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보수주의가 확대 재정을 기피하는 진짜 이유

     

우리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1차 분배를 둘러싸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도한 사회 갈등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노동조합 임금교섭 활동은 임금소득 전반의 1차 분배 개선에 실패했고 앞으로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사회복지 확대를 통한 2차 분배를 좀 더 과감하게 추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 전략이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와 1원 1표의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ies) 원리는 작동원리와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충돌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 논의 대부분은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유시장경제를 걱정하는 관점에서 시작하였다. 즉 1인 1표 민주주의가 1원 1표 자유시장경제를 침해하는 문제다.

제도적 차원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한 것은 시민혁명이 세계사에서 처음 성공한 미국이었다. 우리에겐 미국 독립전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미국에선 미국 시민혁명(American civil revolution)으로도 불린다. 미국 시민혁명이 성공하고 새로운 시민 정부를 세우려고 할 때 조지 워싱턴처럼 대농장주로 자산가였던 당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1인 1표의 다수결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엘리트 기득권, 특히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이런 우려는 1780년대 미국 사회 현실을 보면 충분히 할 만한 거였다. 당시 미국은 자본가계급 1%, 대농장 노예주 3%, 자영농민이 대부분인 구중간계급 60%, 여러 분야에서 사무직과 전문직에 종사하던 신중간계급 1%, 노동계급 5%, 노예계급 30%로 구성되어 있었다.[1] 당시 노예계급은 시민권이 없었으므로 논의에서 제외하면, 자영 농민과 노동자가 전체 시민의 92%였고, 자영농민만 따지면 시민의 86%가 자영 농민이었다. 당시 유럽 기준으로 보면 상당한 규모의 농장 토지를 소유한 자영 농민들은 대부분 앵글로색슨 계 이민자로 종교는 프로테스탄트였다. 이 사람들을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불렀는데, 아일랜드 가톨릭 계 케네디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을 건국하고 미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세력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토크빌은 미국을 여행하면서 미국 시민계급의 가공할 힘을 목격했다. 그냥 시민이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 인종, 문화, 종교, 가치관이 거의 유사한 남성 농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정치적 결정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다수결 독재가 가능하다고 봤다. 실제로 미국 민주주의 역사는 민주주의 다수파가 소수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은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크빌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미국 토착민 대량 학살, 노예제 유지, 상습적인 린치, 호손의 『주홍글씨』에서 볼 수 있는 종교와 남성 권위주의가 결합한 마을 공동체의 인권 유린, 마녀사냥, 성차별, 인종차별 등 그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초기 미국은 투표권의 80% 이상을 가진 앵글로색슨 남성 농민들이 종교, 도덕,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매우 동질적이었고 한 쪽 방향으로 편향된 가치관을 가졌기에 다양한 의제가 올라와도 쉽게 다수결 합의를 볼 수 있는 분위기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동질적 시민계급의 1인 1표 다수결 원리가 1원 1표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마음대로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 시민 정치 제도를 만들면서 동시에 동질적 시민계급의 민주주의 다수결 독재를 견제할 수 있도록 헌법, 사법 제도, 정치 제도 구석구석에 다양한 장치를 만들었다. 이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분리하는 아이디어를 통해서 민주주의가 사유재산권을 마음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헌정주의를 제시하고 국가가 자유시장경제를 침해하는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은 정부론 등 다양한 자유주의(liberterianism)[2] 이념을 만들었다.

어느 나라나 엘리트 기득권 세력은 1인 1표 민주주의 원리를 적정 수준에서 통제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1인 1표 민주주의와 1원 1표 자유시장경제 원리의 충돌을 막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장경제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견제하는 다양한 방식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로버트 달(R. Dahl)은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A Preface to Economic Democracy)』에서 토크빌의 우려가 18세기 미국에선 타당한 면이 있었지만 현대 사회에선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20세 초 미국 산업사회만 해도 시민들이 18세기 미국처럼 동질적이지 않고, 인종, 문화, 종교, 계급, 직업, 경제적 이해관계, 가치관 등에서 대단히 이질적 사회로 변모했다. 현대 사회 시민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가치관에서 이질적이고 복잡성마저 띠고 있어 어떤 의제에 대해서 다수결 합의를 보기 어렵고, 합의를 봐도 계속 유지하기 쉽지 않다. 노동계급은 분열·대립하고 위축되었고 시민도 경제적 이해와 문화적, 정치적 가치관의 혼돈과 충돌로 정당 지지가 수시로 바뀌고 일관성도 약하다.

시민의 1인 1표 다수결이 자유시장경제 기득권 질서를 흔들기는커녕 기득권 세력이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분열된 시민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지대추구 특권을 강화하고 오히려 민주주의 원리를 침해하는 것이 현대 사회라고 달은 보고 있다. 즉, 달은 18세기엔 민주주의가 자유시장경제를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논리가 타당했지만, 시장경제 기득권 세력이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지금 상황에서는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시장경제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대공황을 초래한 20세기 초 미국은 빈곤 문제가 심각했고 노동조합의 힘은 약하고 사회복지라고 할 만 한 것도 없었던, J. P. 모건 같은 금융자본과 록펠러와 포드 같은 대기업가들이 정치와 경제를 주물럭거리던 불평등과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였다. 건국 엘리트들이 우려했던 1인 1표 민주주의 과잉이 아니라 모건과 록펠러 같은 대기업가의 권력 과잉이 더 심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정치는 와스프가 지배했다. 그런데 와스프이면서 미국 사회 최고 상층계급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유대계, 천주교, 유색인 등 비(非)와스프와 진보세력, 노동자, 서민과 남부 백인들(당시 남부 백인들은 링컨의 당인 공화당을 싫어했다)을 정치적 뉴딜 연합으로 단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뉴딜 연합을 통해서 1인 1표 민주주의는 드디어 모건과 록펠러로 상징하는 당시 기득권 질서를 뒤흔들고 불평등한 미국을 중산층 사회로 바꿔버렸다. 인종, 가치관, 경제적 이해관계 등 모든 것이 이질적이고 분열된 사람들을 뉴딜 연합으로 단결시킨 루스벨트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우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같은 정치적 리더십 부재를 한탄하지만, 분열된 시민을 뉴딜개혁이란 정치 연합으로 단결시켜서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연합 이후 비슷한 개혁을 단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평범한 정치로 끝났다. 자산계급과 노동계급,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 더 나아가 노동자 지위도 인정받지 못하는 다양한 특수고용노동자, 글로벌 대기업과 하청중소기업, 첨단 IT산업과 전통 주력산업, 지역 정치 분열, 부동산 소유자와 비소유자, 자영업 고용주와 알바노동자의 이해 상충, 탄핵, 차별금지, 양심적 병역 거부, 북한, 페미니즘, 기후위기, 탈원전 등 수많은 이슈와 가치관에 대해 혼돈과 대립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1인 1표 다수결 연합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골수 공화당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은 뉴딜 개혁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염려했던 사건이 벌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즉 뉴딜은 1인 1표 민주주의 원리가 1원 1표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침해하는 역사적 오류라는 것이다. 나는 공개기업 주주가치경영 필요성에 관한 마이클 젠센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논문을 읽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문장에 놀란 적이 있다.[3] 경제·경영 학술지에서는 보기 힘든 자유주의자의 강력한 정치적 발언이었는데, 1980년대 금융자유화 정책은 미국 20세기 역사의 최대 오점인 뉴딜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란 주장이다. 젠센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머의 제자로 주주가치경영 이론에 크게 기여한 학자다. 뉴딜을 20세기 미국 역사 최대 오류로 보는 건 젠센만의 개인 생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자들의 보편적 입장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뉴딜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강력한 시장규율(market discipline)을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차원에서 제도화해야 한다고 봤고, 금융세계화를 확산시키고 페이고(PAYGO) 재정준칙 법을 강화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국민국가가 정책 자율성을 갖게 되면 민주주의 포퓰리즘이 재정건전성과 물가안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았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이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민주 선거로 선출될 거라고 거의 믿지 않는다. 경제는 정치 논리가 아니라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말도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 즉 경제정책을 민주주의에 맡기면 단기적 시계(time horizon)의 정치인들, 포퓰리즘과 정치 부패에 의해 왜곡되고 오염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정책은 소란스러운 민주주의 보다 경제전문가라는 냉철한 후견인(guardian)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학자들 중에는 금융통화위원회가 통화정책을 결정하듯이 재정정책도 재정정책위원회를 만들어 경제전문가가 결정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한국에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통제를 받지 않는 플라톤의 철인 국가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을 누가 장담할 수 있나? 경제전문가가 결정한 정책이 실패한 경우 정책 실패의 모든 책임은 결국 민주주의 정치와 일반 시민이 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나갈 길은 전문가나 철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과 대중들의 의사소통 과정인 민주 선거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사회적 합의로 결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며 사회적 비용이 드는 제도이지만, 공동체를 관리하는 최선의 제도란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사는 한 시장규율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회가 시장 규율을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 것인지 민주적 토론으로 결정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의 부작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민주주의 정치가 신자유주의 부작용을 통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실적은 신통치 않다. 신자유주의 이념의 권위는 무너졌지만 구체제는 여전하다.

재정 보수주의를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너무 쉽게 보는 거다. 재정 보수주의는 자유시장경제를 지키려는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재정학 버전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중요 논리가 경제 문제는 경제 원리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정책은 아무리 경제 논리로 풀려고 해도 그 결정 과정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재정정책은 정치적 오염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작은 정부에 필요한 수준으로 가급적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난 재정 보수주의의 이런 신념이 먼저 있었고, 국채 발행으로 확장 재정정책을 쓰니 이자율 상승으로 민간 투자가 감소한다는 재정정책 반대 논거를 나중에 찾아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화주의자들과 재정 보수주의자들은 1970~80년대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 증거를 찾아내면서 케인스주의 확대 재정정책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케인스주의 재정정책이 다시 살아났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으로 기준금리를 거의 0% 수준으로 내리고 양적 완화정책까지 썼는데도 경제 침체가 별로 개선되지 않아 대규모 적자재정도 감수하는 확장재정정책을 폈다. 제로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의 결과 금융자산 가격 상승으로 금융회사와 금융자산 부자들이 주로 이익을 보고 실물경제 활성화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반면 실업자와 빈곤계층, 구조조정 기업 등 정책 대상을 명확히 한 재정정책은 어려움에 처한 서민을 돕고 실물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컸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재정정책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통화정책은 경제에 미치는 전달과정이 은행을 매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치적 오염이 최소화되고 시장 중립적 경기조절 효과가 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통화정책은 시장 중립적인 게 아니라 금융자산 소유 계층과 금융회사의 이익에 편향된 정책이란 게 드러났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영향을 받는 재정정책이 오히려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을 실질적으로 돕고 실물경제도 활성화하는 효과가 더 컸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재정정책에 대한 정치적 오염 주장도 약화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재정정책이 정치에 오염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1인 1표 민주주의 원리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정치과정에서 결정되는 재정정책은 서민이 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불황과 실업 문제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재정정책은 당연히 불평등과 빈곤, 기후위기 등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1인 1표 민주주의 영향을 받는 재정 확대는 사회복지 확대, 조세의 누진성 강화, 불평등 축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표 1>은 조세와 기초 연금 같은 재정 이전지출에 의해서 지니계수와 빈곤율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여준다. 한국은 소득 불평등과 빈곤율을 개선하는 조세 재정의 재분배 효과가 OECD 국가에 비해서 훨씬 작다. <표 1>에서 한국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이용한 것인데, 가계동향조사는 고소득층 소득 파악에 한계가 있어 지니계수 값이 작게 나온다. 가계금융복지 조사 통계에 의하면 시장소득 지니계수 값이 0.402로 좀 더 높다.[4]

<표 1> 조세·이전지출의 소득불평등 및 빈곤율 개선 효과(2015년)
자료: OECD.Stat(http://stats.oecd.org).

[그림 1]도 2000년대 중반 재정정책의 재분배 효과를 보여주는데, 역시 한국의 재정 재분배 효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현저히 낮았다. 한국의 재정정책 재분배 효과가 다른 나라보다 이렇게 낮은 주요 이유는 GDP 대비 재정과 조세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작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은 각각 19.4%와 26.2%로 OECD 국가 평균 24.9%와 34.0%에 비해 훨씬 더 낮을 뿐만 아니라 OECD 국가 중 멕시코, 칠레, 아일랜드, 터키, 미국에 이어 6번째로 낮다. 2016년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총지출 비율은 32.3%로 OECD 국가 평균 43.0%에 비해 크게 낮다.[5] <표 2>를 보면 한국의 재정 지출이 작은 주된 이유가 사회보호, 즉 사회복지 지출이 작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재정 지출을 늘린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복지 지출을 우선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 동안 사회복지 지출의 증가율이 다른 분야보다 높았다. [그림 1]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등 복지 국가들의 경우 조세보다 이전지출의 재분배 효과가 더 크다. 즉, 굳이 직접세 비중을 높이고 조세의 누진성을 강화하지 않아도 사회복지 지출을 증가시키면 재분배 효과는 자연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그림 1] 재정정책의 재분배 효과(2000년대 중반)
출처: 강병구·조영철(2019)에서 재인용.

<표 2> 일반정부의 분야별 재정 지출 구성비(2015년)
자료: OECD.Stat(http://stats.oecd.org).

따라서 사회복지 확대 반대는 재정을 통한 재분배에 반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복지 재정 확대를 통한 재분배도 반대하고 최저임금 인상 같은 1차 분배도 반대한다면 불평등 개선을 원치 않는 것이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이다. 아무리 재정 보수주의자라고 해도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면 안 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하는 말이 저출산 고령화로 장기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기 때문에 재정 지출을 함부로 증가시켜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편다. 장기 재정 건전성 문제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으므로 넘어간다.

재정 보수주의자들은 불황에 적극 대응하고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완화한다는 명분으로 재정 확대가 이루어지면 민주주의에 오염된 정책으로 포퓰리즘과 비효율적 큰 정부, 사회복지의 도덕적 해이가 확산되고 무엇보다도 조세 증가로 기득권 세력의 사유재산권이 침해되고 고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다. 따라서 이들은 가급적 통화정책으로 경기에 대응하고, 사회복지 확대는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 최소 수준으로 해 효율적인 작은 정부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장하성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 의 핵심 내용은 한국의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의 주 원인이 임금소득 불평등이며, 임금소득 불평등은 대기업 정규직과 그 외 근로자 간 격차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이 판단은 자산 불평등의 중요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 글의 초점이 아니므로 이에 대해서도 넘어간다.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안은 최저임금 인상처럼 시장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1차 분배 방식이 있고, 재정을 통한 재분배인 2차 분배 방식이 있다. 장하성은 재정을 통한 2차 분배는 한국의 경우 낮은 수준의 조세 재정을 증가시켜야 효과를 낼 수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1차 분배 전략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 복지선진국을 보면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한국보다 더 높은 데 반해 조세 재정의 재분배를 거친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우리보다 더 낮다. 이것은 조세 재정을 통한 2차 분배가 소득분배를 개선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과감하게 치고 나간 것 이상으로 사회복지를 과감하게 확대해 재정을 통한 재분배 전략도 강력하게 펴는 정책을 썼어야 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 빈곤 문제가 급격하게 악화하는 상황에서는 최저임금보다 사회복지 재정지출 확대 재분배 전략이 더 강력한 효과를 냈을 거다.

스웨덴, 프랑스 같은 복지국가의 경우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상당히 높은데 2차 분배 후 지니계수가 매우 낮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조세 재정의 재분배 기능이 강력한 복지국가에서는 시장소득 불평등에 대해 그만큼 덜 민감하게 되고 시장소득 분배 갈등도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 복지국가 역사를 보면 복지국가가 완성되기 전엔 렌-마이드너 모델을 통해서 시장임금 불평등을 줄이려는 중앙교섭, 연대임금 정책을 강력하게 폈다. 즉 1950~60년대 스웨덴 사민주의 세력은 1차 분배에 집중했다. 그러나 복지국가를 완성한 후 중앙교섭과 연대임금 정책은 점점 약화되다가 결국 붕괴했고[6], 학력 간 임금격차, 직종 간 임금격차가 급속히 증가하며 시장소득 불평등이 매우 높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스웨덴은 여전히 2차 분배를 거친 다음 가처분국민소득 지니계수를 보면 소득분배가 매우 평등한 나라다.


난 우리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1차 분배를 둘러싸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도한 사회 갈등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노동조합 임금교섭 활동은 임금소득 전반의 1차 분배 개선에 실패했고 앞으로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사회복지 확대를 통한 2차 분배를 좀 더 과감하게 추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 전략이다.

그러나 사회복지를 과감하게 확대하려면 단기적으로는 국채 발행으로 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증세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결국 증세란 정치적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국채 발행을 통한 적자재정을 통해 국민들이 사회복지 수혜를 실감하게 만들고 증세 필요성에 대한 국민 동의를 확보한 다음 증세에 기반을 둔 본격적 사회복지 확대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선 복지 확대, 후 증세 전략은 조원희·정승일이 오래 전 대안연대회의를 통해서 주장한 전략이었다. 당시 나는 국회를 통과할 수 없는 비현실적 전략이라면서 증세와 복지 확대는 동시에 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선 복지 후 증세 전략은 다시 평가받아야 할 훌륭한 전략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저물가가 지속하면서 재정정책을 둘러싼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선 복지 후 증세 전략은 이제 선택 가능한 현실 전략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양적 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본원통화 증가가 통화량 증가와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적 완화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다면 한국은행이 국채를 직접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법 제75조에 의해 한국은행은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있으며, 99조에 따라 결산상 순이익금의 30%을 적립하고 나머지는 세입(歲入)으로 정부에 납부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 시대다. 한국은행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 대한 책무를 철저히 하고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서 한국은행법이 허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금기시 하고 있는 국채 직접 매입 양적 완화 정책도 이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다양한 금기에 대해서 그 타당성을 토론할 때가 되었다.

조영철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 새뮤얼 보울스 외, 『자본주의 이해하기』, 2005, 후마니타스. 
[2] 자유지상주의라고도 한다. 
[3] M. Jensen, “The Eclipse of the Public Corporation”. Harvard Business Review Sep.-Oct., 1989. 
[4] https://news.joins.com/article/23384839 
[5] 강병구·조영철(2019)
[6] 물론 중앙교섭과 연대임금정책이 무너지는 것은 노사간, 노동조합 간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진행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영철(2007)을 참조.

참고문헌
강병구·조영철, 『재정운용의 평가와 과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 2019.
조영철,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 후마니타스, 2007.
S. Bowles, R. Edwards and F. Roosbelt, Understanding Capitalism, 2005, 『자본주의 이해하기』, 최정규, 최민식, 이강국 역, 후마니타스, 2009.
M. Jensen, “The Eclipse of the Public Corporation”. Harvard Business Review Sep.-Oct.,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