 상당부분은 미국의 경제 호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애초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부터 미국 금융 시스템과 유럽 금융 시스템은 함께 움직였으며, 심지어 미국의 구제 금융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것도 유럽 은행들이었다고 지적한다. 이와 같이 유럽과 미국의 금융 시스템의 강한 연결이 일차적으로 미국 글로벌 금융 위기가 유럽 국가들의 국가채무 위기로 전이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여기에 더해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국가들이 저마다의 내적인 경제 문제로 위기에 빠졌지만, 유로 존이 갖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이를 치유할 수 없었던 대목들을 추적한다. 결국 유럽 위기의 일차 수습은 2012년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유럽 연합의 지원 아래 유럽중앙은행은 유로화를 존속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한 이후라고 저자는 분석하는데, 그것은 무한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통화팽창정책, 즉 미국 해법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정리한다.
 

“가장 포괄적인 해결책은 정치다. 권력에는 권력으로 맞서야 한다.”

세 번째로 저자가 무게를 두는 지점은 2016년 브렉시트와 트럼프 집권으로 상징되는 우익 포퓰리즘의 등장이다. 금융 위기 10년 위기 전이의 종결판으로 포퓰리즘을 지목한 것이다. 저자는 2009년 미국 티파티 운동의 등장과 2011년 중동 민주화운동, 스페인 분노하라 운동, 미국 월가 점령 운동을 가볍게 확인하면서 그런 사회 현상들이 불평등의 심화에 뿌리 두고 있음을 주지시킨다. 오바마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불평등은 우리 시대의 가장 본질적으로 근본적인 도전”이라고 한 발언이라든지, 유명 투자자 워런 버핏이 “사실 지난 20년 동안 사회 계층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내가 속한 계층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불평등 문제가 정치화 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가장 포괄적인 해결책은 역시 정치다. 권력에는 권력으로 맞서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런데 불평등이 정치화 되는 현실 경로에 대해 저자 본인도 “깜짝 놀랐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권력 구조에 대항하기 위해 로버트 라이시는 새로운 진보의 시대, 새로운 민권 운동, 그리고 모든 부문에서 현재 상황에 대해 기탄없이 의문을 던질 수 있는 운동을 주장했다. 도전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런 도전과 난제를 만들어낸 건 좌파가 아닌 바로 우파였다. 세계는 깜짝 놀랐다.” 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경우 “민주당이 공화당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데 골몰하는 동안, 공화당은 미국 우선주의와 아메리칸 드림을 전면에 내걸고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2016년 말 트럼프 집권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판단에 따르면 “중도 자유주의자들은 현대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가져온 장기적 문제들에 대한 신빙성 있는 해답을 제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에, 우익 포퓰리즘은 논리의 정합성은 어떻든 간에 선명한 구호를 내걸고 있다는 점을 득세의 원인으로 꼽는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주장하듯 “이제부터라도 미국이 제일 우선이다. 글로벌리즘이 아니라 아메리카니즘이 바로 우리의 신조다.”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 미국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절망적인 진단은 마침내 우파들이 공감을 이끌어내었고 미래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그의 구호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애덤 투즈의 『붕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뒤이은 유럽 위기, 그리고 다시 정치적 위기로 전환된 우익 포퓰리즘 등장으로 이어지는 지난 10년의 세계 경제사를 무려 850여 쪽에 걸쳐 상세히 풀어낸 대작이라서 얘깃거리는 너무 많다. 한국에 대한 언급들도 2008년 국면에서 꽤 자주 등장하고, 특히 다른 책에서는 보기 어려운 동유럽 이슈나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말도 세계 경제 위기의 맥락 안에서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어 아주 흥미진진하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방대한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지 신기할 정도로 엄청난 이야기와 세세한 사건 묘사가 압권이다. 특히 주요 정책 결정자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가득해서 오래 소장하고 계속 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분량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일단 2019년 말까지 완독을 목표로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이로써 2019년 여름 독서 추천을 모두 완결한다.

김병권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