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 짱’은 우리의 대표인가? : 소선거구-단순 다수제

     

이렇게 과반 득표에 미달하더라도 2위 후보보다 조금이라도 표를 얻으면서 당선된 경험을 한 정치인 그리고 그의 소속 정당은 현행 선거 제도를 유지하는 일에 사활을 걸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듭 거치면 유력 정당에 몰리는 표는 늘어나고 선거 구도는 단순화된다. 이는 유권자의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쉬운 선거 제도’가 ‘강요된 선택’을 낳은 셈이다.

2018년 12월 14일,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은 바른미래당의 바른미래연구원의 의뢰를 받고 ‘선거제도 관련 국민인식 조사’를 실시했습니다.(링크)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응답자는 55.5%로 나타나, 현행 유지를 지지하는 응답자 30.9%를 앞질렀습니다. 선호하는 정치체제에 대한 설문도 실시되었습니다. ‘양당제 구도’를 지지한 응답자는 27.2%였고, ‘다당제 구도’를 지지한 응답자는 그 두 배인 55.5%를 차지했습니다. 그 밖에도 ‘양당제 vs 다당제’에 관한 여론조사 응답에서도 다당제가 크게 이긴 사례는 많습니다.

2016년 총선 결과는 2012년 총선 결과와는 다르게 국회에서 20석 이상을 가진 원내교섭단체 3개를 만들었습니다. 2017년 대선에는 TV토론에 5명의 후보가 출전했습니다. 최근 한국 시민들은 다당제를 지지했고 다당제를 경험했습니다.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양당제의 국가 미국에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2019년 1월 12일,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셧다운, 영국의 브렉시트 같은 교착 상태의 원인으로 ‘소선거구-단순 다수제’와 합의가 어려운 양당체제를 지목했습니다. 셧다운은 미국 의회와 행정부에서 예산을 확정 짓지 못해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사태입니다. 미국식 양당제 정치에서는 한쪽 당이 의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는 매우 쉽지만, ‘51로도 100을 결정하는’ 제1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정치문화가 있고 제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한국에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그런 제도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양당 사이에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치한 채로 세월만 보내게 됩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교착을 만들어낸 원인으로 ‘소선거구-단순 다수제’를 지목했습니다. 이 기사는 현재 정치의 한계를 이대로 극복할 수 없다면,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미국과 영국의 양당제가 ‘민주주의 본고장의 정치’라고 옹호하기도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목소리는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는 더 커질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개혁대상이 된 소선거구-단순 다수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등만 당선시키는 제도

‘소선거구제(Single-member Constituency System: SCS)’는 한 선거구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제도다. 반대 개념으로는 ‘중대선거구제’가 있다.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의원을 뽑는 선거구이다. ‘중선거구’와 ‘대선거구’의 구분은 분명하지 않다. 일부 교과서에서는 2~4인을 선출하면 ‘중선거구제’, 5인 이상을 뽑으면 ‘대선거구제’라고 분류한다. 양쪽을 분명히 가르는 선이 흐릿하기 때문에 통칭해서 ‘다인선거구’라고도 한다.

‘단순 다수제(Simple Plurality System)’는 선거를 한 번 실시해서 후보자별 득표순으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정당별로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 1차 투표를 통과한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번 더 투표를 해서 절대적 우세(과반 득표)를 한 후보를 당선시키는 ‘2회 투표제’가 그 반대편에 있다.

완전한 소선거구-단순 다수제를 실시하는 선거는 전체 선출 인원만큼 선거구를 나눠, 선거구별로 1명씩 선출한다. 미국과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유럽국가 가운데는 영국이 유일하다. 영국 연방에 속해온 캐나다도 이 제도를 채택했고, 뉴질랜드도 선거제도 개혁 이전에는 소선거구-단순 다수제였다. 예멘, 가나,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케냐, 탄자니아, 콜롬비아, 자메이카, 마이크로네시아, 파푸아뉴기니 등이 이 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다.

소선거구-단순 다수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국가들 

한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1공화국 이승만 정권기에 이 제도를 시행했다. 4.19혁명 직후 2개의 국회를 갖는 양원제에서 민의원은 소선거구제, 참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2~8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했다. 5.16 쿠데타 이후에는 소선거구에서 선출된 지역구 의원 외에도 지역구 선거 결과를 놓고 각 당별로 의석을 배분하는 전국구가 만들어짐으로써, 영미식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에서 벗어났다. 전국구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는 점차 개선되어 현재 한국 국회는 ‘소선거구 지역구 의원+한정된 의석을 정당지지율에 비례해서 배분한 전국구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선거구-단순 다수제의 가장 큰 매력(!)은 쉽고 직관적이라는 데 있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씩을 선출하기 때문에 각 정당에서도 한 명씩을 공천하고, 유권자도 한 표씩을 행사한다. 어차피 1등만 승리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적으므로 ‘후보자 난립’도 방지된다. 개표 결과도 ‘어느 당 어느 후보에 몇 표’씩으로 딱 떨어지고 끝이다. 모든 의석은 아니지만 지역구 선거를 소선거구제로 치러온 한국 국민들도 이 제도의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제도는 쉬울수록 좋다’는 원칙을 따르자면 이만큼 좋은 선거제도도 없다. 2019년 현재 자유한국당은 국회의원수를 300명에서 270명으로 줄이고, 전국구 비례대표를 없애면서 270명 전부를 소선거구에서 선출하는 영미식 완전한 소선거구-단순 다수제를 주창하고 있다.

또 이 제도에서는 누가 어느 지역의 대표인지가 분명하다. 세계사에서,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민주 선거가 도입되던 초창기에는 의회 의원들은 각 지역구에서 보낸 대표자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영국은 1884~1885년 ‘제3개혁법’을 기점으로 한 선거구에서 여럿을 선출하는 제도에서 소선거구제로 변경했다). 한국도 특히 지방자치 도입 이전에는 ‘지역 대표로서의 국회의원’을 중시했고 지금도 그런 정치 문화가 남아 있다.


알고 보면 어렵고 힘겨운 선거제도

하지만 소선거구-단순 다수제가 쉬운 선거제도라는 것은 투표에서 개표까지만 진실이다. 이 제도는 유권자를 갈등에 빠트린다. 1등만 하면 당선이라는 것은 몇 표를 얻든 1등은 당선이라는 뜻이다. 2008년 총선에서 논산, 계룡, 금산 지역에 출마한 무소속 이인제 후보는 27.7%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유효투표를 한 유권자 중 반의 반 정도만 지지한 후보자를 ‘지역 대표’라고 불러도 무방한 것일까.

물론 이런 선거 결과는 소수에 해당한다. 표가 뿔뿔이 흩어진 결과 ‘소수 득표 당선자’가 나오게 되면, 정치세력은 조금 더 표를 모으기 위해 응집하고 통합하기 마련이다. 다자구도 선거는 점차 더 단순하게 정리된다. ‘뒤베르제의 법칙’에 따르면 소선거구-단순 다수제는 양당제를 강력하게 추동한다. 한 자리뿐인 당선자 자리를 향해 정치세력은 최대한 결집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미국 국회에는 공화당과 민주당만 존재한다.

거대정당 A당 a후보 아니면 거대정당 B당의 b후보. 많은 경우 이런 식으로 선거 구도가 흘러간다. 일단 거대정당 쪽으로 정치 지망생이 쏠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 당이 아니면 당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당에 들어간다고 당선이 쉬운 건 아니다. 그 당의 후보로 출마하려면 험난한 공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천을 어떻게 할지 룰을 정하는 데서부터 싸움이 일어난다. 공천 방식은 크게 당원 경선, 당원이 아닌 시민도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경선, 어떤 기준에 따라 정당이 경선을 생략하고 특정 후보를 지명하는 하향식 전략 공천 등이 있다. 경선 방식은 현역에 너무 유리하고, 전략 공천은 비민주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어떤 방식이든 당내 갈등은 깊어진다.


선거에 나올 후보들이 확정되면 유권자도 고민에 빠진다. 자신의 정치 성향이나 나름의 판단에 따른 선호 인물이 있지만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 거대정당 후보는 이미 당선가능성이 꽤 높기 때문이다. 거대정당 A와 B가 있다면, A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B당은 절대로 당선시켜서는 안 된다는 유권자들이 상당수 있다. 만약 이 경우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가 A당 후보가 아니라면 유권자는 깊이 갈등한다. 당선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지지해서 최악의 후보를 막을 것인지, 아니면 최선의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

후보가 둘 뿐이 아닌 이상, 후자에 해당하는 유권자는 늘 있다. 그리고 선거 결과를 이들이 ‘좌우’하기도 한다. 예컨대 거대정당 A와 B에 더해, A당보다는 B당에 가깝다고 간주되는 C당의 후보가 나왔다고 가정하자. 선거 결과 A당 후보가 1위로 당선하고 B당 후보는 2위로 낙선했다. 그런데 B당 후보의 득표에 C당 후보의 득표를 더하면 A당 후보보다 높다면? 단박에 ‘C당 후보가 사퇴하지 않아 A당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 경우 C당의 사무실 관계자가 취해야 할 행동은? 항의 전화를 피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거나 전화선을 뽑는 것이다. B당 지지자들은 C당을 원망하게 되고, C당 지지자들은 위축된다.

당선자 입장도 당당하지 않다. 유효투표 과반의 승인을 받지 못한 당선자이기 때문이다. 45% 득표율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나머지 55%에게 강력한 거부를 당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자신을 찍지 않은 나머지 모두가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 과반 득표에 미달하더라도 2위 후보보다 조금이라도 표를 얻으면서 당선된 경험을 한 정치인 그리고 그의 소속 정당은 현행 선거 제도를 유지하는 일에 사활을 걸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듭 거치면 유력 정당에 몰리는 표는 늘어나고 선거 구도는 단순화된다. 이는 유권자의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쉬운 선거 제도’가 ‘강요된 선택’을 낳은 셈이다.


민심에 비례하지 않는 위험하고 불안한 선거제도

각 지역에서 ‘그냥 1등’을 해서 당선된 의원들에게 지역 대표성이라도 있는지 의문이지만, 이들이 모여 전 국민의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지를 두고서는 더 심각한 회의에 빠지게 된다. 어떤 나라가 단순 다수 소선거구제로 5명의 의원을 선출한다고 가정하자. 5개 선거구에서 각각 1명씩 뽑는 것이다. 각 선거구 유권자는 10명이라고 치자. 이 선거 결과 전국 선거에서 정당이 후보자를 통해 거둔 득표의 총합을 따졌더니, A당이 50%, B당이 30%, C당이 20%가 나왔다. 어느 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게 맞는가? 그래도 A당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B당이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갈 수도 있다. C당은 몇 석 정도를 가져가는 게 적절할까? 5석 가운데 20%인 1석쯤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단순 다수-소선거구제는 어느 것도 담보하지 않는다. 각 선거구에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렇듯 한 정당이 후보를 내서 얻은 득표는 선거구별로 고르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특정지역으로 쏠린 채 해당 지역에서 1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전체 국회 의석을 집계한 결과, 득표 2위 정당이 1위 정당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선거 역사에서 대표 사례로 꼽을 만한 것이 1974년 2월에 있었던 영국 총선이다. 당시 보수당은 전국에서 37.9%를 득표해 노동당(37.2%)을 간신히 앞질렀지만, 전체 의석 중 노동당이 가져간 의석은 47.4%로 보수당(46.8%)보다 많았다.

물론 소선거구-단순 다수제에서 득표율 1위 정당이 의석 1위 정당이 되는 경우는 그래도 많다. 다만 50% 미만의 득표율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현상도 빈번하다. 1983년 영국 총선에서 영국 보수당은 42.4% 득표를 하고도 61.1%의 의석을 가져갔다. 마거릿 대처가 이끌던 보수당 정부는 강력한 권력을 업고 이듬해 탄광노조에 대한 가혹한 탄압에 들어갔지만 그들이 받은 표는 과반 미달이었던 것이다.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가지고 각종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거대정당이 실은 투표자 절반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영국 민주주의, 나아가 양당제의 급소이다.

어떤 이들은 안정된 정부가 들어서서 과감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의석을 몰아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반 미달 지지율로도 과반 의석을 얻어 의회에서 독주하는 것이 ‘안정’이라고 치자. 이 안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소선거구-단순 다수제가 거대정당에게 안기는 특수는 보수당만 누린 것이 아니다. 라이벌 거대정당인 노동당은 2001년 영국 총선에서 40.7% 득표를 하고도 의석의 62.5%나 가져갔다. 만약에 한 거대정당 A가 과반 의석을 차지한 지 얼마 안 되어 다른 거대정당 B가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A당이 실현한 정책은 금세 B당에 의해 뒤집힐 수 있다. 정부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꾸로, 한 거대정당의 과반 의석 차지가 길어진다면, 그것 또한 민의를 대변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독재에 가깝다.

또한 무엇보다 위의 시뮬레이션에서 C당은 20%의 지지를 얻고도 5석에서 단 1석도 챙기지 못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1석을 가져갔다면 A당과 B당의 팽팽한 대결 속에서 양측을 중재해서 결론을 내릴 일이 늘어날 것이다. 사안에 따라 때로는 이쪽, 어떨 때는 저쪽을 편들면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면 특정정당의 독주도 막고 의사결정은 원활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A와 B가 모두 한 통속이 되어 국민 상당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펴면, C가 반대하는 목소리라도 내줄 수 있다. 하지만 소선거구-단순 다수제는 사표 발생과 소수정당 차단을 통해 이런 길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다.

의회 운용도 의회 운용이지만, 투표자의 사기를 꺾은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C당을 지지한 표는 모두 죽은 표(死票)가 되었다. 사표가 그뿐은 아니다. A당과 B당을 지지했더라도 자신이 지지한 후보자가 해당 선거구에서 낙선했다면, 그 지지자의 표는 살릴 길이 없다.


단순 다수-소선거구제는 다당제가 형성되어도 문제

이런 상태를 탈피하는 과정에서도 또 폐해가 벌어진다. 소수정당은 제 몫을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도태된다. 다른 한편 거대정당은 자연히 상대방 정당의 지지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한다. 예컨대 진보정당은 보수화되거나 보수정당이 진보화되거나 아니면 둘 다다. 양쪽 중 하나라도 방향을 이동하게 되면, 두 정당의 차이는 그만큼 사라진다. 이때는 어느 정당이 힘을 더 크게 갖든 국가 정책의 연속성은 높아지겠지만, 유권자 소외 현상이 일어난다. 진보정당이 보수화되면 진보 유권자가, 보수정당이 진보화되면 보수 유권자가 주변으로 밀려나는 셈이다.

반대로 진보정당이 더 진보화되고, 보수정당이 더 보수화되어도 문제다. 상대 정당의 색이 짙어지면 자신의 정당 역시 그래도 된다는 여유가 생기므로, 이런 현상도 얼마든 가능하다. 이런 때는 양당의 중간에 있는 유권자들이 또 소외된다.

의원들의 행태도 살펴봐야 한다. 지역구 대표로 뽑힌 의원들은 국가 전체보다는 각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계층을 대변할 것인가’보다 ‘어느 지역의 이익을 챙기는가’를 두고 전선이 형성된다. 위의 도표로 치면, 1선거구에서 뽑힌 A당 의원과 4선거구에서 뽑힌 B당의 의원이, 도로 건설 예산을 두고 서로 자기네 지역으로 당겨가려고 혈안이 된다. 그리고 만일 두 의원 모두가 부유층만을 대변하는 정치를 한다면, 1선거구의 서민과 4선거구의 서민은 자기 지역구 의원과 이 나라 부유층을 떠받치는 유권자에 그쳐버리는 것이다.

개별 의원뿐만 아니라 정당도 ‘지역 이익’을 중심으로 놓는 성격이 강해진다. 현재 영국의 정치는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았는데도 어느덧 다당제로 넘어가 있다. 왜냐면 스코틀랜드 독립당, 북아일랜드 민족연합당, 북아일랜드 신페인당, 웨일스민족당 같은 지역 정당이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소수정당이지만 특정 지역에 표가 집중 분포되어 있어 몇몇 선거구에서 1위로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정당들이 다양한 민의를 대변하고 의회운영을 원활하게 하지는 못했다. 영국에 몸살을 안겨다 준 브렉시트 처리 과정이 그 방증이다.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결과(출처 : 위키백과)

한국은 이미 1988년 총선 이후 ‘지역구도에 기반한 다당체제’를 경험했다. 영국처럼 전적인 소선거구-단순 다수제는 아니지만 국회 의석 중 3/4를 그 제도로 선출했고, 나머지인 1/4는 전국구 지역이되 지역구 의석수에 따라 뽑았으니 ‘거의 전적인 단순 다수-소선거구제’였다. 그런데도 의석수의 10%를 넘기는 정당이 4개나 되었는데, 각각 대구경북(민주정의당), 호남권(평화민주당), 부산경남(통일민주당), 충청권(신민주공화당)을 기반으로 한 ‘지역주의’ 정당이었다. 그나마 이들이 각각 당시 집권세력, 진보적 민주화세력, 보수적 민주화세력, 구 집권세력이라는 이념적 정체성의 차이가 있어서 이념과 정책에 따른 다당구도 형성이 이뤄졌다. 사안별로 다양한 협력관계가 가능해서 ‘일이 되는 국회’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쳐 초거대정당을 구성하면서 다당제는 깨어진다. 1등만 하면 되는 선거제도를 유지한 이상, 다음 선거는 민정당과 평민당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고,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정의당과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소선거구-단순 다수제에서는 다당제도 정치 불안을 낳거나 혹은 양당제로 회귀하게 된다.

김수민의 정치현장 에피소드
무투표당선과 소주 4,956병

앞에서 내내 살폈듯 소선거구-단순 다수제는 1위 정당과 2위 정당에만 유리합니다. 하지만 모든 지역에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선거제도는 똑같은 표를 갖고 있어도 특정 지역에 표가 몰려 있는 정당에 유리합니다. 한국에서는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활동했던 경북 구미 지역도 이에 속합니다.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재선에 도전했던 저는, 어느 날 아침 한 아파트 앞에서 광역의원 재선을 노린 한 후보자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는 나오는 길이 아니라, 집에 들어가던 길이었습니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공천이 확정된 그 사람 말고는 아무도 후보로 등록하지 않아 무투표당선이 예정되었습니다. 한국 선거제도에서는 후보자 수가 뽑는 인원을 초과하지 않으면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투표 당일 무투표당선이 확정됩니다.

구미 지역에서는 6명의 광역의원(경북도의회 의원)을 뽑는데, 이해에는 무려 3개 선거구에서 3명의 무투표당선자가 나왔습니다. 새누리당 후보는 누구도 꺾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정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후보가 없었습니다. 그중 한 지역은 새누리당이 절대 강세인 지역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나머지 두 지역은 구미 지역 내에서 비교적 새누리당 지지율이 가장 낮은 지역인데도 그런 결과가 빚어졌습니다. 그 두 지역은 경북 도내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율이 낮은 지역으로 속합니다. 그런데도 겨뤄볼 기회도 없이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되었으니 경북도의회는 얼마나 새누리당이 독점했을까요? 60석 가운데 52석, 지역구 54석 가운데 48석을 챙겼습니다.

2년이 지나서도 특이한 선거를 겪었습니다. 구미 을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려 4,956표의 무효표가 쏟아졌습니다. 전체 투표자수의 6.6%가량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후보는 두 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후보였고, 다른 한 후보는 4선에 도전하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입니다. 타 정당에서는 어차피 당선이 어렵다고 판단했던 데다가 평소 지역에 구축한 조직이 부실해서 후보를 내지 못했습니다.

반-새누리당 성향 유권자들은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현역 의원을 심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억지로 새누리당 후보를 찍은 사람도 있었고, ‘새누리당 후보만큼은 절대 찍을 수 없다’면서 후자에 투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자가 후자에게 약 3천 3백 표차로 이겼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한쪽을 찍을 수 없다는 사람이 많았고 두 후보의 표차보다 더 컸습니다. 그나마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정당투표라도 없었다면 이런 투표자들 상당수는 투표장에 가지 않았을 겁니다. 소선거구-단순 다수제가 만든 극명한 현실입니다.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두 후보 이름 모두에 기표했습니다(무효표를 만들었습니다). 선거 끝나고 보니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수두룩했습니다. ‘무효표를 낸 5천여 명이 어디 모여서 소주 각 병씩 하자’는 재밌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 4,956명께 소주 한 병 대신 이 글을 헌정합니다.

김수민 /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자 · 전)구미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