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계기를 민주주의 급진화의 기회로,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대내적이든 대외적이든 우익 포퓰리즘이 급격히 확산될 개연성은 한국사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세계 정치 흐름을 이해하거나 한국의 이후 정치 방향을 전망하기 위해서 포퓰리즘에 대한 점검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 대침체에 대한 무력감의 결말, 극우 포퓰리즘

올여름 휴가시즌에 권하는 책 7권을 뽑아보았다. 2020년을 앞두고 지난 10년 동안 일어났던 사회변화 키워드를 알려줄 만한 책 가운데 올해 출간되거나 번역된 책들이다. 『일자리의 미래(원저는 The Job)』, 『우버혁명(원저는 Uberland)』, 『블록체인 해설서』, 『AI 마인드(원제는 Architects of Intelligence)』, 『정의의 아이디어』에 이어 여섯 번째는 정치적 주제인 포퓰리즘이다. 이와 관련된 책들은 국내에서 상당히 많이 번역되거나 출판되었지만 그 중 가장 차별적인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서적이 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가 아닐까 싶다. 2018년에 영어판이 출간되었고 올해 2019년 2월에 번역판이 나왔다.

이른바 포퓰리즘이라는 정치 현상은 이제 이단적인 비주류 현상을 넘어서 전 지구적으로 미국, 브라질, 필리핀, 터키, 폴란드를 비롯한 굵직한 국가들의 주류 집권 논리가 되었다. 설령 집권을 못 했더라도 여러 국가들에서 강력한 야당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대침체와 불평등의 심화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지난 10년 동안 지치도록 무력한 대응만으로 일관했고, 그 정치적 결말로서 경제 위기를 넘어 정치적 불안정과 위기 국면이 전개되는 것으로 포퓰리즘을 이해하는 경향조차 보인다. 정치학자 래리 다이어몬드가 ‘민주주의의 침체(Democratic Recession)’라고 표현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1970년대만 해도 20여개에 불과하던 선거민주주의 제도가 2000년대 초반 120여개로 팽창하면서 역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지만, 2008년 이후 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되면서 권위적 정부들이 확대되었고, 이제부터 걱정해야 할 것은 경제 침체(Economic Recession)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침체’라고 경고했다. 최근 후쿠야마도 그의 저서 『Identity: The Demand for Dignity and the Politics of Resentment』를 통해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극단적인 정치 퇴행 현상 탓에 유독 한국사회는 세계적인 포퓰리즘 광풍과 정치적 격랑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한국사회도 국내적으로 일반 시민들과 정치 엘리트 사이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고 일부 그룹들 사이에서 정체성 갈등을 보이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국가주의적 충돌이 주변국들 곳곳에서 줄기차게 벌어지는 중이다. 대내적이든 대외적이든 우익 포퓰리즘이 급격히 확산될 개연성은 한국사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세계 정치 흐름을 이해하거나 한국의 이후 정치 방향을 전망하기 위해서 포퓰리즘에 대한 점검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포퓰리즘의 부상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의 정치적 무능의 필연적 귀결로 파악한다면, 지난 10년 역사와 앞으로 도래할 10년 역사를 이해하는데 포퓰리즘은 결정적 키워드가 될 것이다.


‘상류층 좌파 vs 장사꾼 우파’, 소수 엘리트와 부자들의 정당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이유는 뭘까? 대체로 일반 시민들과의 접점에서 멀어진 정치가 좌우 정당을 막론하고 소수 엘리트들과의 공모에 의해 정치를 끌고 가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보는 것 같다. 이를 두고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최근 논문에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을 “상류층 좌파 vs 장사꾼 우파Brahmin Left vs Merchant Right”라고 비유하면서 양당 모두 소수 엘리트와 부자들의 정당이고 일반 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은 없어졌다고 비판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글을 썼던 토마스 프랭크도 미국 민주당이 노동자나 중산층 시민을 대변하기 보다는 “지식 경제의 승리자들, 즉 실리콘 밸리의 두목들과 대규모 종합 대학 시스템,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큰 돈을 기부했던 월스트리트 거물”들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으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일반 시민들과 기성 정치 엘리트 사이 간격의 확대가, 특히 2008년 대침체와 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대처 과정에서 극명해지면서 기성 정치와 엘리트 집단에 대한 시민들의 전반적 불신과 분노의 탈출구가 우익 포퓰리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양상이 기존 주류 세력의 우월적 정체성, 다양한 소수자 집단에 대한 적개심, 국수주의와 보호주의적 경향을 내건 정치 리더나 집단에 대한 열광으로 변형되고 있다는 분석이 특히 2016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유형의 책들인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자기 땅의 이방인들』 등이 번역되었고, 대체로 비슷한 분석틀을 가지고 있다.(특히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약 5년여 시간 동안 탐사 형태로 우익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삶을 추적한 『자기 땅의 이방인들』이 돋보인다.)


새로운 헤게모니 구성체를 위한 집합적 주체의 구성

그러나 위에 소개한 서적들을 포함하여 거의 대부분 포퓰리즘을 다룬 책들은 우익 포퓰리즘으로 귀결되는 위험성을 경고하거나 기성 정당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하지만 샹탈 무페가 2018년에 내놓은 소책자에 가까운 저서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포퓰리즘 분석과 정치적 제안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금 글로벌 차원에서 열리고 있는 ‘포퓰리즘적 계기’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포퓰리즘적 계기'는, 빠르게 증가하는 불만족스러운 요구들로 인해 정치적 혹은 사회경제적 전환에 대한 압박에 처한 지배 헤게모니가 불안정해진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제도들은 기존 질서를 지키면서 대중들이 계속해서 이것들을 따르도록 지켜내는데 실패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시급한 것은 포퓰리즘 계기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계기가 또한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바로 이 대목이 다른 포퓰리즘 분석서들과 갈라서는 지점이다.

물론 무페도 프랭크와 마찬가지로 최근 정치가 “당파적 대립이 아니라 공공 사무에 대한 중립적 관리라는 생각에 따라 정치를 기술 관료적 형태로” 변질되었으며, 정치 공간에서는 현실적으로 여러 당파적 경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중립적 영역에 있는 엘리트들 사이의 경쟁으로 정치를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유사한 진단을 하고 있기는 하다. 또한 그 결과 “시민들이 다양한 정치 기획들 사이에서 실제 선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면서 시민들의 역할은 그저 전문가들이 고안한 '합리적' 정책들을 승인하는데 그치고 말았다.”고 개탄한다. 어쨌든 “정치는 기성 질서, 전문가들을 위해 예비된 영역의 유지라는 단순한 의제”가 되어 버렸고, 시민들의 참여라는 여지는 오히려 점점 더 좁아지게 되었으며, 오히려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엘리트들에 의해 박탈당해온 목소리를 대중에게 되돌려”주겠다면서, 시민들의 불만을 '국수주의적'으로 해석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페는 프랭크와 달리 기존 정당들에 기대하기 보다는 새로운 운동적 모티브를 발견하자고 제안한다. 즉 앞서 확인한대로 “시급한 것은 포퓰리즘 계기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계기가 또한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사회질서를 재배열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는 가능성”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자유 민주주의 틀 안에서 새로운 헤게모니 구성체를 수립하기 위해 정치적 공세를 시작하려는 집합적 주체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그 방안으로서 “헤게모니적 기표로서의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종속에 대항하는 다양한 투쟁들 사이의 등가 사슬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 이 전략들은 이미 이전 저서들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나 『정치적인 것의 귀환』 등에서 전개했던 이론들을 확장시킨 것이다.

한국사회도 이 대목들을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큰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지금의 한국사회 역시 혁명에 준하는 개혁 노선, 즉 혁명적 개혁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개혁들이 비록 민주주의 수단을 통해서 추구되지만, 사회경제적 권력 관계 구조의 커다란 전환을 추구한다”는 무페의 지적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그 연장선에서 시민사회 주체의 수평적, 수직적 확장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본격적인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련하여 무페는 “우리는 한 집단 안에 있는 차이를 구별하면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구들 사이에 '등가'를 만들어가는 접합”을 시도하자고 하면서, 동시에 “'시민'으로서 사회적 행위자들은 정치 공동체 수준에서 개입”하자고 하는데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사회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도 숙고해봐야 할 대목이다.


이 책은 부록을 포함해서 140쪽 정도의 분량 밖에 되지 않고 라클라우의 제자이자 라클라우와 무페의 이론에 밝은 이승원 박사가 번역했다. 이들의 특징적인 몇 가지 이론 개념을 모르고 읽으면 다소 문맥이 막힐 수도 있겠지만 짧은 글이기도 하고 워낙 시사적인 이슈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일독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포퓰리즘 서적으로는 가장 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이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어 추천한다.

김병권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