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는 개흘레꾼이었다” - 아버지와 너무 쉽게 화해한 그들

     


아비는 개흘레꾼이었다. 오늘도 밤늦도록 개가 짖었다.

고(故) 김소진 작가의 소설 「개흘레꾼」은 이렇게 끝난다. 형식은 소설이지만, 내용은 1982년에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겪었던 작가의 자기 고백에 가깝다. 소설에서 주인공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여성은 아버지가 해방공간의 좌익 활동가였다. 그 여성과 결혼한 선배는 아버지가 부자였다. 출판사 편집자인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한 평론가의 글을 인용한다.

일제 강점기의 ‘애비는 종이었다’의 명제가 그러하였고, 해방공간에서부터 팔십 년대 전 기간을 은밀히 울렸던 ‘아비는 남로당이었다’의 명제가 소설의 혼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그리고 독백을 덧붙인다.

나의 아비는 숙명의 종도, 그리고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남로당이었다고 외칠 만한 위치에 있지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또 다른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아비는 군바리였다’거나 ‘아비는 악덕 자본가였다’고 외칠 처지는 더욱 아닌 데 나의 절망은 깃들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는 테제도 그렇다고 안티테제도 아니었다. 그저 하릴없이 암내 난 개 목에 낡아빠진 개 줄을 걸고 다니며 상대 수캐를 고르고 한적한 돌산 같은 데로 올라가 흘레를 붙여주는 일을 보람차게 수행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국가는 산적’이라는 부자 아버지

누군가는 아버지가 남로당이었다. 그들에게 아버지는 아예 없는 존재, 혹은 먼발치에서 따라야 할 대상이었다. 다른 누군가는 아버지가 악덕 자본가였다. 젊은 그들에게 아버지란 싸워야 할 대상이었다.

그의 일생은 세금과의 투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익덕이라는 인간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단어를 굳이 찾는다면 그것은 아마 ‘무자료’일 것이었다. 그는 영수증이나 회계장부 같은 것은 믿지 않았다. 암호문 같은 글자와 숫자들이 적혀 있는 대학노트가 장부를 대신했고, 평생을 쌓아온 알음알음의 인맥이 곧 영수증이었다.

이 연재 앞의 글에서 인용했던 소설 『빛의 제국』의 일부다. 주인공의 아내 장마리의 아버지인 장익덕에 대한 묘사다. 장익덕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으나 광주로 낙향하여 가업인 주류도매업을 물려받은” 사람이다. 그는 탈세를 정의로 여겼다.

그가 사는 세계는 영수증을 잃어버렸다고 이미 낸 세금을 또 내야 한다거나 장부에 안 적었다고 대금을 떼먹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입증할 수 없다고 받아야 할 돈을 받은 셈 치는 곳도 아니었다. 칼과 얼굴이 근대적 계약관계를 대신하는 곳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구석도 있었다

‘국가는 산적 같은 거여. 안 만날수록 좋아.’
 
그는 교통위반을 단속하는 경찰에게 만 원짜리 몇 장을 찔러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소설 속 장익덕은, 물론 작가가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작가가 보고 듣고 겪은 사연들은 인물 안에 녹아 있다고 봐야 한다. 『빛의 제국』 작가 김영하 역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김소진과 마찬가지로, 학생운동의 이른바 ‘메이저 캠’이었다.

작가가 대학에 다닌 1980년대는 대학 정원이 크게 늘어난 시기였다. 1970년대보다 다양한 계층에서 대학생이 나왔다. 어쩌면, 작가가 관찰한 부잣집 대학생의 한 유형이 장익덕의 딸 장마리일 수도 있겠다. 진짜 큰 부자들, 예컨대 재벌가 자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만나기 힘들다. 망국과 식민통치, 전쟁을 겪은 이 나라에선 대대로 부와 권력을 물려받은 전통 귀족 유형은 거의 씨가 말랐다.

1980년대의 대학생이 쉽게 만날 수 있는 부자라면, 전통에서 우러난 품위 따위는 없는 졸부 유형이 더 많았을 것이다. 소설 속 장익덕에 대한 묘사는 그래서 아주 현실적이다. 국가의 존속과 가문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전통 귀족도 아니고, 국가에게 밉보이면 안 되는 재벌도 아니므로, 장익덕 유형의 부자에게 국가란 그저 길 가다 만나는 ‘산적’ 같은 존재다. 긴 시야를 갖고 결탁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안 만날수록 좋은 존재다.

1980년 광주항쟁을 다뤄서 화제가 됐던 드라마 <모래시계>에도 대학생과 부자 아버지가 나온다. 이 드라마에서도 부자 아버지는 직업이 카지노 업자다. 『빛의 제국』 속 장익덕처럼 국가를 안 만날수록 좋은 직업이다.

소설과 드라마가 1980년대 부잣집 대학생의 아버지를 유독 졸부로 묘사한 것은 한편으론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1980년대라고 해 봤자, 해방 이후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뿌리 깊은 부자가 흔치 않다. 부자는 곧 졸부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대중문화 창작자들의 이런 선택이 꼭 이처럼 사회과학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정말 아버지를 배반했던 걸까

다시 소설 「개흘레꾼」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졸업 뒤 명숙과 결혼까지 한 서클 선배 석주 형의 경우는 어떤가. 난 처음에 석주 형네 집에 갔을 때 그렇게 잘사는 집구석에서 왜 운동을 하는지 의아스러워질 정도였다. 그러나 석주 형은 아버지가 마련해 준 기득권의 토양을 거부하고 나섰다. 형이 머릿속에 그리는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자본가적 잉여가치를 취하는 한 아버지는 극복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형의 논리 앞에 나는 얼마나 기가 죽었었던가. 그때 석주 형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안티테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게 아버지란 존재는 이도 저도 아닌 개흘레꾼에 불과했다. 그러니 내가 절망하지 않고 어찌 배길 수 있었을까.

입시 경쟁에 뛰어들면서, 처음부터 전국 수석을 목표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는 나보다 등수가 조금 앞선 친구를 넘어서는 게 목표다. 군사독재 혹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섰던 이들 역시 많은 경우는 첫 번째 싸움 상대는 제 아버지였다. 그러니까 졸부 아버지를 둔 자식이 독재와 자본주의에 맞서는 길을 가도록 하는 설정은 작가에게 손쉬운 선택이다. 아버지가 기품 있는 보수주의자라면, 자식이 운동권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길어져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군사정부에 굽신거리는 졸부라면, 자식이 과격한 반체제 성향을 띠게 된 이유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작가에게 편한 설정이라고 해서, 꼭 현실과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 실제로 부잣집 청년들이 아버지를 배반한 사례는 흔했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최초로 번역했다고 알려졌고, 옛 학생운동권 정파였던 제헌의회 그룹(CA)에서 활동했던 박성현 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버지가 온갖 분규에 휘말린 사학 이사장이면서 재벌 회장이었다.

‘악덕 자본가’, ‘졸부’ 등으로 국한하지 않으면, 소설 <개흘레꾼>에 나오는 ‘석주 형’ 유형은 아주 흔하다. 예컨대 전두환 정권에서 여당 의원을 지냈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자제들도 198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다.

그런데 이들 ‘석주 형’들은 정말 아버지를 배반했던 걸까. 어쩌면 그들이 정말 싸우고 싶었던 대상은 아버지였는데, 아버지와는 정말 싸울 수 없었으므로, 체제와 갈등했던 것 아닐까.

현실 속의 많은 ‘석주 형’들이 본인도 아버지가 되면서, 그래서 자기 아버지와 화해하면서, 체제와도 화해했다. 아버지 대신 체제를 때렸던 것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자고나면 부동산 가격이 뛰던 고도성장기, 숱한 졸부가 탄생했고 그들의 자식들이 대학에 갔다. 청년들은 졸부 아버지와 갈등했으나 그들은 가부장제 전통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 대신 체제와 싸웠다. 그리고 아버지와 화해한 뒤엔 그들 역시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 많던 운동권들이 중산층을 자처하는 강남 부자로 변모한 것은 이런 과정이었으리라.

‘석주 형’들이 아버지와 너무 쉽게 화해하는 사이, 다른 편에선 김소진 같은 이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개흘레꾼이었던 이들, 변혁의 주체인 노동자도 아니고, 내 비참한 처지의 책임을 져야 할 좌익도 아니며, 반항의 쾌감을 주는 악덕 자본가도 아닌, 그저 초라한 개흘레꾼. 그들의 자식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다음 글에선 이 문제를 다뤄본다.

성현석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