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의 무당층’ 넘어 ‘나를 대변할 정당’으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양쪽 출신 인사들이 만든 바른미래당은 독자적인 차별성을 꾀하고 있지 못합니다. 민주당보다 진보적, 좌파적이라고 평가받는 정의당 역시 민주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중평입니다. ‘그냥 차라리 두 거대정당 중 하나를 찍겠다’거나 ‘그 소수정당이 잘 되면 좋겠지만 너무 어려워 보인다’는 회의에 봉착합니다.
2019년 9월 9일부터 11일까지 SBS가 여론조사기관 칸타코리아에 의뢰해 실시된 정당 지지율 조사가 눈길을 끕니다. 19세 이상 성인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고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p인데요(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링크)을 참조).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지지 정당이 없다” 또는 “모르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38.5%까지 치솟았습니다. 무당층이 40%에 근접한 것입니다.

과거엔 흔히 두터운 무당층을 두고 ‘정치 무관심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는 정치 무관심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2012년 제19대 총선 투표율은 54.2%였고, 2016년에 치러진 그다음 제20대 총선은 58.0%로, 투표율이 상승세를 탔습니다. 2012년 제18대 대선 투표율은 75.8%, 2017년 제19대 대선 투표율은 79.2%입니다. 투표율이 낮기 일쑤인 지방선거도 2018년 투표율은 60.2%였습니다. 지선 투표율로서는 23년 만에 최고치였습니다. 그 사이에 있었던 최순실 게이트, 촛불항쟁, 박근혜 탄핵을 감안하면, 정치적 열망은 양적인 측면 이상으로 질적으로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투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정치적 관심도 꽤 높아지고 깊어졌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정치적 열망이 높은데도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 들어 정부와 여당의 국정운영에 실망한 사람이 늘면서도, 제1야당 등이 이들을 흡수하지 못했다는 진단이 많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던 여론조사 기관이 2018년 12월 27일과 28일에 실시한 조사 결과(링크)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한 당시 조사에도 지지 정당이 없거나 모르겠다는 사람은 43.5%나 되었습니다(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p). 무당층을 모으면 제1당 지지층을 능가하는 현상은 근래에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무당파 강세’는 무당파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현재 자신의 지지 정당을 지목하는 사람조차도 과연 그 정당에 일체감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 따져볼 일입니다. 정치 관심에 비례하지 않는 탈정당적 현상은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2018년 6.13 지방선거 직후 격인 6월 17~18일에 여론조사기관 케이스탯리서치(옛 월드리서치)와 함께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입니다).

이 조사를 꺼내온 이유가 있습니다. “나를 대변해주는 정당이 있는가?”라는 문항이 있었습니다. 지방선거 직후의 여운 속에는 자신이 지지/반대한 후보나 정당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는 편입니다. 당시 선거 득표율은 60%를 살짝 넘겼습니다. 혹시 그만큼의 비율로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다”가 나오지 않을까 추정될 법도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41%였습니다. “없다”는 49%였습니다. “모름”이나 “무응답”을 택한 사람까지 합치면, “나를 대변해주는 정당이 있다”에 긍정하지 않은 사람이 6할 가까이 됩니다.


연령별 차이도 흥미로웠습니다. 30대에서는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다”와 “없다”가 47% 대 44%, 40대는 51% 대 44% 였습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정당과의 일체감이 높은 세대입니다. 50대는 45% 대 49%였습니다. 그런데 60대는 33% 대 47%였습니다. 그리고 20대에서는 “있다”는 29%로 가장 낮고, “없다”는 무려 61%나 되었습니다. 오래 정치를 겪어온 60대 이상 층에서도 현존 정당에 불만이나 아쉬움이 있고, 유권자층에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대층도 현재 정당 체제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60대와 20대의 투표율이 낮지도 않습니다. 2017년 9월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19대 대선 투표율’ 분석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은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인 79.1%를 기록했습니다. 20대는 30대(74.2%), 40대(74.9%)보다 높은 76.1%를 기록했습니다. 20대의 정치 성향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이 있지만 적어도 과거처럼 ‘탈정치화’되었다는 평가는 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20대를 위시해서 많은 유권자가 정치적 열의와 무관하게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권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정치 노선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진보-중도-보수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것은 진보적으로 어떤 것은 보수적으로 사고하는 유권자도 많아지는 편이고, ‘진보/보수’의 기준부터가 여럿입니다. 어떤 이들은 남북통일에 대한 입장으로 진보/보수를 가르고, 어떤 이들은 복지 문제를 놓고 진보/보수를 나눕니다. 무상급식에 찬성하고 남북통일에도 찬성하는 유권자는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 거꾸로 무상급식과 남북통일에 모두 반대하는 유권자는 자신을 ‘보수’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무상급식 찬성/남북통일 반대이거나, 무상급식 반대/남북통일 찬성인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이들이 자신을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평가하는지도 엇갈립니다.

그런데 현실 정치 세력은 이런 유권자 지형에 맞게 편성되어 있나요? 상식적으로, 유력한 정당의 수가 적을수록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 국회는 어떤가요. 거대 양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전체 국회 의석의 80%가량입니다. 2개 정당이 다양한 민의를 대변하기 힘들다는 것은 충분히 추론 가능하지요. 거대 양당 밖에도 20석 이상을 가진 원내교섭단체가 하나 더 있고, 국회에 의석을 가진 정당은 모두 7개입니다. 양당제의 전형인 미국보다는 정당이 다양하게 있기는 합니다. 이미 ‘다당제’에 해당한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두 개 정당의 구심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국민들도 정치권을 크게 둘로 나눠서 읽는 데 익숙합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양쪽 출신 인사들이 만든 바른미래당은 독자적인 차별성을 꾀하고 있지 못합니다. 민주당보다 진보적, 좌파적이라고 평가받는 정의당 역시 민주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중평입니다. ‘그냥 차라리 두 거대정당 중 하나를 찍겠다’거나 ‘그 소수정당이 잘 되면 좋겠지만 너무 어려워 보인다’는 회의에 봉착합니다.


민주당과 한국당 같은 거대정당은 그럼 안정적일까요? 아닙니다. 거대정당은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세력을 품을 공산이 높습니다. 당내에서 안정적인 합의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룰 수도 있습니다만, 이 경우에도 당내 소수파에게는 선택을 강요하는 꼴이 됩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한 일부 정치인이나 지지층 일각의 불만을 초래하게 됩니다.

거대정당 내부의 통합만 힘든 게 아닙니다. 거대정당 둘이서는 합의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둘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십시오. 1 대 1로 의견이 갈리면 둘이서 어떤 일을 함께 하기 어렵습니다. 둘을 중재하거나 다른 안을 내거나 2 대 1을 만들어줄 수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을 때와는 다릅니다. 또한, 거대정당 둘이서 합의를 해도 문제입니다. 그 둘이 대변하지 못한 또 다른 세력이나, 거대정당 내부의 소수파나, 앞에서 들여다본 무당층 가운데 결정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거세게 항의를 해올 수 있으니까요.

이래저래 유권자들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가 낳은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당 체제를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거대 양당 중심 정당체제는 다자간의 협상이 익숙하지 않고 이분법에 구애받는 한국사회의 문화에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다른 제도나 룰을 손본다고 해서 정치가 더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다만 그 역으로, 제도와 룰을 바꾸지 않음으로써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좁아지는 측면도 무시 못 합니다. 본 연재에서는 이를 부각시키고자 합니다. 그래서 ‘선거제도’를 주제로 놓고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제도권 정당의 수와 크기는 ‘선거제도’를 따라갑니다. 선거제도와 정당체제의 연관성을 다룬 가장 기본적이고 유명한 법칙 ‘뒤베르제의 법칙’이 있지요. “단순다수대표제가 양당제를 가져 오고, 비례대표제가 다당제를 가져온다.” 물론 선거제도가 단순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만으로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제도에도 여러 다양한 제도가 있고, 여러 제도가 섞이거나 뭉쳐짐으로써 한 정치 체제의 선거제도가 구성되기도 합니다. 가능한 샅샅이 이 제도를 살피기로 하겠습니다.

그간 ‘선거제도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그것이 내 삶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르겠다’는 호소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활동하면서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 나름대로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도표나 자막을 쓸 수 없는 라디오 및 오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선거제도를 설명해왔으니, 이렇게 글로 독자를 만나 뵙는 것은 한결 쉽기도 할 것 같습니다. 시사평론 외에도 정당 실무, 기초의회 등 여러 현장에서 활동하며 깨달았던 이치들까지, 여러분의 이해를 돕는 데 쓰겠습니다.

김수민 /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자 · 전)구미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