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 현장을 가다]논문 무료 공유를 넘어 학회 커먼즈로

     

새로운 학문 생산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단체와 연구자 공동 심포지엄

발단은 구독료 급등이었다. 국내 최대 논문유통업체 디비피아는 연간 구독료를 2017년엔 30.9%, 2018년엔 9.6% 올렸다. 연이은 협상 결렬. 2018년 4월엔 문헌정보학 분야 학술단체 8곳이 상용DB업체라고 불리는 논문유통업체와 계약을 '중단'했다. 그리고 자체 논문을 오픈액세스(OA) 즉 논문에 대한 접근을 개방했다. 2019년 새 학기 들어선 부산대, 전남대, 제주대 등 10개 국공립대학이 계약을 '해지'했다.

2019년 8월 29일에는 학술단체 37곳과 60여 명이 모여 지식 공유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논의는 단순히 논문 무료 개방에 머물지 않았다. 오픈액세스 플랫폼에 대한 지배구조(Governance), 논문 평가와 지원 등 생산구조 개혁, 지식 생산자들 간 평등하고 민주적 관계 형성, 운영비 확보를 위한 재정적 도전과제로까지 파고 들어갔다.

이날 화두는 커먼즈(Commons)였다. 첫 발제자는 '학술 지식은 대표적인 커먼즈'라며 발제를 시작했고, 마지막 토론자는 '우리끼리 먼저 커먼즈부터 시작하자'는 말로 갈무리했다. 커먼즈는 한 공동체가 규칙과 규범을 정해 운영하는 공유 자원을 뜻한다.

커먼즈는 흔히 '공유지의 비극'이라 불리는 '오픈액세스의 비극'을 막을 대안으로 꼽힌다. 커먼즈 연구로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 인디애나대 정치학 교수는 "생물학자인 개릿 하딘이 거론한 '공유지의 비극'은 잘 관리되고 있는 커먼즈(공유지)가 아니라 오픈액세스(개방지) 형태의 자원"이라고 분석했다. 또 하딘이 '비극'을 막을 대안으로 제시한 사유화, 정부 개입보다 공동체 관리 즉 커먼즈가 우수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오픈액세스에서 공유의 첫발을 뗀 학회와 연구자들은 커먼즈로 가는 긴 여정에 나설 수 있을까.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연구자 연대 선언'에 앞서 벌어진 심포지엄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박숙자 대중서사학회 회장이 사회를 맡은 이 자리에서는 박구용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 본부장, 이수상 부산대 도서관장,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위원장이 축사를 했다. 발제는 박서현 제주대 연구교수, 류준경 성신여대 교수, 배성인 한신대 교수, 정경희 한성대 교수가 맡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 교수가 진행한 종합토론의 토론자로는 박배균 서울대 교수, 이재윤 경기대 교수, 박상민 가톨릭대 교수,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이 참여했다. 주최측의 허락을 얻어 발표문 전문은 이커먼즈 홈페이지의 eBook 코너에 공개했다.(링크바로가기)


"논문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공유할지 아이디어, 실행법 공유해야"

박숙자(대중서사학회 회장,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 올해 초, 경쟁과 성과주의에 지쳐 있던 연구자들이 모였다. 6월에는 다시 10곳이 모여 학술단체 운영의 문제점, 그리고 우리가 쓴 논문의 유통 구조 문제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식의 공공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의 스펙과 성과가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려 논문을 쓰는데 그 본래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나눴다. 오픈액세스, 국가라이센스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해 8월에는 문헌정보학회 선생님들이 모여 먼저 오픈액세스에 대해 토론한 바 있었다. 그 결과 문헌정보학계 8개 학술단체는 디비피아, 한국학술정보(KISS)를 거치지 않고 직접 논문을 공유하고 있다. 오늘 그 분들을 모시고 논문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하는지 아이디어와 실행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자의식과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학회, 도서관, 연구자들의 연대에 환영"

박구용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 본부장(광주대 철학과 교수) 
: 다른 대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변화를 일으키려 하지만 막상 변화는 잘 안 일어난다. 오늘은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를 논하는 자리다. 하버마스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 권력, 시장 권력이 생활세계를 식민화했는데 이제 학문을 내적으로 식민화하고 있다. 교수가 되기 위한 실적을 만들어주는 체제로 학회가 바뀌면서 대개의 인문사회학회에 연구자가 참여하지 않는 실정이다. 독립연구자들의 자존심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이다. 학술지를 관리하는 한국연구재단 내 부서가 대학 재정 지원하는, 대학 구조 조정하는 곳이다. 이게 심각한 문제인데, 내 힘으로는 바꾸지 못하고 있다. 디비피아 같은 시장 자원이 개입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나 같은 사람이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식인들이 학문적 담론, 운동 통해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응원한다. 개인적으로, 대학이 지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독점적 지위를 갖는 시대가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이미 지나간 시대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수상 부산대 도서관장(부산대 문헌정보학 교수)
: 이번 선언에 국공립대학협의회 중 11개 도서관이 참여했다. 이 일을 연구자들과 함께 하면 훨씬 수월해지리라 생각한다. 우리 연구자들은 주로 공적 연구비로 연구해 학회에 투고한다. 배포는 학회가 한다. 학회는 유통업체로부터 수입을 기대하지만 수입은 크지 않은 반면, 업체는 도서관들로부터 과다한 구독비를 받아낸다. 여기서 문제가 일어난다. 도서관이 지불을 못하면 연구자들은 자기 논문도 찾아볼 수 없다. 도서관과 연구자는 피해자가 된다.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대도연)은 상용DB업체의 과도한 구독료 인상을 보이콧 한 바 있다. 디비피아의 구독 중단을 시도했다. 8개월째다. 대도연 산하 전자저널특별위를 가동해 국회 포럼 조직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대학의 이용자한테 불편을 드리면서까지 디비피아 구독을 중단한 그간 상황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오픈액세스라는 청명한 기운이 학술연구 영역에 스며들고 있다. 좋은 소식 있으리라 기대한다.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위원장 
: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설립된 지 1년 8개월 됐다. 행정부와 국회에 대한 제안, 갑질 교수 제보 받기 등 대학원생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평등한 학생-교수 관계를 만드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 대학원생노동조합도 연구 성과는 사회적 공공재일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이공계 연구 성과는 경제적으로 직접적 효과가 보이는 특성이 있는 반면 인문사회 연구 성과는 시민사회에 침투해 영향을 발휘하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공공성은 현재와 같은 유통 시스템에서 고사될 수밖에 없다.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당사자가 할 수밖에 없다. 당사자가 조직체를 만들어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번 선언을 지지한다. 또한, 이번 선언에 학회 간사들의 그림자 노동 언급이 있다. 연구자 공동체는 자유롭고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들은 '좋은 친구들'이라 생각하지만 대학원생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말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이번 선언에 앞으로 연구 성과를 공공물로 만들고 또한 학회 내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있어 더더욱 좋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인용해서 결론을 대신하고 싶다. "지성인이 되는 가장 힘든 측면은 당신이 어떤 기관에 얽매이지 않고 또는 어떤 체계나 방법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자동기계가 되지 않으면서 당신의 일과 개입을 통해 언명하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연구자로서 기존 체제에 함몰되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말라는 뜻으로 읽는다. 오늘 선언을 지지하며 대학원생 노조도 협력하는 좋은 동료가 되겠다.


>> 발제 : 한국 학계에서 지식커먼즈의 대안적 생산·공유의 과제 <<

"비판적 지식 생산자들의 연합이 필요“

박서현(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 우리 센터는 커먼즈를 공동자원이라고 번역한다. 학술 지식이야말로 대표적인 커먼즈다. 커먼즈는 공통의 부로 정의된다. 학적 지식은 기존 지식 바탕으로 학문공동체의 협력으로 탄생한다. 개인이 하더라도 기존 지식, 공통의 부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을 사기업이 사적으로 유통시켜 수익을 창출한다. 1990년대 후반에 국내 학술지 웹 데이터베이스가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누리미디어 등 데이터베이스(DB)업체가 저작자를 학회에 저작권 이양 동의서를 쓰도록 요구했다. 이후 논문 저자와 학회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2013년 서비스 디비피아가 본격화됐다. 논문 DB를 자체적으로 축적하고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콘텐츠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계약 조건들을 (우리 연구자 스스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디비피아가 합법적으로 사업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학적 지식을 오픈액세스 하는 데에 있어서 이를 담당하는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여러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다. 공교롭게도 학술지가 상용화·상업화되게 만든 이 제도는 1998년에 시작됐는데 신자유주의적 고등교육, 학술지 국제화 SCI 학술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이후 많은 학회들이 대학의 계량화된 교수 평가 방식을 수용하고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생겼다. 학술지등재제도가 연구실적 부풀리기, 학술지의 하향 평준화를 일으킨다는 비판은 이미 나왔다. 다시 말해 지식커먼즈가 부패한 것이다. 

공통의 부, 지식의 심화와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부패하지 않은 지식커먼즈는 똑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게 한다. 학술지에 등재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공통의 부를 늘리는 데에 기여할 수도 있다. 인간의 건강한 변화에 초석을 놓는 지식은 무엇인가. 학술지 등재 논문만이 여기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근데 학술지 등재제도는 폐지되지 못했다. 대학이 반대했다. 교수를 평가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 지원을 받는 대학 입장에선 업적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생산자 자신의 문제도 있다. (논문 등재를) 학회의 권위와 명예를 판가름하는 정부 인증서로 판단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논문을 많이 게재해야 하는 교수들이 학회를 건립하기도 했다. 

이제는 비판적 지식 생산자들의 연합이 필요하다. 지식이 공유되고 관리되는 방식뿐 아니라 지식이 생산되는 방식도 논의되어야 한다. 한국연구재단의 오픈액세스 정책도 점검해야 한다. 연구재단의 오픈액세스 사업은 학회나 지식생산자의 자율적 움직임을 지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오픈액세스 점수화로 등재제도를 강화하고 고착화하고 있는 수단이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과 비슷한 영향을 일으킬 수 있다. 혁신적인 플랫폼 구축보다는 지식생산자들의 성찰이 우선 필요하다.


>>발표 : 학술논문 DB 유통 문제와 신자유체제 하의 학문(장)의 변형<<

"공공성의 의미는 생산자 참여에서부터 찾아야“

류준경(한국고소설학회, 성신여대 한문교육학 교수) 
: KISS가 1990년대 말 학회에 논문 DB 구축해주고 수익도 좀 나눠주겠다고 제안한 게 첫 시작이었다. 그 후 2000년대 들어 디비피아가 시작됐다. 그러다 정부가 대학 등록금 인상을 막으며 대학 재정이 악화됐고 대학들의 비용 절감이 시작됐다. 게다가 해외저널 구입비 등 전자저널 구독료도 높아지는 추세다.

이에 학술 DB 쪽에서도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구매해서 푸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제도가 들어왔을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 예전의 가난한 선비의 삶으로 돌아가자 할 것인가.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것은 그 지점이다.

(논문을 공유하는 새로운 오픈액세스 플랫폼이 만들어지더라도) 생산자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공공성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나 자본에 포획될 수 있다. 대안적 가치로 공공성을 말하지만 공공성의 의미가 시민사회에서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

대학 교수가 고등학교 교사보다 월급 많이 받는 이유는 학문의 공공성에 있다. 공적인 역할을 하라고 더 주는 것이다. 교수들이 그런 역할을 하려면 학회가 건강해져야 한다. 학문이 학문 그 자체의 논리로 가치 평가를 인정받아야 한다.

(오픈액세스를 통해 DB를 구축하는 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KCI는 개별 자료의 양은 많으나 1997년 이전 논문은 KISS나 디비피아에 더 많다. 학회에 나눠주는 기금이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도 논리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저작권료 수입은 학회가 저작자들을 착취한 것이다. 저작자들이 서명한 것은 민간업체, KCI에 구축된 논문에 대한 사용권 문제다.

(공공기관인 한국연구재단 주도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든다면 한국연구재단이 권력화될 수 있다. 플랫폼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진다. 공공의 가치라 하지만 관료제, 국가경쟁력이란 이름 아래 변질되어버릴 수 있다. 집적된다고, 잘 이용할 수 있다고 좋아할 타임이 아니다. 학술지 평가가 엉망이라고 질적 평가한다고 다들 말하자 KCI 피인용지수(Impact Factor)라는 것이 나왔다. 서양에서 인문학에선 인용 횟수는 측정하지 않는다. 질적 평가를 하자 하지만 그러다 보면 연구자의 서열이 다시 나눠진다. 그러면 건강한 동료 평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라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발표 : 학문의 위기와 한국연구재단 : 조직혁신 및 학술지원 정책 방안<<

"한국연구재단에서 인문사회 분야를 분리해야"

배성인(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 한신대 정치학 교수) 
: 한국연구재단은 태생적 한계가 있다. 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과학재단과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한국학술진흥재단 등 3곳이 합쳐져 출발했다. 신자유주의시대 자본은 돈을 매개로 대학을 장악해 대학에서의 기술개발로 이윤을 증식한다. 

그런데 인문사회 쪽은 이윤과는 거의 연관이 없다. 올해 학술연구 지원예산 5조7600억 중 인문사회 분야는 2259억 원뿐이다. 분리하는 게 예산 확보에 낫다. 연구재단의 문제 중 또 하나는 학술지를 관리하다 보니 통제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학위가 있는 교수, 연구자만 연구를 하지는 않는다. 시민, 사회단체에서도 연구기능이 있다. 

따라서 연구재단의 조직적 혁신이 필요하다.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분야를) 분리해야 한다. 방치하는 건 국가, 사회적 문제 일으킨다. 또한 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해 학회가 같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혼자 살 순 없다. 실제로 진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대학이 해야 한다.


>>발표 : 문헌정보학 분야 학술지의 오픈액세스 출판 전환 사례<<

"오픈액세스 8곳 중 3곳이 DB업체 계약 '중단'에 성공...안정적 운영 기반 확보는 화두"

정경희(한국기록관리학회, 한성대 디지털인문정보학트랙 교수) 
: 2018년 문헌정보학 분야 8개 학술단체가 오픈액세스 출판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경험했다. '할 수 있다. 어렵다. 혼자선 못한다.' 많은 분들, 학회가 함께 해야 한다.

먼저 어떻게 오픈액세스가 시작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하겠다. 그래프 맨 위에 있는 건 북미지역 도서관이 구매한 학술지 가격 상승을 보여준다(그래프). 1986년에서 2000년 사이 구독 비용이 226% 상승했다. 그런데 구독 자료 수는 줄었다. 이 자료는 북미에서 2001년에 만들어진 데이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온 게 오픈액세스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 2002년 부다페스트 오픈액세스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셀프아카이빙을 포함한 다층위의 아카이빙 정책이 수행됐다. 샘플링에 따라 수치 차이는 있지만, 그 후 20년간 전 세계 논문의 최대 48%가 이미 오픈액세스 상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문의 오픈액세스 논의가 시작된 계기는 학술논문 구독 비용의 급격한 인상에 있었다. 2016년 이후 가격 인상률이 대폭 높아져 대학에서 구매를 못하게 된 문제가 생겼다. 한국문헌정보학회, 한국정보관리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등 8개 단체가 2018년에 모여 오픈액세스로 전환한다는 선언을 했다. 첫 계기는 업체와의 계약 조건 문제였다. 우리 한국기록관리학회의 경우, 학술지 창간호부터 모두 KCI와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올라가 있다. 그런데 상용 DB업체가 공공 부문에 올리지 말고 자기네에만 올리라고 계약 조건을 걸었다. 그럼에도 그 조건을 받아들였던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학술지를 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것이 과연 바른 방향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또 하나의 계기는 학술지 구독 비용 상승률이었다. 우리나라 학술지 구독비용이 20년 전 북미지역처럼 높아지겠다는 인식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2018년 문헌정보학 분야 학술단체 8곳의 오픈액세스 출판 선언이 나왔다. 선언의 내용은 이러하다. 첫째, 오픈액세스 출판으로 전환. 이는 학술 연구 성과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보장과 연구·학문·지식의 발전, 그리고 연구 성과의 신속한 확산을 통한 가시성과 인용률 제고를 포함한다. 둘째, 다른 학문분야와의 협력. 셋째, 도서관계에 대한 지원 촉구. 넷째, 정부 및 학술 진흥 공공기관의 지원 촉구.

그리고 우리는 2018년 11월 '국내 문헌정보학 분야 학술지의 오픈액세스 출판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개발했다. 첫째, 저작권 및 이용허락 정책에 있어서 저작권은 학회가 갖되 라이선스는 CC BY-NC-ND 즉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로 하기로 했다. 둘째, 원문은 공공영역, 상업영역에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셋째, 인쇄본을 중단하고 심사료를 출판비로 전환해 출판비용을 마련하기로 했다. 넷째, 출판 및 유통 플랫폼은 공공 영역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한국기록관리학회지는 지금까지 간신히 수지 타산을 맞추며 출판하고 있다. 지금은 편집 비용이 최소한으로 책정되어 있는데, 앞으로 몇 년 지나면 현실화될 것이다. 출판 플랫폼을 공공 영역에서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고도화된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들 것일까. 앞으로 숙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 교수(인문학협동조합, 맨오른쪽)가 종합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토론자 홍기빈(칼폴라니연구소), 박상민(한국사고와표현학회),이재윤(한국정보관리학회), 박배균(시민과함께하는연구자의집).

>>토론<<

"전기 쓰듯 누구나 지식에 접근해야...한국판 리서치게이트 필요"

박배균(서울대 지리교육학 교수, 연구자의집)
: 올해(2019년) 지식인 운동이 변곡점을 맞이한 것 같다. 6월에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가 명칭을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민교협)로 변경하면서 대학 안팎 연구자와 함께 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또, 우리는 시민들과 연구자의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와 함께 386 지식인들의 종말이 오면서 지식 공유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조국 사태의 교훈이 뭘까. 몇몇 교수가 조국이 들어간 단체라면서 민교협 탈퇴 이메일을 보냈다. 억울했다. 조국과 민교협이 동일하지도 않고, 오히려 (조국은) 우리와 거리를 뒀는데 말이다. 

지식 운동이 변해야 한다는 얘기는 20년 동안 있었다. 이런 움직임은 이제 목소리가 행동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존 지식 생산 체계가 한계에 봉착했다. 새로운 지식 생산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식 사유화·상품화, 탈정치화된 지식, 영토화된 학문 권력, 기능주의적인 학문... 엘리트주의 학벌주의로 사회는 문제에 봉착했지만 지식인들은 그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식인의 위기, 학술의 위기를 가져왔다. 

기존의 지식인 운동이 좁은 의미의 학문의 자유를 추구했다면, 새로운 지식인 운동은 모든 시민의 탐구의 자유를 추구한다. 그동안엔 '무엇을' 그리고 '왜'를 고민했다. 앞으로는 '어떻게'를 고민해야 한다. 오픈액세스와 함께 그 이후의 과제는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 

(박서현 선생 말처럼) 오픈액세스의 주체는 관이 아니라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국가나 연구재단이 오픈액세스를 만드는 주체가 되면 안 된다. 가령, KCI는 결국 학술지 등재 정책에 기반한 플랫폼이다. 따라서 등재에 반대하는 지식인은 배제된다. 

연구재단과 국가는 오픈액세스를 위한 기초 인프라만 제공해야 한다. 법적 지원, 학술지 지원은 하되 엄청난 비용이 드는 DB구축과 관리는 해줘야 한다. 전기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듯이 지식도 누구나 접근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자나 연구자 집단이 다양한 플랫폼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또 학술지, 학회지가 아닌 연구자 개인이 참여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한국판 리서치 게이트(www.researchgate.net, 연구자 네트워킹 사이트로 논문을 공유하고 연구협력자를 찾을 수 있음)가 필요하다. 연구자들이 다양하게 그룹을 만든다면 자유로운 융합과 통섭이 이뤄질 것이다.

"논문 유통은 유료인데 출판은 무보수...공공기금으로 출판 지원해야"

이재윤(한국정보관리학회, 경기대 문헌정보학 교수) 
: 해외 저널들은 말 그대로 학술출판사다. 국내 DB업체는 유통업체다. 해외 출판사는 연구자들이 투고하는 비용 외엔 업체가 부담해서 생산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교 노동을 착취하면서까지 논문을 생산한다. 업체가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또, 학회 운영은 아직도 인쇄 중심이다. 회비로 비용을 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논문을) 온라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오픈액세스를 해야 하는가. 지금처럼 사람들이 구독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생산하는 사람도 우리, 소비하는 사람도 우리인데, 우리가 우리 논문을 못 보는 상황이 문제다. 오픈액세스라 하면 무료라 생각하는데, 어딘가에선 비용을 대야 한다. 해외에서도 구독과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학술 출판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유통 쪽은 유료인데 출판은 무보수의 착취가 이뤄지고 있다. 

유통뿐 아니라 생산에서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 학술 출판에 정상적 노동, 정상적 대가가 지급되어야 한다. 학술지 정책은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를 매기는 것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SCI에서도 인용 등 한 가지로 평가하지 말라고 계속 경고한다. 다양한 평가지표가 필요하다. 학회마다 서로 다른 지표를 자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오픈액세스는 쉽지 않은 길이다. 해외에서도 오픈액세스로 전환했다가 다시 유료 구독 모델로 전환한 경우가 있다. 한국기록학회 발표에서 봤듯 어려운 길이다. 어느 나라든 인문사회 오픈액세스를 공공기금으로 할 땐 출판 자체를 지원한다. 인용이나 이용 건수로 지원하지 않는다. 또, 연구자들이 출판 비용을 내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교육이나 연구기관이 출판비를 지원하는 식이다. 

주의해야 할 점 하나는 약탈적 학술지다. 오픈액세스에선 돈만 내면 실어주다 보니 해외에선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다. 학술지 오픈액세스를 (지원)할 때 선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블로그에 올리듯 쉽게 논문 출판할 수 있는 시스템 필요"

박상민(한국사고와표현학회, 가톨릭대 ELP학부 교수) 
: 한국연구재단이 지식을 관리하면 안 된다는 지적에 원론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KCI를 대체할 수 있는 사적인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까. 10년, 20년 후에도 그 민간 플랫폼이 공공성을 지켜줄 수 있을까. KCI가 데이터를 공유하면 여러 가지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수 있다. 수십억 원이 드는 KCI 사업 대체할 만한 민간 플랫폼이 나올 수 있을까. KCI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오픈액세스를 진행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지금은 연구자가 편집까지 다 맡아서 출판해놓고 학회에 모든 권리를 내놓아야 한다. 출판, 유통업체들이 받는 비용도 합리적인지 의심된다. 그럼에도 오픈액세스가 그 과정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재단 교육부에 계속 대안을 제안하면서 개선해나가는 게 낫다.

등재지가 4000개다 며 많다고 한다. 내 부문의 경우 주제어 검색해보면 읽을 만한 논문 10개도 안 나온다. 등재지는 오히려 더 많아지는 게 좋겠다.

인문학에 후학이 줄어들고 있다. 도와줄 일손이 없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 올리듯 쉽게 논문을 올리면 ISBN이 나오고 발행하면 잘 검색되는 (출판)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가의 오픈액세스를 학회 커먼즈로 상호보완...국가가 늦다면 우리끼리 커먼즈부터"

홍기빈(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
: 우리 연구소에선 지식공유지대 이커먼즈(ecommons.or.kr)를 만들어서 에세이와 전자책을 공유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꼭 짚고 싶은 부분이 있다. 오픈액세스와 커먼즈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 다 필요하고, 상호 보완 관계가 있다. 그런데 커먼즈를 만드는 데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내 전화번호는 누구의 것인가. 20년 전엔 전화번호부가 있어서 전화번호가 있는 사람들은 다 등재됐다. 공중전화 부스에 걸린 전화번호부만 뒤져봐도 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오픈액세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우리가 쓰는 논문은 세금이 들어가서 나온다. 세금이 들어가는 연구재단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세금으로 지원 받은 것이다. 대학에 적을 둔 연구자들도 직간접적으로 세금의 지원을 받는다. 정부 지원을 받는 곳이 대학이니깐. 정부 돈 받은 연구 프로젝트는 다 오픈액세스를 하도록 하면 (논문 공유 문제는) 끝난다. 이건 제도적 문제다. 한국연구재단이 고전 번역을 지원하는 건 인류 공통의 자산을 읽게 하자는 것인데, 출판사가 프로젝트를 따서 출판하는 바람에 일부 책은 온라인DB에 없다. 이것도 오픈액세스 하면 된다. 

그러나 커먼즈는 다르다. 성원들이 우리가 자산을 의식적으로 조성해서 우리가 규약을 만들어 능동적으로 관리해야 커먼즈다. 커먼즈를 만들려면 정신과 가치와 의미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학회는 (원래) 커먼즈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끼리 문제의식과 방향을 동의하고 집단적으로 나가보자는 것이니까. 여기서 한 걸음 나가면 (학회) 커먼즈를 일반인에게 열어주자 할 수 있다. 

학회의 커먼즈와 국가의 오픈액세스, 두 가지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국비 받은 논문이 국가 DB에 올라와 있다면 학회는 큐레이팅만 하면 된다. 국가 덕분에 논문 오픈액세스가 되면 다양한 커먼즈가 만들어지는 기반이 된다. 지식 생산 중 개인이 직접 기여하는 게 몇 %나 될까. 모든 논문의 70% 이상이 인용이다. 

국비 들어간 모든 논문은 다 오픈액세스 하자. 국가 움직이는 데에 시간 오래 걸리면, 우리끼리 커먼즈부터 하면 된다. 편집 안 된 원문 상태로 그냥 올리자. '뒤비피아'든 '디비지아'든 사이트를 만들어서, 각자가 쓴 논문이나 글들을 올리자. 토렌토에서 영화 다운 받아 볼 때 누가 화질 신경 쓰나.

정리 = 이경숙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미디어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