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족보다

     

조선 시대엔 족보와 시험으로 신분을 정했다. 현대 한국에선 시험으로 신분을 정한다. 족보가 빠졌다. 조선과 한국은 딱 그만큼 다르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 (王侯將相寧有種乎)”

춘추전국 시대를 마감한 진나라는 시황제가 죽자마자 위기에 휩싸였다. 당시 농민 반란 주모자였던 진승과 오광이 한 말이라고 한다. 이런 선언은 어떤 소문과 맞물리면서 더 널리 번졌을 것이다.

“진나라 시황제의 아버지는 조나라 장사꾼 출신 여불위였다.”

유전자 검사가 있던 시절도 아니다. 시황제와 여불위를 모두 만나 외모를 비교한 이들 역시 소수였다. 따라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힘든 소문이다.  

그러나 혁명적 상상력은 확실히 건드린다. 핏줄이 자동적으로 신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날 때부터 특별한 존재는 없을 수도 있다. 어떤 핏줄을 타고났건, 진나라 왕의 아들로 선언하면 왕자가 된다. 중요한 것은 선언이다. 그러니까 용기를 내서 외친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


사라진 신분제, 여전한 신분 의식

이런 선언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지금도 신분제가 남아있는 나라가 있다. 인도에선 카스트 제도가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에선 부라쿠민(부락민) 차별이 남아 있다. 한국은 이 점에선 돋보인다. 백정 등 전통적 천민 신분에 대한 차별은 완전히 사라졌다. 정확히 쓰자면, 차별이 없어졌다기보다, 다들 양반 족보를 사버렸다. 전쟁과 쿠데타의 역사 속에서 족보의 진위는 따지지 않는 합의가 생겼다.

다들 양반 자손이 됐다는 것은, 차별 의식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다만 차별할 대상이 잘 안 보일 뿐이다. 그래서 차별 받아 마땅하다 싶은 이들이 눈에 띄면, 맹렬하게 차별한다.

요컨대 신분제가 사라졌을 뿐이다. 신분 의식은 여전하다. 한 방송사 PD는 원래 비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명절을 앞둔 어느 날, 퇴근하는 동료들 손에 들린 상자를 봤다. 참기름 상자였다. 노동조합에서 준 선물인데, 정규직만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단다. 같은 직장에서 일한다고 같은 신분은 아니구나. 직장을 관두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뒤, 입사시험을 쳐서 정규직 PD가 됐다.

심한 상처는 드러내기 힘들다. 가벼운 흉터니까 노출할 수 있다. 방송사의 참기름 차별은 어쩌면 후자다. 훗날 무사히 정규직이 됐으므로, 상처가 아물었다. 그래서 흉터를 드러냈다. 하지만 다른 많은 경우는 여전히 고름 흐르는 상처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통근버스를 탈 수 없었다. 회식을 같이 하지 못한다. 심지어 구내식당이나 휴게실 이용을 막기도 했다. 명백한 신분 차별이다.

미국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아서 체포됐다. 그때가 1955년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함께 버스를 탈 수 없었던 최근 한국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런 차별은 대부분 경제적 합리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신분 의식으로 보는 게 맞다.
 
한국에선 다들 족보를 샀다. 핏줄의 연원을 기록한 족보를 믿을 수 없다. 그러니까 족보 따져서 차별하기가 불가능했다. 대신 시험이 족보 역할을 했다. 어차피 진나라 시황제 역시 족보는 의심스러웠다. 차별에는 어차피 물리적 근거가 없다. 그냥 차별할 뿐이다. 시험이건 족보건, 근거는 그때그때 갖다 붙이면 된다.


지식 서열, 시험 점수에 복종하는 문화

지난 회에서 ‘간첩’ 이야기를 했다. 간첩은 "옮겨 심은 자"라고 했다. 그리고 86세대 중산층 다수가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옮겨 심으려면, 토양이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 한다. 사막의 선인장을 늪지대에 옮겨 심을 수는 없다. 입시경쟁에 시달리던 청소년이 한순간에 운동권이 됐다. 팔뚝을 흔들던 운동권 청년은 곧 대기업 직원이 됐다. 모의고사 등수를 벽에 붙이는 고등학교, 최루탄 터지는 거리, 넥타이를 머리에 매고 흔드는 직장인 회식 자리.

얼핏 모두 다른 토양처럼 보인다. ‘옮겨심기’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다. 그렇지 않다. 공통분모가 있다. 지식의 서열, 혹은 시험 결과에 지나친 권위를 두는 문화는 모두 닮았다. 입시경쟁이 치열한 교실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학 운동권 문화 역시 지식의 서열에 예민했다. 입장이 다른 그룹끼리의 논쟁은 꼭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의 대결 같았다. 그룹 안에서 공부를 많이 한 선배가 장수 노릇을 했다. 칼과 창 대신 말과 글로 싸웠는데, 누가 사회과학 지식이 더 많은지를 겨루곤 했다.

정작 아주 기초적인 의문은 설 자리가 없었다. ‘지식의 양이 입장의 올바름을 보장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모순에 빠진다. 지식이 아무래도 적은, 기층 민중은 영원히 올바른 입장에 설 수 없다는 모순이다. 혹은 민중은 무조건 지식인에게 지도받아야 한다는, 외길 결론이다. 운동권 지식인이 민중을 계속 지도하면 되지 않느냐, 그게 꼭 잘못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운동권보다 지식이 압도적으로 많은 극우가 있다면, 민중은 극우를 따라야 하는가. 지식 서열에 집착하는 한,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이다.

애초 운동권에 입문하는 ‘의식화’ 과정 자체가 지식인을 선망하는 유교 문화와 맞물려 있었다. 강의실에서 만들어지는 지식인은 어용이며, 진짜 지식인은 운동권 세미나 모임에서 탄생한다는 식이다. 어용과 진짜를 구분할 뿐이다. 지식인의 위상 자체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왕에게 비판적인 상소를 하는 재야 선비와 이론 논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대의 실천적 지식인은 과연 어떻게 다른가. 그 차이를 명백히 설명하지 못했다. 한복 대신 티셔츠를 입었을 뿐, 조선 시대 재야 선비와 거의 비슷한 정서를 지닌 경우도 흔했다.

이는 다시 시험과 학위에 바탕을 둔 지식인 양성 체계에 순응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요컨대 모의고사 치는 교실과 운동권 세미나 모임이 아주 다른 토양은 아니었다. 실제로 86세대 운동권 가운데 많은 수가 고시 준비 혹은 대학원 진학을 택했다.

그리고 나머지 가운데 상당수는 취업을 했다. 86세대가 취업할 무렵에는 ‘비정규직’이라는 용어가 없다시피 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적었다. 이들이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나니,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다. 이 무렵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아울러 비정규직이 확대됐다. 구조 조정이 활발해지면서, 자영업 창업에 내몰린 이들이 늘었다. 식당처럼 문턱이 낮은 자영업은 생존 경쟁이 극심해졌다.


성문 안과 밖을 가르는 기준, 시험

살아남은 대기업 정규직은 저절로 높은 신분이 됐다. 다른 부류, 즉 중소기업, 비정규직, 자영업자 등의 위치가 확 낮아진 탓에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스스로 높아졌다기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 탓에, ‘높은 신분’이라는 점을 종종 잊는다. ‘높은 신분’ 맞다. 그들에게만 나눠주는 참기름 상자, 그들만 타는 통근버스, 그들만 들어가는 휴게실…. 성 안에 있는 이들에겐 공기처럼 자연스럽다. 성 밖 사람들은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몸수색을 당한 뒤에야 잠깐 구경할 수 있는 것들이다. 몸수색 당할 때마다 제 신분을 확인한다.

성 안팎 사이에 차별이 있다고 하면, 성 안에 있는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누리지 않던 것을 빼앗아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공기처럼 원래 누리던 것들이다. 참기름 상자와 통근버스, 휴게실은 취업할 때부터 있던 것들이다. 그래도 차별이 있다고 계속 이야기하면, 그제야 논리를 짜낸다. 답은 정해져 있다. 시험이다. 정규직은, 시험 쳐서 얻은 신분이다. 마치, 조선 시대 양반이 문과-무과 과거 급제로 보증된 신분이듯.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지식과 시험의 권위를 의심해본 적은 없었다.

86세대 ‘메이저캠’ 운동권 출신 작가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은 그래서 꼼꼼히 읽어볼 만하다. 작가 또래 중산층의 생각과 정서가 잘 녹아있다.

예컨대 86세대 중산층 눈에 비친 하위직 공무원은 그냥 따분한 직업이다. 주인공 김기영은 북한에서 태어나 간첩 교육을 받고 남파돼 사업가가 됐다. 주인공은 모르고 있지만,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그와 그의 부인을 늘 감시한다. 소설 속 국정원 직원 박철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문득 박철수는 미치도록 부자가 되고 싶었다. 이런 공무원 생활은 지긋지긋 했다. 매달 정해진 날마다 온갖 자질구레한 항목들이 망라된 월급으로 신용카드 대금을 치르고 그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퇴직 후에 나올 연금에 매여 모든 것을 참아가는 삶. 이렇게 살면서도 장마리 같은 여자를 매료시킬 수 있는 걸까?(201쪽)”

공무원 일을 해본 적 없어 모르겠으나,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공무원은 따분한 직업일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20대 청년에게 공무원이란 고용 불안에서 해방된 신분, 선망의 대상이다. 어떤 청년에겐 “공무원은 따분한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부러운 일일 수 있겠다. 공무원과 같거나, 적어도 비슷한 신분은 된다는 표시처럼 보일 테니까. 예컨대 양반 선비는 중인 신분인 의원(의사)이 궂은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중인보다 낮은 신분, 상민이나 천민 입장에선, 양반이니까 할 수 있는, 신분을 드러내는 말로 들린다.

앞서 적었듯, 현대 한국인들은 족보 대신 시험으로 신분을 정한다. <빛의 제국> 속 간첩들은 북한에선 모두 같은 신분이었다. 남파 이후 맡은 역할은 달랐다.

“‘그 친구 말이야. 북극성.’

기영이 말했다. 이필은 기네스 잔을 비웠다. 갈색 거품이 더러운 진흙처럼 유리잔에 들러붙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학 시절에 같이 뭘 한 적이 있었어.’
‘맞아. 당신은 대학을 다녔었지.’
‘맞아. 그래서 지금 내가 한정훈이나 당신보다 잘 사는 거지.’

이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자본주의 아니겠어? 양극화, 학력차별, 부의 세습. 팔십 대 이십의 사회.’
‘언제부터 좌파가 된 거야?’

그러나 이필은 농담을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구?’
‘아무 것도 아니야.’
‘뭐랬는데?’

그가 집요하게 물었다.

‘언제부터 마르크시스트였냐고.’

여전히 그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농담이라고 그랬잖아.’
‘무슨 농담이 그래?’

기영은 사과의 뜻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249~250쪽)

주인공 김기영은 남파 이후 검정고시를 쳤고, 한국의 여느 학생들과 똑같이 학력고사를 치렀다. 연세대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후엔 영화 수입 사업을 했다. 그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다른 간첩 이필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같은 남파 간첩이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김기영이 농담처럼 던진 말을, 이필은 이해하지 못한다. 북한에서 자라서 간첩으로 남파됐다는 사실보다, 남한에서 대학을 다녔는지가 더 중요한 정체성이다. 농담은 신분이 같아야 통한다. 대학을 다닌 이들끼리만 통하는 농담은 신분의 상징이다.  

조선 시대엔 족보와 시험으로 신분을 정했다. 현대 한국에선 시험으로 신분을 정한다. 족보가 빠졌다. 조선과 한국은 딱 그만큼 다르다.

어떤 이들은 반발할 것이다. 재능과 노력을 검증하는 시험으로 신분을 정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현실에선 ‘수저 색깔’이 신분을 정하는데, 그게 정말 나쁘지 않느냐고. ‘높은 신분’에 꼭 시험 엘리트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기업가들 역시 포함돼 있지 않느냐고.

어느 정도는 맞지만, 어느 정도는 틀렸다고 본다. 다음 회에선 이 문제를 다룬다. <빛의 제국> 속 주인공 김기영은 영화 수입 사업을 한다. 그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갈 예정이다. 

성현석 / <프레시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