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면 위의 테마파크 - 촉각적 시각문화에 대하여

     

책, 그리고 책을 포함하여 종이로 만들어진 모든 매체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 중 하나는 바로 촉각성과 공간성, 곧 물성이다. 그리고 이는 사양길의 종이책이 전자책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이기도 하다. 종이의 질감과 두께, 판형과 조판, 오색찬란한 후가공을 골고루 고민한 최근의 책들은 ‘실물’책이 전자책으로부터 차별화될 수 있는 고유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책이 사라진다면

소방차를 닮았지만 물탱크는 달려 있지 않은 빨간 차가 출동한다. 요란하게 달려 도착한 건물은 불에 타고 있기는커녕 멀쩡한 모습이다.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간 ‘방화수(fireman)’들이 집안 곳곳을 뒤져 숨겨진 책들을 찾아내어 한 데 모아 소각한다. 이 책들이 금서여서가 아니라, ‘금서’ 자체가 이 세상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레이 브래드버리가 1953년에 쓴 동명의 SF소설을 각색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화씨 451Fahrenheit 451〉(1966)의 첫 장면이다. 누벨바그의 기수이자 독서광이었던 트뤼포는 ‘책이 금지당한 세상’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했다. 책의 소멸은 이야기와 언어의 소멸임과 동시에 인류의 철학 상실을 의미한다. 태워지는 것은 종이뭉치지만 사라지는 것은 그 안의 비물질적 유산이다.

브래드버리와 트뤼포가 활동했던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시대에 ‘책이 없는 세상’이란 아마 우화에 가까운 표현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이 최근 ‘리커버 특별판’[1]으로 다시 나오는 등 새삼스러운 주목을 받고 있다. SF소설의 부흥 덕이기도 하겠지만, 이를 도래 가능한 위협에 대한 경고로 느끼는 독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아무도 책을 법으로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곧 그런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만큼 수요가 줄고 있는 데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화씨 451〉에서 책을 대체한 것은 통제장치로서의 텔레비전 하나뿐이지만, 21세기에 책을 대체하고 있는 것들은 그리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브래드버리의 상상력은 ‘텍스트의 부재’에 그 핵심이 있지만, 책 자체가 단순히 텍스트의 전달 매체로만 정의될 수 없는 복잡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1] 영화 〈화씨451〉(1966)과 리커버 특별판 『화씨451』(2019)

책이라는 물건

시청각의 시대. 영화관의 스크린과 TV에서부터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영상video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매체 문화는 주로 눈과 귀를 통해 수용된다. 시각에 동반되는 가장 중요한 감각이 청각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호학과 미디어학을 비롯한 다양한 이론 분야에서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 주로 다루는 대상 역시 시각과 청각의 문화다.

그러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고 들어야 하는 영상매체 이전에 아마도 최초로 ‘개인화된’ 매체였을 책은 눈으로 읽기에 앞서 손에 만져야 하는 물리매체다. 인쇄의 발명 이전에는 더욱 그랬다. 미디어가 되기 전의 종이뭉치 또는 나무토막은 거기에 손으로 글씨나 그림, 기호를 새겨 넣었을 때 비로소 미디어가 되었다. 코덱스, 파피루스, 양피지와 종이로 이어지는 동안 책은 수용과정 뿐만 아니라 제작과정에서도 손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읽는 것과 직접 적는 것을 포함하여 책은 시각과 촉각이 긴밀하게 결합된 매체인 것이다.

그러니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가장 먼저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좀 더 원초적인 감각, 촉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디스플레이는 텍스트를 수용하는 대신 물성을 추방했기 때문이다.

촉각의 상실은 가장 직접적인 감각의 소외를 뜻한다. 이미지와 소리는 그것이 아무리 가까이에 있더라도 직접 와 닿지는 않는다. 라디오, 무성 또는 유성 영화, 팟캐스트와 유튜브, 심지어는 전자책E-book과 오디오북까지도, 모든 현대적 미디어는 우선 손을, 그리고 손의 감각을 배반한다.

책, 그리고 책을 포함하여 종이로 만들어진 모든 매체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 중 하나는 바로 촉각성과 공간성, 곧 물성이다. 그리고 이는 사양길의 종이책이 전자책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이기도 하다. 종이의 질감과 두께, 판형과 조판, 오색찬란한 후가공을 골고루 고민한 최근의 책들은 ‘실물’책이 전자책으로부터 차별화될 수 있는 고유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물성의 부각은 전자책에 대한 반동적 경향성일 뿐만 아니라, 최근에서야 발견된 새로운 ‘책의 본질’이다. 시각은 디지털로 대체되었을지 모르나 촉각적인 부분, 그리고 책이 차지하는 물리적인 공간만큼은 책의 본질로 남아 있다. 이 본질을 가지지 못한 전자책은 책이면서도 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림 2] 책에 가장 가까운 감각은 손의 촉각이다.

종이라는 물질

의자는 나무로 만들고 옷은 천으로 만든다. 의자에 앉을 때 몸에 닿는 것은 나무이며, 옷을 입을 때 몸에 닿는 것은 여러 가닥의 실로 직조된 천이다. 책은 종이로 만든다. 책을 ‘읽기’에 앞서 종이가 먼저 손끝에 닿는다. 목재와 원단은 가공하기에 따라 의자와 옷이 아닌 다른 수많은 사물들이 될 수 있었다. 종이 또한 책이 아닌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종이는 책이라는 형태로 가공되고 나서도 다른 가능성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책장을 찢어 오리고, 접고, 이어 붙일 때 종이는 새로운 무엇이 된다.

책을 이루는 것이 종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우리는 책 위에 놓인 텍스트와 이미지를 지각하고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인식하기 이전에 우선 종이를 만진다. 종이는 눈만큼이나―때로 눈보다 훨씬 더―피부와 가까운 물질이다. 책을 ‘책’으로 대하기 이전에 종이라는 물질 자체를 놓치지 않을 때, 그 종이는 비로소 액정화면과 전혀 다른 무엇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물론 이제는 오직 종이만이 촉각성을 가진 매체라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촉각성을 더해 ‘현실감’을 구현하려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과 스피커의 움직임에 따라 좌석을 흔들고 물을 뿌리는 4DX 상영관은 시각과 청각을 위한 부연설명으로 촉각을 이용한다. 텍스트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책에 가장 가까운 매체인 전자책 단말기는 ‘전자잉크’ 방식을 통해 실물 책의 물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종이를 만지고 책장을 넘기거나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촉각적 경험만은 대체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전자책을 비롯한 디지털 매체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 전달과 처리 면에서는 오히려 디지털이 종이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대학원생들이 논문을 읽고 메모하고 스크랩하기 위해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장만하고 있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백컨대 이 글 역시 문명의 승리―아이패드로 작성되는 중이다.

게다가 종이 자체가 더 고급스러운 양질의 문화를 대표하는 물질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장 싸구려인 것, 가장 천시되는 것들이 종이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아파트 현관에 붙은 마트 전단지와 자정의 거리에 흩뿌려진 ‘호박나이트’ 명함이 종이로 만들어진다. 또한 마론 인형을 대신하는 종이 옷 입히기 인형을 비롯해 수많은 ‘문방구 완구’들이 종이로 만들어진다.

예시로 든 종이―생산물들은 저급한 동시에 가깝고 친숙한 것들이기도 하다. 광고와 장난감만큼 격의 없는 것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종이뿐만 아니라 사물이란 본디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다가갈수록 친근해지는 법이다.


수준 낮고 친근한 것의 미학

책, 잡지, 신문 등 종이매체는 그림이 많고 알록달록할수록 수준 낮은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종이매체의 주된 표현법은 텍스트를 통한 정보 전달이며, 여타 다른 표현들은 충분한 리터러시를 갖지 못한 자들을 위한 부연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쉽고 재미있는 표현방법일수록 더 친근하며 직관적이라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게다가 사진이 도래하면서 미술이 재현으로부터 해방되었듯이, 영상과 음향의 시대가 오면서 종이매체는 정보 전달의 수단이라는 기능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여전히 정보 전달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더 이상 종이매체가 독점하는 역할은 아니다. 종이매체에게 위기로 느껴지는 이 변화가 가능성의 개방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책의 의미 해체와 저급화가 허용되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 물질적 풍요와 시대적 변화가 맞물려 다양한 분야의 ‘저급 매체’들이 탄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는 대부분 포르노잡지, 게임잡지, 만화잡지, 가십지, 그리고 청소년잡지를 비롯한 ‘잡지’의 형태로 나타났다. 《미스터케이》의 지평 또한 애초에 높은 수준을 구가할 필요가 없는 10대 청소년 대상의 오락 잡지라는 목적성에서 열렸다. 영양가 있는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잡지나 서적과는 그 태생이 달랐던 《미스터케이》는 훨씬 더 자유분방하게 이미지 실험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스터케이》는 책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종이의 수많은 다른 가능성들을 낭비하지 않았다. 또한 강력한 시각문화를 생산하면서도 촉각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가깝고 가장 가까운 나머지 하찮거나 미숙한 것으로 여겨지는 ‘직접 닿는 감각’을 지면 위에서 극대화했다. 앞서 책과 종이의 물성을 설명하기 위해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 까닭은 그것이 《미스터케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면 위의 테마파크

《미스터케이》의 촉각성은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첫째는 공간적인 잡지운영에 대한 것이다. 책은 그것이 실제 세계에서 차지하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책장을 펼쳤을 때 그 사이사이에 생성되는 수많은 가변적 공간들을 가진다. 덮어 놓으면 다른 책과 다르지 않지만 책장을 열면 입체적인 이미지의 향연이 펼쳐지는 팝업북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미스터케이》가 팝업북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대신 지면을 공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연필로 표시하며 문항들을 따라가는 심리테스트나 퀴즈, 십자말풀이, 간단한 보드게임 같은 것들은 비교적 전통적인 구성에 해당한다. 인상적인 것은 수개월간 진행되었던 ‘숨은 보물찾기’다. 이는 지면 곳곳에 숨겨진 작은 보물 상자들을 모두 찾아 독자 엽서에 적어 보내면 추첨을 통해 사은품을 주는 나름 거국적인 이벤트였다. 잡지 전체의 공간을 활용하여 단순한 보드게임 시스템을 만드는 동시에,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영리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미스터케이》는 잡지가 차지하는 글자 그대로의 ‘공간’ 역시 놓치지 않았다. 매월호를 차례로 꽂아 두면 연결되는 캐릭터 그림을 세네카(책등)에 넣어 10대 독자들의 ‘인테리어’ 감각과 전권 소장의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연결그림의 이가 빠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독자들은 《미스터케이》의 발행 날짜에 맞추어 문방구로 달려가야 했다.

2001년 10월호에는 대규모 개편[2] 과 동시에 ‘빤쓰’를 머리에 뒤집어쓴 ‘빤쯔(Panzz)’라는 캐릭터가 출시되었는데, 이 캐릭터가 처음으로 활용된 방식이 소소하게 혁신적이었다. 이때 《미스터케이》는 처음으로 기사 콘텐츠가 실린 앞부분과 편선지가 들어간 뒷부분의 표지를 따로 만들고, 각각 앞면이 될 수 있도록 위아래 방향을 바꾸어 제작했는데, 두 파트의 중간에서 별안간 튀어나온 ‘빤쯔’가 “마침내 때가 왔군. 우리 모두 과감히 뒤집자고.”라고 말하는 것이다. 좀 우스울 수 있지만, 이는 《미스터케이》 편집부가 가진 공간적 지면 운영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다.

[그림 3] 빤쓰를 뒤집어쓴 ‘빤쯔’가 ‘과감히 뒤집을 것’을 제안한다.

둘째는 종이매체 안에서 종이 자체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만화 지면인 ‘SPOON’을 비롯해 옐로페이퍼와 벼룩시장을 패러디한 ‘오렌지 페이퍼’와 ‘빈대시장’ 지면을 재생지로 구성한 점은 만화책과 신문의 질감을 살림과 동시에 제작 단가도 낮출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라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시도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스터케이》의 또 다른 주무기인 높은 완성도의 패러디와 함께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만큼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미스터케이》는 질감뿐만 아니라 재단에 있어서도 곧잘 경계를 허물었다. ‘잡지 안의 미니 잡지’ 개념을 도입하여 작은 판형의 지면을 잡지 중간에 편성하는 것이다. ‘월간 캠 매거진―구룸 얼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아예 다른 크기로 재단하기 애매한 콘텐츠(‘CU@러브장’, 다이어리 속지 등)의 경우에는 독자가 직접 잘라서 용도에 맞게 쓰거나 작은 사이즈의 책자를 만들 수 있도록 재단선을 삽입하여 디자인하기도 했다.

셋째는 《미스터케이》가 수작업 문화의 최전선에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당시 유행했던(지금 생각해보면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그런 것들이 유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부분이 있다) 십자수를 비롯해 다양한 DIY 수공예 방법을 소개하는 지면이 고정 코너로 실렸다. 또한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 성행하던 ‘러브장’[3]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몇 가지 제작 방법을 설명하는 지면을 편성하기도 했다.

여기에서의 ‘킬러 콘텐츠’는 단연 입체 패러디 편선지와 ‘엠알케이[4] 마을 만들기’일 것이다. 《미스터케이》 분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편선지’는 일반적인 편지지 개념을 완전히 뛰어넘은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엠알케이 마을 만들기’는 슈퍼마켓, 동물병원, 초밥집, 수영장 등 다양한 건물이 그려진 전개도를 오리고, 접고, 풀칠하여 조립해 작은 미니어처 마을을 만들 수 있는 일종의 공작 콘텐츠였다. 이는 잡지 내에 조금 두꺼운 종이로 편집되어 있었는데, 한 달에 하나의 가게가 실렸기 때문에 마을을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음 달에도 역시 문방구로 달려가야 했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매우 공들여 설명했던 ‘제작본능’은 2000년대 초반 한국의 10대들에게서 빛을 발한다.

[그림 4] 정성스럽게 만들어 전시해 놓은 엠알케이 마을을 엄마 친구 아들인 어린 동생에게 타의로 양도하고 하루 종일 울었던 아이가 있었다.

아날로그 세대의 제작본능

이 세 번째 특징은 매체의 시대 및 세대 반영성과 가장 크게 결부된 문화인 동시에, 이를 향유하고 영향을 받으며 자란 밀레니얼 세대의 ‘현재’ 문화 중 꽤 큰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이기도 하다. 촉각적 종이매체에 대한, 손에 익은 기억과 머리에 남은 추억은 이들의 소비문화 일면을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독립출판문화축제 언리미티드에디션[5]은 종이매체의 형태를 가진 온갖 독립출판물과 굿즈를 만나볼 수 있는 시장으로, 밀레니얼 세대는 그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연간 이루어지는 이 행사를 위해 수백여 팀이 자가 출판물을 기획·제작·생산하여 직접 들고 나와 면대면으로 판매하며, 행사 당일 아침에는 방문객들이 입장을 위해 미술관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물론 이러한 제작―소비문화가 특정 세대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나타나는 독립출판물 및 독립잡지의 범람과 다양한 취미영역에서의 굿즈 문화 등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앞에서 언급했던 도서 소비문화의 변화 역시 도서의 주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성향과 떼어 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밀레니얼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native라 불릴 만큼 디지털과 인터넷 문화에 친숙한 첫 세대로 규정된다. 그런데 그들은 동시에 아날로그 문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촉각이 시각만큼이나 중요한 문화적 감각이었던 청소년기가 있었고, 《미스터케이》는 오직 종이매체만이 가진 촉각성과 공간성을 무기로 이 시기를 점령했다. 첫 번째 디지털 세대이자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인 밀레니얼의 정서를 형성한 바로 그 시간대 말이다.

2018년 언리미티드에디션에서는 두 장의 흥미로운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각각 다른 팀에서 들고 나온 두 포스터 중 한 장에는 “print is dead”라는 문장이, 다른 한 장에는 “print is not dead”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지금 여기(Now&here)’라는 동시대 시각문화의 현재성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함께 간 지인과 각각 다른 포스터를 사서 돌아왔다.

앞으로도 인류는 종이 책장을 넘기며 텍스트와 이미지를 읽을 것이며, 어린아이들은 종이로 된 갖은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 것이다. 그 수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적어진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먼 옛날부터 이어진 이 행위의 본질은 오늘이 어제와 다르듯, 내일은 또 다르게 변해 있을 것이다.

최은별 / 디자인문화연구자 


[그림 5] 여러 달을 빠짐없이 모아야만 그 뿌듯함을 맛볼 수 있었던 2001~2003년의 세네카 연결그림


[1] 대표적인 장르문학 출판사인 ‘황금가지’에서 2019년 4월, 인터넷서점 알라딘을 통해 한정 판매했다. 최근 대형 인터넷서점 사이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독점 리커버링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종이책 판매고를 늘리기 위한 전략으로, 인기가 많은 책의 경우에는 인터넷서점 3사에 각각 다른 표지로 리커버 특별판을 출시하기도 한다. 
[2] 《미스터케이》는 꽤 자주 특집호와 창간기념호, 개편호 등을 편성했다. 2001년 10월의 개편 제목은 ‘3단 변신 특대호’였는데, 이는 기사 콘텐츠 파트와 만화+빈대시장(생활정보신문) 파트, 그리고 편선지 파트의 분리를 의미한다.
[3] 스프링 노트 등에 각양각색의 ‘디자인’과 ‘카피라이팅’으로 애정을 표현하여 전달하던 수제 ‘러브레터 묶음’이다. 주로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정성들여 만들어서 선물하곤 했는데, 자매품으로 ‘우정장’도 제작되었다. 딱히 선물한 상대가 없더라도 러브장 제작 자체를 재미있는 놀이문화로 받아들여 동참하는 학생들도 다수 존재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중학생인 친구의 언니가 만들어 놓은 러브장을 함께 훔쳐보며 스킬을 기르곤 했다. 
[4] 초기 ‘미스터케이’가 영문으로 ‘Mr.K’라고 쓰여 있던 탓에, 읽는 방법을 두고 파가 갈리는 현상이 있었다. 본래 의도한 제호는 ‘미스터케이’가 맞았으나, 다수의 독자가 ‘엠알케이’라고 불렀던 탓에 편집부도 이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 애칭처럼 사용했다. ‘미스터케이’보다는 ‘엠알케이’가 좀 더 입에 붙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5] Unlimited Edition. 독립서점 ‘유어마인드’가 주관하는 ‘서울 아트북 페어’로, 2019년 11월에 11회째 개최된다. 극소수의 독립출판물 제작자와 소비자들의 교류를 위한 소규모의 장터에서 시작해 현재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사흘 간 개최되는 대규모의 독립출판문화행사로 자리매김했다. 2018년 10회 행사에서는 이틀 간 219팀이 참여, 2만여 명이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