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사회 전체에서 보면 상대적 약자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악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잔혹한 공격성을 보이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30년 동안 기업과 정부는 이른바 ‘노동의 유연화’를 집요하게 관철시켰다. 그 결과는 10%의 노동조합 조직률로 상징되는 ‘노동자의 분절화’와 임금 노동자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자의 비정규화’다.

능력주의의 역사적 형성

우드사이드에 따르면 과거 시험은 “인재의 등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것”[1]이었다. 과거제도는 “언제나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개방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것이 곧 체제의 안정과 왕조의 장명(長命)에 기여한 주요한 요인”[2]이었다.

과거제도는 물론 현대의 완전개방경쟁 시험과 비교하면 귀족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그 시험은 농민을 포함한 양인 신분에게는 개방되어 있었지만 천인과 서얼 출신, 여성에게는 응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또한 경쟁 승리의 보상으로 주어진 사회적 특권(양반이라는 지위)이 당사자에 국한되지 않고 친족과 자손에게 확대적용된 것은 일종의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로서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 공정성이 비난받고 때로 민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나 공개 경쟁으로 서열을 정한다는 과거제의 속성이 비판받은 적은 없었다. 조선 시대에도 능력주의는 달성해야할 이상(理想)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진화론은 학적 이론으로서는 더 이상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지만, 능력자가 무능력자·저능력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능력주의 논리와 결합해 현실 설명 원리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상이다. 사회진화론은 능력주의와는 별개의 사상이고 역사적 형성 경로도 달랐다. 그러나 사회진화론과 진화론에서 논의되는 ‘생존경쟁의 불가피성’은 능력주의의 기저 조건을 형성한다. 우열 구분의 자명성과 우열 경쟁의 항구적 존재 상황을 일단 인정하고 나면, 그때부터 능력주의는 합리적 행동지침이자 필연적 당위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진화론은 집단 차원에서는 서구 열강을 따라잡기 위한 ‘민족개조’로, 개인 차원에서는 인격개조·실력양성론으로 표현되었다. 박준표와 같은 사회진화론자는 인간의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를 비난하면서, 바람직한 평등 요구는 “결코 계급을 타파하고 우열을 인정치 않고 차별을 철폐하려는 평등 요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3]고 주장했다. 능력주의는 경제적 효율성을 내세워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사회진화론 또는 맬서스주의와 유사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입신출세주의와 교양물신주의는 ‘짝패’ 이념이다. “입신출세주의는 근대 일본인의 정신적 원동력”이라는 가라타니 고진의 말에서 “근대 일본인” 대신 “근대 한국인”을 넣어도 성립한다. 일본과 한국에서 입신출세주의와 교양주의는 거의 유사한 양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능력과 노력을 통한 지위 상승은 봉건 질서에서 막 벗어난 사람들에게 새롭고 뜨거운 욕망의 대상이었다. 입신출세주의의 제도적 가능 조건은 근대적 학교 제도였다. 입신출세주의는 ‘국민교육에 기초한 능력주의’라고 할 수 있었다.

교양주의는 입신출세주의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으나 강한 엘리트주의를 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신출세주의를 전복하는 사회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대부분 입신출세주의의 노골성을 완화하는 문화적 장신구로 기능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교양주의는 ‘입신출세주의에 대한 개인적 저항’이라는 의미마저 완전히 탈각된 채 온전히 지위경쟁의 한 양태로서, 즉 교양이 일종의 물신이 된 ‘교양물신주의’가 되었다. 일본의 교양주의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정치사회적 흐름과 공명하는 것이었던 데 반해, 한국의 교양주의는 그러한 사회적 맥락을 갖지 못했다. 교양주의는 단지 자신의 고급 취향과 지위를 드러내는 도구로, 계급적 차별의 표지로 소비되었다.

학력주의는 그동안 학벌주의(學閥主義)와 같이 쓰이면서, 대체로 능력주의와 상반되는 가치체계로 인식되었다. 학력·학벌주의는 ‘망국병’ 내지 비이성적 광기로 성토되었고, 능력주의 사회는 우리가 나아가야할 이상향으로 설정되었다. 이른바 ‘요소동원형’ 경제였던 한국에서 노동력의 양과 질은 결정적 변수였고, 경제구조의 변화와 부침은 교육 및 학교 제도와 긴밀히 연동되었다. 학력의 획득은 지위 상승의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개인에게도 절실한 삶의 과제였다. 학업성취는 능력의 산물로 여겨졌다. “학교는 능력주의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고교 평준화 논란 등을 겪으면서도 학력주의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중간계급 부모들의 강렬한 교육열은 평준화를 폐지하고 특목고 시대를 열었다. 1995년 김영삼 정권이 대학설립준칙주의, 대학 정원 자율화를 발표하며 고등교육은 순식간에 팽창했고, 고졸자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모두가 대학생’ 시대가 열렸다. 외환위기 등으로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는데 대학 졸업생들은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대학 졸업장의 가치도 급전직하한다. 청년세대 내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대학서열주의와 능력주의의 내면화 강도는 더욱 커졌다. 청년들은 학력주의와 능력주의를 철저히 체화하면서도, 극단적인 경쟁과 노력을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탈진하고 있었다.


능력에서 잠재력으로, 노력에서 ‘노오력’으로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변화는 ‘능력’이 계속 재정의 된다는 점이다. 과거에 능력이란 어떤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숙련도와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의 능력은 일종의 ‘잠재력’을 의미한다. 리처드 세넷은 이러한 새로운 능력의 출현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은 직무와 직무 사이, 일자리와 일자리 사이, 작업장과 작업장 사이를 옮겨 다니는 데 익숙한 사람들을 요구한다. 부분적으로 이는 세계화된 시장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요에 기인한다. 기업 조직들은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기능과 사업계획, 생산물을 바꿔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물을 배우는 능력이 기존의 문제나 일군의 자료를 깊이 탐구하는 역량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이 고정된 지식보다 가치가 있으므로, 잠재적 학습능력이 과거의 축적된 지식보다 유용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잠재적 능력’에 주어지는 경제적 프리미엄이다.[4]

능력에서 잠재력으로의 변화는 한국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삼성직무적성검사(GSAT, Global Samsung Aptitude Test)는 1995년부터 시행된 선구적인 잠재력 평가로, 삼성은 이를 통해 지원자의 직무수행능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한다. 기초능력검사는 언어논리, 수리논리, 추리 그리고 시각적 사고를 평가하고, 직무능력검사는 원활한 조직 생활과 비즈니스 활동을 하기 위한 업무처리, 대인관계 및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직무 상식 및 일반 상식을 묻는다.[5]

능력에는 기준이 있다. 그러나 잠재력에는 정해진 기준이 없다. “상위에 어떤 기준이 있고 그에 도달하려 애쓰는 일하는 주체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적인 주체가 있는 것이다.”[6] 그 주체가 바로 ‘자기계발하는 주체’였다.

잠재력에서 말하는 노력은 그냥 노력이 아니다. “노오력”이다. “노오력”은 2015년의 유행어로서, 한국의 청년 세대는 ‘노력’을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냉소하기 위해,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약 없는 취업경쟁을 계속해야 하는 자신들을 자조하기 위해 이 말을 만들어냈다. 엄기호는 “노오력은 노력을 배신한다”고 말하며 ‘노오력’ 권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노력의 한계는 100%다. 100%란 일에서 내야 할 성과의 기준치 같은 것이었다. 그 이하가 미달이고 100%에 도달하면 합격이었다. 그러나 노오력의 시대에 100%는 미달이다. 200%, 300% 해야 한다. 노‘오’력은 노력에서 ‘오’자가 한 자 더 늘어난 것처럼 100%를 초과하라는 명령이다. 그렇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한계를 돌파하고 자기 힘과 가용되는 자원을 초과해서 살아야 한다. 자기가 받는 돈의 몇 배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겨우 일을 진행할 수 있다.[7]

능력의 주체가 착취당하는 주체라면, 잠재력의 주체는 거기에 자기 착취를 더하는 주체다. 분명 노력하고 있음에도, 한치 앞의 전망도 보장도 없기에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학력경쟁, 능력경쟁에 소진되고 탈진한 이들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00년대 중반이 되면 자기계발에 실패한 주체의 우울증이 논의되기 시작한다.[8] 박연은 “피로한 88만원 세대”의 일상을 증언한다.


젊은 세대는 자기계발 자체에 의문을 갖고 분노하기보다는 집중할 수 없는 스스로를 비웃고 자학했다. 이 시기에 유행한 ‘잉여’라는 표현은 자기계발과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짓거리를 반복하면서 자조하는 이들을 대변했고, ‘루저’라는 표현은 그런 에너지마저 고갈된 채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자를 지칭했다.[9]


무임승차론·역차별론의 범람

‘끝없이 재정의되는 능력’은 그러한 능력의 실재성 및 필요성에서 나온다기보다는 능력주의 자체의 논리적 취약성에서 비롯한다. 앞서 고찰한 것처럼 능력이라는 것은 명확히 정의하기도, 측정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개인 간의 능력 차이를 정밀하게 구별할 수 있더라도 그 차이란 사회의 산출물에 대한 기여라는 면에서 본다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능력이 분배의 우선적 원칙이 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가 여전히 현실에서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능력의 정의가 모호해지면 질수록, 필연적으로 능력의 지표인 자격증(졸업장, 자격시험, 임용시험 등)의 위력이 더 커지게 된다. 최근 한국에서 정규직이라는 말이 수평적 ‘직능(職能)’이 아니라 수직적 ‘신분(身分)’의 의미로 이해되는 현실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재 첫 회에 언급한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의 비정규직 비난, 어느 사립대에서 벌어진 장애인 비하 등이 전형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사회 전체에서 보면 상대적 약자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악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잔혹한 공격성을 보이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30년 동안 기업과 정부는 이른바 ‘노동의 유연화’를 집요하게 관철시켰다. 그 결과는 10%의 노동조합 조직률로 상징되는 ‘노동자의 분절화’와 임금 노동자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자의 비정규화’[10]다.

정규직 노동자는 작은 기득권이라도 놓칠까 불안하고,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는 아무리 노력하고 경력을 쌓아도 ‘워킹 푸어(working poor)’를 벗어날 수 없어 절망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통을 호소하면, “억울하면 정규직 되지 그랬냐”는 조롱이 날아든다. 하지만 정규직은 노동자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지위다.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이 상위 지위, 비정규직이 기본 지위처럼 되어버렸으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의 실패이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잘못은 아니다.

비정규직은 그 정의상 지위의 불안정성에 대한 반대급부로 단위 시간당 임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지위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임금도 훨씬 적게 받았다. 어려운 가정환경이나 불운 등으로 인해 정규직 시험을 준비할 여건이 못 되는 이들은 비정규직으로라도 빨리 취업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쉽게 취업했다는 점을 고려해도, 다른 시장행위자와 비교하면 무임승차라기보다 오히려 ‘할증승차’에 가깝다. 따지고 보면 정규직 역시 ‘고작’ 정규직이 되려고 제법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으니 ‘할증승차자’라 할 수 있다. 무임승차자는 따로 있다. 노동자들끼리 ‘의자 뺏기’ 싸움을 하게 만들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이익을 독식해온 집단,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해온 집단이 바로 정확한 의미에서 무임승차자이다.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능력주의가 이렇게 동원되는 이유는 그것이 정당하다 믿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능력주의는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라는 응분(desert) 관념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재능에 따른 출세’라는 근대적 관념보다 더 오래된 직관으로, 플라톤의 아르케(arche) 논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례적 정의 등에 닿아 있다. 근대의 능력주의는 고대의 응분론에서 혈통주의와 세습주의를 제거한, 이를테면 ‘능력에 따른 응분론’이라 할 수 있다.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들

응분 관념은 대체로 권력자와 자본가의 자기 정당화 논리였고, 그래서 오랫동안 우파와 보수주의자들의 무기로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포함한 좌파와 진보주의자들 또한 응분 관념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노동가치설[11]이나 불로소득에 대한 비판 등이 그 예다. (체제나 권력 구조 등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일하지 않거나 적게 일했음에도 많은 것을 가져가고, 어떤 사람은 일한 것에 비해 적게 가져가는 불평등한 상황에 대한 비판은 곧 기여에 따른 분배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좌·우파 모두에게서 응분 관념이 발견된다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인 상식에 가깝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한 상식적 관념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비판에서 면제될 이유는 되지 못하며, 사회의 최우선 원리여야 할 이유도 없다. 전근대 시기 혈통이나 덕성에 따른 차별적 대우 원칙이 근대에 들어서며 능력에 따른 차별적 대우 원칙으로 변화했지만, 매개항이 변했을 뿐 차별주의라는 본질적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존 롤즈, G. A. 코헨, 자크 랑시에르 등이 검토한 것처럼 능력주의 관념에는 오류가 많으며 민주주의와 정치 자체를 무력화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롤즈는 주저 『정의론』에서 능력주의적 분배를 ‘재능에 따른 분배’, ‘노력에 따른 분배’, ‘기여에 따른 분배’ 등으로 구분해 검토하고 있다. 그는 주어진 재능은 개인에게 속한 것이지만 ‘각자의 재능이 차이나는 상황’ 자체는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므로 개인은 그 재능의 배분 상황에 대한 자격까지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재능에 따른 분배 신조가 정의의 원칙에 우선할 수 없음을 밝힌다. 또한 롤즈는 노력에 따른 분배에 대해, “노력할 수 있게 해주는 성격도 대체로 자신의 공로라고 주장할 수 없는 훌륭한 가정이나 사회적 여건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인정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력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개인의 의지나 의도가 개입할 여지도 적지 않기 때문에, 롤즈의 이 논증은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기여에 따른 분배’는 클라크의 한계생산력설과 조응하는 능력주의 신조이다. 그러나 한계생산력설은 총생산물에서 어떤 생산요소가 얼마만큼의 비중으로 기여했는지를 밝혀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경제학계에서 논파된 이론이다. 롤즈도 유사한 취지로 이를 부정하였다.

G. A. 코헨, 자크 랑시에르 등의 급진적 평등주의자들은 능력주의를 부정했을 뿐 아니라 응분론적 관점 자체가 실질적 평등과 민주주의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하였다. 코헨은 ‘캠핑’의 사례를 통해 평등주의의 원리와 공동체의 원리가 동시에 실현되는 체제를 제안한다. 여기서 평등주의는 강한 의미에서의 기회의 평등으로, “아무리 따져 봐도 도저히 자기 책임이라고 할 수 없는 불리한 여건들”을 모두 수정해야 한다는 평등주의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강한 기회의 평등이 관철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운 등에 의해 간과하기 어려운 수준의 불평등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평등주의를 보완할 원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공동체의 원리이다. 코헨은 기회의 평등으로 혹은 정의의 이름으로 금지하지 못하는 종류의 불평등을 공동체의 이름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캠핑장이나 재난 상황에서 인간이 발휘하는 어떤 “관대한 성향”들, 비(非)시장적 동기들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헨은 캠핑의 원리가 국가 단위로 구현될 수 있는 구체적인 경로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랑시에르는 공동체에 고유한 몫을 설정하는 ‘아르케 논리’, 곧 불평등의 논리가 서양 정치철학의 기원에 내재하고 있음을 보인다. 아르케 논리는 출생, 부(富), 능력에 따라 위계적으로 몫을 배분하는 불평등의 논리다. 그는 평등과 해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아르케 논리와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18-19세기 실존했던 교육자 조제프 자코토의 기록을 통해 교육과 지적 평등에 대한 독창적 개념화를 시도한다. 자코토는 우연한 계기로 학생들과 교사 간의 ‘지적 평등’을 깨닫게 되었다. 깨달음은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랑시에르는 자코토를 따라서, 평등을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불평등을 항상-이미 전제한 뒤 평등을 지향하는 진보주의자의 프로젝트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능력의 평등’이라는 랑시에르의 전제는 다수의 직관과 괴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능력주의와 관련해서 코헨은 또 하나 중대한 논점을 제기한다. 그는 자기 소유권(self-ownership)의 원리[12]가 기각되지 않는 이상, 불평등은 다시 발생하고 그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그렇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되면[13]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이 모자란 사람을 위해 봉사하게 될 것이란 마르크스주의의 가정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것이 코헨의 생각이다.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이고 내재적인 비판은 능력주의라는 사회적 상상이 기반하는 상식들을 해체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만일 그 비판이 정합적이고 일관적이라면 그것은 결국 차별주의에 대한 반대와 평등주의에 대한 정당화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14]


능력주의를 넘어 ‘커먼즈’로

2019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공정성’은 최대의 화두다. 그러나 공정성의 근간인 능력주의에 관한 한, 여전히 한국의 인식은 조선 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머물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1921년에 쓴 책에서 “지식의 공동축적물이야말로 모든 산업 생산의 불가결한 근원”[15]이라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버트 솔로가 1957년의 기념비적 논문[16]에서 20세기 상반기 생산성 성장에서 90퍼센트 정도가 “넓은 의미에서 기술 변화 때문”이라고 계산했을 때 사람들은 그제야 베블런의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솔로의 연구에서 촉발된 지식유산 이론은 개인의 특수한 재능들이 사회경제적 번영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 극히 작은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였다. 반면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 전체의 지식과 문화는 번영을 창출하는 데 압도적으로 큰 기여를 한다. 공동자산(the Commons)의 중요성을 함축한 이 이론으로 인해, 공동체 자원에 대한 사회적 청구권을 더 쉽게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들어낸 것은 얼굴도 모르는 숱한 타인들의 기여가 축적된 것이며 독점해선 안 되는 것이다. “사회의 경제적 혜택은 행위자의 능력 또는 생산에 대한 기여도에 비례해서 분배되어야 한다”는 과거의 경제적 응분론은 더 이상 ‘상식’이 될 수 없다. 능력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극소수 ‘용’에게 특권을 몰아주면서 용이 되지 못한 이들의 열패감과 억울함을 동력으로 삼는 체제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개천용’이 되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그 사회는 능력주의가 아닌 대안적 자원 배분 원칙을 활발히 고안하고 토론하며 실천하는 공동체일 것이다.

박권일 / 사회비평가  

(연재 완결.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알렉산더 우드사이드, 민병희 옮김, 『잃어버린 근대성들: 중국, 베트남, 한국 그리고 세계사의 위험성』, 너머북스, 2012, 25쪽 
[2] 에드워드 와그너, 이훈상·손숙경 옮김, 『조선왕조사회의 성취와 귀속』, 일조각, 2007, 29쪽 
[3] 박준표, 현대청년수양독본』, 영창서관, 1923, 229쪽 
[4] 리처드 세넷, 유강은 옮김,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 문예출판사, 2004, 109쪽 
[5] ‘삼성직무적성검사’, 위키피디아 
[6]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베개, 2009, 246쪽 
[7] 엄기호, 「노오력, 노력의 배신자」, 『경향신문』, 2015.09.21 
[8] 곽중현, 「자기계발로부터의 도피?」, 한국사회학회 2009 전기 사회학대회 
[9] 이택광 외, 『우파의 불만』, 글항아리, 2012, 180쪽 
[10] 2013년 3월 기준 한국 사회 전체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46.1% 수준으로 임금 노동자 2명 중 1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분노의 숫자』, 동녘, 2014, 102쪽 
[11] 노동가치설은 본래 마르크스 자신의 주장이 아니지만, 마르크스주의가 확산하면서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호도된 것이 사실이다. 
[12] G. A. Cohen, 『Self-Ownership, Freedom and Equal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pp144-164 
[13] 이것이 자기 소유권의 기각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위의 책을 참조하라.
[14] 롤즈, 코헨, 랑시에르 등의 능력주의 비판 담론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한국 능력주의의 형성과 그 비판 : 『고시계』 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박권일, 2018)을 참고하라. 
[15] Thorstein Veblen, 『The Engineers and the Price System』, New Brunswick, 1983(1921),p.56; 가 알페로비츠․루 데일리, 원용찬 옮김, 『독식비판』, 민음사, 2011, 140쪽에서 재인용 
[16] Robert M. Solow, 「Technical Change and the Aggregate Production Function」, 『The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Vol. 39, No. 3,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