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원리와 세 종류의 정치 질서

     

더불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2019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람시가 말하는 ‘격률 혹은 법률적 근본 원칙’은 무엇인가이다. 과연 세기 초의 영국과 독일이 도달했던 ‘윤리적 국가’ 수준의 이상적이면서도 실정적인 중심 원리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존재하는가? 

‘질서’와 ‘무질서’는 정치 논쟁에서 가장 자주 되풀이되는 두 단어다. ‘질서당’, ‘질서 유지자’, ‘공공질서’… 이 세 어구는 모두 질서라는 동일한 축에 매달려 있다. 정치 언어는 역사의 다양한 국면마다 개인, 정당 그리고 국가가 취하는 특수한 형태에 따라 다소 긴장되게 이 축을 중심으로 맴돈다. ‘질서’라는 단어에는 치유력이 있으며, 정치 제도의 유지는 상당 부분 이 힘에 달려 있다. 현존 질서는 조화롭고 안정적이라고 치부되며, 시민 대중은 어떤 상황을 초래할지 알 수 없는 급진적 변화라는 생각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한다. 언제나 그렇듯 흐리멍덩하기만 한 상식은 가르치길, 내일 닭 한 마리를 꿈꾸기보다는 오늘 달걀을 즐기는 편이 낫다고 한다. 말하자면 상식이란 정신의 끔찍한 노예 감독이다. 닭을 얻기 위해 달걀을 깨뜨려야 할 때일수록 상식은 더욱더 이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변화는 뭔가 갈기갈기 찢긴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원성을 통일성으로, 타성의 정적인 무기력함을 삶의 역동성과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옛 질서를 대신할 새 질서가 옛 질서보다 더 잘 조직되고 더 활력에 넘칠 것이라고 상상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어느 누구도 낡은 질서의 폭력적 파괴 너머를 바라보지 않으며, 공포에 마음을 빼앗긴 채 혹시 모든 것을 잃지는 않을까, 피치 못할 무질서와 혼란에 직면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꼼짝하지 않는다.

유토피아주의자들의 예언은 변화에 대한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유토피아는 이미 질서가 잡히고 정돈된 미래의 일상을 그리며, 이를 통해 변화는 암흑으로 뛰어드는 일이라는 인상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유토피아적인 사회 구조물은 바로 이렇게 너무 정리 정돈돼 있기 때문에 항상 붕괴하고 말았다. 세부 사항이 단 하나라도 잘못됐다는 점이 드러나면, 건물 전체가 무너졌다. 이런 종류의 구조물에는 토대가 없었다. 즉, 단 하나의 도덕적 원리가 아니라 무수한 세부 사항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분석적이었다. 그리하여 한 체계의 구체적인 세부 사항들이 너무 많은 근거들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결국 어떠한 현실적 근거도 갖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예측할 수 없게 됐다. 한데 인간은 행동에 나서려면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상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목적 아닌 다른 무엇을 지향하는 의지를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보편적 목적이 없는 집단적 의지를 상상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하지만 단 하나의 실제적 세부 사항이거나 일련의 세부 사항들은 이러한 목적이 될 수 없다. 어떤 사상 혹은 도덕 원리만이 그럴 수 있다. 유토피아들에 내재한 결함은 바로 이것이다. 즉,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실제적 세부 사항들의 비전이 미래 비전이 될 수 있다고 믿지만, [도덕적] 원리 혹은 격률格律에 입각한 비전만이 그럴 수 있다. 법률적 원칙(법률과 재판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도덕성이다)은 인간 의지의 산물이다. 만약 인간 의지에 방향을 부여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목적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무엇을 목적으로서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 열정이 폭발하고 난 뒤에는 점차 수그러들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현존하는 다양한 정치 질서들은 법률적 원칙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실행에 옮기려는 욕구로부터 탄생했다. 1789년[1]의 혁명가들은 그들의 행동으로부터 비롯될 자본주의 질서를 예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인간의 권리라는 원리를 실행에 옮기길 바랐다. 그들은 공동체의 각 성원이 특정한 권리를 향유하도록 보장하길 원했다. 낡은 껍데기가 처음 부서진 이후 이러한 권리는 점점 더 강력해지고 더 구체화되었다. 그래서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으로 변형됐고, 상황을 형성하고 결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부르주아 문명이었다. 이는 부르주아지가 단 하나의 유력한 사회 세력이자 역사의 틀을 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기에 생겨날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문명 형태였다.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자들은 늘 그렇듯 이때도 패배하고 말았으니, 왜냐하면 그들의 비전은 세부 사항 가운데 어느 것도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원리는 실현됐으며, 이 원리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아는 구조와 정치 질서가 자라났다.

부르주아 혁명이 역사로 구현해낸 그 원리는 과연 보편적인 것이었는가? 의문의 여지없이, 그렇다. 하지만 흔히 말하길,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자신의 가르침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볼 수 있었더라면 십중팔구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역설적인 주장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는 분명 하나의 역설이다. 즉,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뭔가를 공정하게 이야기한다. 보편성이 곧 절대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역사에서 절대적이고 고정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교의는 ‘이상적인 기준’이지만, 일단 이성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정되기만 하면 ‘실제 작동하는 이상’으로 바뀌었다. 이들 교의는 부르주아 국가에서 실제 실현됐으며,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형태로 이 국가에 대한 반명제를 촉진하는 목적에 활용됐고, 이제는 기력이 소진된 상태다. 이들 교의는 부르주아에게는 보편적일 수 있겠지만,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충분히 보편적이지 않다. 부르주아지에게는 지향해야 할 이상이었지만,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그 이상의 발전을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완전한 자유주의 강령은 사회주의 정당의 최소 강령이 됐다. 즉, [...][2] 바로 그 때가 왔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일상 활동 지침 역할을 하는 강령이 됐다.

이상적 기준으로서 자유주의 강령은 윤리적 국가, 즉 국가의 전통적, 경제적 실재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끊임없는 재배열과 충돌 그리고 계급 갈등을 이론상으로 뛰어넘는 국가를 낳는다. 이러한 국가란 정치적 실재라기보다는 정치적 열망으로서, 오직 유토피아적 모델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을 강화하고 보수적 힘으로 만드는 것은 이것이 환상이라는 바로 그 사실이다. 이러한 국가가 어느 날엔가 마침내 완벽하게 실현되리라는 희망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를 거부하지 못하며, 그래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하지도 못한다.

이제 이러한 ‘모델 국가’ 두 나라를 살펴보자. 이 두 나라야말로 전형적인 사례로서, 모든 정치 이론가에게 비교의 척도가 된다. 영국[잉글랜드] 국가와 독일 국가다. 두 나라 모두 초강대국이 됐으며,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 굳건한 정치적, 경제적 유기체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두 국가를 혼동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 두 나라에는 헛갈릴 일이 전혀 없는 고유한 특성, 현 정세에서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특성이 있다.

두 국가에는 유사한 내적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사상이 존재한다. 영국의 경우 이는 ‘자유방임’이라는 말로, 독일의 경우는 ‘이성에 바탕을 둔 권위’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자유방임’은 투쟁의 역사 전체, 특별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혁명적 봉기의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공식이다. 이는 이런 수많은 봉기를 거치며 점차 발전한 사고방식이다. 이는 이들 투쟁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시민이 공적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점차 모습을 갖춰간 신념이었으며, 행복의 비밀은 자신의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있다는, 나라 안의 생산적이고 입법적인 힘을 자유롭게 발전시키는 데 있다는 신념이었다. 물론 이는 특별한 맥락의 행복관이다. 이 행복관은 설령 뭐가 잘못 되더라도 그게 개인들 책임은 아니라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어떤 계획이 실행되지 않을 경우 이는 이 계획의 주창자가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켜 성공적 결말에 이르게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한 지위에 있지 못하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례를 인용하자면, 영국에 관한 한 전쟁[제1차 세계대전] 전에 자유방임의 이론과 실천을 대변한 인물은 로이드 조지Lloyd George[3]였다. 한 사람의 각료로서 자신의 발언이 정부 공식 입장으로 해석될 것임을 잘 알고 있던 그는 주로 노동자로 이뤄진 청중 앞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생산의 즉각적인 집산화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론상으로는 사회주의에 전혀 반대하지 않습니다. 각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할 뿐입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여전히 모종의 자본주의 사회라면, 이는 분명 자본주의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힘임을 뜻합니다. 당신네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실행할 때가 무르익었다고 말합니다. 그럼 증명해보십시오. 당신들이 다수임을 증명해보십시오. 당신들이 잠재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능력이 있는 세력임을 입증해보십시오. 그럼 우리는 기꺼이 당신들에게 우리 자리를 내어드리지요.” 이탈리아에서는 정부를 스핑크스[4] 같은 무엇, 국민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으며 사상과 사건에 대한 실질적 논쟁과는 일절 괴리된 무엇으로 여기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탈리아인들에게는 로이드 조지 식 발언은 그다지 신뢰를 주지 못한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지난 200년 동안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정치 투쟁이 계속됐고, 모든 정치 세력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자연권으로서 별 고민 없이 수용된 게 아니라 투쟁으로 얻은 것이었기에 이런 류의 발언이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것만은 ―또한 공허한 수사만은― 아니다. 영국의 급진파 정부가 아일랜드 독립을 밀어붙이기 위해 상원의 거부권[5]을 폐지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라. 전쟁 전에 로이드 조지가 제출한 농업법안이 농지 소유자가 누구든 농지를 놀려둘 경우 해당 농지에 대한 권리를 상실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으며 따라서 수많은 사유지를 지주로부터 직접 경작자에게 재분배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보라. 이러한 종류의 부르주아 국가 사회주의―비사회주의적 사회주의―가 존재하기에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정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국가를 적대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다.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면서, 노동자운동의 특징인 도덕적 분노 없이 조심스럽게 계급투쟁을 전개했다.

David Lloyd George and Winston Churchill at Connaught Rooms, November 20, 1934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와 윈스턴 처칠

독일의 국가 개념은 영국과 천양지차이지만, 결국 효과는 같다. 독일 국가의 사고방식은 본질적으로 보호주의적이다. 피히테Fichte[6]는 폐쇄적 국가, 즉 이성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를 성문화했다. 이 국가는 인간 힘의 자유롭고 자생적인 표출의 희생양이 되도록 방치돼선 안 되며, 무엇에 대해서든 어떤 행위를 하든 이성에 의해 미리 결정되고 예정된 프로그램의 표현이며 통일된 의지의 표현임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독일 의회의 권한은 다른 나라 의회에 미치지 못한다. 독일 의회는 단순한 자문 기구이며, 그럼에도 이것이 유지되는 것은 오직 국가의 행정적 권한이 전적으로 무오류라고 하기가 너무 비합리적이며 의회와 토론 또한 진리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에 바탕을 두고 진리임을 주장하는 권리 같은 것은 인정받지 못한다. 최종 결정은 사안을 조정하고 결재하는 내각(황제)에게 달려 있으며, 이는 황제 칙령이라는 예외가 아니면 대체될 수 없다. 그러나 다양한 계급들은 자신들의 기본권이 보호 받고 있다고 믿으며, 사회주의자의 경우는 다수가 되려는 노력에 행동을 집중해야 한다고, 보수주의자의 경우는 다수를 지키고 이로써 그들이 여전히 역사적 정당성을 지님을 입증하려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는 공허하거나 줏대 없는 믿음이 아니라 오랫동안 훌륭한 행정을 경험하고 실제로 분배적 정의를 누리며 형성된 신념이다. 예를 들어보자. 1913년에 군비 지출을 10억 마르크 증액하는 법안이 통과됐는데, 이때 사회주의자들[사회민주당]도 법안에 찬성했다. 다수의 사회주의자들이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일반 납세자가 아니라 바로 부유층에게 10억 마르크를 특별 징수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적어도 외관상은 그랬다). 이는 일종의 국가 사회주의 실험처럼 보였다. 군비 지출 부담을 자본가에게 지운다는 점에서 이는 그 자체로 정의로운 원칙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이 지출안은 승인됐다. 결국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득을 본 것은 다름 아닌 부르주아지와 프로이센 군부 도당이었지만 말이다.

이탈리아의 ‘공공질서 정당들’에게는 헌정 질서의 이 두 유형이 기본 모델이다. 이탈리아 자유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이탈리아가 각기 영국 국가, 독일 국가와 비슷해지길 바란다고 말하거나 혹은 말했었다. 모든 반反사회주의론은 이탈리아를 이런 윤리적 국가로 만든다는 열망을 중심에 두고 구축됐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오늘날의 영국과 독일을 있게 한 점진적 발전기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따라서 자유주의자와 민족주의자의 주장에 담긴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곧바로 도출되는 공식은 프롤레타리아트 편의 희생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필요를, 인격을, 투쟁 의지를 희생해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희생은 만물이 제 갈 길을 향하게 만들기 위한, 즉 국부가 축적되고 국가 기구가 경제 실적을 향상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7]. 민족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종류의 질서가 이탈리아에 이미 존재한다고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사회주의자들이 필연적 진보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질서가 수립될 수 있으며 수립되리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이런 상태가 우리에게는 더 거대한 에너지와 투쟁 정신의 원천이다. 어떤 사람에게 일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데 그 사람은 그 일을 당장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게 인민 대중에게 행동을 설득하는 경우라면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특히 이탈리아처럼 정부쪽의 정책이라고는 이들 대중의 열망을 억누르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인내와 생산성을 쥐어짜내는 것뿐인 곳이 아니라면 어떻겠는가. 가두 투쟁이 없고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법률이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도 볼 수 없으며 소수의 의지가 성공적으로 관철되지도 않는 나라라면, 계급투쟁은 격렬함을 잃을 것이며 혁명 정신은 절박함을 상실해 쇠약해질 것이다. 대신 이른바 무임승차 법칙law of least effort―게으름뱅이를 위한 법칙으로서, 단지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이 만연할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혁명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형태로든 질서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이를 새 질서로 대체하려는 의지를 발견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8].

질서를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일은 사회주의자의 임무가 아니다. 사회주의자는 이제까지 존재해본 적 없는 질서를 수립해야 한다. 사회주의자가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법률적 원칙이란 이것이다. “모든 시민은 각자의 인격을 최대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격률이 실제로 실현될 때, 일체의 특권은 사라질 것이다. 자유는 극대화되고 강제는 최소화될 것이다. 개인의 삶, 사회 안에서 개인의 역할은 모든 전통적 양상[패턴]에서 벗어나 오직 각자의 능력과 생산성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부는 노예제의 수단이 아니라 공평무사하게 만인에게 속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가능한 최고의 생활수준을 누릴 수단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지성을 갖춘 이라면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교육 받을 것이며, 이는 더는 [...][9]의 보상이 아닐 것이다. 사회주의 강령 전체의 여타 원리들은 이 한 가지 격률에서 파생된다. 그리고 강조하건대, 사회주의 강령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는 구체적인 보편성이다. 즉, 이는 의지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이는 질서의 원리 가운데 하나, 즉 사회주의적인 질서의 원리다. 나는 이 원리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실현되리라 믿는다[...][10].

<라 치타 푸투라La Città futura> 1917년 2월 11일


[주]
[1] 프랑스대혁명을 뜻한다. 
[2] 영역자주 – 검열로 몇 단어가 삭제됐다. 
[3] David Lloyd George(1863-1945). 영국의 정치가. 자유당 소속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1922년에 총리를 역임했다. 전쟁 전에는 자유당 안에서도 급진개혁파로 활약하며 영국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았다. 재무부장관으로서 ‘인민 예산’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1909년 예산안에서는 고율의 토지 보유세와 소득세를 통해 복지 예산을 확보하려 했다. 그람시가 언급하는 법안이 바로 이 예산안이다. 
[4] 보통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나 대상을 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5] 영역자주 – 이탈리아어 원본에는 ‘Voto[vote]’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아마도 ‘거부권[veto]’의 잘못된 표기일 것이다.
[6] Johann Gottlieb Fichte(1762-1814).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이어 독일 관념론의 기틀을 놓았다. 정치적으로는 나폴레옹의 독일 점령에 맞서 독일 민족주의를 고취했다. 1800년에 발표한 」에서 국가 사회주의와 보호주의의 원형이라 할 만한 구상을 제시했다.
[7] 영역자주 – 검열로 세 줄이 삭제됐다. 
[8] 영역자주 – 검열로 몇 단어가 삭제됐다. 
[9] 영역자주 – 검열로 네 줄이 삭제됐다. 
[10] 영역자주 – 검열로 다섯 줄이 삭제됐다.

[해설]
이 글은 26세의 그람시가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에 발표한 비교적 긴 논설이다. 정치 활동 초기에 발표한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청년기의 성급하고 단순한 사고도 눈에 띄지만, 러시아 혁명 발발 전까지 청년 그람시가 도달한 사상적 여정의 중간 지점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글이다. 또한 후기 사상의 주요 착상들, 즉 헤게모니, 확대 국가(국가+시민사회), 역사적 블록 등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글이 발표된 <라 치타 푸트라(‘미래 도시’)>는 단 1호만이 나온 동인지다. 이 무렵 그람시는 전쟁 이전에 대학과 사회당 토리노 지부에서 만난 벗들이 대부분 징집됐기 때문에 사회주의청년동맹(사회당 청년조직)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주로 어울렸다. 이들은 대개 연배가 그람시보다 아래여서 그를 선배 혹은 지도자로 따랐다. <라 치타 푸트라>는 그 중 안드레아 빌롱고Andrea Viglongo라는 청년이 주도해 만든 동인지였다. 전시라 종이도 귀했기에 4면밖에 안 됐고, 검열까지 받아 보기 흉한 검은 줄 투성이였다. 게다가 1호를 내고 그걸로 끝나 버렸다.


하지만 그람시는 이 소박한 인쇄물을 준비하는 작업에 나름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여기에 소개하는 「세 원리와 세 종류의 정치 질서」도 상당히 공들여 쓴 논설일뿐더러 함께 수록된 다른 글들에서도 이후 <신질서L’Ordine Nuovo>에서 선보일 사상과 노선을 예감케 하는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람시 자신 <라 치타 푸트라> 마지막 면에 실린 글에서 이 간행물이 미래의 더 야심찬 기획의 예고편임을 선언했다.

우리는 이 신문에 우리들만의 것이 아닌 표제를 붙였다. 전쟁이 그 불가항력적인 채찍을 휘두르며 세계를 엄습하기 이전에 몇 사람의 친우들이 사회주의 생활에 대한 새로운 잡지를 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도덕의 에너지, 새로운 [인용자주-몇 단어가 검열로 삭제] 우리들 젊은 세대의 이상에 불타는 정신의 용광로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중략) 젊음과 열의에 충만한 우리들의 확신을 담아 우리는 순수한 이탈리아적 전통, 사회주의자에 의해 재생된 마치니Mazzini[인용자주-19세기 이탈리아의 공화주의 혁명가]의 전통을 다시금 발전시키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제지당했다. 전쟁이 우리로부터 앗아간 우리의 동료들이 다시 모일 때까지 그것은 연기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모일 때 비로소 그 잡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주세페 피오리, 「그람시: 한 혁명가의 생애와 사상」, 신지평 옮김, 1991. 144쪽에서 재인용)

「세 원리와 세 종류의 정치 질서」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영국, 독일, 이탈리아, 세 자본주의 국가를 서로 비교한다는 점이다. 당시만 해도 이렇게 각 나라의 자본주의-국민국가 체제를 비교해 차이를 끌어내는 논의는 그리 낯익지 않았다. 특히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더욱 그랬다.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영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각 나라 자본주의 질서의 차이보다는 이들을 관통하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규정력에 더 신경을 썼다. 반면에 이 글에서 청년 그람시는 같은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나라마다 서로 다른 원리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각 국민국가에서 그러한 중심 원리 역할을 하는 이념이 무엇인지 찾아내려 한다.

글의 서두에서 그람시는 사회 변화에 강력한 장애물 구실을 하는 ‘질서’의 역할에 주목한다. 상투적인 좌파라면 단지 이런 질서가 기만이라거나 억압의 수단이라고 성토하고 말겠지만, 그람시는 다르다. 그는 기성 질서가 대중들 사이에 아주 강력한 관성을 낳는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이 대목에서 이후 그람시의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될 ‘상식’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현존 질서는 대중에게 이 질서 외에 다른 대안은 실현되기 힘들다는 상식을 심어놓는다. 괜히 이를 파괴하려 하다가는 더 끔찍한 재앙만 초래하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상식은 “정신의 끔찍한 노예 감독”이다. 다른 어떤 채찍이나 당근보다 더 효과적으로 노예 반란을 예방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주의자들은 대중의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자 대안 질서를 상세히 그려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그람시가 보기에 이는 헛된 노력에 불과하다. 어떤 질서든 그 힘은 결코 세부 묘사의 사려 깊음이나 섬세함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힘은 오직 인간 의지에 구체적인 방향성을 부여하는 강력한 중심 원리에서 나온다. 그람시는 이를 해당 국가 법률 체계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 즉 ‘격률’이라 정의한다. 달리 말하면, 국가가 시민들에게 제시하고 시민들 역시 국가에게 그 이행을 바라는 핵심 가치이자 지향, 약속이다.

프랑스대혁명에서 부르주아 혁명가들이 내세운 격률은 ‘인간의 권리’였다. “그들은 공동체의 각 성원이 특정한 권리를 향유하도록 보장하길 원했다.” 그들은 다만 이 최고 원칙을 현실에 풀어 놓았을 뿐 그 세부 사항을 설계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은 부르주아 계급에게만 보편적인 권리가 보장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는 그렇지 못한 현실 질서였다. 한때 부르주아지가 담당자 노릇을 한 자유주의는 그래서 이제는 부르주아지의 손을 떠났다. 그람시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최소 강령’, 즉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됐다.

하지만 이것은 전 지구적인 일반론이다. 각 국민국가를 들여다보면, 조금은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된다. 자유주의 강령은 시민사회의 모순을 치유 혹은 봉합해 더 나은 발전과 조화의 상태로 이끌 수 있는 ‘윤리적 국가’(헤겔적 국가?)를 약속하는데, 어떤 나라에서는 이 약속이 아직 대중들 사이에서 시효를 상실하지 않은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전자의 경우에 기성 질서는 단지 부정적인 맥락에서 대중이 그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 경우에 대중은 기성 질서가 명백한 문제들을 드러내더라도 이를 그 질서 자체의 필연적 결과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성 질서의 핵심 원리가 아직 완전히 구현되지 못한 탓이라 여긴다. 현존 질서가 약속한 프로그램이 충분히 추진되기만 한다면, 현실의 병폐들은 치유될 것이다. 대중이 이런 시각으로 질서를 바라보는 곳에서는 혁명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쉽지는 않다. 오히려 위기가 닥칠수록 대중은 어느 정도까지는 기존 질서에 더욱 의지하게 된다.

그람시는 이렇게 ‘윤리적 국가’가 위력을 발휘하는 두 사회로 영국과 독일을 든다. 두 나라는 서로 대립되는 원리를 중심으로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영국 사회의 중심 원리는 ‘자유방임’, 즉 좁은 의미의 자유주의이고, 독일은 그런 협의의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듯 보이는 민족주의/국가주의 원리를 추구한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그 ‘효과성’의 척도는 저항 세력이 지배 질서의 중심 원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여부다. 저항 세력이 이런 중심 원리에 기대어 이 원리의 더욱 완전한 실현이라는 형태로 요구를 제기하고 상황 개선을 기대할 때에 지배 질서는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람시가 보기에 영국과 독일 모두 이 수준에 도달해 있다. 다름 아닌 영국과 독일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자들이 각각 자유방임과 국가주의의 전통에 호소하며 그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 그람시가 이런 논의를 통해 도달하는 결론은 이탈리아 사회에서 혁명의 현실성이다. 영국이나 독일 부르주아지와 달리 이탈리아 부르주아지는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 즉 ‘윤리적 국가’를 수립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자유주의자들은 영국식 자유방임 원리를 약속하고, 이탈리아의 민족주의자들은 독일식 국가주의의 구현을 약속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느 쪽도 실현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이탈리아 노동계급은 영국, 독일의 형제자매와는 달리 기성 질서에 대한 애정이나 미련이 없다.

“가두 투쟁이 없고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법률이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도 볼 수 없으며 소수의 의지가 성공적으로 관철되지도 않는 나라라면, 계급투쟁은 격렬함을 잃을 것이며 혁명 정신은 절박함을 상실해 쇠약해질 것이다 … 이런 나라에서는 혁명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이런 나라가 아니다. 청년 그람시는 여기에서 이탈리아가 영국이나 독일보다 더 앞선 미래로 도약할 가능성을 찾는다. “모든 시민은 각자의 인격을 최대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격률을 중심 원리로 삼은 사회, 부가 “노예제의 수단이 아니라 공평무사하게 만인에게 속하게” 되는 사회로 말이다. 이탈리아 사회를 이렇게 진단한 그람시가 몇 달 뒤에 러시아 10월 혁명을 “『자본론』에 반하는 혁명”이라며 반긴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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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칸 공장의 적위대 

By Viktor Bulla - http://photoarchive.spb.ru:9090/www/showObject.do?object=2502078330, 퍼블릭 도메인, 링크


지금 시각에서 보면, 이탈리아 혁명 혹은 반주변부 혁명에 대한 청년 그람시의 이러한 진단은 좀 성급하고 조야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세 원리와 세 종류의 정치 질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람시가 의도한 결론만이 아니다. 그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가 제시한 가설들, 예비-개념들, 영감 어린 발상들을 지나쳐선 안 된다.

그가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 즉 ‘윤리적 국가’로 언명하는 바는 좁은 의미의 국가기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를 통해 지배를 공고히 하는 ‘확대 국가’ 개념과 통한다. 피지배 세력에게 여전히 기대와 요구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질서란 억압뿐만 아니라 동의에 바탕을 둔 지배, 즉 ‘헤게모니적 지배’론의 원형이다. 또한 확대 국가의 주도적 역할을 통해 격률 혹은 법률적 근본 원칙을 중심으로 무수한 인간관계들을 특정하게 접합 혹은 조직한 역동적 체계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역사적 블록’ 개념의 출발점이다. 말하자면 「세 원리와 세 종류의 정치 질서」는 그람시가 「능동적이고 효과적인 중립」에서 선포한 이탈리아의 “특수하고 국민적인 성격”의 규명 작업에서 처음으로 내딛은 결정적 한 걸음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2019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람시가 말하는 ‘격률 혹은 법률적 근본 원칙’은 무엇인가이다. 과연 세기 초의 영국과 독일이 도달했던 ‘윤리적 국가’ 수준의 이상적이면서도 실정적인 중심 원리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존재하는가?

아무래도 이탈리아의 자유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유한국당이 대표하는 부분은 박정희식 국가주의의 낡은 잔해를 부여잡고 더불어민주당이 대표하는 부분은 좁은 의미의 자유주의를 맴돌면서 어느 쪽도 사회 전체의 중심 원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때 촛불항쟁 직후 국면에서 후자는 전자를 제외한 다수 대중에게 효력을 발휘하는 어떤 질서의 구현자로 다가오기도 했다. 아마도 남북미 협상 진전과 이를 통한 남한 자본주의의 확장 전망을 압축한 “평화가 경제다”가 그들이 내세운 중심 원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2019년 현재 이 격률은 다수 대중을 하나로 묶을 정도로 효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후기 그람시의 용어로 말하면, 헤게모니적 지배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혼돈이고, 마치 20대의 그람시처럼 우리도 이 혼돈 속에서 새로운 주역들(그람시 시대에는 프롤레타리아라 하면 쉽게 통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에 의해 전혀 새로운 질서가 뚫고 나올 가능성에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장석준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