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소년들은 어쩌다 모험을 하게 됐나

     

유학을 다녀와서 교수가 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청담동 소년들이 모험을 했다. 그 정서적 배경에는, 최상위 신분과 맞닿아 있는 상위 중산층 가정 환경이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86학번 벤처 스타들

정보기술(IT) 벤처 창업가 가운데 유독 86학번이 많다. 네이버 창업가 이해진, 카카오 창업가 김범수, 다음 창업가 이재웅, 넥슨 창업가 김정주 등이 모두 1986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이들은 대개 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마쳤다. 그 직후인 1999년 무렵, IT 벤처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삼십 대 초반이 된 86학번 엔지니어들은 날개를 달고 솟아올랐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그들은 창업하기 좋은 나이에 벤처 열풍을 맞았다. IMF 외환위기와 사상 첫 수평적 정권 교체가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원했다. 정치 영역에서도 이른바 ‘젊은 피’가 각광받았다. 현 여당의 86세대 정치인들은 대개 2000년 총선을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인영, 임종석 등 역시 당시엔 30대였다. ‘386’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생겨났다.

2000년에 국회에 들어간 ‘86세대’는 이제 50대가 됐다. 이인영 의원은 3선을 했고, 현재 여당 원내 대표다. 86학번이 창업한 네이버와 카카오는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다. 네이버와 다음 창업 초기에 함께했던 이들은 대부분 IT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누렸다. 30대 나이에 사장이나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실은 86세대를 기득권 집단으로 묘사할 때 흔히 드는 근거다. 그 윗세대, 혹은 아랫세대는 누리기 힘든 기회였다. 86세대가 운이 좋았다는 점은 사실이다.


세대 격차보다 큰 학력 격차

그러나 여기에도 따져볼 대목이 있다. 86세대가 기득권 집단이라면, 1990년대에 대학에 다닌 세대는 소외 집단이다. 이런 구도가 과연 정당한가. 86세대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이들을 가리킨다. 1980년대 내내 대학 진학률은 30% 안팎이었다. 1960년대에 태어나 대학에 다니지 않았던 이들과 86세대의 격차. 그리고 80년대 학번과 90년대 학번의 격차.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클까. 전자(前者)가 더 크다면, 90년대 학번이 80년대 학번을 기득권층으로 모는 논리는 설 자리가 좁아진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고용동향을 보면, 전자가 더 크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지난해 실업이 급증한 집단은 40~50대 고졸 학력자였다. 제조업 부진의 영향을 주로 받은 집단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이 주로 청년 실업 해결에 맞춰져 있는 탓도 있다.

지난 회 연재에서 시험으로 신분을 가르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졸과 고졸의 격차가 위 학번과 아래 학번의 격차보다 크다. 요컨대 학력에 따른 격차가 세대 격차보다 크다. 그런데 유독 세대 격차에만 민감하다. 이런 문화는 시험으로 신분을 가르는 문화와 관련이 있다. 입시 배치표의 같은 자리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다만 입학 시기만 다를 뿐인데 격차가 크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입시에서 비슷한 등수를 기록했다면, 대우 역시 비슷해야 한다는 믿음을 지닌 탓이다.

학력에 따른 격차가 주목을 덜 받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시험 점수에 따라 신분이 나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온 사무직, 고등학교만 나온 생산직. 나이와 근무 시간이 같아도, 대부분 전자가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 사무직이 하는 일의 가치가 생산직보다 딱히 더 높다는 믿음이 없어도 그렇다. 이는 전형적인 신분 논리다. 양반이 하는 일이 상민보다 더 큰 가치가 있어서 존중받았던 게 아니다. 그냥 양반의 일이므로 존중받았다. 양반과 상민이라는 신분이 핏줄로 갈렸다면, 현대의 신분은 시험으로 정해진다. 요컨대 공무원이나 대기업 정규직이 누리는 혜택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보상만이 아니다. 시험으로 획득한 신분에 대한 대우가 겹쳐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오로지 시장 논리로만 설명하기 힘든 것도 그래서다.


‘시험 귀족’과 ‘비즈 엘리트’

이번 회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시험으로 신분을 나누는 문화는 확실히 불합리하다. 시험은 오래전에 쳤다. 과거의 노력에 대해 현재와 미래에 걸쳐 보상하는 구조는 낭비를 부른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는 기득권에 기댈 뿐, 지금 해야 할 일에는 소홀한 이들이 많다. 이런 이들이 지금 더 치열하게 일하는 동료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 풍경도 자주 본다. 일종의 지대 추구인데, 이런 경우가 흔해지면 누구나 불만을 갖는다. 정의와 효율, 모두를 해친다.

이런 불만 가운데서 나오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가 ‘기업가 정신’에 대한 찬양이다. 『비즈 엘리트의 시대가 온다』라는 책이 있다. 전하진 전 새누리당 의원이 썼다. 전 전 의원 역시 IT 기업 창업가 출신이다. 기업인이나 정치인으로서의 성취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그가 쓴 책의 내용과 수준에 대해서도 딱히 평할 말이 없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강력히 작동하는 주장 한 가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 본다.

이 책에는 ‘시트 엘리트(Seat Elite)’라는 표현이 나온다. 학위나 자격증, 고시 합격 등으로 보장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다. 과거에 치른 시험으로 안정적인 신분을 얻었으므로, ‘시험 귀족’이 더 그럴듯하다. 그 맞은편에 있는 부류가 저자가 예찬하는 ‘비즈 엘리트(Biz Elite)’다. 의미는 책을 읽지 않아도 추정할 수 있다. 시장에서 성과로 평가받는 이들이다. 정말 흔히 듣는 내용이다. 간판보다 실력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구호는 역대 모든 정부가 내걸었었다. 그 연장선 위에 있는 주장이다.

여기에도 따져볼 대목이 있다. 첫째, 능력주의 그 자체에 대한 판단이다. ‘시트 엘리트’ 대신 ‘비즈 엘리트’라고 해도, 결국 ‘엘리트’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그대로 둔 채,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만 시험 대신 실적으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남는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어느 수준까지 용인해야 하나.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능력이 뛰어난데 안전한 일만 하는 이가 있다. 능력이 부족한데 위험한 일을 도맡는 이가 있다. 보상의 균형점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

둘째, 시험 점수이건, 시장에서 거둔 실적이건, 평가의 기준은 있기 마련이다. 전자는 시험을 출제하는 지식 권력, 후자는 시장 권력이 기준을 정한다. 지식 권력과 시장 권력 가운데 한쪽에만 소외된 이들은 드물다. 한쪽에서 밀리면, 다른 쪽에서도 소외된다. 결국 양쪽으로부터 소외된 다수에겐 어차피 모두 불공정한 게임이다.

셋째, ‘시트 엘리트’와 ‘비즈 엘리트’, 어느 쪽이건 타고난 환경의 영향이 강력하다. 가족의 교육 수준과 경제력이 높은 학생이 시험도 잘 친다. ‘비즈 엘리트’에게 필요한 사업 수완, 시장에 대한 감각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요롭게 자란 이들이 유리하다.


상위 중산층이 창업에 적극적인 까닭

이 가운데 첫째와 둘째 쟁점은 다음에 다룬다. 이번 회에선 셋째 쟁점을 다룬다.

앞서 86학번 IT 벤처 창업가들을 소개했다. 네이버 창업가 이해진, 카카오 창업가 김범수, 다음 창업가 이재웅, 넥슨 창업가 김정주 등이다.

이 가운데 이해진, 김범수, 김정주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이재웅은 연세대 출신이다. 그리고 김정주, 이재웅, 이해진은 모두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김정주는 전형적인 금수저다. 아버지인 김교창 변호사는 판사 출신으로 기업법 전문가다. 어머니는 서울대 음대 출신이다. 이모부는 1983년 아웅산 테러로 사망한 고(故)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김정주에게 컴퓨터를 처음 선물한 사람이 고 김재익 수석이라고 한다. 이 집안은 대부분 교수, 법조인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게임회사를 차린 김정주의 선택은 어쩌면 일탈이었겠으나, 용인된 범위 안에 있었다. 넥슨 창업 자금을 아버지인 김교창 변호사가 댔다. 김 변호사는 넥슨 경영에도 깊이 개입했다.

이해진과 이재웅은 청담동 소년이었다. 이들 가족은 서울 청담동 진흥아파트 같은 동의 위 아래층에 살았다. 두 집안은 어머니끼리 친했다고 한다. 이재웅과 이해진은 서로에게 ‘엄친아’였던 셈이다. 이재웅의 아버지는 이철형 전 한국종합건설 대표다.

앞서 소개한 네 명 가운데 카카오 창업가 김범수만 예외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했고, 어머니는 지방에서 식당일을 했다고 한다.

김범수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재벌 가문은 아니지만 경제 수준이 꽤 높은 환경에서 자랐다. 실제로도 상위 중산층 출신 창업가가 성공 확률이 높다고 한다. 최상위 계층은 굳이 창업이라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창업 성공을 통한 기대 수익이 상속 자산보다 크기가 어렵다. 갖고 있는 것들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

중하위 계층에겐 창업이 너무 위험하다. 가진 것이 적으므로, 실패하면 전부를 잃는다. 다른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처지라면, 사업 실패의 충격이 가족 전체에게 미친다. 기술 창업에 도전할 만한 지적 역량을 갖고 있다면, 차라리 교사나 공무원 등을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

반면 상위 중산층 출신은 다른 형제나 부모의 생계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패의 충격이 당사자에게만 머문다. 그러니까 모험에 대한 부담이 적다. 게다가 이런 가정은 문화적으로도 열려 있는 편이어서, 색다른 시도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다.

그리고 상위 중산층 출신은 최상위 계층을 만날 일이 잦다. 예컨대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법률사무소에 종종 놀러 갔다고 한다. 기업법 전문가인 아버지를 통해 대기업 수뇌부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 창업가 이재웅의 아버지는 평사원으로 출발해서 대표이사가 됐다. 정치 권력과 재벌 수뇌부의 세계가 낯설지는 않았을 테다.

이런 환경은 역량이 뛰어난 청년에게 독특한 정서를 심는다. 최상위 계층을 자주 접한 탓에, 자신의 계층적 지위를 실제보다 낮게 여긴다. 모험보다는 가진 것들을 잘 지키는 쪽이 더 합리적인, 지위가 상당히 높은 계층임에도, 이런 사실을 잊게 된다. 그러니까 모험에 관대해진다. 여기에 역량까지 뛰어나면, 모험 욕구가 더 강화된다. 능력은 형편없는데, 그저 핏줄을 잘 타고나서 훨씬 풍요롭게 사는 이들을 자주 봤다. 일종의 신분 격차다. 자기 역량에 자신이 있다면, 이 같은 신분 격차를 깨려는 욕망이 생긴다.

유학을 다녀와서 교수가 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청담동 소년들이 모험을 했다. 그 정서적 배경에는, 최상위 신분과 맞닿아 있는 상위 중산층 가정 환경이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모험 양극화, ‘옆집 형은 장래 희망이 철도청 직원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청년 세대의 안정 선호가 두드러졌다. 이과 우등생은 죄다 의사를 지망한다. 교사, 공무원이 되려는 경쟁 역시 폭등했다. 그래서 개탄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이들보다 바로 윗세대인 ‘86세대’는 한숨 소리 역시 유난스러웠다. 이 대목에선 진보와 보수의 구분도 희미했다. 벤처 스타와 ‘젊은 피’ 정치인이 한결같았다.

똑똑한 청년이 의사나 관료, 법조인으로만 쏠려서는 안 된다. 이들 직종은, 대표적인 ‘시험 귀족’이다. 젊어서 치른 시험 결과로 평생 기득권을 누린다. ‘시험 귀족’이 군림하는 신분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글머리에서 소개한 86학번 벤처기업인들처럼 모험에 나서는 이들이 늘어나야 한다. ‘시험 귀족’ 대신 ‘비즈 엘리트’가 되려는 이들이 지금보다는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서 그친다면, 굳이 공론 장에서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소수 엘리트 집단 내부의 화제일 뿐이다. ‘시험 귀족’과 ‘비즈 엘리트’, 다 합쳐봐야 소수다. 사회 구성원 다수는 이들 모두로부터 떨어져 있다. 마치 86세대가 동년배 안에서 소수인 것처럼.

‘86세대’ 엘리트 가운데서 모험적인 기업인들이 많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이런 현상을 살피는 일이 다수 시민에게 의미를 지니려면, ‘86세대’의 도전과 패기를 추억하는데서 그치면 안 된다.

평사원 출신으로 대표이사가 된 아버지의 아들, 이재웅 씨는 재벌가 자제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에겐 사장되기는 평생을 경쟁 속에서 갈아 넣어야 하는 일인데, 핏줄을 잘 타고난 다른 누군가에겐 그냥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재능이나 노력으로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

그렇다면, 86세대 벤처 스타들은 위험을 무릅쓴 도전으로 신분의 벽을 넘어선 영웅인가. 공허한 이야기다. 정말 제대로 뜯어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창업은 모험이 맞다. 그런데 같은 모험도 사람마다 부담이 다르다. 자산이나 소득, 학력처럼 모험을 대하는 태도 역시 양극화돼 있다. 누군가에게 모험이란 철이 든 뒤로도 강렬한 유혹이다.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한가한 공상이다. 또 누군가에겐 아예 상상 밖 세계다. 어릴 적 옆집 형은 장래 희망이 철도청 직원이었다.

성현석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