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패러디, 그리고 편지쓰기의 신기원

     

그 시대에 편선지는 일종의 치킨과 같은 것이었다. ‘얼마나 망설이지 않고 닭다리를 내어줄 수 있는가’와 ‘얼마나 더 소중하고 희소한 편선지를 내어줄 수 있는가’는 상대가 나를 얼마만큼 좋아하는지를 가늠하는 데 있어서 꽤 비슷한 수준의 판단근거다.

편지지란 무엇인가

나에게는 석사학위 논문을 함께 쓴 연구실 동기가 있었다. 그때 우리에게는 논문 쓰기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일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에(세상이 객관적으로도 좀 흥미롭게 돌아가던 때이기는 했다), 매일 새로
운 ‘소확행’을 찾아 실천에 옮기며 매우 의미 있는 하루들을 보내고 있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이북 리더와 함께 옥류관 냉면을 먹었다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송출된 날은 점심 메뉴가 서북면옥으로 정해지는 식이었다. 우리가 함께 《미스터케이》에 대한 기획을 구상한 것도 그때의 일이다. 어찌나 즐거운 나날이었는지, 나란히 커피를 사들고 깔깔거리며 연구실로 돌아가는 점심시간 우리의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면, 결코 다음 주가 논문 심사인 줄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내 생일이었다. 명색이 논문학기라 날짜를 의식도 못하고 지나가려던 참이었는데, 나의 소중한 전우가 잊지 않고 건넨 선물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의 선물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OST 앨범과, 원작소설의 굿즈로 출시된 노트, 그리고 손편지였다. 그런데 선물을 감싼 포장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면 택배상자에 완충재로 들어있는 ‘뽁뽁이’를 복사기에 넣고 복사한 A3용지였던 것이다. 제록스 아트Xerox Art[1]의 예술혼이 살아 있는 DIY였다. 연구실에 늘상 서 있는 복사기로 이런 일을 할 생각을 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예술적인 포장봉투를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선물과 손편지를 받은 그대로 소중히 넣어 보관하고 있다.

손으로 쓴 편지와 제록스 아트 포장봉투는 나로 하여금 ‘편지지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물이나 개념에 대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그것의 틀을 깨고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미스터케이》가 그 답을 완전히 바꿔 놓았던 ‘편지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또한 그랬다. 지난 가을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불러온 작은 파장처럼 말이다.

사물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남는가? 종국적으로 남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자크 데리다  
울트라편지야

《미스터케이》 편선지의 시대가 끝난 이후로는 한 번도 편지를 담는 매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다. 이미 편지지를 한 차원 넘어선 ‘편선지’를 경험한 세대에게, 편선지가 사라진 뒤에 남은 편지지들이란 공룡 화석만큼이나 진부하고 흥미롭지 못한 물건이 아니었던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가 편지라는 것을 주고받기는 했던가?

2002년 5월, ‘창간 4주년 특별호’에는 특집 기사의 일부로 편선지에 엮인 일화들이 실렸다. 이 기사를 읽어보면 당시 이 편선지라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얼마나 뚱딴지같은 물건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지나치게 혁명적인 편선지로 인해 《미스터케이》 편집부는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조폐공사와 서울우유에서도 전화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림1] 지나치게 혁명적인 편선지로 인해 《미스터케이》 편집부는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조폐공사와 서울우유에서도 전화를 받았다.


도대체 편선지란 무엇이었을까? ‘편선지’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기 때문에 ‘편지지’와 정확히 어떻게 다른 뜻인지는 알 수 없다. 《미스터케이》 이전에 이 단어가 쓰이고 있었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편선지’가 ‘편지지’와는 다른 무엇이라는 것만은 귀납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편지지는 무지이거나 잔잔한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고, 편지를 쓸 수 있게 공책처럼 줄이 배열된 적당한 크기의 종이를 말한다. 편선지는 편지지보다 좀 더 팬시의 느낌이 강하다. 물리적인 형태는 비슷하지만 좀 더 발랄한 일러스트나 캐릭터가 들어가 있고, 편지봉투와 세트로 디자인된 것이 대부분이다. 《미스터케이》의 경우에는 잡지 분량의 상당 부분이 편선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교적 평범한 편선지 디자인은 일러스트, 캐릭터, 패러디 등으로 다양했고, 대부분 편지를 쓸 수 있는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만들 수 있는 전개도로 구성되었다.

입체 편선지는 《미스터케이》라는 테마파크에서 가장 인기 많은 놀이기구였다. 우선 편지지를 입체로 만든다는 발상부터 놀라운 것이었다. 일반 편선지의 패러디가 여러 가지 디자인 방법 중에 하나에 그쳤다면, 입체 편선지는 그 자체가 패러디 없이 성립 불가능했다. 《미스터케이》는 편집디자인의 측면에서 상당히 불균질한 잡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입체 편선지 만큼은 디자이너들이 영혼을 갈아 넣은 티가 날 정도로 하나같이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게다가 이런 편선지가 한 달에 수십에서 백여 페이지까지 실려 있었다.

《미스터케이》가 수십 장씩 엄청난 디자인의 편선지를 제공하기 전에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려면 문방구에 가서 가장 예쁜 편지지를 고르거나, 공책 한 장을 최대한 깔끔하게 잘라 최선을 다해 꾸미는 것이 전통적이었다. 시중에 판매되는 편지지는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하루에 여러 통씩을 쓰자면 금전적으로 부담이 가는 제품이다. 때문에 일상적으로는 딱지처럼 접은 쪽지를 주고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미스터케이》가 디자인한 것은 입체 편선지의 전개도뿐만 아니라 편지를 쓰고 교환하는 경험 자체였다. 수십 가지 편선지를 감상하고, 고르고, 가위질과 풀칠을 거치고, 더 희소한 편선지일수록 더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기로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얼마나 많은 고려와 정성이 필요한가?

받는 쪽에서도 ‘어떤 편선지를 받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교적 의미를 가졌다. 내가 아주 특별한 ‘버거킹 패러디 편선지’를 주기로 결정한 친구가, 나에게는 그저 그런 일반 편선지에 편지를 써 주고 다른 친구에게 ‘KFC 패러디 편선지’를 준다면 얼마나 서운한 일인가. 따라서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들 사이의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편선지의 ‘격’을 서로 맞추는 섬세함이 필요했다. 이는 받은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그 내용의 경중이나 내밀함의 정도를 알 수 없는, 다 똑같은 모양의 ‘쪽지’를 주고받던 때에는 없던 일이었다. 편선지 때문에 우정의 차등이 가시화되다니!

그 시대에 편선지는 일종의 치킨과 같은 것이었다. ‘얼마나 망설이지 않고 닭다리를 내어줄 수 있는가’와 ‘얼마나 더 소중하고 희소한 편선지를 내어줄 수 있는가’는 상대가 나를 얼마만큼 좋아하는지를 가늠하는 데 있어서 꽤 비슷한 수준의 판단근거다.

[그림2] 입체 편선지는 《미스터케이》라는 테마파크에서 가장 인기 많은 놀이기구였다.

《미스터케이》가 표방한 바와 같이 편선지는 편지쓰기의 혁명이었다.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지지에 힘입어 편선지만 노트패드 형태로 모아서 ‘울트라편지야’[2]가 출시되었다. 급기야는 캐릭터 제휴 제품으로 출시된 ‘미스터케이 풍선껌’에도 작은 판형의 편선지가 들어갔다.

입체 편선지는 ‘무엇이든 편지쓰기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라는 테제의 등장을 의미했다. 과자박스 형태의 편지봉투가 있을 수 있다면, 역으로 과자박스 자체가 편지봉투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편지를 너무 열심히 써서 편선지가 소진되면, 독자들은 진짜 과자박스에 편지를 넣어 편지봉투로 활용했다. 패러디의 대상이었던 원본이 패러디의 대체재가 되었다. 《미스터케이》의 소비자들이 실제를 가상의 대체품으로 삼아버리는 모습을 보았다면 보드리야르가 혀를 내두르고 갔을 것이다.


패러디와 ‘병맛 문화’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했다는, 밀레니얼 세대를 다룬 단행본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에서는 밀레니얼의 특징 중 하나로 ‘병맛 문화’를 꼽았다. 이 책의 표지에도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이라는 카피가 쓰여 있다(이것이 밀레니얼 세대만의 특징인가, 또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병맛 문화’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서는 아마 모두가 비슷한 이미지들을 떠올릴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 인터넷이 완연히 일상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기 시작하던 무렵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장식하던 ‘밈meme’들 말이다. 여기에는 상당수의 패러디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흥행했던 한국형 느와르―‘조폭 마누라’나 ‘친구’같은 영화들―포스터에 인물 이미지를 합성하여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거나 특정 집단·인물 등을 비판하던 것들 말이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패러디’라는 개념이 아직 생소했다. 범람하는 패러디에 불편함을 느끼는 쪽에서는 저작권 문제를 들어 우려를 표했다(당시에는 ‘저작권’도 사뭇 낯설었을 터인데 말이다). 여기에서 불이 붙은 인터넷과 미디어 상의 논쟁이 패러디에 대한 범국민적 이해를 촉발하기도 했다. 당시 표절과 패러디, 오마주 등의 차이를 설명하는 자료를 인터넷상에서 꽤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패러디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2000년대 한국의 인터넷 시각문화는 패러디로 가득했다.

이미지를 생산하고 읽어내는 문화는 인터넷 시대 이전과는 아주 다른 형태로 변화했다. ‘병맛’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여 이해되는 새로운 이미지의 문법은 당연히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독법을 요구한다. 새로운 시각문화에는 새로운 문해력이 요구되는 법이다. 이 시기에 《미스터케이》는 인터넷과는 또 다른 지평에서 새천년의 패러디―이미지 생산과 소비 방식, 그리고 이를 읽어내는 비주얼 리터러시에 있어서 밀레니얼 세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나아가 문화적 전범이자 토양이 되었다.


초일류울트라슈퍼캡숑나이스베리베리짱 패러디의 법칙

《미스터케이》라는 잡지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슬로건은 단연 “초일류울트라슈퍼캡숑나이스베리베리짱“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류’였으며, ‘울트라슈퍼캡숑’이었고, ‘나이스베리베리짱’이었던 부분은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차원이 다른 패러디였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이 가장 잘 활용된 부분이 바로 편선지였고, 이는 특유의 캐릭터 작법과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냈다. 《미스터케이》의 패러디들은 현재 ‘패러디’ 하면 떠오르는, 어딘지 피로감이 몰려오는 이미지들에 비해 건강하면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인터넷상의 패러디가 불특정다수의 웃음을 이끌어내고 동의를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미스터케이》의 패러디는 일종의 소구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재미(‘병맛’)와 건전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병맛’ 유머코드를 받아들여 이용하되 유해하지 않을 것. 이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스터케이》는 이 선을 꽤 착실히 지켰다.

좋은 패러디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원본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바꿀 부분과 남길 부분을 세심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수용자(대중)가 그것이 패러디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의도를 읽어낼 수 있도록 널리 알려진 대상이어야 한다. 또한 패러디의 결과물이 저작자와 수용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미스터케이》는 현재 시점에서 당시의 대중문화를 조망할 수 있는 아카이브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을 수 있다. 영화, 드라마와 같은 문화콘텐츠에서부터 각종 식품과 제품에 이르기까지, 패러디에 활용된 아이디어들은 당시에 가장 인기를 모았거나 인지도가 높은 콘텐츠들이었다. 여기에는 그때까지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미스터케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의 우회된 기록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큐레이션된 자료인 것이다. 또한 이 패러디들이 청소년 독자들의 어떤 감수성과 욕망에 소구했는지를 파악한다면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적 밑바탕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림3] 《미스터케이》의 패러디를 통해 당시의 대중문화와 생활상을 조망할 수 있다.


키치, 레트로, 그리고 어른 놀이

《미스터케이》의 패러디는 몇 가지의 탈근대적 기호로 읽을 수 있다. 패러디는 기본적으로 키치Kitsch로서 소비된다. 고급문화의 입장에서 봤을 때 키치는 저급하고 난잡한 모조품에 지나지 않지만, 이러한 본질을 잘 이해하고 소화한 키치는 고급문화에서는 불가능한, 유치한 욕망의 쉽고 자유로운 표현수단이 될 수 있다. 『내 곁의 키치』에서 오창섭은 키치가 반영하는 정서와 욕망의 예로 향수, 대리만족, 놀이 등을 들었다. 이는 《미스터케이》가 생산한 패러디의 가장 본질적인 기호이자 존재방식이기도 했다.


키치적 산물은 사용자의 특정 정서를 자극하거나, 심리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제작되고 소비된다. 이러한 키치적 산물은 자체의 형식이나 내용에 의해서 키치로 존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태도로서의 키치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키치적인 태도는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러한 태도가 대상인 산물의 형식에도 반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창섭, 내 곁의 키치, 홍시, 2012, p.163
 
[그림4] 키치와 레트로는 《미스터케이》 패러디를 설명하는 중요한 코드다.

패러디 상품은 사용가치가 아닌 기호가치[3]로 소비된다. 상품에 담긴 코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집단 내에서만 그것은 소비할 만한 가치를 획득한다. 어떤 상품에 담긴 코드를 이해하는 소비자들은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되며, 이렇게 묶인 소비 집단 안에서는 그것에 대한 소비가 곧 서로를 알아보고 확인하는 표식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코드’가 될 수 있는 것들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향수nostalgia’가 있다. 《미스터케이》에서 레트로, 혹은 빈티지 무드는 편선지 뿐 아니라 ‘추억여행’을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에서 나타났다. 10대 청소년에게 있어서 레트로는 ‘내가 겪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낡은 감각’이다. 살아온 기간이 짧은 이들에게 옛날 물건은 최신제품만큼이나 새롭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 대한 희구는 지극히 현대적인 정서이기도 하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레트로의 허상을 고찰한 유작 『레트로토피아Retrotopia』에서 스베틀라나 보임Svetlana Boym의 논의를 빌려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향수병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시적인 질병에서 치유할 수 없는 현대 조건으로 바뀌었다. 20세기는 미래의 유토피아로 시작해 향수로 끝났다.” 보임은 오늘날을 ‘집단 기억을 지닌 공동체를 정서적으로 동경하며, 분열된 세상에서 지속성을 열망하는, 향수라는 세계적인 유행병의 시대’로 진단하며 마무리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레트로토피아, arte, 2018, p.25
 
[그림5] 살아온 기간이 짧은 이들에게 옛날 물건은 최신제품만큼이나 새롭다.


향수는 패러디의 기호가 될 수도 있지만, 굳이 패러디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원본 자체로 얼마든지 작동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바나나맛 우유, 메로나, 초코파이와 같은 장수상품들과 패션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여기에 반응하는 것은 주로 밀레니얼 세대다. 이 먹거리들은 그 전 세대에게도 익숙한 것들이지만, 이를 ‘굿즈화’하여 소유하는 방식은 밀레니얼의 코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품화되는 간식 브랜드는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 자신보다도 한참 나이가 많은 것들이라는 점이 향수의 양태를 시사한다. 《미스터케이》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아이콘의 반열에 오른 과자라야 편선지로 패러디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미스터케이》의 청소년 독자들에게 패러디는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주는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하는 것’은 《미스터케이》의 중요한 패러디 대상이었다. 각종 공문서와 여권, 명함, 화장품 등 어른의 전유물들이 편선지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중요한 것은 이 욕망이 단순히 지금 존재하는 어른들이라는 대상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독립적 주체가 되고 싶은 소망이라는 점이다.

성인 주체가 되고 싶은 10대 소녀의 자아상이 투영된 ‘콩콩이’와 ‘발렌’이 어른들의 세계를 패러디한 시각적 테마파크 위를 활보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유쾌한 전복이었다.

[그림6] 각종 공문서와 여권, 명함, 화장품 등 어른의 전유물은 《미스터케이》의 중요한 패러디 대상이었다.

혁명, 그 후

문제는, 그렇게까지 혁명적이고 선풍적인 콘텐츠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재미있었던 개그콘서트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는데 실패하여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고, 예능의 작법을 바꿔 놓은 무한도전은 이미 폐지되었다. 본편만한 속편이 없듯이, 같은 방법으로 계속 재미있기는 힘든 법이다. 아이디어와 소재 고갈도 문제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그것이 언젠가는 ‘낡은’ 콘텐츠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새롭고 혁신적이었던 것이 금세 낡아버리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패러디 편선지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미스터케이의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었다. 새로운 스타일은 곧 양식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습화된다. 새로움이 무기였던 미스터케이와 반대로, 모닝글로리와 바른손의 ‘제도권 스타일’은 재미있지는 않을지언정 딱히 질리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안전함을 확보했다. 이들은 강렬한 추억이 되는 대신 오래 살아남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대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혁명은 시간이 흐른 뒤 종종 추억으로 되살아온다. 어쨌든 그 신선한 충격에 대한 감각만큼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은별 / 디자인문화연구자


[1] 1960년대 Zerox 사에서 최초의 복사기가 개발된 직후 나타난 비주얼 아트 양식. 복사기의 조작방법을 활용해 왜곡, 오버레이, 콜라주, 퇴화 등 다양한 이미지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록큰롤과 펑크 신에서 저항적인 표현기법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2] 서태지의 노래 ‘울트라매니아’를 패러디한 타이틀이다. 70장 내외로 2,500원 선에서 출시되었으며, 12탄까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중간에 ‘울트라편지야’에서 ‘울트라편지’로 네이밍이 바뀌었다. 이후 타사에서 아류작이 다수 출시되기도 했다. 
[3] 장 보드리야르가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사용한 개념. 그는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상품이 사용가치가 아닌 기호가치로 소비된다는 ‘상품의 기호화’를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