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사이의 불평등, 무엇을 봐야 할까?

     


늘 그렇듯이 불평등 해소를 평화롭게 하려면 가진 자들이 내놓아야 한다. 핵심은 청년들에게 뭘 하자고 말하기 이전에 더 많이 가진 586세대가 뭘 할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80년대 운동권 출신 50대가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은 한편에서는 그들이 대체로 횡단 면적으로 보아 상위 20% 프라임 사회 일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종단 면적 차원에서 볼 때,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세대에 비해 그들이 자원 배분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고 있는 586세대이기 때문이다.


시대 조건의 변화와 위 세대에 고여 있는 자원들

다시 말해서 과거 세대 사이의 자원 분배 구조 보다도 현재의 586세대와 2030세대 상의 자원 분배 구조의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더 크고 586세대가 더 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자원을 쥐고 있다는 얘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기본적으로는 이철승 교수가 『불평등의 세대』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한국의 벼농사 문화나 위계 때문도 아니고, 386세대의 배신 때문으로 몰아 갈수도 없다.

그것은 이들 세대를 관통하면서 성장 추세의 반전, 인구 증가 곡선의 반전에 더해서, 1997년 이후, 2003년 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라고 하는 극도의 경제적 불안정성 증가, 1980년대 이래 세계적으로 몰아친 신자유주의의 불평등한 분배 성향이 전반적으로 기존 자원을 먼저 가진 세대보다, 신규로 시장과 사회에 진입한 세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출산으로 인한 아랫세대의 숫자 감소, 고령화로 인한 위세대의 활동력과 시간의 증가 등이 겹치면서 지금까지도 부와 권력 자원, 사회적 자원들이 아래 세대로 흐르지 않고 위에 고여 있기 때문이다.



586세대가 상대적으로 과도한 경제/정치/사회 자원을 틀어쥐고 2030세대로 내려주지 않고 있는 이유가 한국의 위계적 연공서열이나 ‘이익 네트워크로 변질된 80년대 운동권 집단’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시대 변수들의 변화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이유는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셉 스텐버그는 최근 그의 책 『10년의 도둑질: 베이비부머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경제적 미래를 어떻게 도둑질했는가?』에서 베이비부머(1946~1962년)과 밀레니얼(1981~1997) 사이의 세대적 자원 분배의 불평등이 심각하게 존재한다고 고발하면서 밀레니얼 세대를 위기의 세대라고 칭하고 있다. 특히 경기 침체와 주택 거품, 노동시장 유연화 등으로 인해서 밀레니얼 세대는 경력이 없으면 불리하고, 무급 인턴과 임시직 일자리가 지배적인 노동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기성세대보다 절대적으로 불리하단다. 이는 일찍이 그리스 재무장관 출신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100년에 한번 올 정도의 2008년 경제위기는 “한 세대 이상의 노동자들이 재물로 바쳐졌다”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그 결과 1950년대만 해도 25~34세와 45~54세 사이의 임금 격차는 4%였는데, 1970년대에는 11%, 2011년에는 무려 41%까지 벌어지게 되었단다. 더욱이 대기업일수록 기업의 평균 연령도 높아지게 되어 캐나다의 경우 100인 이하 중소기업은 중위연령대가 40.5세, 500인 이하 중견기업이 41.3세, 500인 이상 대기업이 42.6세라고 조사되었단다. 이런 스토리는 이철승 교수가 『불평등 세대』라는 책에서 각종 통계 조사를 인용하며 제기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586세대와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그리고 한국의 청년들과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에서 상당한 공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동년배끼리 불평등과 세대 간 불평등이 겹치면서

이처럼, 세대 간의 불평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시대마다 달라진 경제 성장곡선과 인구 증가곡선의 탓이든, 아니면 최근 10여 년 동안 노동시장 유연화와 경기 침체 탓이든, 과거와 달리 이미 기존 질서에 안착한 기성세대보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려는 청년세대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운동장을 만들게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요약하면 최근 30~40년 경제사의 공간에서, 성장률은 점점 둔화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노동 유연화 등 제도 변화 탓에 일자리는 점점 불안정해지며, 금융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만 폭등하는 현상들이 연령대별 경제적 경험의 단층선을 만들어 낸다. 특히 성장세가 단계적으로 주저앉으면서, “앞 세대에 비해 뒤 세대가 더 윤택하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전통적인 패턴이 깨지게 된다. 더욱이 인구조차 베이비 붐 세대를 정점으로 이후 세대로 내려가면서 줄어들게 되자 자원과 권력이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상당정도 위 세대에 머무르는 현상 때문에 자산 격차가 연령대에 투영된 것이다. 이처럼 연령대는 경제적 단층선은 물론 인구 규모의 단층선으로 작용하면서 정치를 포함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차이를 만들어 낸다.

물론 당연한 것이지만, 얼핏 보기에 세대 사이의 격차로 보이는 것에도 내면을 보면, 상당 정도 세대 안의 심각한 불평등이 세대를 이어서 확대 재생산 되는 모습이 겹쳐서 나타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더 좁아진 기회, 더 불안정한 사회 환경, 더 치열해진 경쟁은 청년세대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지만, 부모의 재력과 소득에 따라서 그 열악한 환경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회가 좁아질수록 부모가 동원해줄 재정, 교육, 인맥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청년 내부의 격차 확대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세대 사이의 단층선의 위쪽인 20% 프라임 사회는 그래도 충격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대물림을 하지만, 단층선의 아래쪽인 80% 서브 프라임 사회의 구성원들은 오직 ‘가난을 대물림’하게 되면서 ‘길 잃은 세대’로 남게 되는 것이다.

세대 간 자원분배의 불평등은 정치 영역에서도 다양하게 투영된다. 이제는 투표 성향의 격차가 계급이나 지역, 인종을 넘어서 연령대별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현상이 서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선명해지고 있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



더 많이 가진, 586세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매듭을 지어보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586식자들은 현재의 조국 장관 인사검증에서 드러난 세대 격차를 논하면서, 대부분 청년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훈수를 둔다는 사실이다. 위로나 격려를 하던 촉구를 하든. 내가 보기에 그들의 일은 아마 대부분 그들이 잘 알아서 할 것이다.

늘 그렇듯이 불평등 해소를 평화롭게 하려면 가진 자들이 내놓아야 한다. 핵심은 청년들에게 뭘 하자고 말하기 이전에 더 많이 가진 586세대가 뭘 할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최근 저서에서 세대 사이의 정의를 복구하기 위해 세 가지 정책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는, 현재의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여 교육 투자, 인프라 투자, 기술 투자 등 미래 세대에게 전체적으로 기회의 창을 넓히기 위한 투자를 더 확대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기후 변화 문제를 세대 사이의 정의 문제로 규정하고,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환경과 생태에 대해 통상적인 할인율을 적용하여 미래 세대 환경의 현재 가치를 저평가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모의 재력여부에 따라서 다수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의 선택 기회를 얻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스티글리츠의 2019년 저서 『민중, 권력, 수익』).

스티글리츠 정도를 얘기하는 식자도 없는 마당에 경청할만한 말이지만, 내가 보기엔 이 정도정책으로 세대 간 자원 재분배를 한다는 것은 턱도 없다. 더 혁명적인 고려를 해보아야 한다. 청년 말고 586세대들이. 이 주제는 일단 여기까지다.

김병권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