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완성과 주민들의 삶

     

북한 당국은 시장을 없앨 능력이 없다. 사실 없애려는 의지도 없다. 다만 주민들을 권력에 의존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장을 ‘패대기’치는 연기를 할 뿐이다. 시장에 촉수를 박은 권력으로 인해 부는 차등적으로 배분되었다. 부익부ㆍ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었다. 시장은 돈을 빼앗아 오려는 권력 집단과 뺏기지 않으려는 주민과의 투쟁의 장이 되어갔다. 당국의 단속과 통제마다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장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1. 추상적 시장(abstract market)의 형성

교역과 화폐는 항상 우리 세계에 존재해왔다. 대외교역과 어느 정도의 화폐는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은 후대에 발달한 제도이다. 더구나 가격형성시장은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산물이다.

사람들이 서로 물자를 나누고 화폐를 사용한 것은 매우 오래전 일이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의 학자들은 화폐의 교환 기능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가격조정기능을 가진 시장도 화폐와 동일한 연원을 갖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시장과 화폐를 필연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제도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교역과 화폐사용이 반드시 시장이라는 의미를 내포할 필요는 없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시장이 고대 문명권의 어느 지역에나 존재한 것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바빌론이나 페르시아에서는 시장터가 발견되지 않았다. 최초의 도시 시장이 아테네에서 ‘베풀어진 것’으로 조사되었을 뿐이다.

시장의 첫 번째 의미는 ‘장소’라는 것이다. 그 전형은, 주로 식량 또는 생활필수품이 소량으로라도 원칙적으로 고정가격으로 팔리는 집 밖의 장소(site)이다. 두 번째 의미는 수요ㆍ공급ㆍ가격기구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교역이 이루어지지만 기구 자체는 반드시 특정 장소와 결부되거나 식량의 소매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터’(장소)라면 고고학자들의 관심영역이다. 그러나 ‘시장기구’라면 고고학자들이 아무리 정교한 발굴 삽을 가지고 있다 해도 발견할 수 없다.

두 종류의 시장 중 어떤 것이 먼저 생겼을까? 분명히 장소로서의 시장이 수요ㆍ공급형 경쟁 메커니즘보다 먼저 생겼다. 장소로서 시장은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다. 그렇지만 시장체제를 구성하는 가격형성시장은 기원전 1,00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었다 하더라도 호혜, 재분배 등 다른 지배적인 통합 유형에 종속되어 있었다. 가격형성시장이라는 자기조정체제는 서유럽에서 유래했다. 동지중해의 곡물 분배를 위한 기구로서 아테네에 시장이 처음 등장한 지 2천 년쯤 뒤의 일이었다.


2. 구체적 시장(concrete market)에서 추상적 시장(abstract market)으로

시장은 구체적 시장(concrete market)과 추상적 시장(abstract market)으로 나눌 수 있다. 구체적 시장은 장소적 개념으로 재화나 용역을 사고파는 ‘터’(market place)이다. 고고학적 성과로 볼 때, 문명의 기원과 거의 함께 시작했다. 북한의 농민시장이나 지역시장도 이러한 구체적 시장이라 볼 수 있다. 추상적 시장은 수요와 공급관계가 상호작용하여 가격이 결정되는 기제를 말한다. 굳이 장소적인 의미를 부가할 필요는 없다. 수요ㆍ공급이 작동하여 가격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재화나 용역이 배분되면 ‘시장터’(market place)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시장이 된다.

가격결정시장인 추상적 시장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이 시장이 성립하게 되면 각종 물적ㆍ인적 자원이 시장의 신호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이다. 추상적 시장이 등장하고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되면, 북한의 명령형 계획경제와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가격결정시장은 필연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형식적 척도, 즉 화폐의 존재를 요구한다. 조건이 갖추어지면 시장은 객관적 비교 척도에 의해 성립되는 사회관계를 확장시킨다. 가격결정시장은 기존의 사회적 구속을 무력화시킨다. 거래상대방과 생산물에 대해 객관적 태도를 취하게 한다. 개인과 사물에 특별한 의미부여 또는 감정적 개입을 차단한다. 공동체의 도덕, 사회적 의무 등을 거부하고 화폐로 측정되는 가치의 양적 비교가 행위의 준거가 된다. 그렇게 되면 통제와 도덕적 간여만으로는 인간을 평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추상적 시장은 인간관계를 계량화시키고 기존의 유대를 추상화한다. 동일한 재화는 동일하게 판매된다. 상대방의 지위에 의해 판매가격이 결정되지 않는다. 거래과정에서 기존의 위계는 무시된다. 시장 안에서 경제행위는 감정적으로 차갑다. 비동질적인 대상을 화폐라는 동질적 척도로 환원한다.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합리성만을 지향한다.

인간은 생존의 수단을 얻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자연과 이웃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가격결정시장은 자연과 이웃이 아닌 오직 시장의 통제 하에 놓이게 한다. 시장경제에서는 물적인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시장이라는 자기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른바 수요와 공급이라는 그 자신의 법칙에 지배되며, 굶주림의 공포와 이득의 희망이라는 단 두 가지 유인을 궁극적 요인으로 삼아 작동된다.

시장은 개인 간의 계약을 중시한다. 그리고 계약은 교환의 법적 측면이다. 그러므로 계약에 기초한 사회에는 제도적으로 분리되고 동기적으로 구분된 교환의 경제적 국면, 즉 시장이 필요하다. 반면 공동체에서는 신분을 중시한다. 공동체 성원 상호간의 관계는 계약으로 구속되지 않는다. 호혜성과 재분배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다. 북한은 공동체적 재분배질서가 와해된 후 자기조정 성격의 추상적 시장이 사회 과정을 지배하게 되었다. 인간의 일상생활이 시장을 통해서 조직되어 이윤동기에 기초하게 되고, 경쟁적 태도에 의해서 결정되며, 공리주의 가치척도에 지배되면, 그 사회는 오직 이윤이라는 목적에 적합한 조직체가 된다. 자기조정시장은 인간을 마치 단순한 원재료 덩어리인 것처럼 조직한다. 인간과, 이제는 물건처럼 거래되는 어머니 대지(大地)를 묶어, 오직 이윤을 위해 움직이는 산업의 구성단위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경제적 이윤동기가 절대화된 사회의 구성원은 그것을 다시 돌이킬 심리적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3. 도덕경제(moral economy)의 해체

7.1조치 이후 북한은 국가 주도의 화폐화ㆍ시장화의 길에 들어섰다. 권력은 과거 국가가 조직하고 통제해 왔던 사회적 과정을 시장에 떠넘기는 분권화 조치를 수행했다. 국가가 장악했던 생산ㆍ유통ㆍ분배ㆍ소비를 포함한 사회적 과정은 지배계층에게 분봉(分封)되고 있다. 그 대가로 국가영역은 화폐 공납을 수취하는 체제로 변화되고 있다. 공유자원(commons)의 일부는 남획되고 일부는 지배 권력의 ‘울타리치기’(enclosure)에 의해 급속히 사적 전유물로 바뀌고 있다. 국영상점을 통한 상품의 판매가 악화되자 공적 판매네트워크까지 개인에게 넘기는 것을 허용했다. 재정 악화를 덜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로써 최소한의 공공재 공급 의무마저 시장에 떠맡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정일은 북한의 체제위기 직전에 시장경제에 대해 이렇게 논평한 적이 있다.

시장경제는 사적소유와 개인주의에 기초한 경제입니다. 시장경제의 기본특징을 이루는 가치법칙의 무제한한 작용과 무제한한 경쟁의 지배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다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가소유의 공장, 기업소와 토지를 개인들에게 마구 팔아버리고 있으며 지어 그것을 외국 자본가들에게 헐값으로 팔아넘기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사적 소유에 기초한 시장경제를 끌어들이면서 그 무슨 경제적 번영을 이룩할 수 있을 것처럼 떠들어 대고 있지만 그것은 허황한 망상입니다.
김정일, “우리나라 사회주의는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 사회주의이다”(1990.12.27)

주민들의 임금, 재산, 소득, 그리고 각종 재화의 가격은 등가(等價)가 이미 아니다. 이제 그것들은 시장에서 형성된다.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정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에는 상상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도덕경제에 준거를 두고 있던 주민들의 사회적 행동은 변화했다. 수령공동체는 강한 결속력 하에서 예측되는 행위의 결과보다 신념을 더 중시하는 ‘가치 합리적 행위’가 추구해야 할 전범이었다. 그러나 시장이 삶을 조직하기 시작하자 목적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숙고하여 최적수단을 선택하는 ‘목적 합리적 행위’가 일반적 양식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북한의 시장화는 화폐화를 강화시키며 진행되고 있다. 화폐의 기능 중 교환의 매개수단은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또한 시장화를 촉진시킨다. 즉, 화폐화의 진전은 시장화의 중요한 조건을 형성하면서, 시장화 현상을 확산시킨다.

The Worker


4. 주민들의 시장적응과 화폐의존

화폐화가 진전됨에 따라, 주민들의 삶은 돈 없이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갔다. 주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하고 시장에 의존해야만 했다. 김정일이 지적했듯, 초보적 양심과 의리보다 돈이 중시되는 사회가 펼쳐졌다.

공산주의 도덕을 확립하는 사업은 낡고 반동적인 도덕과 온갖 패륜패덕을 반대하는 투쟁속에서 진행됩니다. 부르죠아 도덕은 사람들을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로 부추기며 돈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초보적인 량심과 의리마저 저버리는 황금의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김정일, “혁명선배를 존대하는 것은 혁명가들의 숭고한 도덕의리이다”(1995.12.25)

(1) ‘8.3돈’ - 인격과 의무의 분리

화폐의 척도기능은 인간도 대상으로 삼아 수행되었다. 바로 ‘8.3돈’이다. 무상배급이 사라진 이후, 북한 일반 노동자들은 임금만으로는 기본적 생존조차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 노동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장ㆍ기업소에 매달 일정 금액의 현금을 바치고 출근을 면제받았다. 이때 직장에 바치는 돈이 8.3돈이다. 그리고 이들을 ‘8.3노동자’라고 불렀다. 8.3노동자들은 출근을 면제받고 그 시간에 자유롭게 상행위를 할 수 있었다. 공장ㆍ기업소 입장에서도 남아도는 노동자를 잡아두는 것보다 출근을 눈감아 주고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었다. 상납 받은 돈으로 국가가 명령한 계획사업을 수행하거나 다른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쓸 수 있었다. 물론 간부들이 사적으로 전용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8.3노동자로 등록하거나 현금으로 출근을 대체하는 노동자들이 공공연해지고 일반화되었다. 이들은 가내 작업이나 시장, 각종 개인적 또는 비법적 생계 활동을 통해 수입을 얻었다. 그리고 얻어진 수입 중 정해진 금액을 직장에 납부했다.

인격적 의무를 돈으로 대체할 수 있는 8.3돈의 관례화는 화폐가 권력이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한 것이다. 이것이 8.3돈의 진정한 의미이다. 과거의 공동체에서는 인격과 의무가 분리되지 않았다. 화폐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격에서 그 의무가 분리된 것이다. 화폐 지불을 통해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화폐가 ‘지불(청산)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기능은 교환의 매개기능보다 오래되었다. 전형적인 것이 불법 행위에 대해 국가가 규정하는 ‘벌금’이나 ‘배상금’이다. 북한의 법률은 벌금, 배상금, 범칙금 등의 규정이 정교화되어 있지 않다. 화폐용법 중 지불기능이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기능은 고대부터 존재해왔는데, 짐멜은 7세기 영국의 ‘살인 배상금’으로 사례를 든다. 당시 영국에서는 평범한 자유민에 대한 살인 배상금은 200실링이었다. 다른 신분의 사람들에 대한 살인 배상금은 이 규준 금액을 분할하거나 배가함으로써 계산되었다. 이는 돈이 인간의 행위를 양적으로 어떻게 추계했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부연하면, 계산화폐가 인간의 행위를 측정하여 양적으로 표현한 후, 인격에서 분리한 행위를 화폐 지불을 통해 청산한 것이다. 8.3돈은 본질적으로는 살인 배상금과 동일한 구조를 가졌다. 북한에서 화폐는 시장에서 교환을 매개할 뿐 아니라, 수많은 주민들의 행위에도 정가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2) 시장에 매달린 주민들의 삶

북한에서 상업은 “주민들에 대한 공급사업이며 그들의 물질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업”이라고 규정된다. 그러나 주민에 대한 공급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과서가 아닌 현실에서, 상업이 갖는 의미는 전면적으로 수정되었다. 주민들에게 상업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박한 생존 활동이 되었다.

상업의 터전은 시장이었다. 시장 활동과 연계된 주민들은 개인 생산물을 시장에 직접 내다 파는 소생산자와 타인 생산물을 구입하여 되파는 전문 상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개인 텃밭을 경작하면서 자체적으로 두부, 기름, 술, 의류 등을 생산ㆍ판매하는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후자는 주로 쌀이나 수입품을 취급하는 상인들로서 거래 규모가 크다. 일부는 수입한 원자재를 자신이 운영하는 생산조직에 제공하여 생산된 물품을 내다 파는 경우도 있다.

상행위도 매우 다양한 형태가 있다. 예를 들어 적은 자본으로 소규모 물건을 갖춘 뒤 집집마다 방문하는 방식으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있다. 이들을 ‘똑똑이’라고 부른다. ‘메뚜기’라는 상인도 있다. 이들은 자본력이 약해 종합시장에는 못 들어가고 종합시장 밖에서 좌판 등을 펴놓고 장사하는 상인들이다. 메뚜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속원이 단속을 나올 경우, 메뚜기처럼 이리 저리 자리를 급하게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에 의하면, ‘메뚜기’외에도 시장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매우 많고 또 분화되어 있다. 물건을 날라 시장에 넘겨주는 ‘뜀뛰기군’ 또는 ‘달리기군’, 이들을 아파트 뒷골목의 ‘벌이뻐스’에 연결해 주는 ‘몰이군’, 무역회사와 짜고 수입상품을 통째로 들여와 파는 ‘차판 장사군’이 있다. 이 중 달리기군은 지역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상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중국 상품이 풍부한 청진과 농산물 가격이 싼 황해도 지역을 오가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다. 상인들을 매대와 연결해주거나 흥정판을 벌리는 ‘거간군’과 ‘흥정군’, 시장 앞 살림집에서 통제품을 파는 ‘살림집 밀매군’도 있다. 시장 앞 아파트 단지 내에 양복을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지역인 ‘옷촌’, 가방을 만들어 파는 ‘가방촌’, 그리고 ‘술촌’, ‘담배촌’이 형성되었다. 시장 주변의 살림집들에서는 장사꾼들의 상품을 보관해주고 식당을 차려놓거나 음식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심지어 기관ㆍ기업소에서도 각종 주문제작소를 만들어 놓고 공개적으로 돈벌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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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배 권력의 시장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그들은 불가역적인 추세가 되어버린 시장화를 거스를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권력화되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강ㆍ온 양면의 조치를 반복했다. 권력자들은 시장에 촉수를 박고 풍요를 빨아들이는 행태를 취했다. 여러 가지 국가적 이권을 나누고 이를 통해 발생한 이익을 현금화하는 수단으로 시장을 이용하기도 했다. 권력집단으로서도 시장은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다만 적당히 길들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장려하지만은 않았다. 시장을 베푼 권력자의 의도는 주민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에만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 집단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초과이윤을 얻었다. 더불어 초과이윤의 원천인 독점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시장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웃자라는 시장 세력을 뽑아 버리고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주로 비경제적 수단으로 시장을 압박했다. 그 방법으로 강제폐쇄, 상인들에 대한 구타, 상품 무상몰수 및 횡령, 추방 등을 활용했다. 지배 권력은 물리적 타격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권력 집단이 시장에서 돈을 뺏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 당국은 시장을 없앨 능력이 없다. 사실 없애려는 의지도 없다. 다만 주민들을 권력에 의존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장을 ‘패대기’치는 연기를 할 뿐이다. 시장에 촉수를 박은 권력으로 인해 부는 차등적으로 배분되었다. 부익부ㆍ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었다. 시장은 돈을 빼앗아 오려는 권력 집단과 뺏기지 않으려는 주민과의 투쟁의 장이 되어갔다. 당국의 단속과 통제마다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시장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위에서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주민들의 말처럼 굳세고 영악하게 압박을 버티어 갔다.

(3) 심화되는 화폐 의존

‘화폐’란 그것이 바로 화폐인 한에서는 결코 무해한 ‘지불 위임표’나 단순한 ‘계산 단위’로만 되지 않는다. 화폐로 생존을 유지시켜 줄 양식을 구할 수 있고, 징벌을 면제받을 수도 있다. 장판 밑이나 장롱 속에 숨겨 쾌락과 부를 미래에도 보장받을 수 있다.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북한 주민들은 화폐의 용법을 모두 마스터했다. ‘고난의 행군’을 지나면서 주민들은 국가를 바라보지 않는다. 국가를 믿고 배급을 기대하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해 준 것은 수령이 아니라 돈이었다. 기본적 생존을 보장하는 국가기능이 작동을 멈춘 상태에서 개인과 가족의 안전을 담보해주는 것은 오로지 돈이었다. 돈이 식량으로 바뀔 때, 돈은 ‘생명’이었고, 돈으로 의무를 면제할 때, 돈은 ‘해방’이었다. 돈을 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장사였다. 과거에는 장사를 미천하게 보았다. 김일성은 자주 상인들을 ‘간상’, ‘모리배’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장사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었다. 연줄과 뇌물을 통해서라도 시장에서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장사를 금지시켜도 “잡아가려면 잡아가라, 우리는 장사한다”고 말하곤 했다.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북한 사회에는 “여우와 승냥이만 남았다”는 말이 널리 퍼졌다. 여기서 여우는 ‘남의 것을 속여서 빼앗는 사기꾼’을 가리키고, 승냥이는 ‘깡패처럼 돈을 빼앗는 이’를 지칭한다. 그만큼 북한 사회 전체가 부족한 식량을 앞에 두고 큰 혼란을 경험했다는 말이다. 북한 사회는 이런 과정을 통해 ‘공동체’를 지향하던 기존 사회 흐름이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 흐름으로 크게 바뀌게 되었다. 공식 부문 또는 계획 부문은 계속 후퇴, 약화, 축소되었다. 반면, 시장 부문이 확장되었기 때문에 삶은 더 치열해졌다. 화폐에 대한 집착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민영기 / 동국대학교 외래교수,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