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흑역사의 기원에 관한 시론

     


밀레니얼의 사춘기를 장식한 모든 흑역사(사람들은 이를 '중2병'이라고 부른다)는 하나의 유행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원천은 세상, 즉 당대 한국사회의 문화 자체다. 여자아이들이 교복을 입자마자 화장과 차림새에 관심을 가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애 레이스에 합류하는 근원은 2차 성징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고 자란 미디어의 영향력 하에 있다.


"퍼가요~♡"의 종말

마이홈피는 2019년 9월 1일로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추억들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 합니다. 남은 두 달 간 여러분의 소중한 자료들을 개인저장 공간에 저장해 주십시오. 빛나던 순간들을 꼭 잊지 말고 간직해 주십시오. 영원한 추억의 동반자가 되어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다만, 과거의 어느 날을 떠올릴 때 마이홈피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마이홈피는 여러분과 함께여서 진심으로 기뻤고, 영광이었습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12화 중 포털 사이트 '바로'의 '마이홈피' 서비스 종료 공지)

10월의 어느 날 아침, 외출을 준비하며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싸이월드가 (또) 문을 닫게 생겼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지난 몇 년간 다양한 버전의 "싸이월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를 접했던 터라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전 국민의 '호크룩스[1]'였던 싸이월드는, 이미 서비스 종료 소식이 아니고서는 뉴스가 되지 못한 지 오래였다. 정치인은 본인 부고만 아니면 무슨 기사가 나든 경사라던데, 싸이월드는 경사날 일 없이 부고만 수차례였다. 이제는 아무도 싸이월드가 뭘 하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없어지는 것 빼고는 말이다.

뉴스에서는 미니홈피를 백업하지 못한 옛날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부지런히 백업을 할 것 같았으면 진작 했을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은 망각이라지 않던가. 신이 주신 능력으로 애써 잊고 살았던 과거사와 감성의 해일을 굳이 내 손으로 들추어볼 용기 따위는 없었다. 잊었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대충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는 내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어쩌면 나는 그리고 다른 싸이월드 이용자들은 오히려 이번에도 또 살아남은 싸이월드의 질긴 생명력에 탄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흑역사'로 통칭되는 그것들이 정말 이대로 데이터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어째서인지 아련한 감정이 고개를 내민다. "아무리 그래도 싸이월드가 어떤 싸이월드였는데."

마이홈피 사라진다니까 내 청춘이 사라지는 기분이더라. 내 시대가 끝난 기분.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12화 중에서)

[그림 1] 그러고 보니, 미니홈피 지수에 ‘에로틱’, ‘카르마’는 도대체 왜 있었을까? ⓒ싸이월드

싸이월드적 글쓰기의 이해

누군가 'TMI[2] '를 남발할 때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일기나 쓰고 포도알이나 받아라"라고 조소하는 용도의 관용구가 된, 미니홈피의 '다이어리'는 보통 다이어리가 아니었다. 일기장은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물건인데다 인터넷상에도 일기를 '연재'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가상공간에 존재하면서도 현실세계의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특성상, 이 곳에서 공개적으로 적는 다이어리는 그만의 미묘한 위상을 가졌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의 핵심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척'하는 것이었다. 가장 전통적인 일기 소재 중 하나인 짝사랑을 예로 들어 보자. 시작은 애매하고 헷갈리는 문장들로 감정의 파편을 전시하는 것이다. 짝사랑 상대가 봐 주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때 중요한 건 '네가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한, 어딘지 쿨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의 주인공을 의식하지 않는 척 하는 것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때로는 '애매하고 헷갈려야' 한다는 문법을 잊고 지나치게 솔직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을 너무 적나라하게 들켜 버릴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슬픈 일이지만 그 짝사랑 상대가 내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들어와 그 글을 읽는 일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다이어리를 읽는 실제 독자는 글의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의 친한 친구들뿐이다. 다이어리를 쓰는 작가도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슬프고 처연한 감정은 배가되고 감수성은 무한히 증폭된다. 짝사랑 상대가 알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 '아련함(에서 나오는 특별함)'을 지속적으로 구독해 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작가를 춤추게, 아니 글 쓰게 한다.

그렇게 폭발한 텍스트는 더 이상 일기가 아니게 되기도 한다. 그때부터 다이어리는 웹소설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이제 작가는 문학작품을 집필하는 마음으로 글에 문학적 장치들을 삽입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치명적인 진실이 담긴 문장을 흰색으로 처리해서 드래그해야만 읽을 수 있게 만들면, 혹시라도 문학작품 속 주인공이 읽고서 자기 이야기임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는 불안요소를 희석시킬 수 있다. 이러한 '싸이월드적 글쓰기'는 짝사랑뿐만 아니라 절교한 친구 저격하기와 같이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다.

[그림 2] 싸이월드 다이어리의 문법을 충실히 지킨 텍스트. 추억 속의 미니홈피 형태는 아니지만, 지금도 싸이월드에 접속해 보면 다이어리와 사진첩 등을 볼 수 있다.

다이어리는 내 공간 안에서 나만의 언어로 나만의 서사를 만들고, 이를 전시하고자 하는 욕구에 최적화된 플랫폼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다이어리를 비롯해 싸이월드에서 유통되던 텍스트는 그 작자가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작법이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꽤나 동질적인 정서를 형성했다.

싸이월드는 이 집단적인 감성 과잉 증후군, 통칭 '싸이 감성'에 대한 책임이 거의 없지만, 그 숙주가 되었다는 이유로 '흑역사 생성기'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흑역사'란 무엇인가

마이홈피도 없어지는 마당에 흑역사 들추지 맙시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12화 중에서)  

모기업이었던 SK의 판단 착오로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싸이월드는 스마트폰의 보급 속도와 같은 빠르기로 시대에 버림받았다. 페이스북 시대의 여명이 밝아 오면서, 싸이월드가 대표했던 약간 과잉된 감성 표현은 '오글거림'이라는 낙인이 찍혀 적폐로 취급되었다. 너도나도 싸이월드에 올렸던 글과 사진들은 볼셰비키혁명 이후의 러시아 민속품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통째로 '흑역사'가 된 싸이 감성은 순식간에 청산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흑역사란 '없었던 일로 해 버리고 싶은, 지우고 싶은 과거'를 뜻한다. 흑역사를 가진 사람들은 마치 한바탕 산업혁명이 벌어지고 난 뒤 그 부작용을 수습해야 했던 유럽인들처럼 자신의 근과거를 처리해야 하는 숙명을 느낀다. 한동안 싸이월드는 아무도 모르게 묻어버리고 싶은 과거였다. 하지만 과거 낭만화의 법칙에 따라, 밀레니얼은 자꾸만 싸이월드를 그리워하며 '추억' 폴더에 옮겨 담으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비록 '흑역사'가 잔뜩 담겨 있을지라도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역사이며, 가위질할 수 없는 내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초보운전이란 원래 헤아림의 여지가 있는 것이지 않은가.


마이홈피는 케빈이 없앤 게 아니라 시대에게 버려진 거예요, 미셸.
스칼렛은 정말 마이홈피가 없어져도 괜찮아요? 그 때 우리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얼마나 치열했어요. 얼마나 미친 듯이 일을 했었냐구요. 우리 청춘을 갈아 만든 서비스예요. 대한민국을 흔들었어요. 우리가 그렇게 해냈다구요.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12화 중에서)

[그림 3] 모두가 ㄱ하지만 들추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싸이월드

인터넷, 그리고 인터넷소설

아직 싸이월드가 태어나기 전, 세기말 톱스타 유승준이 외치던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와 함께 초고속 인터넷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2002년에는 가입자 천만을 돌파했으니 거의 모든 가정에 인터넷이 보급된 셈이다. 밀레니얼은 첫 번째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일말의 거부감 없이 정보의 바다를 탐험했고, 곧잘 여기저기에 써먹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인터넷의 본질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그 인터넷 때문에 앞으로 어떤 세계에서 살게 될지 전혀 감이 없었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은 겁이 없는 법이다.

첫 번째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말은, 미처 예상치 못한 인터넷 시대의 부작용마저 가장 먼저 몸으로 부딪혀 겪어내야 했던 세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부작용이 무엇일지 몰랐기 때문에 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정보의 바다에 아무 생각 없이 흩뿌려 놓은 개인사들이 흑역사가 되어 돌아올 것도, 몇 번의 구글링만으로 신상정보가 반쯤 탈탈 털리게 되리라는 것도 꿈에도 몰랐다. 물론 그것을 미리 알았다면 싸이월드에서 그토록 재미나게 놀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라는 개인이 안방에 앉아서 불특정다수에게 노출될 수 있다는 완전히 생소한 경험은 '채팅'으로 대표되는 PC통신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한껏 멋지고 특별한 나를 선보이고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망에서 인터넷 시대의 '관종'이 탄생했다. 아이들은 잊혀질 권리 이전에 드러내고, 알려지고, 연결될 권리를 원했다. 두려움 없이 연락처와 셀카를 공개했고,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불치병에 걸렸다든가 하는 서사를 창작하기도 했다.

이러한 청소년기 욕망의 집합체인 인터넷소설 역시 바로 이 무렵 등장했다. 그 내용은 기존 순정만화나 할리퀸 로맨스의 클리셰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청소년 자신이 집필하는 글답게 트렌디하고 친숙한 필치로 동시대 10대의 판타지를 대변했다. 인터넷소설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 당시 청소년들이 소비하거나 생산한 모든 텍스트가 인터넷소설의 연장이었다.

[그림 4] 인터넷소설에는 뚜렷한 캐릭터와 서사 양식이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출처)

내 이야기가 바람결에 전해진다면...☆★

인터넷소설의 애독자였으나 아직 싸이월드를 갖지 못했던 소녀들에게는 스스로의 서사를 표출하고 가시화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는 당연히 《미스터케이》의 역할이 되었다. 오랫동안 〈내 이야기가 바람결에 전해진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사랑받은 독자 사연 코너가 그 중심에 있었다. 코너의 인기에 힘입어 2003년에는 주제별로 〈하늘 끝에서 흘린 눈물〉, 〈감동의 물결〉, 〈고민이 이만저만〉, 〈러브(사랑해 사랑해)〉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이만큼 확실하게 '텍스트 안'의 존재,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장은 없었다. 사연의 소재는 첫사랑·짝사랑·실연·공개고백 등 연애를 주제로 한 것, 친구들 사이의 우정·다툼·화해,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사연은 실명으로 보내지기도 했지만, 이니셜 등 익명으로 투고되기도 했다. 실명을 밝히기 부끄럽거나 부담스러워서 라기 보다는, '차마 말 못할 내밀함'을 강조하고 싶을 때 익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연은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애틋하다. 비밀스럽고 가슴 아픈 사연이 잡지에 실리고, 여기에 공감하며 함께 아파해 주는 수많은 불특정다수의 또래를 상상하는 일은 꽤나 희열을 동반했을 것이다. 아마도 관심에 대한 소망 탓으로, 작은 이야기를 부풀리거나 없는 이야기를 지어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사연들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그 정도의 깜찍함은 곧 도래할 '싸이 감성'의 예고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아련함에 대하여

국어사전에 따르면 '아련하다'는 '똑똑히 분간하기 힘들게 아렴풋하다'라는 뜻으로, '희미하다', '흐릿하다'의 유의어다. 용례로 '추억, 음악 소리, 향수, 그리움' 등과 함께 쓰이는 것으로 보아, 본래 그 자체로 어떤 정서나 감상을 뜻하기보다는, 그러한 것을 내포한 대상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아련하다'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어떠한 종류의 정서 혹은 감성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스터케이》는 패러디와 유머코드를 대표 이미지로 가졌지만, 이와는 대비되는 아련한 감수성의 콘텐츠가 다량 함유된 매체이기도 했다. 주로 에디터 김그내와 일러스트레이터 조인숙에 의해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글과 일러스트는 비련, 애수의 정서와 쓸쓸함, 그리움, 애달픔과 같은 감성을 담고 있다. 이는 〈내 이야기가 바람결에 전해진다면〉과 같은 사연 코너에서 독자들이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무드에 구체적인 스토리가 덧대어진 읽을거리였다.

[그림 5] (좌) 조인숙의 글과 그림, (우) 김그내의 감성글

뭐라 이름 붙이기 애매한, 사랑을 주제로 한 가슴 아픈 종류의 텍스트가 《미스터케이》에만 유통되었던 것은 아니다.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누가 그런 글들을 적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감성글귀'라는 명칭으로 떠도는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싸이월드가 생기고 나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글귀들을 서로의 미니홈피에서 '퍼가요~♡'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였고, '싸이 감성'의 일부였다.

'새벽감성'이라고도 불리는, 2000년대 특유의 아련함은 거의 공기처럼 존재했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당시 미니홈피 BGM 플레이리스트를 장악했던 음악들도 대부분 아련하거나(프리스타일 'Y', 에픽하이 'Love love love'), 애틋하거나(더크로스 '당신을 위하여', SG워너비 '내 사람'), 애절했다(박효신 '눈의 꽃', Vibe & 장혜진 '그 남자 그 여자').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시월애〉, 〈봄날은 간다〉, 〈번지점프를 하다〉, 〈클래식〉, 그리고 〈국화꽃 향기〉(심지어 OST가 성시경의 '희재'였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이어지는 일련의 영화들이 모두 이맘때 개봉했다. 문화산업까지 장악하고 있었던 이 정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싸이 감성이라고 부르든, 새벽감성이라고 부르든 아련함은 분명 2000년대 전반에 감돌고 있던 대표적인 정서 중 하나였다. 20세기 말의 '쓸쓸함'과는 톤이 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시대정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실제 세상에 미친 영향력이라고는 10대 소녀들을 조금 처연함에 물들게 만든 것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련함의 문화를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으로 스스로를 연출하려고 애썼다.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전방위적이고 본격적인 노력은 '흑역사'라고 불리게 된다.

[그림 6] 2000년대 초반의 아련한 영화들 – 〈국화꽃향기〉, 〈클래식〉, 〈시월애〉

소녀들의 인정투쟁

'키드'의 시간대는 자신에게 축적된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는 어른의 일을 아직 하지 않아도 되는, 혹은 하는 것이 금지된 시간대다.[3]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에서 2000년대 초반은 대중문화의 황금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였다. 애정을 쏟을 만한 아이돌, 볼 만한 TV 프로그램, 들을 만한 라디오까지 10대들을 위해 준비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앞서 이야기했듯, 2000년대 초반은 아직 IMF가 남긴 후유증의 영향 아래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시지 않은 이 후유증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리하게도 말끔하게 잡아내기 어려운, 비가시적인 공기가 되어 분위기로 존속했다. 누구든, 어디든, 뭐든 각박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쩌면 당시 텔레비전 속에서 볼 수 있었던 따뜻하고 희망적인 정서는 그렇지 못한 현실을 대속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어린 밀레니얼은 10대 청소년의 본연에 충실해야 했다. 자아를 만들고, 정체성을 찾아가고, 주체가 되고자 하는 근대적 인간의 욕망을 위해 내·외부에서 투쟁했다. 타자를 만나고, 애정을 탐구하고, 관계 맺기를 배워 나갔다. 그 과정에서 혼자 부딪치는 세상은 호락호락한 법이 없다. 때문에 자아상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주변의 세상을 관찰하고 발견한 상image들을 정체성의 조각들로 받아들인다. 이 미메시스적 충동의 대상들은 최대한 특별하고 희소한 것일수록 좋다. 대신 특수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남들―또래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인간은 사춘기에 진입함과 동시에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인정투쟁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혼자만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모든 또래 친구들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치는 중이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10대의 몸부림은 언제나 보편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 모두가 같은 모양으로 교복 치마를 줄였다 늘렸다 한다든지, 같은 아이돌 취향을 공유한다든지, 거기서 거기인 브랜드의 가방과 운동화를 착용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유행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유행은 누구보다도 청소년 자신의 입장에서 비극이다. 어른들은 생각 없이 이를 비웃거나 한심하게 여기지만 어른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밀레니얼의 사춘기를 장식한 모든 흑역사(사람들은 이를 '중2병'이라고 부른다)는 하나의 유행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원천은 세상, 즉 당대 한국사회의 문화 자체다. 여자아이들이 교복을 입자마자 화장과 차림새에 관심을 가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애 레이스에 합류하는 근원은 2차 성징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고 자란 미디어의 영향력 하에 있다.

청소년은 '어떻게 하면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한다. 〈강호동의 천생연분〉과 〈연애편지〉를 위시한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그리고 순정만화와 인터넷소설에 이르기까지 청소년이 접하는 모든 미디어는 일관된 답을 내놓았다. 연애서사 위주로 편재된 대중문화는 소녀들이 애틋하고 운명적인 연애 안에서만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게 했고 첫사랑은 과업이 되었다. 또래 사이의 대화가 이를 재생산했다. 밀레니얼의 10대 시절을 장악했던 미디어인 《미스터케이》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많이 읽히는 텍스트는 좋든 싫든 그 만큼의 언어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비록 그 선후관계는 닭과 달걀 같은 것이지만 말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글에서 다룬 것이 '흑역사'라는 코드, 그리고 그 근간에 자리하고 있는 '아련함'이라는 정서를 키워드로 시대를 반추하는 하나의 경로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한 가지 해석 안에 가둘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최은별 / 디자인문화연구자  



[1] 판타지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법의 산물.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는 영생을 꿈꾸며 자신의 영혼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사물에 보관하였는데, 이 사물들이 바로 '호크룩스'다. 
[2] 'Too Much Information'의 약자.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과한 정보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3] 안은별, 『IMF키즈의 생애』, 코난북스, 2017,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