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종 체제(Hybrid System)의 형성

     

노동자는 노골적으로 해먹고 당간부는 당당하게 해먹고 안전원은 안전하게 해먹고 보위원은 보이지 않게 해먹는다.

1. 전략적 사보타주(strategic sabotage)

북한의 시장화는 7.1조치 이후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통치자는 대외환경과 북한 내부의 사회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장은 권력자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지배 세력의 통치자금은 대외교역을 중심으로 한 외화벌이에서 나왔다. 그런데 외화벌이는 계획 경제와 시장 경제의 이중적 자원배분 메커니즘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외화벌이는 전 사회적 생산성을 토대로 하되 계획 경제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정당성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화벌이에도 시장 시스템은 불가결한 것이다. 7.1조치가 아니더라도 북한은 이미 시장과 깊이 관계하고 있었다. 시장을 한꺼번에 부정하고 일소한다면 몸을 지탱하고 있는 발판을 잘라버리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그러나 시장을 통해 비사회주의 풍조가 만연하고 권력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통치 세력에게는 악몽이었다. 무엇보다 화폐적 관계가 확장되어 기존 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수령에 대한 소구력이 저하되는 것이 문제였다. 수령 곁에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결의는 점점 냉소적이 되고 화폐가 주는 쾌락과 정신적 만족감에 주민들은 취해갔다.

경제는 권력에 의해 통제된다. 북한 최고 권력은 주민에 대한 통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 능력은 전 사회적 생산 능력을 배타적으로 장악해 내는 권력에 의해 결정된다. 과거 수령공동체는 경제 위기에 의해 무너졌다. 새로운 경제 질서를 조직해내는 과정이 북한의 현재이다. 경제 위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화폐화와 시장 조치를 받아들였지만, 화폐적 관계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수령체제의 침식을 불러온다. 그렇다고 시장을 전면적으로 배제하기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경로 의존성을 보이고 있다.

북한 권력은 시장에 권력을 심음으로써 권력을 시장화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통치자는 사회전체의 생산력이 증대되는 것보다 더욱 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전 사회적인 생산과 재생산을 조직하는 사회적 과정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북한의 최고 권력은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전 과정을 인질로 삼아 권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베블렌은 이것을 ‘전략적 사보타주’(strategic sabotage)라고 말했다. 사회 전체의 생산 잠재력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 풍작을 거둔 농부가 밭을 갈아엎는 행위를 예로 들 수 있다. 풍작을 이룬 것은 사회 전체로 보면 부의 증가이지만 농부의 이윤이 극대화된 것은 아니다. 영리 사업가로서 농부는 사회적 부를 증대시키는 사람이 아니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사람이다. 농부는 최고의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농작물을 파괴하는 사보타주를 행한다. 북한 지배 엘리트도 마찬가지이다. 주민 전체의 후생 증대라기보다 권력자본 극대화에 목표를 두고 있다. 북한의 지배 엘리트들은 영리기업가처럼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북한 사회에 사보타주를 행했다.

북한의 권력은 시장에 이식되고 있다. 또한 권력과 유착된 자본은 산업에 투입되고 있다. 여기서 북한의 권력은 시장을 사보타주로 길들인다. 그들은 전체 사회의 생산성과 복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위치에서 사보타주를 행한다. 권력은 전 주민을 장악할 수 있는 새로운 통치술을 얻었다. 2005년부터 북한의 최고 권력자는 전략적 사보타주(strategic sabotage)를 전개했다. 전 사회를 대상으로 ‘깽판놓기’가 벌어졌다. 관료적 시장이 확립되고 혼종 체제가 형성되었다. 통치자의 반시장적 태도는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시장에 대한 각종의 압박이 거세졌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 엘리트가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North Korea is best Korea 7362

2. 관료가 지배하는 시장

사보타주의 대표적 예는 시장 또는 상행위에 대한 물리적 단속이다. 북한 당국은 주민의 시장 활동 능력이 일정 수준으로 증대되었을 때, 사보타주를 전개했다. 그를 통해 권력 엘리트들이 주민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최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술했듯, 인민경제에 대한 사보타주는 2005년 10월에 양곡 전매제 및 식량 배급제 강화선언으로 시작되었다. 2006년 3월의 개인고용금지령, 2007년 8월의 30세 이하 여성의 장사금지령, 12월 무역회사 재정리 방침, 2008년 11월 식량과 공산품의 시장 판매 금지 등으로 이어졌다. 시장에 대한 물리적 단속으로 대표되는 반시장적 사보타주는 정보의 독점, 경쟁에 대한 물리적ㆍ재정적 제한 등을 통해 ‘진입 장벽’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과점의 과실은 사보타주의 집행주체인 당, 군, 법기관 등 권력층이 누렸다. 장사는 권력과 돈이 동반되었다. 권력 없이 돈을 벌 수 없었고 단속이 강화될수록 돈과 권력이 더욱 결탁되었다.

단속ㆍ검열 주체들의 이해관계도 사보타주의 배경으로서 빼놓을 수 없다. 법 기관 사람들은 국가의 반시장적 사보타주를 환영한다. 이들은 단속이 오래 지속될수록 권력을 강화하고 경제적 이익을 획득한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법 기관 사람들만 좋은 일 났다”는 조소가 회자된다. 단속 일선에 나서는 법 일꾼들이 뇌물 받을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비사회주의적 요소 척결’ 등을 내세우며, 북한 지도부에 사보타주의 시행을 요구한다.

단속은 권력층, 특히 중앙당, 인민무력부, 인민보안부, 국가보위부, 검찰소 등 이른바 법기관 및 권력기관 사람들의 행태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필요한 자금을 국가로부터 공급받지 못했던 권력기관은 운영 자금 마련 등을 이익추구의 명분으로 삼았다. 단순히 뇌물을 받는 수준에서 돈주들과 결탁하거나 직접 상행위를 하기도 했다. 물론 자신의 배우자, 부모, 형제 등 가족과 친척들을 내세운다. 사보타주가 일반화되기 이전에도 일부는 시장경제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간 지속된 대대적 단속은 우월적 지위에서 시장 경제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했다.

돈주들도 사보타주의 수혜자이다. 시장화의 진전에 따라 돈주를 비롯한 상층부 상인들의 축재는 증가했다. 시장에 대한 단속과 통제는 부의 집중ㆍ집적 현상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특히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제어하면서 자신들의 독과점적 지위를 굳힐 수 있었다.

과거 주민들에게 시장 활동은 보조 경제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이 생활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시장은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정보와 상품을 나누는 장소이다. 장세 등 시장에서 발생하는 수입은 정부재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수취체제가 취약해진 북한 당국은 안전원들이나 보안원들의 뇌물 수수와 같은 인센티브를 허용하고 있다. 세금 농사꾼(tax-farmer)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북한 정권에게 시장은 주민들을 감시하고 부를 수취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시장에 생계를 맡긴 주민들은 국가의 단속에 속수무책이다. 정부가 공시한 한도 가격을 지키는 상인들은 거의 없다고 하지만, 단속에 걸리면 처벌 받는다. 품목과 가격, 시장 개폐장 시기 등 시장 유통에 관한 거의 모든 영역이 통제 대상이다. 물론 권력이 시장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는 없다. 대신 권한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단속은 주민들의 직접적인 반발에 부딪치기도 한다. 주민들은 “먹을 것을 주지도 않으면서 장사는 왜 못하게 하는가? 이것은 백성들을 말려 죽이자는 심보가 아니면 무엇인가”, “주는 배급도 없고 월급도 없고 이것이 어디 우리를 살라고 하는 것인가. 이것이 나쁜 놈들만 살판치는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등의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러한 불만이 조직적인 저항으로 확대되지는 않는다. 주민들은 말한다.

노동자는 노골적으로 해먹고 당간부는 당당하게 해먹고 안전원은 안전하게 해먹고 보위원은 보이지 않게 해먹는다.

수년간 지속된 시장에 대한 사보타주는 주민들을 피폐하게 했다. 삶이 권력에 의해 억눌릴수록 부에 대한 집착은 더 커졌다. 반면 권력엘리트들과 소수의 독과점 ‘돈주’들은 오히려 차등적 권력이 더욱 증대되었다. 시장은 권력과 유착되었으며 화폐 권력을 가진 새로운 지배층이 성장했다. 이들은 관료도 자본가도 아닌 시장과 권력의 혼합물, ‘혼종’(hybrid)이었다.


3. 분열하는 사회, 각자도생

2000년대의 전면적인 화폐화는 북한 사회를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전에는 값이 없던 것들에 가격표가 붙었다. 이미 7.1조치로 교육ㆍ보건의료 등의 사회적 임금이 삭감되었다. 예전에는 값이 없었던 것이,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되었다. 삶의 주변이 점점 매매가능한 상품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제 주민들은 화폐를 확보해야만 했다. 주민들은 시장을 찾아 나섰다. 시장은 화폐가 형태를 바꾸는 곳이다. 화폐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필요가 있을 때, 시장에 넘쳐나는 다양한 상품으로 산개(散開)했다. 또 가치를 저장하거나 다른 현물로 모습을 바꿀 때, 화폐로 환원(還元)했다.

공동체의 보호 아래서 이웃과 전체 사회를 위해 삶을 영위하던 주민들은 화폐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들은 화폐의 공능(功能)을 깨닫고 탐닉해갔다. 화폐는 시장과 숭배자들을 숙주로 두게 되었다. 화폐를 매개로 맺어지는 주민들의 화폐적 관계는 확장되었다.

화폐적 관계에 참여하려면, 먼저 스스로가 상품이 되어야 한다. 화폐화가 진행됨에 따라 주민들의 행위는 전적으로 화폐를 지향한다. 주민들의 행위는 더 이상 ‘규범’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더 많은 화폐 획득이라는 ‘목적’에 최적화된 행위만을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기존 공동체의 도덕 담론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화폐획득 목표를 달성하는 영리활동에 많은 시간이 제물로 바쳐진다. 화폐만을 추구하는 비사회주의 현상이 팽배한다. 주민들은 화폐를 위해 타인을 사기도, 자신을 팔기도 한다. 주민들은 더 많은 화폐를 획득하기 위해 투쟁했다.

민영기 / 동국대학교 외래교수,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