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제 시대”, 플랫폼 민주주의, 정책과 제도의 창조

     

기계제 시대”, 플랫폼 민주주의, 정책과 제도의 창조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제 시대Machine Age”를 살고 있습니다이 시대의 산업 문명이 각종 형태의 야만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며이 민주주의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어야 합니다우리는 지금 그 형태가 플랫폼 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이 플랫폼 민주주의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오픈소스의 방식을 통하여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내고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기계제 시대의 민주주의  



고대 그리스에서 구현되었던 직접 민주주의와 근대 이후에 나타난 간접 민주주의 혹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놓고 무엇이 더 바람직한 형태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논쟁이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기계제 시대에는 두 가지 모두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산업 문명이 필요로 하는 민주주의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양 고전 고대의 도시국가에서 나타났던 민주정과 공화정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전범이 되었고, 특히 아테네에서 나타났던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는 오늘날까지도 급진주의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고전 고대의 민주정 및 공화정은 아테네와 로마라는 호전적인 전쟁 국가의 다른 얼굴이라는 점입니다. 소수의 귀족들을 내세운 기마전에서 다수의 중장보병을 중심으로 전쟁의 형태가 바뀌면서 전쟁에 어느 만큼의 인원을 동원할 수 있느냐가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고 이에 다수를 점하는 평민들에게 권력을 대폭 혹은 전부 양도하는 일이 필연적으로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 동원의 필요에서 나온 대중 민주주의의 확장은 양차 세계 대전이 벌어졌던 20세기에 다시 한 번 나타나기도 합니다.

근대에 들어 서양에서 나타난 대의제 민주주의 또한 전쟁이라는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만, 그 국가의 성격은 조세국가Steuerstaat였습니다(슘페터, 골드샤이트). 전쟁의 주역은 민병대가 아닌 상비군과 군사 관료 조직이었으며, 이에 군사력의 유지에 필수적인 것은 직접적인 인력의 동원이 아니라 물적 자원의 동원 즉 세금의 징수였던 것입니다. 이에 국가를 운영하는 지배층은 국가의 구성과 운영을 놓고 조세를 부담하는 주체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아가 그 지배층의 인적 구성까지도 선거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특히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계제 시대에 민주주의가 요청되는 역사적 맥락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생산의 주역이 기계가 되어 생산과 유통과 소비 전체가 기계의 논리에 따라 재편됩니다. 그리고 그 기계를 소유하고 부리는 이는 자본가이므로, 이윤과 자산 증식의 논리가 또한 세상을 지배합니다. 인간과 자연은 생산의 투입물인 상품으로 전락하게 되며 이에 붕괴의 위험에 처한 사회는 인간과 자연을 다시 상품에서 끌어내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기를 씁니다. 그 와중에서 인간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소중히 여겨져 오던 다양한 가치와 도덕은 부단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 북새통 속에서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은 큰 거 한 방을 노리고 별의별 짓들을 다 벌이고, 이는 가끔 전쟁이나 학살, 대공황이나 전체주의와 같은 끔찍한 참극을 낳기도 합니다.

요컨대, “기계제 시대의 산업 사회는 여러 개의 전혀 다른 합리성이 병존하는 사회입니다. 우선 떠오르는 것만 몇 개 나열해 보아도 기계와 산업의 합리성, 자본 회계의 합리성, 인간과 사회의 삶의 합리성, 도덕 및 가치의 합리성, 생태적 합리성 등이 있습니다. 이 여러 가지 합리성은 서로 결합되고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본래 각각 대단히 배타적인 독자적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결합과 조화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배제하고 파괴하려 들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완전히 무시될 경우 산업사회의 만족스런 작동 자체가 위협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족스런 산업사회란 물질적 생산력만 무한대로 팽창한다든가 자본 축적만 무한히 이루어진다든가 인구만 무한정 팽창하는 사회일 수 없습니다. 이에 이렇게 일방적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폐쇄적인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합리성들을 조화시키고, 때에 따라 경우에 따라 그 우선순위를 결정하면서 산업사회를 최대한 인간과 자연의 좋은 삶이라는 지고의 목적에 복속하여 작동하도록 만드는 과제가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제는 어느 한 가지 종류의 합리성에 따라 알고리즘처럼 저절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산업 사회의 여러 다른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야말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대화하고 가진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계제 시대의 민주주의입니다. 이는 폴리스의 부와 영광을 위해 전쟁을 벌일지 말지를 모두가 모여 결정하는 단순한 의미의 직접 민주주의도 아니며, 지배층의 의사와 지도력에 동의 혹은 반대를 표명하는 수동적인 대의제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산업 사회의 순조로운 작동이라는 것에 행복과 운명을 걸고서 곳곳에서 구석구석에서 일하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그 많은 여러 가지의 합리성과 논리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를 논의하고 해법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실현까지를 집행하는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장이 바로 산업 사회의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모습입니다. 

2. 엘리트 민주주의의 몰락과 자본 합리성의 전횡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20세기 중반 특히 2차 대전 이후에 주요 산업국에서 성립된 이른바 수정 자본주의 전후 민주주의는 대공황과 양차 세계 대전의 진통 속에서 탄생한 최초의 형태라고 할 만합니다. 먼저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자본과 노동이 각자 스스로를 경영자 단체와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며, 각각은 스스로의 정치적 분견대로서 중도 우파 및 중도 좌파 정당을 의회에 파견합니다. 양쪽 모두 산업사회를 이루는 그 여러 가지 합리성들을 솜씨 좋게 조화시키고 결합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스스로를 내세우는 엘리트들 그리고 기술관료들technocrats을 선두에 세웁니다. 그러면 대중들은 이 엘리트들이 선거 때마다 내세우는 슬로건과 주장을 받아 똑같이 외치면서 표 대결에 나섭니다. 그렇게 해서 성립된 국가는 또한 기술관료들의 계획을 통하여 산업사회 전체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을 통해 노동에게는 완전고용과 실질임금 상승, 자본에게는 자본 축적을 보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는 어디까지나 2차 산업혁명으로 생겨난 대량생산/대량소비의 굴뚝공장 산업사회에서나 작동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당장 1970년대에 들어와 이른바 포스트공업화post-industrialization가 시작되면서 “3차 산업혁명이 찾아오자 이러한 자본/노동의 이분법에 근거한 정당 체제는 힘을 잃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과 산업이 복잡해지고 이에 따라 사회 구조와 사회 문제들 또한 복잡해짐에 따라 이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매뉴얼을 쥐고 있다는 만능의 기술관료들이라는 신화 또한 깨어지게 됩니다.  

이 대혼란 상태를 이용하여 들어선 현상은 바로 자본의 합리성이 산업사회의 다른 모든 종류의 합리성을 압도하고 짓눌러버리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였습니다. 터무니없이 신비화된 시장이라는 것은 이제 산업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이 외쳐지는 만트라(미신적인 주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민주주의란 바로 이 신성불가침의 시장 경제의 원칙을 수호하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좌우의 모든 제도 정당이 힘을 합쳐 온 사회를 설득하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각급 선거를 포함한 모든 정치적 과정은 그래서 이 시장이라는 해법으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번영과 평화와 풍요를 달성하자는 판에 박힌 주장들의 선전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른바 포스트민주주의의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콜린 크라우치). 

하지만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로 이 자본의 합리성이 산업사회의 모든 문제를 풀어줄 수 있다는 신화는 근본부터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심각한 실업과 불평등 그리고 미래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합리성은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놀라운 가능성들이 현실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 시장과 투자의 부족으로 기계적 합리성은 억압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도덕과 가치들 중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이미 대부분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파괴되고 훼손된 상태입니다. 무자비한 자본 축적 과정에서 지구 생태계에 끼친 충격 또한 과연 되돌이킬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낳고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물결이 찾아오면서 2차 산업혁명 당시 전후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자본/노동 양당 체제의 엘리트 민주주의는 완전히 낡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대안을 자임하며 등장했던 신자유주의적 거버넌스 또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산업 사회에 조화와 번영을 되찾아 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상태입니다. 물론 여전히 시장 근본주의에 입각한 정책과 제도를 금과옥조나 되는 듯 뇌까리는 정치가들, 관료들, 학자들, 언론인들은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인 국가 경영과 경제 운영과 사회 조직의 원리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상태이기에, 표면적으로는 마치 2008년의 위기 따위는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로 세상은 굴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실업과 불평등도, 모든 이들의 경제적 불안정성도, 생태계의 파괴도, 사회의 붕괴와 도덕 및 다양한 가치의 소멸도, 기술적 효율성의 정체도 전지전능한 시장이라는 만트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지식과 정보의 공유로 플랫폼 민주주의를 마련하자





여기에서 잠깐 멈추고, 앞에서 이야기한 기계제 시대의 민주주의가 어떤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맡아야 했던 과제는 물론 가벼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대단히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민회ekklesia에 모인 시민들은 전쟁이나 원정을 벌일 것인지 등과 같은 굵직한 과제들에 자기 의견과 의사를 표명하였고, 실질적인 행정과 통치 행위 또한 제비뽑기로 엉겁결에 뽑힌 장삼이사들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투명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 또한 그러했습니다. 지배층 인사들이 내미는 계획과 제안에 대해 동의 여부를 밝히거나 기껏해야 경쟁하는 두 세 개의 정당들 사이에서 선택을 행하여 표를 던지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이 아무리 한심하고 어이없다고 해도, 다음 선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기계제 시대의 민주주의는 이와는 전혀 다른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전쟁을 벌이자는 작당과 으쌰으쌰 혹은 잘난 귀족들에 대한 수동적인 동의와 선출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하지만 전혀 이질적인 논리와 합리성들이 충돌할 적에 그 중 무엇이 우선해야 하며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논리와 합리성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훨씬 더 고차적인 지적 작업이 요구됩니다. 요컨대, 제도와 정책의 창의적 제안creative initiative, 문제들과 제안의 숙고deliberation, 마련된 제안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consent, 그것을 실제로 집행하는 통치 행위governance 등을 모두 맡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무작위의 대중들이 우르르 모여서 이러한 엄청난 과제들을 모두 효과적으로 수행해 내는 일이 정말로 가능할까요? 몇 가지 조건을 전제로, 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산업사회의 필연적인 결과의 하나로서, 이른바 대중들의 역량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높게 고르게 고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917년 레닌과 볼셰비키가 러시아에서 혁명을 일으켰을 때 러시아인들 중 글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은 5명 중 1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이 함께 모여 창의적 제안, 숙고, 동의, 통치를 모두 행한다는 플랫폼 민주주의의 꿈은 허상일 뿐이며, 레닌이나 트로츠키와 같은 초절정의 지식인들의 일방적인 지시를 다수의 대중들이 무작정 따르는 이른바 민주집중제라는 것이 정당화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릅니다. 한국의 경우 대학 진학률은 70퍼센트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국민들 대다수가 댓글로부터 시작하여 블로그나SNS를 통하여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표명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정보와 지식의 공유와 신속한 유통으로 인하여 엘리트들만이 독점할 수 있는 이른바 고급 정보라는 것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급속히 의미가 축소되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 구조가 복잡하고 고도화됨에 따라, 전부를 아우를 수 있는 슈퍼 엘리트 같은 존재들은 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산업사회 전체는 무수한 개인들 각각의 몸과 마음에 체현되어 있는 헤아릴 수도 없이 커다란 양의 암묵지에 따라 작동하고 있으며, 이를 모두 다 독점하고 종합할 수 있는 초지성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척추 신경과 두뇌를 갖지 못한 오징어와 같은 생물들이 그러하듯, 산업사회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의 본질적 성격이 무엇이며, 그 속에서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제거하고 진정한 의미의 산업적 효율성을 올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그 현장에 있는 그 사람 본인뿐입니다(엘리노어 오스트롬).

여기에 한 가지 요인이 더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혁명과 그 기술적 조건에 기반해 현실화된 초연결성hyper-connectivity입니다. 근대 국민국가는 인구가 너무 많아 아테네처럼 모든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게 불가능하므로 직접 민주주의는 끝났다고 하던가요? 무수한 대중들의 토론은 현안에 대한 섬세하고 복잡한 논의가 불가능하고 그저 다수결에 의해 찬반을 결정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누가 말하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디지털 혁명이 마련해 준 새로운 기술적 조건 아래에서는 실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지식과 정보와 의견이 공유되고 유통되고 또 걸러지는 일이 가능하며, 또한 이미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오픈소스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리눅스와 같은 기적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집단 지성이 살아 움직여 만들어낸 위키피디아의 기적도 목격한 바 있습니다. “기계제 시대의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네 가지 과제 즉 창의적 제안, 숙고, 동의, 통치라는 네 가지 기능 또한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와 지혜를 공유하고 토론하여 그 속에서 진짜배기 알짜를 걸러낼 수 있는 플랫폼을 주십시오. 우리는 전후 민주주의의 잘난체하는 사민당 당 관료보다 또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학자 출신 재무부 장관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면서도 과학적이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교감과 동의 속에서 실로 신속하고도 순조롭게 현실화시켜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에게 지렛대와 받침대만 주었더라면 지구를 움직였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지식과 정보와 견해를 공유하고 걸러낼 수 있는 플랫폼을 주십시오. 우리는 산업사회를 희망찬 낙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키토피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산업사회의 이상적 미래상은 몇 몇 엘리트나 정치가들에게 맡겨 둘 일이 아니라, 산업사회의 이곳저곳에 박혀서 오늘도 숨막히게 그 현장을 살펴본 우리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함께 나누면서 만들어 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유토피아를 함께 그려내고 설계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계속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저희가 마련한 지식 커먼스로 모여 주십시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과 정보와 아이디어를 누구나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자기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주는 제도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에게 무제한의 책임을 씌우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갈수록 엉망이 되어가는 지금의 산업사회를 다시 사람과 사람이 또 사람과 자연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어 나갈 힘과 책임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함께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나누고 또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정책과 제도를, 가치와 규범을, 효율성과 삶의 깊이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모두가 모두를 가르치고 또 모두가 모두에게 배울 수 있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미래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조건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함께 지혜와 마음과 힘을 합쳐 산업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갈 새로운 플랫폼 민주주의를 준비합시다.

홍기빈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