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하는 물신숭배(Fetishism)

     

과거 주민들의 가장 큰 열망 중 하나였던 입당도 돈이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화폐 권력자들이 권력기관에 뇌물을 바치고 자식들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아졌다. 승진 또한 돈이 없으면 어려워졌다. 노동당의 지역 당 책임비서 이하는 돈으로 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1. 사고파는 세상

현대 사회에서 화폐는 신이다. ‘자본주의’란 ‘자본’이라는 신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이 조직하는 세계이다. 아무리 경건한 신앙인이라도, 하루 동안 신에게 바치는 영광의 횟수보다 돈과 관련된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교차로의 신호등을 보며 혼란을 느끼는 사람도, 화폐가 주는 수많은 신호에는 현기증을 느끼지 않는다. 화폐 그 자체는 물론 신이 아니다. 그러나 화폐가 상품이 되면, 즉 자본으로 기능하면 곧바로 신이다. 이때 화폐는 ‘전능함’을 갖는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화폐가 지니고 있는 속성의 보편성은 그 존재의 전능성이다. 따라서 화폐는 전능한 존재로 간주된다. 화폐는 욕망과 대상, 인간의 삶과 인간의 생활수단 사이에서 활동하는 뚜쟁이다.

폴라니는 자본주의가 절대로 상품화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상품화하면서 탄생했다고 말했다. 인간(노동), 자연 그리고 화폐이다. 이러한 것들이 상품이 되면 인신공양을 즐기는 ‘저거노트’(juggernaut)가 만들어 진다. 폴라니는 ‘악마의 맷돌’(satanic mill)이라고 표현했다. 돈의 신 ‘맘몬’(Mammon)은 동족의 피를 바치는 자에게 금화를 베푼다.

2. 화폐, 신이 되다

화폐 경제가 극도로 확장되면 화폐는 인간관계의 독점적 매개물이 된다. 더불어 화폐도 그 자신을 객체로 하는 시장을 형성한다. 화폐 시장(money market)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이 상호작용하여 양적, 질적 균형을 이루게 된다. 시장을 통해 화폐가 대상이 되면 사람들은 상품에 대하여 지불되는 대가를 당연시한다. 화폐라는 상품에 지불되는 대가는 동일한 화폐이다. 즉 ‘이자’이다. 어떤 생산물이 상품이 된다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에게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화폐 시장에서 거래되는 화폐의 사용가치는 그것이 다른 화폐를 생산한다는 데에 있다. 즉, 화폐는 스스로를 증식한다. 화폐가 이자와 같은 형태로 자기 자신을 증식하며 활동할 때, ‘자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자를 ‘자본의 가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본의 기회비용’, ‘자본비용’이라고 부르더라도 동일한 의미가 담긴 것이다. 화폐를 자본으로 주고받을 때, 그것은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다. 교환을 매개할 때는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화폐의 대표적 기능은 척도, 지불, 교환, 축적의 수단이다. 이러한 기능들은 경제 교과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의 기능은 명확히 기술하지 않는다. 자본으로 기능하는 화폐는 다른 모든 기능이 완전히 구현되어야만 작동할 수 있다. 화폐가 자기 자신마저 객체로 삼아 운동할 때가 자본으로 기능하는 상태이다.

이자라는 경제적 범주가 성립하면, 이자의 발생을 가져오는 자본은 원인이 된다. 자본과 이자는 인과율로 인식된다. 이자는 자본을 소유하면 당연히 얻게 되는 ‘과실’이라는 관념이 자리 잡는다. 더불어 자본을 투입하여 획득한 기업의 이윤도 자본을 ‘기능’하게 하여 얻은 과실이라는 의식이 생긴다. 즉, 이자는 자본 ‘소유’의 과실이고, 기업 이윤은 자본 ‘기능’의 과실이라고 여긴다. 모든 사람들은 이 환상적인 거짓에 현혹된다. 그러나 이것은 허위의식이다.

이자는 이자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인정된다. 이자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매우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자는 인간 생활에서 일반적이었던 것도, 정당화된 것도 아니었다. 기업 이윤도 생산을 위한 전 사회의 인적, 물적 조직과 운용과정에서 출현한 성과의 일부이다. 이미 생산은 전 세계적으로 분업화되어 있고 공정은 모듈화 되어 있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은 날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이때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자본은 전 사회의 성과를 사적으로 전유하기 위한 착취 도구일 뿐이다. 양치기는 어미 양의 젖을 짤 때, 새끼 양을 보여준다. 새끼를 본 어미 양의 유선(乳腺)에서 젖이 돈다. 양치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젖을 쥐어짠다. 자본은 젖을 짜내기 위해 보여주는 새끼 양처럼 기만적이다. 짜낸 젖은 새끼 양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화폐는 자본으로 투입되어 전 사회의 생산성에 중요한 길목을 차지한다. 자본가는 적정한 이윤을 위해서 사보타주를 한다. 뜯어내는 몸값이 이윤의 본질이다. 차가운 화폐 어디에서도 이윤의 씨앗은 찾을 수 없다.

이자율은 ‘화폐 소유자’와 ‘화폐를 기능하게 하는 자’ 사이에서 결정된다. 화폐를 기능하게 하는 자는 영리기업가이다. 영리기업가는 자신의 이윤 중 일부를 화폐 소유자에게 지불한다. 이자율의 최고 수준은 영리기업가가 사보타주로 얻은 수익률이다. 최저 수준은 물론 ‘0’이다.

자본가가 된 화폐 소유자, 즉 화폐 자본가와 영리기업가에 의해 화폐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 일반화된다. 대부되는 화폐가 자기 것이든, 남의 것이든, 자본은 유기체처럼 화폐를 회임하고 생산한다는 관념이 완성된다. 자본 관계의 물상화, 자본의 물신성은 완성된다. 생산의 내면적 관계는 모조리 은폐된다. 생산과 분배를 위한 전사회적 관계는 감추어진다. 대신 돈이 돈을 낳는다는 허구가 진실이 된다. 전도된 망상이 세상의 진면목이 된다.


3. 어느 근본주의자의 외침

화폐가 물신으로서 세상을 지배할 때, 사람들은 화폐가 생겨날 때부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폐가 특별한 힘을 가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화폐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힘을 진짜로 갖게 된다. 사람들은 이렇게 믿게 된다. “화폐는 스스로 증식하고 제 분신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인간 삶의 가장 의미 있는 일은 화폐를 상품으로 투입하여 증식하는 것이 된다. 화폐 물신숭배는 교세를 확장한다. 북한의 노회한 화폐경제학자 리원경은 「경제연구」 2009년 3호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화폐 물신숭배에 대해 마치 처음 발견한 현상인 듯한 태도를 보인다.

화폐의 힘을 과대시하면서 상품화폐관계를 끊임없이 확대해 나간다면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성은 다시 머리를 쳐들 수 있다. 이것은 돈만 아는 낡은 사상을 없애기 위한 투쟁이 오랜 기간에 걸치는 꾸준한 정치사상교양사업과 함께 올바른 경제조직사업에 의하여 안 받침될 때 비로소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물건과 물건의 관계로 드러나는 것을 ‘물상화’라고 한다. 고대의 토템(totem)신앙은 현대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신비한 힘을 부여하고 의지한다. 이것이 물신(fetish)이다. 실체를 바로 보지 못하고 전도된 망상과 이것에 이끌려 다니는 인간행동이 물신숭배(Fetishism)이다. 북한은 물신숭배의 싹을 자르기 위해 화폐의 사용을 극도로 경계했다. 화폐의 자율적 작동을 거부하고 계획안에서 이용할 것을 강제했다. 화폐가 자본으로 전화되지 않는, 즉 사회주의 본성에 맞는 이용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경제학자 리경호는 「경제연구」 2011년 1호에서 이렇게 말한다.

화폐, 가격, 그와 관련한 경제적 공간들은 사회주의 경제 제도의 본성적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더 잘 발전시키는 방향에서 옳게 리용하여야 한다. 가격, 화폐, 그와 관련한 경제적 공간들이 경제관리의 중요한 수단으로 된다고 하여 사회주의 경제관리의 기본방법으로 인식하면서 그것들의 리용을 절대화하거나 우선시 하여서는 안된다. … 사회주의 경제는 계획경제이며 경제를 국가의 통일적 지도 밑에 계획적으로 발전시키는 여기에 바로 사회주의경제의 본질적 우월성이 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경제관리에서는 국가의 통일적이며 계획적인 지도를 원만히 보장하는 원칙에서 화폐와 가격, 그와 관련한 경제적 공간들을 옳게 리용하여야 한다.

화폐 이용을 절대화하지 말라는 근본주의자의 외침은, 그러나 이미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게 되었다. 북한의 물신숭배는 이미 심각한 지경에 달했다.


4. 화폐 물신숭배의 양태

물신숭배를 토대로 하는 개인주의는 공동체를 집어삼킨다. 북한에서 만연한 물신에 대한 숭배는 질식하고 있는 사회주의 도덕 담론을 대체하고 있다. 예전에는 공동체에 대한 귀속성, 즉 사상이 좋은 사람이 애국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돈 있는 사람이 애국자로 인정받는다. 돈을 버는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획득한 화폐로 책임지는 사람이 애국자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국가에 의존하는 사람은 반역자라는 의식까지 확장되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애국이고, 잘사는 것이 애국자로 대접받는 세상이 물신숭배가 만연한 세상이다. 이것은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일대 전환이다. 돈이 있어야 인간이 되고, 돈이 있으면 지식도, 권력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당ㆍ국가의 관료들도 금전만능의 사고에 오염되고 있다. 과거에는 돈과 관련 없이 간부의 사회적 지위는 확고했고, 주민들에게도 존경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돈이 없으면 간부의 위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간부들은 자신의 위신을 유지하기 위해 화폐 권력자들과 결탁하게 되었다. 부를 획득한 신흥자본가에게 스폰을 받는 ‘알쌈’이 되었다. 과거 주민들의 가장 큰 열망 중 하나였던 입당도 돈이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화폐 권력자들이 권력기관에 뇌물을 바치고 자식들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아졌다. 승진 또한 돈이 없으면 어려워졌다. 노동당의 지역 당 책임비서 이하는 돈으로 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승진의 권한이 있는 고위직들은 재력 있는 하위직의 승진 기회를 이용해 화폐적 이익을 얻었다. 시장에서 부를 거머쥔 화폐 권력자들은 돈이 가진 힘으로, 하층계급에서 단박에 권력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겉으로 순종하면서 실제로는 반항하는 ‘일상 생활형의 반항’, ‘민생형 일탈’이 증대하고 있다. 또한 집단주의 원칙보다 개인주의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물론, 공식 이데올로기는 구속력이 약화되었다. 기존 질서는 동요하고 화폐물신주의가 팽배했다. 신념체계의 대혼란이 주민들의 일상을 흔들고 있다. 신념체계의 혼란은 법질서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에도 드러난다. 주민들은 법 집행에 있어서도 경제력의 차이를 느끼고 있다. 결근, 결석, 생활총화 불참 등의 가벼운 일탈 행위도 돈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사안이 중대한 불법 행위도 돈으로 처벌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북한판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팽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화폐물신현상은 수령에 대한 권위를 잠식하고 있는 추세이다. 일상적 삶의 영역은 더욱 상품화되고, 주민들은 나날이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럴수록 돈의 필요는 커지고, 화폐숭배는 더욱 열렬해진 것이다.

Paying Their Respects.jpg
By John Pavelka from Austin, TX, USA - Paying Their Respects, CC BY 2.0, Link



5. 화폐적 관계망에 포획된 주민들

북한은 현재, 계획 경제가 관료적 시장경제로 이행되고 있다. 이것이 체제이행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연구자들에게 팽배해 있다. 그러나 시장의 존재가 자본주의 사회의 지표(indicator)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천 년 전의 고대사회에도 시장은 존재했다. 그렇다고 그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였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시장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시장이 사회에 묻혀있는가, 아니면 시장이 사회를 조직하는가이다. 그런 관점에서 북한을 자본주의식 시장사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민영기 / 동국대학교 외래교수,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