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몰랐을까? - 현실을 가린 과거 세대의 사고 관성

     
실상은 눈앞에 보이는 기득권 카르텔 구조와 현상을 감각적으로 인정해 왔을 뿐,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맞설 수 있는 경험적 인식론적 배경이 처음부터 기성 세대들에게 부재했던 것이 아닐까?

엄청난 정치적 파장과 대량의 언론 보도, 극단적 정치 갈등을 낳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인사검증 과정은 여전히 검찰수사를 따라 출렁이는 현재 진행형 파도로 보인다. 지금 이를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의 극단적 선택만이 강요당하는 분위기이지만, 일단 장관 자격을 둘러싼 관점이나 태도에 관한 이슈는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대신 인사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거대한 사회적 그림자 – 이른바 중상류층 이상의 기득권 카르텔이 존재하고 이를 서브 프라임 사회와 비견되는 ‘프라임 사회(prime society)’라고 불러도 좋다면 – 에 대해 먼저 성찰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기득권 카르텔의 재생산에 대한 무지

우리 사회 안에 잘 보이지 않는 기득권 카르텔이 존재할 뿐 아니라 계속 재생산된다고 하는 사실은, 일회적인 정치 쟁점이나 갈등 사안으로 다루기에는 생각해봐야 할 대목들이 너무 많고 무거운 것 같다. 기득권 카르텔 구성원들이 법적 허용 한계 안에서 특권을 이용했든 아니면 법적 허용 테두리를 벗어나면서까지 특권 남용을 했든 관계없이. 기득권 카르텔 안의 각종 유리한 자원들을 의도적으로 동원해서 자녀들을 키웠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동류들이 모두 하는 패턴을 따라서 했든 관계없이. 20% 기득권 카르텔 안의 더 압도적인 특권을 지닌 1%의 세계가 별도로 존재하거나 또 더 높은 위치의 0.1%가 존재하든 관계없이. 또는 그 카르텔 안에 386 세대가 포함되던 되지 않든 관계없이. 더 나아가 20% 기득권 카르텔 안의 집단들에 대해 나머지 80%가 보는 거리감이 얼마나 멀던지 관계없이 그 기득권 카르텔의 존재와 재생산은 아마도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왔고, 주게 될 것 같다.

여기서 제일 먼저 드는 질문이 있다. 왜 몰랐을까? 적어도 나는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아니 몰랐던 것이 확실하다. 물론 모르지 않았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는 10년도 이전부터 돌던 얘기고,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회자된 지도 꽤 되었다. 그렇다면 기득권 카르텔이 대물림되면서 재생산된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다 아는 사실에 불과했다면 이번 조국 인사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기득권 카르텔이 왜 충격을 준 것일까? 단지 그것이 공식적으로 보수만의 카르텔이 아니라 ‘강남좌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사실 기득권 카르텔 대물림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사회적 가십거리를 넘어서 한 번도 경제 정책, 교육 정책, 복지 정책, 청년 정책에서 심각하게 다뤄진 적이 있기는 할까? 끊이지 않고 사회적 논란은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정치화’ 된 적이 있었던 것인가? 단지 신문 지면에 끊이질 않고 등장했었기에 나는,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미 정치적 이슈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실상은 눈앞에 보이는 기득권 카르텔 구조와 현상을 감각적으로 인정해 왔을 뿐,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맞설 수 있는 경험적 인식론적 배경이 처음부터 기성 세대들에게 부재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문을 품게 된다.


‘프라임 사회’와 ‘서브 프라임 사회’의 공존과 단절

이야기를 되돌려 보자. 이번에 시민들이 대체로 인식하게 된 금수저의 실체는, 광범위한 특권층 견고한 요새, 별종들의 세계,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절대로 섞이지 않는 생활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의 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점일 것이다. 더욱이 서로 다른 세계를 경계지우는 벽들이 더 견고해짐은 물론, 시간을 이어 대물림된다는 것. 이제 한 사회 안에는 ‘프라임 사회’와 ‘서브 프라임 사회’라는 최소한 두 개의 단절된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이나 혁명으로 완전히 백지 상태로 질서를 흔들지 않고서는 서로 물리고 물려서, 서로 이해 관계가 얽혀서 기득권 이익의 요새가 과연 깨지기는 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가 든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통상적인 소득 불평등(또는 다른 유형의 불평등)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양적으로 지니계수가 소득 계층별로 커졌다거나, 사회적 계층 이동성이 약해졌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해명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최소한 상당히 안정적으로 불평등이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면서 이어진다는 것, 전통적으로 교육을 통해 계층의 대물림이 약화되기 보다는 오히려 강화된다는 것, 기득권 카르텔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아래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들 만이 우월하게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원, 경제적 자원은 물론이고, 권력 자원, 지적 자원, 사회적 자원(인맥 등)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토 헤이즈의 표현대로라면 이 모든 행위들이 ‘기회의 평등’,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원을 쥐고 있는 프라임 사회의 구성원들은, 보수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부류는 물론이고, 진보 개혁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이들 조차, 분열된 세계를 타파하는데 개혁과 진보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 아니라, - 각자가 자신과 아이들을 프라임 사회 밖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모든 자원을 동원하면서 - 두 개의 세계를 타개하는 것과 큰 관계가 없는 개혁 과제만을 가지고 매달렸던 것은 아닐까? 많은 경우의 적폐 청산이나 권력구조 개혁, 복지개혁은 대개의 경우 상위 20% 정도의 중상층의 기득권 카르텔을 무너뜨리지 않고도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로 금수저–흙수저 사회, 프라임–서브 프라임 사회를 무너뜨리고자 했다면 대규모 자산 이동, 기회 이동, 권력 이동을 수반하는 것이 지금 보면 상식일 것 같다. 자산과 소득, 상속에 대해 대규모 증세를 해야 하고, 대규모 권력 이동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고 금수저 사회가 무너지길 정말 기대했을까?


성찰 없는 기성세대의 훈수와 처방전

어쩌면 사회 대개혁이 되었던, 민주주의 개혁이 되었든 기존 진보 개혁의 문제 인식 틀이나 사고 구조 안에서는 기득권 카르텔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인식적, 경험적 요소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이 ‘적어도 다음 세대가 자신의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세상’을 당연한 전제로 놓고 세상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장에 관한, 부의 재분배에 관한, 교육에 관한 모든 기성세대들의 판단 착오가 그들의 사고 구조 안에, 그들의 삶의 경험 안에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와 기성세대들은 이미 상황 파악을 모두 하고 있고, 처방법까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갖가지 훈수와 ‘하라’는 요구만 어지럽게 내놓고 있을 뿐, 성찰이 없는 것이 어째 편치가 않다. 그래서 이처럼 오랫동안 이처럼 견고해질 때까지 방치해둔 ‘기득권 카르텔’의 어떤 대목을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과거의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사고 틀을 한번 반성해보려고 한다.

김병권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참고 문헌>>
- 리처드 리브스(Richard Reeves) 지음. 김승진 옮김. 2017. 『20 VS 80의 사회(Dream Hoarders)』. 민음사.
- 크리스토퍼 헤이즈(Christopher Hayes) 지음. 한진영 옮김. 2013. 『똑똑함의 숭배(Twilight of the Elites: America after Meritocracy)』. 갈라파고스.
- 스티븐 맥나미(Stephen J. McNamee)·로버트 밀러 주니어(Robert K. Miller Jr) 지음. 김현정 옮김. 『능력주의는 허구다(The Meritocracy Myth)』. 사이.
- 이철승 지음.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 지성사.
- Joseph C. Sternberg. 2019. The Theft of A Decade: How the Baby Boomers Stole the Millennials’s Economic Future. PublicAffairs. New York.
- 라이트 밀스(Charles Wright Mills) 지음. 정명진 옮김. 1956. 『파워 엘리트(Power Elites)』. 부글북스
- 샘 피지개티(Sam Pizzigati) 지음. 허윤정 옮김. 『최고임금(The Case for a Miximum Wage)』. 루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