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정치의 시대

     
‘애완정치’다. 누구나 제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끔찍이 아낀다. 그러나 애완동물은 집 안에서만 사랑받을 뿐이다. 집 밖에 나서는 순간, 입마개를 하지 않아서 아이들을 위협하는 존재, 똥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않아서 동네를 더럽히는 동물일 뿐이다.
신상진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력이 독특하다. 독재와 민주 두 정권과 싸웠고, 두 번 모두 구속됐다. 첫 번째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다. 신 의원은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했다. 학교를 떠나서는 경기도 성남, 인천 등의 공장에 위장취업을 해서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을 했다. 1982년에는 국가보안법 등을 어긴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운동권 출신 의사가 금배지를 달기까지

신 의원은 이후 복학해서 의사가 됐다.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지 14년만인 1991년이다. 성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다시 구속됐다. 그때도 정권과 싸웠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도입한 의약분업 정책 때문이다. 당시 정책 실무에 깊이 참여했던 사람이 김용익 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 역시 서울대 의대 출신인데, 재학 시절부터 진보 성향이었다. 김 이사장은 임상의사 대신 예방의학과 보건정책 전문가가 됐고, 서울대 의대에서 의료관리학 교실을 이끌었다. 의학 지식을 갖춘 정책 전문가를 기르는 과정이다. 김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을 지내고 민주당 국회의원을 했다. 이진석 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공동대표 등이 그의 제자다. 이들 역시 의대에 다니며 학생운동을 했었고, 민주당 계열에서 정치 활동을 했다. 신 의원과 김 이사장은 모두 의과대학 안에서 진보적인 활동을 했던 이들인데, 훗날 정반대 위치에서 충돌한 셈이다.

2000년 당시 의사협회는 의약분업을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에서 김대중 정부가 약사회에 기운 입장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대정부 투쟁을 했다. 신 의원은 당시 의사협회 산하에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라는 조직을 꾸리고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의사협회는 두 차례의 집단폐업을 했다. 그 배후 주동자 격인 신 의원은 수배 대상이 됐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도피 경험이 있었던 그를 잡기 위해, 검찰 공안부가 나서고 경찰이 전담 체포 조까지 꾸렸다고 한다. 결국 체포돼 구속됐다.

이후 풀려난 신 의원은 의사협회 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리고 민주당 정부를 상대로 강경 투쟁을 계속했다. ‘이변’이라는 평가가 나왔었다. 그때까지 의사협회 회장은 모범생, 아니면 지역 유지 성향이었다. 그런데 제적, 위장취업, 수배, 구속 등을 모두 거친 운동권 출신이 머리띠를 두르고 팔뚝을 흔들며 투쟁가요를 부르는 버릇을 유지한 채 의사협회 회장이 됐다. 옛 운동권 출신이 주류 엘리트 집단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사례는 전에도 흔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주로 당사자가 운동권 문화를 씻어낸 뒤에 이뤄졌다. 그런데 신 의원은 운동권 문화 코드를 유지한 채로, 혹은 이를 활용해서 주류 엘리트 단체의 대표가 됐다. 그래서 ‘이변’이었다.

그 뒤 행보는 다들 아는 대로다. 신 의원은 의사협회 회장 경력과 성남 지역 활동 경험을 모두 활용해서 정치를 했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서 낙선했고, 이듬해 재선거에서 당선됐다. 지금은 4선 의원이다. 그의 지역구인 성남시 중원구는 옛 통합진보당 내부 주류 세력이었던 경기동부연합의 텃밭에 가깝다.


운동권 사회에서도 ‘성문 밖’에 있었던 성남

그 곳은 박정희 정권이 서울의 빈민들을 서울 밖으로 내몰면서 생긴 광주 대단지 사건이 벌어졌던 자리다. 성남이라는 지명은 ‘남한산성의 남쪽’에서 비롯됐다. 조선 시대 수도 방위를 위한 요새였던 남한산성, 그보다 바깥이다. 그러니까 ‘성문 밖’이다. 광주 대단지는 이른바 구 성남, 즉 지금의 성남시 중원구와 수정구에 걸쳐 있었다. 사람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 시설조차 없는 ‘성문 밖’에 내몰렸던 도시 빈민들은 1971년 8월에 거대한 봉기를 일으켰다. 광주 대단지에서 살았던 빈민들의 참상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임미리 박사가 쓴 『경기동부』에 따르면, 산모가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제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소문이 횡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성문 밖’ 빈민들의 사연은 진보 지식인들의 관심에서도 종종 밀려나 있었다. ‘성문 밖’ 빈민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변혁의 주체로 꼽았던 노동자 계급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래서 그들은 운동권 세계에서도 ‘성문 밖’에 있었다.

지난 연재에서 ‘겸손하게 중산층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소득 및 자산, 교육 수준 등에서 상위 20퍼센트 안쪽에 드는 계층’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 했다. 이른바 ‘자칭 중산층’이다. 이들이 공론 장에서 과잉 대표될수록, ‘성문 밖’ 빈민의 존재감은 흐릿해진다. 고(故) 노회찬 의원이 이야기했던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자칭 중산층’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주장을 개혁 혹은 진보적 가치로 포장하는 정치에 대해 앞서 살펴봤으므로, 이제는 ‘성문 밖’ 빈민들의 터전에서는 어떤 정치가 벌어지는지를 들여다볼 차례다. ‘성남시 중원구’의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서 살폈듯, 노동운동가 출신 의사협회 회장이 바로 그 자리에서 수구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네 번 당선됐다. 아울러 이 지역에선 진보정당 후보도 늘 강세였다. 그래서 성남시 중원구는 울산과 더불어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권에 드는 지역으로 꼽히곤 했다. 실제로 당선도 됐다.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김미희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계열 정치인보다 앞섰던 덕분이다. 김 후보는 당시 선거에서 신상진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이후 해산됐고, 2015년 치러진 보궐선거에선 신상진 의원이 당선됐다.

울산, 창원처럼 대규모 산업단지가 아닌 지역구에서,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지 않으며, 심지어 다수 유권자가 반감을 갖고 있는 민족해방 계열 활동을 했던 후보가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고 당선까지 됐던 사실은 몹시 인상적이다. 그런데 의외로 큰 관심은 끌지 않았다. 어쩌면 그 역시 ‘성문 밖’ 빈민들이 살던 곳은 투명한 취급을 받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진보정당 후보를 냈던 경기동부연합 세력은, 잘 알려진 것처럼 민족해방 계열에 가깝고,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변혁의 주력으로 여겼던 대공장 노동자가 아닌, 성문 밖 빈민들의 터전이었던 지역이므로,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운동권은 과연 어떤 이들인가.


운동이 구원이었던 이들, 뽑혀 나가다

전두환이 폭정을 저지르던 1980년대에 성남의 빈곤 가정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했던 청년 가운데 일부는 학생운동에 대해 신앙에 가까운 소명의식을 품었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직접 혹은 간접 기억을 지닌 그들에게 ‘행정부의 수반이 살인마’라는 메시지가 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행정 권력으로부터 줄곧 폭력과 조롱을 당했다. ‘성남에는 전라도 사람이 많다. 전라도 사람은 배신을 잘 해서 믿을 수 없다.’ 이런 메시지가 꼬리표처럼 달라붙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행정 권력의 우두무리야말로 끔찍한 범죄자였다. 이는 그들이 오랫동안 경험한 행정부의 폭력이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는 뜻이었다. 범죄자가 약자를 괴롭힌 일일 뿐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더 이상 주눅 들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정의의 편이다. 그들에게 전두환의 만행을 담은 ‘1980년 5월 광주의 기록’은 거대한 해방의 서사였다.

그 에너지는 헌신적인 지역활동으로 이어졌다. 성남 지역에선 1980년대에 ‘성남지역대학생연합(성대연)’이라는 단체가 꾸려져 폭발적인 활동을 했다. 성남 근처가 아닌 서울의 유명 대학에 진학했던 이들도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마치 부업을 하듯, 성남 지역 활동도 병행했다. 주중에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생운동을 하고, 쉬는 날에는 성남에서 지역 활동을 돕는 식이다. 서울대에 다니다 군 복무 도중 이른바 녹화사업(전두환 정권이 운동권 학생들을 군대에서 강제로 전향 시키려 했던 공작)을 겪고 의문사 했던 고(故) 한희철 열사가 대표적이다. 서울대 83학번인 박우형 씨는 자기 활동의 거점을 아예 성남에 뒀다. 그는 성대연 초기 활동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런 역사는 서울대를 포함한 유명 대학의 학생운동사에서 덜 거론됐다. 학생운동의 주류는 대학 안에서 주로 활동하며, 총학생회 등 대중조직을 이끌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성남 출신 대학생들에게 학생운동은 구원이며 해방이었으나, 운동권 안에서 그들은 비주류에 가까웠다.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등 성남에서 가까운 대학에 진학했던 이들은 지역 활동에 더 적극적이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가까웠던 이들이 이런 경우였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이들은 성남시청 앞에서 수만 명 단위의 집회를 했다. 학생운동이 약화된 1990년대에도 이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성남지역대학생연합의 후신 격인 ‘성남 터사랑 청년회’ 등이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90년대 <한겨레> 독자였다면, ‘성남 터사랑 청년회’의 생활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임미리 박사는 이들에 대해 “(중국 고대 전국시대) 묵가 집단을 방불케 하는 헌신성과 규율, 결속력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통합진보당 후보로 신상진 의원을 꺾고, 성남시 중원구에서 당선된 김미희 전 의원도 서울대 약대 졸업 이후 성남 터사랑 청년회 활동을 했다. 김 전 의원은 오는 4월 총선에서 민중당 후보로 출마했다. 언론에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과거와 달리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했던 영향이 여전한 탓이다. 대신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올랐다. 통합진보당 후보 지지율이 민주당으로 옮겨가면서, 현역 의원인 신상진 후보가 불리해졌다. 이 지역 정치만 놓고 보면, 박근혜가 상징하는 수구 진영과 민주당 계열이 ‘적대적 공생’ 관계라는 설명이 그럴 듯하다. 이 지역에서는 아주 깊은 역사를 지닌 통합진보당 계열 정치 세력은 뿌리가 뽑혀 나갔다.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했던 효과를 민주당 후보가 누린다.


운동권 선거와 의사협회 선거, 그리고 총선

이번에는 다시 신상진 의원에 대해 살펴보자. 앞서 이야기한대로, 신 의원은 2000년 의약분업 논란 당시 의사협회 안에 의쟁투라는 투쟁기구를 꾸렸다.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이들에겐 아주 익숙한 장면이다. 이른바 ‘메이저 캠’이라고 불렸던 대학에서 학생회를 이끌었던 이들은 대개 운동권이었다. 그런데 구조적인 문제가 늘 있었다. 아무리 학생운동이 활발한 대학이라고 해도, 운동권이 과반수를 차지하기는 어려웠다. 학생운동에 거리를 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학생회는 직접 선거로 꾸려지는 대중조직이며, 학생회장은 학생 전체를 대표한다. 따라서 오로지 운동권만 동의하는 주장은 학생회가 전면에 내세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찾은 해법 가운데 하나가 위원회 조직이다. 학생회 산하에 온갖 위원회를 꾸리곤 했다. 민족해방(NL) 계열이 이끄는 학생회 산하에는 대개 조국통일위원회가 있었다.

이런 위원회 조직은 학생 전체를 대표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보다 전투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회보다 위원회 조직에 더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예컨대 총학생회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보다 그 산하 기구였던 조국통일위원회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식이다. 이는 이른바 민족해방(NL) 계열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운동권 대부분이 그랬다. 대중조직 산하에 투쟁위원회를 꾸리고, 그 활동 과정에서 헌신성이 확인된 사람이 대중조직의 차기 대표자가 되곤 했다.

신 의원이 먼저 의쟁투 위원장을 맡고, 대정부 투쟁 과정에서 수배와 구속까지 감수하는 헌신성을 보여준 뒤, 의사 전체를 대표하는 의사협회 회장이 된 과정과 판박이다. 심지어 이런 경력을 발판 삼아 제도 정치권에 진출한 것까지 옛 운동권들과 닮았다. 소속 정당의 이념이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지금도 곳곳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처신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 및 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사실 관계가 명확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 전 장관, 그리고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모두 사과한 사실에서 확인되듯, 조 전 장관의 처신은 결코 떳떳하지 않았다. 요컨대 법적 판단이 남았을 뿐, 정치적으로 내세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 전 장관의 처신을 일방적으로 옹호했던 이들이 여당 후보가 되는 일이 생겼다. ‘개싸움 국민운동본부’ 출신이라고 한다. 앞서 설명한 구조, 대중조직 산하에 위원회를 꾸린 뒤 그 속에서 검증된 이를 다시 대중조직 간부로 발탁하는 방식과 닮았다. 공식적인 정당이 내기는 힘든, 선명한 목소리를 내는 조직이 따로 꾸려진다. 그 안에서 헌신성이 확인된 이가 정당 공천을 받는다.

1980년대에 대학가에서 자리 잡은 이런 방식은 2000년대 초 의사협회 회장 선거에서도, 그리고 지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계속 쓰인다.


자기연민에 빠진 기득권층의 대중노선

살펴볼 대목은 더 있다. 2000년 의사들의 집단 폐업 당시 신상진 세력이 내걸었던 논리 가운데 하나가 ‘의사 대중노선’이었다. 그전까지 의사협회를 이끌었던 모범생 혹은 지역유지 성향의 지도부는 ‘의사는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므로, 성직자에 가까운 직업’이라는 직업관을 갖고 움직였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이런 직업관에 충실 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런데 신상진 노선은 이런 직업관을 깨면서 등장했다.

‘의사 역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생활인일 뿐이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고, 마치 성직자인 양 묘사하는 방식은 의사 집단에게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의사협회 지도부는 ‘의사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솔직하게 받아 안아야 한다.’

이런 노선이 다수 의사에게 받아들여졌으므로, 신 의원은 의사협회 회장 선거에서 당선했다. 물론, ‘의사도 생활인일 뿐’이라는 선언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모두 있다.

먼저 순기능을 살펴보자. 수백 년에 걸쳐 과거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한국에선, 시험으로 선발된 이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 깊다. 지식인 독재에 가까운, 이 같은 문화에서 고학력 엘리트의 역할은 종종 신비화되곤 했다. 따라서 그들이 하는 일의 쓸모와 의미는 투명한 검증과 평가를 받기보다, 봉건 사회의 양반 귀족이나 성직자처럼 무조건 존중받아 마땅한 취급을 받곤 했다.

이런 문화의 수혜자로 순수예술가나 문인, 인문학 연구자 등이 흔히 꼽히는데, 넓게 보면 과학자나 의사처럼 공부를 잘 했던 이들 일반이 두루 포함된다. 봉건 체제에선 양반이 치르는 시험 과목이 될 수 없었던 수학, 과학, 외국어 등이 근대 사회에선 시험 과목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그 순간, 옛 중인은 새로운 사회의 양반 귀족이 될 수 있다. 그 역시 일정한 순기능이 있다. 시험의 권위가 약한 사회에선, 봉건 체제에서 낮은 대접을 받던 실용 전문가가 근대적인 엘리트로 대접받기 힘든 문화가 있다. 예컨대 일부 이슬람 국가가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과학자, 엔지니어, 의사 등 세속 엘리트 직업으로 더 많이 진출해야 하는데, 여전히 성직자가 되겠다는 이들이 너무 많다.

반면, 한국은 시험만 잘 치면 누구나 양반 귀족 대우를 받는 문화 덕분에, 이런 경로를 피할 수 있었다. 똑똑한 청년들이 의사, 법률가처럼 세속적인 직업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 같은 시험 귀족에 대한 보상은, 그들이 하는 역할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에 따라 이뤄지지 않았다. 공부를 통해 신분이 상승했으므로, ‘양반 귀족’으로 대접하는 방식의 보상이었다. 요컨대 역할이 아닌 신분에 따른 보상 체계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는,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오래 전에 고생해서 얻은 신분 덕분에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의사도 생활인일 뿐’이라는 선언은 이런 분위기를 깨는 역할을 한다. ‘양반 귀족’ 대접이라는, 막연한 보상 대신 건강보험 수가 인상처럼 명확한 요구를 하게 된다. 이는 여전히 뿌리 깊은 봉건적 문화를 완화하고, 근대적인 직업관을 정립하는 기초가 된다. 이게 순기능이다. 이런 요구가 의사 집단에게서 적극적으로 터져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규직 철학과 교수가 대학에서 누리는 보상의 근거를 설명하려면,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인문학이 지닌 의미와 가치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을 상대한다면,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직업의 가치를 인정한다. 의사들을 욕하는 이들조차 그렇다.

철학 교수가 ‘철학자 역시 논문 써서 먹고사는 생활인일 뿐’이라고 외친다면, 그는 그가 누리는 혜택 가운데 일부를 반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의사가 ‘양반 대접 안 해줘도 좋으니, 보험 수가를 올려 달라’고 요구한다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클 수 있다.

실제로 2000년 의사 폐업 직후, 건강보험 수가가 올랐고, 그래서 대학병원 교수들이 대학을 떠나 동네 병원을 직접 차리는 사례가 늘었다.

반면 역기능도 있다. 의사는 대표적인 고소득, 고학력 직업이다. 따라서 의사협회는 주류 기득권 집단에 가깝다. 그런데 그들이 스스로를 ‘대중’으로 부르는 순간, 그들은 자기 위치를 잊게 된다. 설령 허영 어린 겉치레일지언정, 스스로를 옛 양반 귀족처럼 여기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둘은 완전히 다르다. 후자의 프레임에선, 심지어 명백한 기득권층인 이가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는 일도 생긴다. 그 순간, 사회적 책임은 최소화하되 경제적 요구 관철에는 최선을 다하는 행태가 스스로 정당화된다.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 양반 귀족이 아니니까.

신상진 의원이 깊은 뜻을 품고 이런 길을 열었을 리는 없다. 그는 그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 문이 열려 버렸고, 이제는 닫기 힘들다. 조각 난 세계 안에서 ‘그들만의 대중노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길, 먹고 살만한 이들은 죄다 그리로 간다.

누구나 살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약자가 돼 상처받았던 경험, 누구나 있다. 오히려 주류 집단에 있으면,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 앞서가는 이들이 워낙 빛나는 탓이다. 공부를 잘해서 과학고에 진학한 학생이 오히려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나라 최고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조차 정치 활동 내내 자신을 피해자, 약자로 포장했다.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사 박근혜’는 곳곳에 널려 있다. 넓게 보면 기득권 층, 사회적 강자에 속하는데도, 자신이 약자라고 여기는 이들은 흔하다. 맹렬한 자기연민에 사로잡힌 이들은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심장 뜯겨나간 이들이 주변에 널려 있어도, 제 손톱 밑 가시가 가장 아프다고 한다. 이들에겐 사회적 책임 회피와 경제적 이익 실현이 곧 정의다. 자기가 약자니까.

의사협회에서 신 의원이 열었던 문 역시 마찬가지다. 닫히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의사협회 회장 선거에선 ‘신상진의 특징을 신상진보다 더 선명하게 띤’ 후보들이 늘 출마했다. 뉴라이트 성향을 띤 후보가 나타났고, 일부는 당선됐다. 그 과정에서 신 의원이 열었던 문은 계속 넓어졌다. 그 흐름의 정점에 선 이가 최대집 현 의사협회 회장이다. 각종 언론 보도를 보면, 최 회장은 ‘의사 대중’의 이익 실현이 곧 사회 정의라고 확신하고 있다.


의사협회 닮아가는 자칭 중산층

신상진 의원의 독특한 인생사를 길게 설명했다. 이 연재를 꾸준히 읽었던 이들이라면, 이유를 눈치 챘을 게다. 신상진 이후 의사협회의 역사, 86세대 상당수가 속한 ‘자칭 중산층’ 일반이 따라 걸었던 경로와 판박이다.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비정규직과의 연대 대신 자신들의 이익 관철에 몰두했으면서도, 스스로 정당화했다.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내면의 논리가 견고했다. 의사협회의 대중노선이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지닌 것처럼,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 역시 빛과 그림자가 모두 선명했다. 최대집 회장이 이끄는 의사협회와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대중노선’에 충실했던 노동운동 역시 그림자가 더 선명해졌다.

또래 가운데 다수가 공부 대신 일을 해야 했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녔던 소수, 동년배 가운데 약 20~30퍼센트였던 이들은 대학 안에서 ‘대중노선’을 적극적으로 구현했다. 민주와 민중을 이야기하던 운동권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홍치산 시인의 시 <바보 과대표>는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상위 계층 내부에서 ‘대중노선’을 구현하면, 사회 전체에선 기득권이 강화된다. 역시 앞서 설명한 의사협회와 닮았다. 상위 계층 안에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소수파에 무게를 실어야야, 그나마 기득권 구조가 완화된다.

실제로 86세대 운동권 출신 가운데 많은 수가 서민에서 출발해서 중산층이 되는데 성공했으나, 그들은 이제 겉치레로도 ‘기층 민중’을 입에 담지 않는다. 심지어 광장에서 함께 촛불을 드는 순간에도 그랬다. 그들은 증세와 복지를 통해 ‘기층 민중’의 삶을 개선하자는 주장에 대해 지금도 관심이 적다. 증세 범위가 넓어지면, 중산층 지지가 견고한 현 여당에게 불리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적폐’가 되살아난다는 이야기만 반복한다. 적폐와 민주가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기층 민중’의 삶은 계속 열악해지는 구조를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는다.

원내 정당 가운데 구호 수준으로나마 ‘민중’을 입에 담는 세력은 옛 민족해방계열이 모인 ‘민중당’이다. 앞서 성문 밖 빈민 터전의 정치를 설명하며 소개한 김미희 전 의원 역시 지금은 민중당 후보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민중과 계급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하던 세력이 ‘민중’ 간판을 유지한다. 옛 운동권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민중과 멀어지면서 생겨난, 역설적 현상이다. 그렇다면, 옛 민족해방계열의 주장이 옳았던 건가. 그 역시 아니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서도, 적폐 세력이 해산했던 통합진보당 세력을 복권시키자는 주장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이들 다수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지금도 아주 싸늘하다. 옛 민족해방계열은 이처럼 고립돼 있을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다. ‘토착왜구’, ‘총선은 한일전’ 따위의 표현을 쓰는데서 확인된다. 그런 주장을 한다면, 왜 민중당을 찍어야 하나. 지난해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를 외쳤던 이들이 주로 모인 정당을 찍을 일이다. 민중당의 모순이다.


먼저 철 든 자는 떠나고, 철 들기를 거부한 자들은 모여드는 ‘애완정치’

성문 밖 빈민, 투명인간들을 기억하는 정치 세력이 계속 투명해지는 가운데, 힘이 실리는 것은 ‘그들만의 대중 노선’이다.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도, 소득 수준이 상위권인데도, 자기네가 가장 불쌍하다는 목소리만 울려 퍼진다. 대중은 조각 나 있는데, 그 조각 안에서만 통하는 ‘대중 노선’을 끝까지 밀어붙인 이들이 정치를 한다.

‘애완정치’다. 누구나 제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끔찍이 아낀다. 그러나 애완동물은 집 안에서만 사랑받을 뿐이다. 집 밖에 나서는 순간, 입마개를 하지 않아서 아이들을 위협하는 존재, 똥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않아서 동네를 더럽히는 동물일 뿐이다.

비슷한 부류끼리 모여 제 손톱 밑 가시만 들여다보는 나라에선, 정치인이 애완동물이다. 자기가 가장 불쌍하고 외롭다는 이들은 정치인이라는 애완동물이 자기만 바라보기를 원한다. 제 눈에 잘 띄지 않는 투명인간까지 챙기는 정치인을, 그들은 상상할 수 없다. 성문 밖 빈민, 기층 민중에게 눈을 돌리는 정치인이란, 그들에게 걸핏하면 집 밖으로 튀어나가는 고양이와도 같다. 속 썩이는 존재일 뿐이다.

정치란 누군가를 대표해서 싸우는 일이다. 하지만 애완정치의 나라에선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는 구호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궂은일은 부모가 할 테니, 아이는 온실 속 꽃처럼 곱게만 자라라는 당부와도 닮았다.

애완정치가 판치는 나라의 어른들은, 아이들도 애완인간으로 기르려 한다. 아이들이 고양이처럼 영리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소한 기회도 싹싹 긁어 챙기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지방의 가난한 학생 몫의 기회까지 알뜰하게 쓸어간 어느 명문대 학생처럼 자라기를 다들 바란다.

애완인간으로 자란 아이들은, 자기가 속한 세상 밖으로는 아예 눈을 돌리지 않는다. 좋은 사료를 먹으며 잘 길들여진 고양이가 집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처럼. 자기가 속한 세상 안에서만 맴돌며 애완인간으로 자란 이들은 영리해진 딱 그 만큼 철이 들지 않는다.

애완정치는 ‘그들만의 대중 노선’과 한 몸을 이룬다. 철이 덜 들어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 부모가 밥 차려주는 따뜻한 집 바깥을 봐 버려서, 이미 철이 들어버린 이들은 ‘그들만의 대중 노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안다. 마치 대학 밖 민중을 경험한 이들에게 대학 안에서 외치는 ‘민중연대’ 구호가 시시했던 것처럼. 성문 밖에선 산모가 아기를 삶아먹었다는 소문을 들으며 자란 어느 대학생 역시 그랬을 것이다.

먼저 철이 든 이들은 진작 떠나고, 늦게 철이 들거나 아예 철이 들지 않은, 그저 영리하기만 한 이들이 모여드는 곳. 그 자리가 바로 애완정치의 현장이다.

성현석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