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 다음 버전, ‘세습적 특권 청산’

     

이제라도 깨달았다면 세습적 특권을 해체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고 믿는다. 아마도 적폐 청산보다 100배쯤 어려울 세습적 특권 청산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진짜 불평등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고, 교육문제의 해결도 이를 피해갈 수 없으며, 특히 이것이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사회 구조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속의 힘은 죽은 뒤 물려주는 ‘유산’만이 아니다

상속이 능력을 압도하고 교육은 그것을 완화하기 보다는 고착시키는 사회가 되면서, 현재 한국 사회의 어떤 힘도 점점 더 강화되어가는 세습적 특권에 제동을 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세습적 특권으로 엮인 집단은 상위 1%뿐만 아니라 상위 20% 프라임 집단 속에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음도 대략 인지된 것 같다. 또한 진보적 에너지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고 믿었던 80년대 민주화 운동 경험 집단 역시 보수가 저지른 적폐 청산에는 유능할지 모르겠으나, 상속의 힘이 지배하는 세습자본주의에 관해서는 감각 자체가 무뎌진 상태라는 점도 확인되었다.

이 대목에서, 최근에 배우게 된 ‘상속’이란 것의 실체를 좀 더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흔히 상속하면 부모 세대가 사망하면서 남긴 유산을 더 많이 물려받은 자녀들이, 사회에 유리한 위치에 서는 것을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고 경제의 장기 사이클이 하강 곡선을 그리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이 깨지고 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봐도 예전보다 오래 살게 된 부모들이 자산을 상속하지 않은 채로 꾸준히 자녀들을 지원하는 비중이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 “특권층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부모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부모가 살아생전에 자녀에게 주는 돈과 증여는 상당하며, 대부분의 경우 살아생전에 전달되는 것이 사망 시에 일괄적으로 상속되는 재산보다 세대 간 전달에서 한층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능력주의는 허구다』 p141)

뿐만 아니다. 경제적 자본을 넘어 자녀들은 부모가 가진 다양하고 특권적인 인맥을 활용할 수 있게 되므로 ‘사회적 자본’역시 통째로 상속받게 되는 것이며, 부모가 누리는 각종 ‘문화자본’역시 부모가 살아생전에 ‘상속’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부모가 비록 직접적으로 학력과 직업을 상속시켜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에 준하는 것들은 얼마든지 상속시킬 수 있다. 요약하면 “상속은 후손에게 전해지는 많은 양의 재산 그 이상이다. 좀 더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상속은, 출생 시에 정해진 최초의 사회 계층이 미래의 인생 결과에 미치는 총 영향을 뜻한다. 자녀들에게 특혜와 우위를 물려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슈퍼 부자 뿐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특권층이라고 할 만한 배경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특권과 우위를 물려받는다.”(『능력주의는 허구다』 138p)


세습적 특권을 해체하기 위한 전쟁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조국 장관 인사검증을 계기로 한국 사회는, 부모가 누구인지, 어느 시점에 태어났는지에 따라 자녀들의 인생이 진작 결정될 뿐, 순수한 개인 능력이 발휘될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상속이라는 것이 단지 ‘유산’에 그치지 않고, 부모가 자녀에게 살아생전 베풀어주는 경제 자본, 사회 자본, 문화 자본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이어서 이를 물려받지 못한 자녀들이 개인기로 뛰어넘을 수 있는 벽이 아님도 확인했다. 이 벽의 안쪽에는 20% 프라임 사회가 있고, 바깥쪽에는 80%의 서브 프라임 사회가 있다. 조국 장관은 스스로 인정했듯이 안쪽의 프라임 사회 구성원이었고, 평소 민주화와 불평등 해소를 주장해온 그가 프라임 사회의 온갖 특권을 자녀에게 더 많이 내려주려고 애쓴 흔적에 대해 많은 이들이 좌절했던 것 같다. 조국 장관도 이를 인정했고.

그런데, 세습적 특권의 대물림을 정말 그렇게 극단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조국 장관이나 그밖에 드러난 몇몇 여야 인사들의 특권적 세습 관행에 대한 비판과 응징을 넘어, 과도한 특권적 세습의 뿌리를 잘라내려는 대규모 행동과 조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20%의 안쪽에 속한 사람들이든, 바깥쪽에 남겨진 사람들이든 기성세대부터 솔선하고 총체적으로 지혜를 모아서 이 과제를 풀기 위한 백가쟁명의 지혜를 모아야만 했다. 그리고 모든 사안에 앞서 국가 과제로 제안해야 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런데 왜 여전히 ‘검찰 개혁’이 최우선이라는 목소리밖에 없을까? 아직도 ‘교육 개혁’을 부분적으로 하면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만 보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20% 프라임 사회의 벽을 진짜로 허물 생각이 없든지.

나는 이제라도 깨달았다면 세습적 특권을 해체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고 믿는다. 아마도 적폐 청산보다 100배쯤 어려울 세습적 특권 청산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진짜 불평등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고, 교육문제의 해결도 이를 피해갈 수 없으며, 특히 이것이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사회 구조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이 전쟁은 단순히 피아간의 대결이나 전투와는 다르다. 20% 프라임 사회 VS 80% 서브프라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강을 해체하는 전쟁이다. 1% VS 99%의 극단적 격차 해소는 대체로 적대적 힘의 대결로 갈 것이지만, 20% VS 80%은 내전으로 풀기보다는 합의와 양보가 작동해야 파괴적인 경향을 줄이면서 실제로 진도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기성세대의 20% 안에서부터 스스로의 특권을 어떻게 해체하고 닫힌 장벽을 개방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곳에서 80년대 민주화 운동 경험 집단이 앞장서면 더 좋을 것이고, 진보 정당들이 앞장서면 더 좋을 것이다.


비슷한 출발선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러면 어떤 대안을 내놓고 의견을 모을 것인가? 흔히 생각하듯 교육 정책으로 먼저 들어가 버리면 안 될 것 같다. 그 이전에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출발 조건부터, 태어난 부모나 태어난 시기의 유불리와 무관하게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교육을 마치고 사회 진입 후 노동 시장 공간에서, 능력과 노력을 훨씬 뛰어넘는 지위와 보상의 과도한 격차를 제도적으로 대폭 줄이는 조치가 동시에 필요하다.

이런 전제가 있어야 그다음에 교육 개혁이 제대로 논의될 수 있다. 교육 개혁의 입구가 평등하고, 교육 개혁의 출구가 그렇게 많이 불평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과 무게가 교육으로 몰리지 않아 교육 개혁을 좀 더 탄력적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즉 인생의 출발점 다시 맞추기 – 교육을 통한 능력개발 – 사회 진입 후 격차 한계 정하기라는 차원에서 각각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출발선을 비슷하게 맞추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는 일정한 연령(20세 또는 25세)이 된 모든 청년들에게, 부모가 아닌 사회가 기본적인 수준의 사회출발자본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회적 상속이라는 취지로 모든 청년들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이와 같은 ‘청년출발자본’은 사실 18세기 말에 토머스 페인이 제안한 후, 특별히 불평등이 심화된 최근에 매우 다양한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법학자인 애커먼 등이 2000년에 <사회적 지분 급여> 형태로 약 8만 달러(1억원)를 주자면서 출발자본에 대해 굉장히 상세한 설계를 했고,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는 페비언 소사어티가 청년출발자본(Start-up Grant)를 약 1,500만원 정도 제안했었다. 불평등 연구로 일생을 바쳤던 영국학자 앤서니 앳킨슨 역시 기본자산 제공을 옹호했다. 최근인 2017년 독일 정부가 을 공개했었는데, 여기에도 사회적 상속 제안이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청년들에게 개인노동계좌(Personal Worker’s Account)를 만들어주고, “국가가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게 모든 청년들에게 1회에 한하여 자금을 제공하여 특정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사회적 상속을 도입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공공정책 연구소는 노동당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온 정책 대안 보고서 “Prosperity and Justice”를 2018년에 공개하면서, 부의 불평등을 줄일 하나의 방안으로서 ‘시민자산펀드(Citizen’s Wealth Fund)’를 개설하고 청년들이 25세가 되었을 때 펀드의 운영수익금을 배당으로 분배해주자고 제안하고 있어 관심을 모았다. 방식은 알래스카 석유펀드와 유사한데, 단지 알래스카에서는 이를 기본소득 형식의 시민배당으로 지급하지만 그럴 경우 배당금이 적어 효과가 떨어지므로, 차라리 청년들에게 지급하여 교육비나 주거비, 그리고 창업자금으로 활용하도록 돕자는 것이다. 이 역시 정확히 사회적 상속 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2017년 대선에서 사회적 상속을 공식적으로는 처음 제안했다. 그는 “세습으로 인한 불평등, 수저론을 과감하게 타파하기 위해 청년 사회상속제를 도입”하겠다면서 상속 증여 세입 예산 약 5조 원을 활용하여 매년 20세가 되는 청년에게 1인당 1,000만 원 가량을 배당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일정 수준 이상 상속·증여자는 배당금을 환수하고, 대신 아동양육시설 퇴소자 자립정착금은 2,000만 원으로 인상하도록 보완했다.

그리고 아주 최근인 지난 2019년 9월 토마 피케티가 최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 프랑스판을 출간하면서 여기에 ‘보편자본’이라는 이름으로 출발자본을 비중 있게 넣는다. 프랑스인 기준 1인당 평균자산의 60%에 해당하는 12만 유로(약 1억6천만 원)를 25세가 되는 모든 청년들에게 지급하자는 제안이다. 즉, 사회에 첫발을 디딜 무렵의 청년들은 부모가 아닌, 국가로부터 그들의 자립 기반을 지원받는 것인데, 누군가는 집 구입을, 누군가는 창업을 위한 종잣돈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 여기까지 왔다. 한국 사회에 세습적 특권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한국 사회 구성원의 인생이 능력주의가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가지고 불평등하게 운동장에 나서는 <릴레이 경주>라는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이를 최소한 수준에서 상쇄할 수 있는 대책을 만들자는 얘기가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 그 유력한 아이디어는 모든 청년들에게 보편적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출발자본‘이 아닐까 싶다.


세습적 특권의 해체 방안들은 만들 수 있다, 과거 농지 개혁처럼

교육 제도를 기준으로 출발자본이 교육의 ‘입구’쪽에서 평탄화를 위한 제도 설계였다면, 교육의 ‘출구’쪽에서 평탄화를 할 제도가 아울러 필요하다. 사회에 진입하여 (주로) 노동 시장에 들어간 후에 차별과 격차의 범위를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워낙 노동 시장의 제도가 복잡해지고 엉켜있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것은 바닥을 끌어올리고(최저임금) 위를 끌어내리는(최고임금) 정책을 배합해서 일정 한계 이상으로는 소득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고 임금은 “기존 최저 임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최고 소득상한선을 새로이 설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몇 배수가 넘은 소득에는 모조리 100%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샘 피지개티, 2018, 『최고임금』) 이런 무모한 얘기가 정치에서 통할 것이냐고? 1차 투표에서 마크롱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로 패했던 프랑스 좌파 후보 멜랑숑이 2017년 프랑스 대선에 “40만 유로가 넘는 모든 개인 연소득에 상한을 요구”하는 선거 공약을 내걸었던 전례가 있다.

교육의 입구 쪽과 출구 쪽을 평탄화 시킬 방안이 고민되었다면, 이제 국민의 관심과 분노가 집중된 교육 자체에 대한 개혁 방안을 생각해봐야 할 차례다. 9월 23일 유은혜 장관도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 단계부터 대학 진학, 첫 직장에 입직하는 경로 전체 중, 소수 특권계층에 유리한 제도가 무엇인지 교육부가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공개한 걸 보면 이제 좀 더 과감한 개혁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련해서 아직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았으나, 김누리 중앙대 교수가 주장한 대학입시 폐지 주장까지 개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여전히 ‘대학입시가 없는 나라’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세상엔 그런 나라가 적지 않다. 독일에는 대학입학시험 자체가 없다. 아비투어(Abitur)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졸업시험만 있을 뿐이다. 아비투어에 합격하면 누구든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 아비투어는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큰 무리 없이 대부분 합격한다. 또한 학생들은 대학과 학과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예컨대 베를린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대학을 옮기면 된다. 이러한 제도는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폭넓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서 나온 것이다.”(한겨레, 2019.9.23.)


‘영구적 토지개혁’이라는 아이디어

청년출발자본, 최고임금, 입시폐지에 이어 한 가지 남겨진 것이 있다. 세습적 특권의 대물림을 밑에서 받쳐주고 있는 ‘이미 형성된 거대한 자산 불평등’을 어떻게 축소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릴 것인지에 대한 과제다. 한국과 동아시아가 2차 대전 이후 남미 등 다른 대륙과 비교하여 고도 성장을 할 수 있었던 하나의 비결은 과감한 토지개혁을 통해 기존의 자산 불평등을 평탄화시킨 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산 평등화 효과는 약발이 떨어졌고, 그 결과 다른 대륙들처럼 불평등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21세기 버전의 토지개혁이 어때야 하는지 논의를 모으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토마 피케티가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재산권에 대해서 사유나 공유냐 하는 도식을 피하면서도 과도한 자산 불평등의 누적적 확대가 초래할 파국적 결말을 전쟁이나 혁명 등이 아닌 평화적으로 해결할 ‘영구적 토지개혁’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사유재산과 공공재산, 그 두 가지를 조화롭게 다룰 필요가 있다. 누진적 부유세의 기본 생각은 재산권이 영속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산에 누진세를 적용한다는 생각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재산권이 사실상 임시적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재산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 재산을 평생 유지하는 일은 사회에 별로 유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안다. 그러므로 매년 재산의 일부를 환원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영구적 토지개혁과 같다. 그것은 일종의 영구적 혁명이다. 하지만 법의 틀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조용한 혁명인 셈이다.”(『NewPhilosopher』-한국판 2019 Vol.7)

김병권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