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을 꿈꾸다 ①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이하 꿀잠)의 건립은 '기륭전자분회 투쟁 10년 평가토론회'에서 처음으로 공식 제안되었다. 구로공단의 작은 전자회사인 기륭전자의 10년 투쟁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왜 꿀잠이 제안되었을까? 그리고 이 제안이 뒷전으로 밀리거나 무시되지 않고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꿀잠의 상상과 희망이 사회적 울림과 실천으로 모아지는 초기과정을 되짚어본다.

구로공단 불법파견노동자의 현실

기륭전자는 위성라디오를 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파견법 통과이후 불법파견노동자의 문제가 처음으로 불거진 곳이기도 하다. 파견업체를 통해 채용된 노동자들은 파견기간과 상관없이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으며 업무 중 잡담을 했다는 이유로 ‘문자해고’를 당해야 했다. 최저시급보다 10원만 더 받았으면서 관리자의 온갖 수모를 견뎌내야만 했다. 이곳에서 노조결성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힘을 합쳐 2005년 7월 5일 노조를 만들었다. 노조 결성이후 기륭전자는 계약직, 파견직 노동자를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모두 해고 했다. 노동자 평균근속년수는 1년 미만이었다. 노조의 끈질긴 투쟁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부터 대법원까지 불법파견을 인정받았지만 회사는 벌금 500만원을 낸 것으로 모든 책임을 면제받았다.

노조는 불법파견에 따른 기륭전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 실시’를 요구하며 1895일 동안 투쟁을 전개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출근투쟁을 시작으로 주 1회 집회와 저녁 문화제, 공장 앞 농성을 지켜냈다. 또한 현장점거 파업농성, 삭발, 두 차례 고공농성, 94일간의 단식농성, 오체투지 등 죽는 것 빼놓고 모든 투쟁을 다했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구로공단 내 불법파견노동자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디지털전자업체로 탈바꿈한 구로공단 내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초단기 근로계약과 일방적인 계약해지는 일상화되어 있었으며, 기업의 이윤창출과 관리비용절감을 위해 파견법을 위반하는 사례는 차고 넘쳤다.

공장점거농성 당시 지역단체들이 지지집회를 할때 공장정문 밑으로 조합원이 손을 내밀고 있다.(정택용 사진작가) 

공장을 넘어 지역연대로

노조 결성이후 전개된 여성노동자 중심의 현장점거 파업농성은 구로공단의 역사를 되돌려 놓았다. 80년대 대우어패럴노조 중심의 구로동맹파업을 연상시키면서 공장을 넘어 지역연대를 복원시켜냈다. 25년 전 투쟁이 다시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지역 내 노조와 시민사회단체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구로공단 내 노동조합과 노동상담소가 제일 먼저 달려왔다. 구로·금천 지역의 크고 작은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도 농성물품 지원뿐만 아니라 공장 밖에서 저녁마다 촛불을 함께 들어 줬다. 노조 결성이후 전개된 현장점거파업은 지역의 힘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이후 지도부 구속과 대량해고 사태가 이루어졌지만 노조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공장 앞에 천막농성장을 차리고 투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구사대의 탄압과 폭력으로 농성장은 설치부터 쉽지 않았다. 이 또한 조합원들의 끈질긴 투쟁과 지역연대로 지켜냈다. 농성장 생활의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잠자리의 불편함부터 이겨내야 했다. 당장 급한 건 화장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농성장주변에는 공용화장실조차 없었다. 눈치를 보면서 옆 공장 화장실을 이용했지만 이것마저도 사측의 간섭으로 막혔다. 씻거나 빨래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식사도 제 때 해결할 수가 없었다. 농성장을 비우는 순간 사측의 횡포로 농성장이 사라지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것을 농성장에서 해결해 나가야 했다. 급기야 노조는 농성이 장기화되자 천막농성장의 철거와 복원이 반복되는 지루한 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천막농성장을 컨테이너 농성장으로 바꾸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또한 공장 앞 빈 공간에 이동식 간이화장실까지 설치하였다. 이로서 가장 급한 문제였던 자는 것과 생리현상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먹는 것과 씻는 것, 빨래와 꿀잠이었다.


광우병 촛불시민의 진화와 또 다른 연대

기륭전자분회의 투쟁이 알려지면서 공장과 지역을 넘어 전국각지의 양심적인 시민과 사회단체, 종교계, 문화예술단체 등의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구로공단 내의 작은 공장이 전국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전혀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찾아와 조합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광우병 촛불이후 촛불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륭전자 농성장을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직업과 옷차림부터 다양했다. 촛불시민들은 매일 저녁마다 기륭전자투쟁승리를 위한 촛불을 다시 밝히기 시작했다. “미친 소도 막아내고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도 철폐하자”라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농성장의 풍경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장으로 둘러싸인 농성장 앞에서 촛불시민들의 기증품으로 바자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홍대 인디밴드의 문화공연, 문화예술인의 거리 전시회, 전문가 강연 등이 농성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수학을 전공한 직장인은 수험생을 둔 조합원 자녀의 과외선생이 되어주었으며, 정기적으로 농성장의 식단을 책임져주는 주부도 있었다. 지친 조합원들의 말벗이 되어주거나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마다 촛불을 함께 들어주는 평범한 시민도 있었다. 촛불시민의 진화와 또 다른 연대의 모습이었다.

눈내리는 추운 겨울 농성장에서 밥을 먹기 위해 한 조합원이 밥그릇을 옮기고 있다. (정택용 사진작가) 

시민사회, 기륭전자 비정규직을 만나다

이처럼 기륭전자분회 투쟁에 전국적 연대가 형성되고 촛불시민들까지 함께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받으면서 잡담했다는 이유로 문자로 해고당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구로공단 내의 불법파견노동자의 냉혹한 현실이었다. 이 사실이 기륭전자분회 투쟁을 통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충격과 분노를 자아냈다. 기륭전자 불법파견 비정규직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 투쟁은 사회적 호소와 울림을 만들어 가는 투쟁이었다.

기륭전자 투쟁은 정말로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무려 10년간 싸웠다. 사실 이런 장기투쟁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장기투쟁은 때로는 삶과 관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것 같지만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만들고 문화적 공간을 풍부하게 만들고 함께 투쟁했던 이들끼리의 신뢰감도 생기고, 더 많은 연대의 가능성,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기륭전자 분회 투쟁10년 평가토론회 자료집 중)
기륭은 승패를 떠나 여한이 없는 행복한 투쟁을 했다. 수많은 연대와 단결,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발품으로, 밑으로부터 밀고 온 노동자의 힘, 현장의 힘, 투쟁의 힘이 지금을 기륭을 만들었다. ‘더 이상 비정규직은 안 된다.’ 는 요구를 걸고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말했을 뿐이다.
(기륭전자분회 총괄평가 중에서)
위 글처럼 기륭전자분회 투쟁은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었지만 행복한 투쟁이었다. 조합원도 함께 했던 수많은 연대세력도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더 많은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평등한 연대를 형성했다. 노조결성이후 공장점거파업 당시 사측의 단전과 단수는 70년대를 연상시키며 지역연대의 밑바탕이 되었다. 여성노동자들의 삭발과 두 차례 고공농성은 사회적 관심과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사회적 연대의 기초가 되었다. 조합원 집단 단식과 분회장의 목숨을 건 94일간의 단식은 모두가 숨죽이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집회를 끝낸뒤 파란색 공장 정문 앞에서 조합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 '이곳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일터, 기륭전자입니다.' 라는 글귀가 선명하다.(정택용 사진작가)

기륭전자분회는 사실상 10년 투쟁기간 내내 농성을 했다. 하지만 농성장의 풍경은 여느 농성장과는 달랐다. 끊이지 않는 연대가 이어지고 웃음꽃이 넘쳐났다. 행사나 집회가 끝나면 음식나누기로 서로를 더욱 포근하게 만들어 냈다. 안타까운 마음과 위로의 마음으로 찾아온 다양한 연대세력에게 연대의 평등함을 일깨워주고 또 다른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품앗이 연대에도 모범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곳곳에서 벌어지는 투쟁사업장 집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국집회나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공장에 갇히지 않고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연대를 스스로 만들어 갔다. 기다리는 연대가 아니라 찾아가는 연대를 몸소 실천했다. 결국 10년 투쟁으로 불법파견노동자가 정규직노동자가 되는 커다란 성과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사장의 약속불이행과 야반도주로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희망하며 추운 겨울 전 조합원이 서울도심에서 오체투지를 하면서 10년 기륭투쟁의 진정한 승리를 선언했다.

기륭조합원들은 '즐겁게 함께 투쟁' 이라는 말을 늘 가슴속에 품고 쉽게 타협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면서 누구도 가지 않았던 투쟁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이런 기륭전자분회의 투쟁을 지켜보고 함께 했던 연대세력들은 마음 한편에 커다란 빚을 지게 되었다. 승리했지만 돌아갈 수 있는 일터가 사라진 현실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이들의 헌신과 열정이 중단 없이 진행되길 희망하고 있었다. 이 무렵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기륭전자 분회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꿀잠 건립 제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전히 농성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씻고 먹고 빨래하고 잠시나마 꿀잠을 잘 수 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은 기륭농성장의 역사와 풍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농성 초기 구사대의 폭력으로 농성장이 수시로 부서지고 화장실을 찾아 헤매야 하고 제 때 끼니를 챙겨먹을 수도 없으며, 씻거나 빨래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꿀잠의 제안이 기륭을 통해 나왔을 때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비단 기륭농성장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똑같은 풍경이었다. 안정적인 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쉼터를 기반으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과 더 나은 세상을 앞당기는 희망의 터전을 마련해보겠다는 것이다. 초기 제안 주체의 간절한 호소력이 사회적 울림과 실천으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황철우 /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쉼터 꿀잠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