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미스터케이의 소녀들

     

《미스터케이》는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활용하는 방식, 그리고 앞서 다루었던 패러디와 굿즈화 등 독특한 시각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 꽤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또한 그 소녀 캐릭터들에게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을 여럿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스터케이》가 모든 측면에서 진일보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과거의 유산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조응하는 만큼 시대적 한계도 지니고 있었다.

콩콩이, 발렌, 코딱지, 소다미

《미스터케이》의 소녀 캐릭터들은 다양한 외모와 성격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캐릭터를 가장 중요한 자본으로 하는 회사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마도 "이 중에 하나쯤은 네 취향이 있겠지" 같은 심산이었을 것이다.

나는 청순가련한 외모와 '반전 성격'을 가진 캐릭터계의 이영애, 발렌을 좋아했다. 무조건 예쁘고 '여성스러운' 외향을 가진 것이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친구는 콩콩이를 좋아했는데, 자신과 이마가 닮았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이렇듯 소녀 캐릭터는 이상적 자아 혹은 자아의 투영으로 소녀들에게 동일시의 대상이 된다.

특정 시대의 특정 세대 아이들에게 자주 노출되는 소녀상 혹은 여성상은 자연스럽게 미메시스를 촉발하고 자아상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은 주로 텍스트나 영상매체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캐릭터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또래의 외모로 표현되는 캐릭터의 성격과 서사 같은 특성들은 소구방법이면서 동시에 당대 소녀들의 정신세계에 자리한 여성상의 원본이기도 하다. 디즈니에서 어떤 옷을 입은 어떤 성격의 공주 캐릭터를 제작하는가를 놓고 수많은 비평과 논문들이 생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스터케이》에 빤쯔(강아지), 핑스터(햄스터), 포타토(감자) 등 비-인간형 캐릭터들도 수십 가지가 있었지만, 여기에서 소녀 캐릭터를 집중으로 다루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법 소녀를 넘어서

밀레니얼이 보고 자란 (특히 일본 발)만화·애니메이션에서 여성 청소년 캐릭터가 표현되는 관습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주인공이 아닌 경우다. 남성 캐릭터와 한 쌍으로, 혹은 남성 캐릭터의 상대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가 집단에서 홍일점일 경우 그의 역할은 여성 자체이며, 클리셰적 여성성 수행을 위해 거기에 존재한다.

둘째는 여러 명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비슷비슷하게 예쁜 얼굴과 천편일률적인 체형에 헤어스타일과 의상 색깔만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성격의 견본이지만, 크게 보면 힘을 합쳐 싸우게 될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분리된, 한 몸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개의 자아multiple self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미소녀 전대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여성 단독 주연의 경우다. 이들은 주로 말괄량이에, 덜렁대는 성격을 가진 미성숙한 사춘기 소녀다. 심성만은 착하고 마음이 따뜻한 그는 어느 날 갑작스레 부여받은 능력으로 인해 소명 의식을 가지게 되고, 내면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용기를 끌어 모아 악에 맞서 싸우고 세상을 치유한다.

소년들은 대부분 자아실현 혹은 자기극복을 위해 동료를 모아 우정의 모험을 떠나지만, 마법 소녀들은 아가페적 미션과 대의명분을 위해 힘을 발휘한다. 그게 나쁘다고는 단정할 수는 없으나, 소녀들에게 주로 희생과 헌신의 미덕이 부과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팀으로 움직이든 개인으로 움직이든, 마법 소녀는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개인 주체라 하기 어렵다. 그래도 이 세계에서 무언가 중요하고 특별한 무적의 존재가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마법 소녀의 세계가 동경의 대상이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마법 소녀들은 캐릭터부터 세계관까지 지나치게 현실과 괴리된 판타지였고, 아동기를 넘어 청소년기까지 소녀들의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법 소녀들의 '세라복'은 로망의 대상일 수 있지만 정말로 입게 되는 순간 교복은 '탈마법화'[1]된다. 사춘기의 역경들은 지구를 구하는 것 따위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마법을 필요로 한다.

《미스터케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그림체까지도) 개별적이며 독립적인 이미지를 가졌던 캐릭터들은 소녀문화의 맥락 안에서 시사점을 가진다. 대부분이 전형적으로 예쁘기보다는 개성이 뚜렷한 생김새와 그에 어울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역사적 사명이나 거대한 모험의 대서사시 대신 지극히 일상적인 맥락 안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장래 희망'이기보다는 '지금 여기의 나'와 닮아 있었고, 이에 자아를 투영하고 마스코트처럼 애정을 주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미스터케이의 소녀들과 소녀 캐릭터들 사이에는 친근함과 불완전함을 매개로 한 유대감이 싹텄다.


미스터케이의 슈퍼스타

앞서 《미스터케이》의 소사를 다루면서 이야기했듯, 《미스터케이》는 문구업계의 절대 강자인 모닝글로리와 바른손이 부도를 내던 IMF 체제 하에서 후발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험난한 불경기에 10대들의 지갑을 열 수 있었던 무기가 바로 차별화된 캐릭터와 패러디였다는 것 또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미스터케이》는 애초에 캐릭터 문구와 팬시제품 판매를 촉진하고자, 캐릭터들을 알리고 각인시키기 위해 무가지로 탄생한 '잡지 편선지'였다. 제대로 제본된 유료 잡지로 자리를 잡고, '잡지' 부분의 기능과 분량이 커지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미스터케이》는 마케팅 창구라는 본연의 기능을 놓지 않았다. 《미스터케이》가 보유한 수십 종의 캐릭터들은 편선지와 쪽 만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에 될 수 있는 한 많이, 공격적으로 등장했다. 이는 각 캐릭터가 가진 디테일한 성격과 서사 설정에 맞추어 이루어졌기 때문에, 피로감보다는 친밀감, 말하자면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데 공헌했다. 문구업계에서 생산된 수많은 캐릭터들 중에서 《미스터케이》의 캐릭터들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데에는 캐릭터에 부여된 고유한 '인격' 덕이 컸을 것이다.

새로운 캐릭터가 데뷔하거나, 캐릭터의 이름이나 설정이 바뀌는 일은 《미스터케이》 안에서 매우 중요한 뉴스로 취급되었고, 독자들은 매달 발표되는 캐릭터 인기투표 순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캐릭터 간의 표지모델 경쟁도 제법 치열했다. 《미스터케이》의 앞면 표지가 캐릭터로, 뒷면 표지가 아이돌 화보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미스터케이》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소속사가 스타를 관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캐릭터의 인기는 연예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발굴하고 키워줘야 한다. 연예인을 키우는 곳이 SM엔터테인먼트라면 캐릭터를 키우는 곳은 미스터케이다.[2]

창간부터 함께한 '콩콩이'를 포함해 '코딱지', '소다미', '발렌', '돌클럽', '빤쯔' 등 《미스터케이》의 캐릭터들은 부도로 인한 진통을 겪기 전인 2003년까지 《미스터케이》의 슈퍼스타이자 얼굴로 활약했다. 2004년 4월, 3개월의 부재를 거쳐 《월드미스터케이》라는 제호로 돌아온 뒤에는 《우주선》[3]의 캐릭터들과 '한 가족이 되었다'고 선언하기는 했으나, 기존의 캐릭터들은 새로운 인형 캐릭터 '단추'에게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어른들의 사정'은 알 수 없으나, 폐간과 복간을 거치면서 캐릭터 사용을 두고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했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의 성원으로 복간된 《미스터케이》였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비롯해 어딘지 달라진 잡지 분위기는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듯하다. 2004년 8월, 결국에는 잡지와 편선지 파트를 분권하는 개편을 통해 잡지 표지가 연예인으로 교체되었고, 대부분의 지면에서도 캐릭터가 제외되었다. 창간 6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 잡지, 그리고 10대 소녀

《미스터케이》가 10대 청소년, 특히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잡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 학생, 그리고 '여학생'에 대한 시대의 시선이 변화함에 따라 잡지는 그 내용과 논조를 달리 했기 때문에, 《미스터케이》 또한 2000년대라는 맥락 안에서 기존의 '10대 소녀' 잡지와는 다른 고유성을 가진다.

지금은 10대가 '학생'으로 무감하게 통칭되지만, 언제나 '학생'이 10대의 동의어인 것은 아니었다. 해방 직후 의무교육 실시 계획에 따라 초등학교 진학률은 급격하게 올라갔지만,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학교 진학률이 40%에 미치지 못했다. 나이는 10대지만 학교 대신 일터에 나가는 청소년이 적지 않았던 시대에 학생은 소수의 식자층이었다.

나윤경(2008)에 따르면, 이에 60~70년대에 발행되던 《여학생》, 《학원》과 같은 잡지의 기성세대 지식인 필진들은 학생들에게 그에 걸맞은 국가적 사명감을 심어주려 애썼다. 학생들 역시 기고 글을 통해 서로를 계도하고 계몽하고자 했다. 청소년에게 건전함을 전제로 연애가 인정된 것은 70년대부터였다. 60년대의 여성 청소년이 국가 재건 기획에 포함된 군사화의 대상이었다면, 70년대에는 미래의 '어머니'라는 뚜렷한 역할을 부여 받은 예비 성인으로 취급되어 본격적인 성별화가 이루어졌다.[4]

이성 교제에 대한 담론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학생들은 그로 인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연애 가능한 여성 주체는 곧 그 사실 때문에 비난 받기 시작한다. 70년대는 여학생에 대한 비난이 증폭되며, 따라서 여성에 대한 '길들이기'식 담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시기였다.[5]

연애에서뿐만 아니라, 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여학생들은 소비문화에 있어서도 비판과 부추김을 동시에 받았다. 70년대의 기고 글에서는 주로 외래문화나 사치품 소비, 미니스커트 차림 등에 대한 지적들을 찾아볼 수 있는가 하면, 그에 해당하는 상품들의 광고 또한 같은 잡지 안에 실리는 식이다.

80년대에 들어서는 모두가 아는 그 이유로, 대부분의 대중잡지들이 MSG를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여학생》을 비롯해 《하이틴》과 같은 10대 여성 청소년 대상의 잡지들에서도 오락성과 가십성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하이틴》의 슬로건은 "우리는 젊다, 가슴은 뜨겁다, 미래는 아름답다!"였고, 《여학생》은 "아름다운 세대의 아름다운 잡지"를 표방했다. 《여고시대》, 《소녀시대》, 《주니어》와 같은 잡지들에서도 대부분 스타와 연예계 뉴스, 패션, 미용 및 체형 관리 등이 내용의 주를 이루었다.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의 변화는 우민화 정책의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전체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5년에는 45만 명이었던 고등학교 학생 수가 1985년에는 200만 명을 웃돌았다. 그러는 동안 학생들은 국가적으로 막중한 임무를 지닌 예비 지식계층에서 점차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로 여겨지게 되었고, 본격적인 소비자 군이자 마케팅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90년대에는 대학진학률이 50%를 넘어 계속해서 상승했고, 인문계 고등학교 재학생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학교라는 울타리와 완전히 동기화된 보호의 대상이 되었고, '공부' 외의 모든 사회적 책무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청소년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은 청소년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제도와 사회 안에서 청소년을 성인과 분리, 보호 혹은 통제하는 문화가 정착할수록 청소년들 스스로도 기존과는 다른 청소년 의식을 갖게 된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규범으로 존재하고, 다른 형식으로 생활하고, 다른 문화를 소비하면서 눈에 보이는 '세대 차이'를 벌려가는 것이다.

X세대의 탄생은 이러한 환경 변화의 영향 하에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를 가장 자기반영적으로 스케치한 영화 〈벌새〉와 가장 낭만적으로 재현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사이의 간극. 90년대 10대 소녀들의 자화상은 제각각 그 사이 어딘가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미스터케이》의 답습

2000년대의 밀레니얼은 이러한 흐름 안에서 청소년 소비문화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연스럽게 체화한 상태로 청소년이 되었다. 이때 등장한 《미스터케이》는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기존의 잡지들과는 태생도, 형식도, 생김새도 딴판이었다.

하지만 이 '10대 소녀들의 정보 욕구를 채워주는 정보지'[6]의 '정보' 부분은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80년대, 90년대의 잡지들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그 적자라고 보아도 무방한 정도다. 우선 아이돌과 하이틴 스타들의 근황과 취재기사, 대중문화 관련 소식이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했다. 또한 '자기관리'라는 명목으로 피부관리, 머릿결 관리, 체형관리 등 각종 뷰티와 이너뷰티 팁이 실렸고, 패션 기사와 레시피, DIY 콘텐츠 등도 고정적으로 게재되었다. 그전에 없었던 것이라면 '캠사진(셀카)' 잘 찍는 법이나 포토샵 튜토리얼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위에서 다룬 시대변화를 거치며 10대의 연애는 그 존재의 인정을 넘어 주류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었고, 《미스터케이》는 연애서사로 점철된 미디어를 확대재생산하는 '정상 연애 이데올로기'의 첨병이기도 했다. 이는 전술한 것처럼 그 시대 특유의 언어 감성―아련함―을 유포하는 형태로도 나타났지만, 각종 '정보'의 형식으로 공급되기도 했다. 《미스터케이》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등 '○○데이' 철이 되면 그에 맞는 사랑고백, 데이트, 심리테스트,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는 팁, 심지어는 별자리와 혈액형 같은 아이템까지 동원해 연애 카운슬러를 자처했다.

지금 보면 허술하고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텍스트를 당시 소녀들이 얼마큼 신뢰했는지는 모르겠다. 연애 상대의 마음을 추론하고, 그 마음에 들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이 콘텐츠들은 정말로 정보성이 강하기보다는 여러모로 마술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기야 사람의 마음을 관측하는 데는 천문학보다는 점성술이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명과 암, 공과 과

10대 소녀들이 성장 과정에서 외모와 연애, '여성스러운' 것으로 분류되는 취미와 취향에 관심을 두게끔 사회화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상업 잡지 특성상 수요에 맞는 콘텐츠를 공급하기 마련이고, 이를 《미스터케이》만의 유다른 특성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어느 정도 지배력을 행사한 미디어의 위치에서, 외모지상주의와 성역할 고정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고 보급하는 데 일조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어휘 선택이나 본문 편집에 있어서도 좀 더 사려 깊은 심의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들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부족의 이유를 태만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 이유를 판권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경이로운 판매 부수를 자랑한 잡지치고 편집부의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각각 3~4명 남짓의 디자이너와 에디터들이 매월 300쪽 내외의 지면 구성을 모두 책임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형식만큼 내용까지 혁명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김성수 편집장도 편집자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듯, 교정교열과 같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자주 실수가 발견되는 것도 같은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미스터케이》는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활용하는 방식, 그리고 앞서 다루었던 패러디와 굿즈화 등 독특한 시각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 꽤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도들을 보여준다. 또한 그 소녀 캐릭터들에게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을 여럿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스터케이》가 모든 측면에서 진일보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과거의 유산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조응하는 만큼 시대적 한계도 지니고 있었다.

《미스터케이》는 명과 암, 공과 실, 그리고 '전위와 후위'[7]를 함께 내재한 잡지였다. 그중 한 쪽만을 내세워 지나치게 신화화하는 것도, 현재적 관점에서 비난하는 것도 온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의 잣대로만 평가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곧 지금을 읽는 참고문헌이자, 내일을 보다 수평적인 운동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자료가 될 수 있다.[8]

최은별 / 디자인문화연구자  




[1]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개념에서 차용하기는 했지만, 의미는 무관하다. 
[2] 매일경제, "미스터케이 문구, 캐릭터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 2001.10.24. 
[3] 《미스터케이》 편집부가 2003년 12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제작한 잡지로, 발행기간이 《미스터케이》와 앞뒤로 한두 달씩 겹친다. 《우주선》에서는 《미스터케이》와 다른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4] 나윤경. (2008). 60~70년대 개발국가 시대의 학생잡지를 통해서 본 10대 여학생 주체형성과 관련한 담론분석.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56. 323-374
[5] Ibid, p.347 
[6] 조선일보, "10대 소녀 '정보지' 인기폭발", 2001.7.22. 
[7] 전가경, "전위(avant-garde)와 후위(arriere-garde)의 교차: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잡지 〈샘이 깊은 물〉의 포토/텍스트(photo/text)", 2019 서울사진축제 《오픈 유어 스토리지: 역사, 순환, 담론》 프로그램 〈리서치쇼〉 리서치테이블 강연, 2019.11.9 
[8] 전가경. (2019). 근·미래를 위한 과거 새롭게 읽기: 1980년대 잡지 〈샘이깊은물〉. 『월간대구문화』 Vol.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