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컵은 결승전에서 : 결선투표제 등 절대다수제

     

결선투표제는 다당제의 형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에 머물 뿐 각 정당의 지지율과 의석수 사이의 비례성을 높이지는 못한다. 국민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는 데 부족함이 있으니, 정당들이 경합하고 합의에도 한계가 있다. 고로 우리는 추가적이거나 또다른 모색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지역구 선거가 낳은 지지율-의석수 불비례성을 고치고 바로잡는 장치를 만들거나, 혹은 1명만 선출하는 지역구 선거제도부터 바꾸는 길이다.

지난 시간에는 ‘소선거구-단순다수제’의 문제점을 살폈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씩만 선출하는 이 제도는 거대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나 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를 곤경으로 몹니다. 거대정당 역시 소수정당에게 표밭을 깎이다가 낙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정치에서 등장한 것이 ‘후보단일화’입니다. 선거구별로 당선자 자리는 한 자리고, 여러 정당이 경합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념이 비슷하거나 공통의 적이 있는 정당과 후보가 자체적으로 단일화에 나서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후보단일화’가 처음 부상한 것은 총선이 아닌 대선에서였습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하면서 민주화운동진영이 지지했던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와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 사이에서 단일화 논의가 있었고 이것이 실패했습니다. 대선 후보 단일화는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사이에서 이뤄졌습니다. 그 이후로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 및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집권여당을 심판하거나 정권을 교체하자는 명분 아래 야권의 정당 또는 후보들끼리 단일화가 이뤄졌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2019년 4월 3일, 창원 성산구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여영국 정의당 후보와 권민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단일화가 이뤘습니다. 민주당 후보가 사퇴하고 정의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야당끼리의 단일화가 아니라, 집권당 후보와 야당 후보의 이례적인 단일화였습니다. 결국 정의당 후보가 당선되었는데요. 이 같은 결과를 예상한 듯, 이 선거에서 후보를 내었던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중당 등은 단일화 직후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단일화로 인해 처지가 불리해진 정당들의 반발은 이해 못할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권 전체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일화를 불러일으킨 건 정치권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단일화에 성공했던 민주당과 정의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도 한편으로는 단일화의 피해자입니다. 민주당은 2012년, 2016년 총선에 이어 또다시 창원 성산에서 자당 후보를 사퇴시켰습니다. 정의당도 2016년 총선에 이어 또다시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통해 의원을 배출하면서 민주당에게 진 신세가 부담으로 남을 겁니다.

단일화를 한 정당과 못한 정당, 양보를 하는 정당과 받는 정당, 다수당과 소수당, 이 모두가 부담을 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후보단일화를 방지하거나 대신할 제도를 모색할 때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방법이자 ‘소선거구-단순다수제’를 극복할 방안 가운데 하나로, 결선투표제를 포함한 절대다수제를 다룹니다. 단순다수제가 상대적인 다수득표자를 당선시킬 뿐이라면, 절대다수제는 말 그대로 절대 다수의 의사를 확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당선’은 없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만 한 차례의 투표로 선출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확실한 대표성을 갖지 못한 대표자를 선출하고는 한다. 낮은 득표율이라도 1등만 하면 당선이기 때문이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헌법을 쟁취한 국민들의 대다수는 전두환 정권을 심판하고 민주화운동세력을 집권시키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원한 민심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와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로 흩어졌고, 전두환 정권의 후계자인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때 노 후보의 득표율은 약 36%였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도 50% 미만 득표율로도 당선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2008년 충남 논산·금산·계룡 국회의원 선거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 무소속이었던 이인제 후보는 27.6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투표자 넷 가운데 하나의 지지만 받고 당선된 셈이다. 한 방송사는 이인제 당선자를 두고 ‘어쨌거나 당선’이라는 타이틀을 붙였고, 그는 ‘피닉제(불사조 이인제)’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물론 비아냥과 탄식이 대거 섞인 별명이었다.

18대 총선에서 이인제 당선.PNG

제18대 총선 논산·계룡·금산 선거구 개표 결과 
CC BY-SA 3.0, 링크

이러한 소수득표자는 유권자에게 불복 심리를, 당선자에게는 콤플렉스를 안긴다. 투표한 유권자의 절반이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면서 지지한 후보의 낙선을 맛본 이상, 당선된 대표자에게 힘을 실어주기는 대단히 어렵다. 물론 소수 득표로 당선한 자도 “나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이 다 내가 당선되는 것을 결사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유권자들이 얼마 만큼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소선거구-단순다수제’의 또 다른 해법인 ‘절대다수제’가 나온다. 한 차례 투표에서 1등을 차지한 후보에게 당선증을 선사하지 않고, 확실하게 다수라고 할 수 있는 유권자의 지지나 승인을 받은 후보를 당선시키는 제도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투표를 추가로 실시하는 것이다. 절대다수제의 대표 사례가 결선투표제(runoff voting)다.

결선투표제는 2차투표제(two-round system: TMS)라고도 부른다. 2차투표제는 결선투표제의 한 종류다. 결선투표제가 투표를 두 번만 하는 제도를 가리키진 않는다. 투표를 세 차례 이상하는 결선투표제도 설계 가능하다. 가령 1차투표에서의 1~3위를 남겨놓고 2차투표를 실시한 다음, 1~2위를 차지한 후보들을 두고 최종투표를 할 수도 있다. 다만 여러 차례 투표하는 데 따른 유권자의 번거로움을 덜고 각종 비용의 증가를 막기 위해 주로 1차와 결선, 이렇게 두 차례 투표하는 2차투표제가 흔하다.

1차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한 후보자가 있다면 곧바로 당선시키고, 없다면 1, 2위를 차지한 후보자를 놓고 한 번 더 투표를 실시한다. 후보가 둘뿐이므로 여기서 최종승자가 된 후보는 유효투표의 50% 이상의 지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중엔 처음부터 그를 지지하지는 않았던 유권자의 표가 있는 만큼 그 득표율이 온전한 지지율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최종투표에서 지지한 유권자는 그의 당선을 ‘허락했다’거나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선투표제가 있는 프랑스, 없는 미국과 독일

유럽 민주주의 국가에는 결선투표제가 드물다. (뒤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대다수 국가는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의원을 뽑는 다인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그 여러 의원은 정당별 지지율에 맞게 각 정당으로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한다. 이 제도는 ‘오직 한 명’이 아니라 소수파 대변자를 포함한 여러 의원을 선출하므로 굳이 결선투표가 필요하지 않다. 결선투표 도입 여부는 주로 1인을 당선시키는 선거에서 고려된다. 유럽 민주 국가 가운데 소선거구에서 의원을 뽑는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 정도다. 이 가운데 프랑스에서만 결선투표제가 실시되고 있다.

대통령선거에서의 결선투표 도입 사례는 더 흔하다. 브라질,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의 대통령선거를 외신으로 읽은 이들은 알 수 있듯이, 유럽이나 남미에서 대통령을 뽑는 국가의 상당수는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의원 선거는 물론 대선에서도 결선투표를 실시하지 않는다. 이점은 미국이 민주당과 공화당 두 당 이외에는 제도권에서 기지를 확보한 정당이 없는 현실을 낳았다. 애초부터 선거구도가 양당으로 추려져서 한 번의 투표가 곧 결선투표나 다름없는 효과를 자아냈다.

2000년 미국 대선은 결선투표의 당위와 양당제의 현실을 동시에 일깨운 선거였다. 소비자운동으로 유명한 녹색당 랄프 네이더 후보가 독자적으로 출마한 결과,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표밭이 잠식되면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가 당선되었다.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고어 후보가 당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은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택하지 않았다. 결선투표제를 실시하면 일단 1차투표에 여러 정당 및 후보가 도전장을 내게 된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독점정치가 깨어지는 것이다.


ElectoralCollege2000.svg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주)

By Nkocharh - [1], 퍼블릭 도메인, 링크

 

반면 프랑스 정치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국회의원 전원을 소선거구에서 선출하지만 다당제를 형성하고 있다. 현 집권정당인 ‘앙마르슈’와 민주운동, 과거 거대정당이었던 공화당과 사회당, 중도 성향인 민주당-무소속 연합, 급진좌파인 ‘불복하는 프랑스’와 공산당 그리고 극우파 ‘국민전선’이 프랑스 국민의회에 쭉 늘어서 있다. 모든 의원을 소선거구에서 뽑되 단순다수제가 아닌 절대다수제를 채택한 귀결이다. 당선가능성이 희미한 정당이나 후보도 해산 또는 사퇴 압력을 받지 않고 1차투표에 도전해볼 수 있기에, 결선투표제는 다당제가 보장한다.

프랑스 대선에서는 1차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른다. 프랑스 총선은 룰이 조금 다르다. 1차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하지 않아도, 전체 유권자의 1/4 이상 지지를 얻은 후보가 한 명이라면 곧바로 당선이 확정된다. 대선보다는 결선투표로 갈 가능성이 조금 더 낮은 것이다. 반대로, 대선과는 달리 꼭 2명의 후보만 결선투표에 진출하라는 법은 없다. 총 유권자의 1/8 이상의 지지를 얻은 후보는 3위 이하더라도 결선투표에 진출한다. 결선투표에서 후보가 3명 이상이라면 1위로 당선되는 후보가 50% 득표를 초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요컨대 프랑스 총선은 프랑스 대선보다 당선 요건이 느슨하다.

‘결선투표제 없는 소선거구제’를 실시하면서도 다당제가 형성된 이례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게다가 정당의 지지율과 의석점유율이 거의 100% 일치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허나 그런 독일도 지역구 의석만 놓고 보면 정당별 지지율과 의석 사이의 비례성이 떨어진다(그런 독일이 왜 비례성이 높은 의회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후에 살핀다). 2017년 총선에서 독일의 제1여당인 기독민주연합은 지역구 지지율 30.2%를 갖고 지역구 299석 중 61.87%인 185석을 휩쓸었다. 제2여당인 기독사회연합(기사련)은 지역구 지지율이 7%에 불과했지만 바이에른주에 집중분포된 지지층 덕에 지역구 총의석의 15% 이상을 가져갔다. 반면 녹색당은 지역구에서 8% 지지율을 얻고도 지역구 의석의 0.33%(1석)만을 가졌다.

독일에서 아마 프랑스처럼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었더라면, 50% 미만을 득표하고도 당선된 기민련 의원 상당수는 결선투표를 치러야 했을 것이고 그중 일부는 낙선했을 것이다. 거꾸로 낙선한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결선투표에 진출해서 당선했을 것이다. 결선투표제는 30% 지지율로 60% 의석을 가져가는 현상을 얼마간 교정할 수 있다.


선호투표제 : 한 번에 결선투표까지

결선투표제는 투표가 한 번만에 끝나지 않으면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추가로 요구한다는 난점을 가지고 있다. 두 번 다 투표할 수 있는 공산이 높은 것은 아무래도 ‘여유 있는’ 사람이니 선거불평등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따라서 한 번의 투표로 결선투표 효과를 내는 ‘즉석결선투표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선호(대체)투표제alternative vote(AV)’다.

선후투표제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다. 투표용지에 오른 후보들을 두고 유권자가 자신의 선호 순위를 매긴다. n명이 나오면 1순위부터 n순위까지 매긴다. 개표 방식도 자연히 다단계를 거친다. 1차로 1순위 투표를 집계하면서 꼴찌부터 떨어트린다. 탈락한 후보의 표는 나머지 후보 중 누구를 가장 윗순위로 지목했는지를 따져 그 후보에게 얹어준다. 이렇게 집계를 할 때마다 꼴찌 후보를 하나씩 탈락시키며 표의 이전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과반 득표 후보가 나오면 그를 당선인으로 확정한다.

4명의 후보가 나왔다고 가정하자. 1차집계에서 1순위를 집계하니 A 후보 40표, B후보 22표, C 후보 20표, D 후보 18표가 나왔다고 치자. 꼴찌인 D를 탈락시키고, D를 1순위로 지목한 표가 2순위로 어느 후보를 지목했는지 세서 나머지 후보에게 더해준다. 그 표들이 각각 A, B, C에게 2표, 6표, 10표씩 흩어지면, A 후보 42표, B 후보 28표, C 후보 30표. B가 탈락자가 된다. B는 1차집계에서 2위였는데도 2차집계에서 역전을 당해 낙선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탈락자 B의 표를 모아 집계한다. 먼저 낙선한 D를 1순위로 지목했으면서 B를 2순위로 지목한 표는 3순위에게 이전한다. B를 1순위로 지목했으면서 D를 2순위로 지목한 표는 그 다음 3순위로 지목된 후보에게 얹는다. B에게 얹혀져 있던 28표가 A, C에게 각기 7표, 21표씩 이전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최종 결과는 A 49표, C 51표. 반을 넘어선 C후보의 당선. 이 경우는 1차집계에서 3위였던 후보가 2차 집계에서 2위, 최종집계에서 1위에 등극한 것이다. 1993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일반 시즌(페넌트레이스) 3위를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가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각각 일반 시즌 2위와 1위팀을 제치고 우승을 거두었듯 말이다.

Alternative Vote in World Map
선호투표제를 채택한 나라들

선호투표제에도 단점이 있다. 복잡하다. 개표야 현장에서 알아서 하고 위의 설명이 복잡한 건 다 김수민 때문이라 치자. 유권자 입장에서 후보자수만큼 선호순위를 다 기표하기가 난감하다. 후보자가 많을수록 그렇다. 후순위로 갈수록 생각이 없어져 마구 표기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1, 2순위까지만 표기하는 제도도 고려할 수 있다. 이 제도에서는 최종집계를 해도 과반 득표 후보가 하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최종집계 이후 누구도 40%를 넘지 못한다면 따로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보완책도 있다.

선호투표제는 1차집계에서 3위 이하를 한 후보도 당선가능하다는 점이 보통의 결선투표제와는 가장 크게 다르다. 결선투표제였다면 2위 또는 심지어 1위와 별 차이가 없으면서도 낙선하게 되는 3위 이하 후보에게 공정한 기회를 열어주는 특징이 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3위였던 후보가 어떻게 당선될 수 있단 말이냐’는 심리적 저항을 부를 수도 있다.


결선투표제도 불비례성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는 없어

다만 결선투표제든 선호투표제든 절대다수제에는 근본적인 난제가 있다. 당선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정당이나 후보도 일단은 도전장을 내밀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정당 및 후보의 난립을 부를 수 있다. 난립까지는 괜찮다 쳐도 그로 인해 표밭이 너무 잘게 쪼개진다면?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한 이는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 그리고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였다. 이들이 1차투표에서 각각 얻은 득표율은 24.01%와 21.30%. 유효투표수의 반의 반을 넘지 못했다. 게다가 이때 3위와 4위를 차지한 후보는 각각 20.01%와 19.58%를 득표했다. 이들이 조금만 표를 더 얻었어도 결선투표자 둘 중 하나는 바뀌었을 것이다. 결선투표 승리자도 바뀌었을지 모른다. 르펜 후보는 극우파로서 외연확장성이 낮았고, 반-극우 표의 결집으로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상대가 극우파 르펜이 아닌 다른 후보였다면 마크롱의 낙선가능성은 껑충 뛰었을 것이다. 이 가정에 동의하는 정치세력이나 시민들은 ‘마크롱이 운이 좋았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발단이 된 후보자의 난립은 결선투표제의 필연적 현상은 아니다. 득표력이 막강하지 않은 다른 정당 및 후보에게 연거푸 패배하는 정치세력은 비슷한 성향의 정치세력과 합당 또는 후보단일화를 꾀할 수 있고 후보난립은 정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선투표제의 결정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는 남는다. 다당제 형성의 조건인 ‘지지율-의석수 비례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전국 득표율이 10%인 정당이더라도, 어느 한 선거구에서도 1차투표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결선에 올라도 당선이 되지 못하면, 의석수는 0이 된다.

2017년 프랑스 총선에서, 대선 2위 정당이었던 국민전선은 1차투표 전국 지지율 13.20%를 얻고도 총의석의 1.39%만 얻었다. 이게 고립된 극우파인 국민전선만의 일이 아니다. 대선 4위 정당이었던 급진좌파 ‘불굴의 프랑스’는 1차투표 지지율이 11%인 데 반해 의석점유율은 2.95%였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의 취임 직후 치러졌다는 이점을 누리며 여당 ‘앙마르슈’는 전체 의석의 53.38%를 가져갔다. 하지만 그들이 1차투표에서 얻은 지지율은 불과 28%였다. 이렇게 원래의 지지 기반에 비해 너무 많은 권력을 너무 쉽게 확보한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이후 순탄치 않은 길을 갔다. 급진좌파와 극우파가 뒤섞여 일으킨 ‘노란조끼’ 시위의 공세를 당해 지지율 20%선에 머물렀던 것이 그 대표적인 순간이다.

결선투표제는 다당제의 형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에 머물 뿐 각 정당의 지지율과 의석수 사이의 비례성을 높이지는 못한다. 국민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는 데 부족함이 있으니, 정당들이 경합하고 합의에도 한계가 있다. 고로 우리는 추가적이거나 또다른 모색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지역구 선거가 낳은 지지율-의석수 불비례성을 고치고 바로잡는 장치를 만들거나, 혹은 1명만 선출하는 지역구 선거제도부터 바꾸는 길이다.

그렇다면 결선투표제나 선호투표제 같은 절대다수제는 그다지 쓸모없는 제도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소선거구이면서 한 번에 1등만 하면 당선되는 제도에서 나타난 지지율-의석수 사이의 불비례성을 미국이나 독일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소선거구제라면 결선투표나 선호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맞다.


김수민의 정치현장 에피소드
내 생애 가장 치열한 투표

한국의 공직선거에는 결선투표도 선호투표도 도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에 선호투표제가 도입되기는 했습니다. 처음에는 입후보한 7명의 후보를 두고 선거인단이 1순위부터 7순위까지 지목하는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둘씩 후보가 사퇴하며 사퇴 후보들이 얻었던 표는 애초의 룰에 따라 폐기되었고, 막판에는 두 명의 후보(노무현, 정동영)만 남아서 선호투표제 방식으로 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선호투표제는 한국정치에서 잊혀진 제도가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겪었던, 결선투표제인 듯 시작했다가 중간에 선호투표제처럼 흘러갔던 선거가 있기는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반장선거였습니다. 1학년 때 5반 반장이었던 저뿐만 아니라 6, 7, 8반의 반장이었던 이들이 입후보해, 1학년 시절 반장이었던 네 후보가 맞붙은 치열한 선거였습니다. 각 후보는 1-5, 1-6, 1-7, 1-8로 표기하겠습니다.

기억이 가물거리므로 표수가 아니라 대강의 득표율로 설명하겠습니다. 투표 결과, 1-5는 26%로 2위, 1-6은 30%로 1위, 1-7은 24%로 3위, 1-8은 20%로 4위였습니다. 담임 교사나 학급생들은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투표를 더 해야 한다는 전제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군의 학생들이 ‘1, 2위만을 남겨놓지 말고, 꼴찌인 4위만 제외하고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위와 3위 사이의 표차가 적었기 때문인지 이견을 다는 학생이 없었고 담임 교사도 조금 머뭇거리다가 그대로 추진했습니다.

통상적인 결선투표가 아니라 선호투표처럼 진행이 되어버린 겁니다. 한 번에 선호순위를 표기하지 않고 재차 투표하는 것이 결선투표제 혹은 2차투표제다웠을 뿐입니다. 저는 ‘1, 2위만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제 스스로가 2위인 이해당사자여서 직접 의견을 제시하기가 껄끄러웠습니다. 더욱이 마침 담임 교사가 1학년 때 제 담임 교사였기 때문에 선생님을 ‘관권(!) 선거’ 시비에 빠트리고 싶지 않아 침묵을 지켰습니다. 처음부터 룰을 제대로 정해두지 않은 모두의 책임이었습니다.

2차투표 결과, 3위였던 1-7이 40%쯤의 지지율로 1위에 올라섰습니다. 참고로 1학년 당시 5반은 6~8반과 떨어져 있었습니다. 복도 끝의 8반 출신 학생들이 유일한 옆반이었던 7반의 반장을 2차투표에서 대거 지지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 1-5와 1-6은 30% 가량으로 정확히 동표가 나와 공동 2위를 했습니다. 2차 꼴찌인 3위가 가려지지 않았으므로 또다시 투표를 했는데 3차투표에서 후보별 득표수는 그대로였습니다. 4차투표를 앞두고 담임 교사는 “누군가는 지지 대상을 바꿔야 승부가 난다”고 했고, 그 때문인지 4차투표에서는 득표수가 줄어든 제(1-5)가 3위로 탈락했습니다. 최종 결과, 1차투표에서 3위, 2차부터 4차까지 1위를 차지한 1-7이 반장이 되었습니다.

선거 룰을 어떻게 했든 승산이 없었던 것은 당시에 인정을 했습니다. 반장의 부담이 없어서 청소년기 가장 즐거운 한때를 보냈기에 낙선에 대한 미련은 어느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만, 2002년 민주당 경선에 선호투표제가 도입되었다던 소식을 들은 직후, 이때의 선거가 기억났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선호투표제를 실시했다면 어땠을까요? 급우들이 번거롭게 네 차례나 기표하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이것 말고도 시사점들은 있습니다. 1차투표에서 탈락한 후보가 누군가를 지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면? 살아남은 후보들에게 탈락 후보의 지지자들을 상대로 호소할 기회를 주었다면? 누가 이기든 간에 ‘정치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줄 생생한 수업이 되었을 겁니다. 이런 생각들을 일찍 했던 덕분에 제가 지금 여러분들과 선거제도 이야기를 할 기회를 잡았는지도 모르겠네요.

김수민 /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자 · 전)구미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