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협동조합

     

21세기에 우리는 그람시가 경험한 세계 전쟁 상황이나 그가 전망한 세계 혁명의 대격동 자리에 그보다 더 심각한 전 인류적 상황을 대입할 수 있다. 아니, 대입해야 한다. 그것은 기후 위기로 나타나는 지구 생태계 위기다. 이 위기 속에서 각 사회는 급격한 변화로 내몰릴 것이다. 이때 강력한 협동조합 부문 같은 민중 세력의 “경제적 중핵들”을 갖춘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대응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사회주의와 협동조합

이탈리아 민족주의 진영의, 참견하기 좋아하는 경제학자 알프레도 로코Alfredo Rocco 교수[1] 는 다음 같은 강력한 반론을 통해 사회주의의 집산주의적 강령을 박살냈다고 자신한다. 이탈리아의 국부는 800억 리라에서 1,000억 리라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임금 소득자가 자본가에 비해 엄청나게 많기에, 만약 생산 이윤을 모두가 집단적으로 나눠 갖는다면 하층 노동자의 개인적 복지 증대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다. 이 경우, 한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이행하며 맞닥뜨릴 위기를 굳이 감내하며 이행에 나서자고 정당화하기란 틀림없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유치한 반론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의 목적은 단지 최종 생산물의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의 투쟁 그리고 이 투쟁을 통해 이뤄낼 혁명의 도덕적 정당성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기존 생산수단[의 소유 형태]을 비판하면서 획득하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생산성을 제약하는 저 모든 인위적 요소들을 집산주의를 통해 제거하면 생산의 리듬 자체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이러한 요소들 가운데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것은 개인들 사이에 부의 분배가 순전히 운에 따라 이뤄진다는 점이다. 기업가가 되는 것은 거의 항상 자본가이며,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과업에 필요한 지성과 기술적 역량을 지녔는지 여부는 별 상관이 없다. 물론 부르주아 체제 자체도 이렇게 분배가 운에 따라 이뤄지는 현실의 비도덕성에 맞서는 방향으로 이미 일정하게 나아가고 있다. 은행과 주택금융조합은 도움이 필요한 사회 구성원을 위해 자본을 축적해주고 이를 보다 대담하고 능동적인 요소들의 지휘에 맡기곤 한다. 보다 최근의 발전된 사례로는, 자본을 보다 수익률 높게,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에 따라 결성된, 넓게 보아 산업 협동조합에 다름 아닌 주식회사들이 있다. 이들 주식회사는 부르주아 체제가 자본주의적인 고립된 원자 상태를 벗어나 나아갈 수 있는 최대치, 생산의 기술적 요소를 자본 공급과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대치다. 이런 이유에서 주식회사는 사회주의 입장에서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는 사회적 실험이다. 왜냐하면 이들 기업은 자본가가 결코 필수적 존재가 아니라는 진실, 회사 경영자와 기술직 간부가 이윤에 대해 땡전 한 푼도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순전한 봉급 노동자라 할지라도 경제의 핵심 동력인 진취적 기상[혁신 정신]이 약해지지는 않는다는 진실을 더욱 선명하게 입증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알프레도 로코(Alfredo Rocco)
만약 이런 형태의 자본주의적 협동조합조차 사회주의 선전의 내용을 확증해줄 수 있다면, 그럼 전혀 다른 계급적 경로를 밟아왔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과 긴밀히 결합된 토리노연합Alleanza Torinese[2] 같은 소비자 협동조합에서는 얼마나 더 풍부한 증거를 확인할 수 있겠는가?

소비는 사회생활에서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영역이다. 사람들을 두 계급으로 나누는 토대는 생산이지 소비가 아니다. 소비가 투쟁의 무대가 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오직 정치적 이유를 통해서다. 소비라는 싸움터에서 국가는 자본주의적 부르주아지의 행정 및 집행 위원회로서 소비를 국내 생산에 맞추기 위해 보호주의와 관세 장벽을 활용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다 소비자다. 따라서 이윤을 위해 소매 활동을 벌이는 소수를 제외하면, 전 국민이 가혹한 조치와 물가 인상에 맞서 단결하기 마련이다. 각각의 집단이 저항 수단도 다르고 저항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 또한 다를지라도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소비 영역에서는 계급 경계선이 얼마간 흐릿하기 때문에― 협동조합 운동은 분명 그 본질이 사회주의적이라 할 수는 없으며, 이 운동이 오직 사회주의 강령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진한데다 해악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협동조합 운동 덕분에 모든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엄청난 이득(이전 호에서 ‘o.p.’가 잘 묘사한 이득[3] )은 논외로 하더라도, 토리노연합 모델에 따른 협동조합은 사회적 책임의 사회주의적 의미를 정제하고 제련하는 거대하고 인상적인 실험실이다. 예전에 조르주 소렐George Sorel[4] 이 노동조합의 사회 재건 과업을 찬양하며 쓰곤 했던 열정적인 어휘를 오늘날 한층 더 정당성을 갖고 토리노연합 같은 협동조합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토리노연합 같은 협동조합들은 사회주의의 경제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시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이들 협동조합은 종種이 다른 나무줄기에 접붙여졌다는 피할 수 없는 불리함 때문에 고통받는다. 생존하고 발전하자면 이에 얼마간 적응해야만 하며, 어쩔 수 없이 이 조건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억제하기 쉽지 않은 자신만의 생명력으로 타오르고 있으며, 또한 여전히 체제에 치유 불가능한 파열을 낳을 수 있다.

조르주 소렐(George Sorel)

게다가 자본주의 자체는 그 역사적 본질 면에서 부르주아적 현상phenomenon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부르주아적 상부구조superstructure, 즉 새로운 계급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고 난 다음에 세상에 보다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려는 투쟁을 통해 달성한 경제적 발전의 구체적인 형태다. 봉건 체제에 최초의 균열을 낸 것이 1789년 이전에 등장한 경제적 중핵들―이미 잠재적으로는 자본주의적이었지만 봉건 잔재에 숨 막혀하던―이었던 것처럼, 부르주아 사회의 바로 그 심장부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계급적 목적에 따라 창출하고 육성한 경제적 중핵들도 똑같이 부르주아 사회를 갈가리 찢는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비자 협동조합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되길 바라기만 한다면, 혁명적 역할을 맡을 수 있다. 현재의 형태 아래서도 이들 소비자 협동조합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일종의 연결고리다. 발전되고 강화되며 다양화되기만 한다면, 이들은 부르주아 체제를 직접 겨냥하는 대량의 무기가 될 것이다. 국민 생활을 총동원한다는 점에서 현대전이 과거의 전쟁과 다르듯이, 국제적 차원에서 생활 전반에 끼칠 즉각적이고 비상하게 광범한 영향이라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과 다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런 종류의 소비자 조직을 더 많이 성공적으로 탄생시킬 수만 있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해방의 그날에 맞닥뜨리게 될 심각한 위기를 더욱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랄레안자 코오페라티바L’Alleanza Cooperativa> 1916년 10월 30일

[주]
[1] 1875-1935. 이탈리아의 법학자, 정치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상법商法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나 ‘프롤레타리아적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극우 민족주의 진영에 합류했다. 초기 파시즘 이념을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파시스트당 소속 의원으로 활동했다. 
[2] 토리노협동조합연합의 줄임말. 1886년에 결성된 이탈리아협동조합연합의 토리노 지부다. 이탈리아협동조합연합은 처음에는 자유주의 성향을 띠었으나 사회주의 성향 협동조합들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1893년에 이탈리아전국협동조합동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토리노연합은 이 조직 안에서도 사회당 지지 성향이 특히 강했다. 
[3] Ottavio Pastore, ‘Il valore socialista della cooperzione’, in L’Alleanza Cooperativa, x, no. 112, 2 June 1916. 파스토레는 토리노협동조합연합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4] 1847-1922. 프랑스 사상가. 산업별 노동조합이 탈자본주의 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혁명적 생디칼리슴을 주창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의 노동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혐오는 B. 무솔리니를 통해 초기 파시즘의 형성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대표작 『폭력에 대한 성찰』(이용재 옮김, 나남출판, 2007).

[해설]
협동조합과 사회 변혁의 관계는 사회주의 운동의 오랜 토론 주제 가운데 하나다. 19세기에 시작된 근대 협동조합 운동의 가장 중요한 발원지는 분명 사회주의자들의 실험이었다. 최초의 소비자 협동조합이라 평가받는 로치데일 협동조합을 건설한 이들은 다름 아닌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의 제자들이었다. 또한 루이 블랑Louis Blanc을 비롯한 동시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생산자 협동조합에서 자본주의 기업을 넘어선 대안 생산 조직의 모범을 발견했다. 많은 비판적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도 이런 당대 사회주의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19세기 말에 대중적인 사회주의-노동운동이 성장하자 소비 협동조합은 노동계급 시민사회의 구성 요소로서 더욱 중요해졌다. 가령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은 개혁적 사회주의 노선을 제창하면서 대중정당과 노동조합 그리고 협동조합이 그 세 주체라 정리했다.

로치데일 협동조합

그러면서도 상당수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안에서 활동하는 협동조합, 특히 소비 협동조합에 의혹과 비판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개혁 노선보다는 혁명 노선에 가까울수록 더욱 그랬다. 이런 입장에서 보기에 소비 협동조합은 계급투쟁의 직접적 무대인 생산 현장과는 괴리된 부차적인 운동이었다.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생존하려면 이런 자조自助 운동이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라는 것이다. 협동조합 운동에 관심을 쏟은 이들이 사회주의자들만이 아니었다는 사실 역시 이런 경계심을 부추겼다. 자유주의자들과 가톨릭교회도 저마다의 입장에서 소비 협동조합에 주목하고 이를 장려했다. 따지고 보면 노동조합 운동에서도 자유주의와 가톨릭교회는 사회주의의 중요한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는 달리 생산 ‘계급’이 아닌 소비 ‘대중’의 정체성이 부각되는 소비 협동조합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주의, 가톨릭 세력과 훨씬 힘겹게 경쟁해야 했다.

흥미롭게도 이제 막 사회당 전업 활동가로 나선 25세의 그람시는 이 유서 깊은 논쟁에 의견을 보탰다. 1916년 무렵 그람시는 드디어 대학 생활을 접고 운동가와 문필가의 삶을 시작했다. 이때는 이탈리아도 제1차 세계대전에 영국, 프랑스 편으로 참전한 뒤였기에 그람시 또래의 다른 청년 사회당원들은 대부분 징집돼 전선으로 떠나야 했다. 그러나 척추 장애인인 그람시는 이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전쟁으로 필자 난을 겪던 사회당 토리노지부 기관지 <일 그리도 델 포폴로(민중의 함성)>의 정치면과 문예면 고정 필자가 됐다. 그러면서 간혹 다른 사회주의 계열 언론에도 글을 발표했는데, 사회당 지지 성향이었던 토리노협동조합연합의 기관지 <랄레안자 코오페라티바>도 그중 하나였다.

그람시의 논의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간단하게나마 이 무렵 이탈리아 협동조합 운동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통일 이전인 1850년대부터 이미 협동조합이 결성됐다. 처음에는 민족주의-공화주의 혁명가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의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 성향을 띠었고, 농촌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생산 협동조합, 소비 협동조합, 신용 협동조합이 다양하게 시도됐다. 지역적으로는 북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성장했고, 특히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이 협동조합 운동의 메카가 됐다. 1886년에는 최초의 전국 연합인 이탈리아협동조합연맹이 창설됐는데, 사회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장악한 뒤에 이탈리아전국협동조합동맹(이하 동맹)으로 이름을 바꿨다. 토리노는 북부 이탈리아 여러 대도시 가운데에서도 동맹에 속한 사회주의 성향 협동조합들이 강세를 보인 곳이었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동맹은 소속 조합 345개, 조합원 22만 명 규모로 성장했다. 뜻하지 않게도 제1차 세계대전은 이탈리아 협동조합 운동에 또 다른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정부는 전시 경제의 고질병인 투기와 암시장 문제를 해결하려고 소비 협동조합을 장려했고, 이념에 상관없이 여러 협동조합들은 이를 활용해 조직을 배가했다. (이탈리아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참고할 것. 스테파노 지마니, 베라 지마니,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송성호 옮김, 북돋음, 2012.)


그람시의 이 글은 토리노에서도 정부의 전시 정책 덕분에 소비 협동조합이 한창 조합원 수를 크게 늘리던 바로 그때 쓰였다. 그람시는 이후 파시즘의 개창자 중 한 사람이 될 A. 로코의 사회주의 비판에 응수하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마치 임금기금설의 논리처럼 로코는 이탈리아의 국부가 정해져 있다고 가정한 뒤에, 이 국부를 노동자 전체에게 분배한다면 개인에게 돌아갈 몫은 미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자에게조차 사회주의가 별로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그람시의 답은 사회주의란 단순한 분배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고전 사회주의자들처럼 그람시도 사회주의가 무엇보다 생산의 문제임을 강조하며, 노동계급이 생산수단을 통제하게 된다면 생산성 향상으로 국부의 크기 자체가 달라질 것이므로 로코의 사회주의 비판은 통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그람시의 논의는 자본주의가 야기할 수밖에 없는 분배 모순, 자본주의하에서 이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등장한 주식회사와 같은 대안, 자본주의적 대안인 주식회사와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지는 협동조합의 장점 등으로 이어진다. 아주 짧은 논설임에도 지금까지도 대안 경제를 논하는 이들 사이에서 뜨거운 쟁점인 거창한 주제들이 어지럽게 쏟아진다.

하지만 이 글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소비 협동조합이 갖는 의의와 한계다. 그람시는 당대의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소비 협동조합이 생산이 아닌 소비 영역의 조직이기에 사회주의 운동의 기관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언급하면서도 청년 그람시는 사회주의 운동 전반에서 협동조합이 수행하는 적극적 역할을 애써 강조한다. 토리노협동조합연합처럼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기만 한다면, “사회적 책임의 사회주의적 의미를 정제하고 제련하는 거대하고 인상적인 실험실”이 될 수 있다고까지 한다. 혁명적 생디칼리슴의 주창자 소렐이 노동조합을 탈자본주의의 주역으로 바라본 것처럼 협동조합도 그런 미래 사회의 싹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람시의 구상은 개혁적 사회주의자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개혁주의자들은 협동조합 부문의 성장 자체를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과정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확연히 앞서가는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의 협동조합 운동을 이탈리아 사회주의 운동의 대표적 성과로 내세우기도 했다. 나중에 그람시는 이것이야말로 이탈리아의 구세대 사회주의자들이 북부 노동자의 경제주의적 이해 추구와 사회 변혁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비판했다. 단지 협동조합 부문이 성장한다고 하여 새로운 사회로 나아간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람시는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협동조합(비록 소비 협동조합에 머물더라도)이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부르주아지는 봉건 체제 안에 “경제적 중핵들”을 창출해 이를 바탕으로 정치 투쟁을 거듭한 끝에 자본주의 사회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프롤레타리아트 역시 자신의 “경제적 중핵들”을 구축해 부르주아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고 내파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청년 그람시가 말하는 “경제적 중핵들”이 이후 “진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게 될 구상의 한 원형임을 감지할 수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1916년)

특히 그람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경우는 부르주아 혁명에 비해 이런 “경제적 중핵들”의 존재가 더욱 중요할 것이라 전망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국제적 차원에서 생활 전반에” “즉각적이고 비상하게 광범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국제 전쟁은 이탈리아 사회를 전에 없는 격동에 몰아넣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그람시는 세계혁명일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 혁명이 세계 전쟁만큼이나, 아니 더 심각하게 각 국민국가를 위기 상황에 내몰 것이라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 국면에서 소비 협동조합의 유무는 결정적인 변수 중 하나로 떠오를 것이다. 강력한 협동조합 부문이 있는 사회주의 운동은 없는 경우에 비해 이 필연적인 위기를 훨씬 수월하게 견뎌낼 것이다. “경제적 중핵들”이 곧 변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중핵들”이 갖춰져 있어야만 변혁은 승리로 마감될 수 있다.

21세기에 우리는 그람시가 경험한 세계 전쟁 상황이나 그가 전망한 세계 혁명의 대격동 자리에 그보다 더 심각한 전 인류적 상황을 대입할 수 있다. 아니, 대입해야 한다. 그것은 기후 위기로 나타나는 지구 생태계 위기다. 이 위기 속에서 각 사회는 급격한 변화로 내몰릴 것이다. 이때 강력한 협동조합 부문 같은 민중 세력의 “경제적 중핵들”을 갖춘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대응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전자는 보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사회의 생태적 재편을 달성할 수 있을 테지만, 후자는 파국 속에서 엄청나게 퇴행할 가능성이 높다.

1916년에 쓰인 청년 그람시의 이 글은 그래서 2019년의 우리에게 묘하게 현재적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이미 청년기부터 혁명을 파국과는 다른 과정, 아니 달라야 하는 과정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려 한 그람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그람시의 필생의 고민은 고전 사회주의자들이 예측한 경제적 파국보다 훨씬 더 심각한 파국(생태적 파국)을 예감하고 있는 우리에게 지나간 과거의 사상이 아니라 너무도 급박한 현재의 요청으로 다가온다.

장석준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