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주가 주도하는 관료적 시장

     

돈주와 권력층의 유착에서 이른바 ‘알쌈’관계가 형성된다. 후견-피후견 관계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을 북한용어로 알쌈이라고 한다. 상층(권력층)끼리는 주로 친한 사이, 중하층은 서로 보호해주는 사이를 말한다. 후견-피후견으로 묶인 사이에서는 상대를 “내 알쌈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1. 경제 질서의 재편과 ‘관료적 시장’의 형성

권력과 무관한 경제는 없다. 정치와 경제는 통합적 과정이다. 서로 간섭하지 않는 정치와 경제는 없다. 권력이 스스로를 전개하는 두 개의 측면이 정치와 경제이다. 북한에서 시장을 권력과 적대적 관계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북한 권력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생산성의 바다’인 사회에 투입하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공동체가 무너진 공백에 새롭게 구성되는 사회적 구조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조직하고 있다. 사실, 북한 권력의 작동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시장이다. 북한의 시장은 초기의 자생성을 잃고 관료들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

시장 공간은 경제 행위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시장은 권력적이다. 시장은 정치의 결과물이다. 경제를 규정하는 것, 시장을 여는 것, 이런 것들 모두 정치의 산물이다. 스스로 작동하는 경제는 없다. 예를 들자면, 경제는 팽이와 같다. 팽이가 쓰러지지 않고 운동하기 위해서는 채찍질이 필요하다. 팽이는 아무 곳에서나 돌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노면에서 팽이는 쓰러지기 마련이다. 팽이가 도는 길을 따라 노면을 골라주어야 한다. 혹시 부주의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재빨리 다시 줄을 감아 돌려주어야 한다. 팽이가 스스로 회전할 수 없듯 북한의 시장도 권력의 조력이 필요하다.

북한에는 기존 권력에 ‘대척점으로 상정할 시장 권력’은 없다. 시장 권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권력자의 비호 아래 존재한다. 북한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신정’(神政)의 서사구조가 여전하다. 시장에서 부를 일구었다고 감히 수령 권위에 대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장에서 자라난 신흥부유층이 권력층과 대척할 것이라는 가정은 매우 순진무구한(naive) 발상이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관찰자들이 범할 수 있는 오류이지만 그릇된 관점이 고정되면 곤란하다. 북한 신흥부유층은 대부분 권력층이다. 설사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이미 북한의 시장은 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른 권력 주체들이 벌이는 각축장이 되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아, 위계(hierarchy)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권력이 시장에서 부를 수탈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그중에서 매우 적나라하고 천박한 방식도 관찰된다. 시장의 활동을 위협하여 이윤을 ‘약탈’하는 것이다. 현재 북한 시장은 권력의 ‘더럽고’, ‘기회주의’(opportunism)적인 확장이 극렬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불안정하다. 그러나 시장이 불안정하다고 북한 권력까지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너무 멀리 나간 것이다.

북한 경제는 기존의 생산ㆍ분배시스템에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나가는 과도기에 처해있다. 북한은 현재, 화폐를 투입하여 생산과 유통, 분배를 조직하는 사회적 과정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북한 관료(권력)집단이 시장에서 부의 이전을 제도화하기 위한 구조를 어떻게 짜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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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배자와 관료집단의 흥정

북한의 자원 분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념형(Ideal Type)이 베버(M. Weber)의 ‘가산제(patrimonialism)’이다. 가산제는 전통적 권위로 통제되는 가부장(家父長)지배 유형의 하나이다. 특정한 지배 영역 전체와 거기에 있는 주민과 재산을 지배자의 세습재산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이때 정치, 행정, 군사, 경제 등 지배 수단은 한 사람의 지배자에게 집중된다. 지배자는 그 일부를 자신의 대리자인 관료들에게 위임한다. 이러한 원리에 입각하여 존립하는 국가를 가산국가(patrimonial state)라고 한다. 현재 북한은 가산국가가 가지는 경제운용 구조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관찰되는 형태로, 이전에는 1인 지배와 정교한 관료체제, 내재적 규범을 근간으로 자원을 권위적으로 배분하였다. 그러므로 1990년대 이전의 지배 구조를 가산제로 보기는 어렵다. 가산제는 군주제보다 덜 정치(精致)한 지배 체제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1990년대 이후 등장한 가산국가의 모습은 북한 체제의 자원 통제능력이 떨어졌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북한의 시장 전개를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ly oriented capitalism)로 설명하는 흐름이 있다. 그런데 정치적 자본주의는 사실상 동어반복이다. 정치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의미를 가지려면, 정치적이지 않은 자본주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모두 정치적이다. 영국의 ‘보호무역’, ‘비교우위론’, 미국의 ‘유치산업 보호론’, ‘경쟁우위론’ 등의 경우처럼 경제는 언제나 국가권력의 기획 하에 법ㆍ제도ㆍ사회적 환경을 갖춘 다음 정식으로 등장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는 손이 없으면 기능하지 못한다. 북한 경제를 정치적 자본주의와 같은 수사로 덧씌울 필요는 없다. 북한 경제의 자원 배분은 가산제식 이권 분배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즉 통치자는 경제를 포괄적으로 규제한다. 그는 산업 활동에 대한 허가권을 관장하고 독점권을 부여한다. 국가 또는 정권은 산업 활동에 대한 허가권과 독점권을 정권 유지라는 정치적 기준에 따라 편파적으로 배분한다. 그 대가로 정권의 재정 확충을 위한 수수료, 사례금, 특별 세금을 받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납(貢納)과 다르지 않다. 북한에서 화폐적 이윤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통치자의 셈법에 달려있다. 가산제식 자원 분배에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특권으로 주어진다. 국가는 그 특권을 관장한다. 통치자의 가신은 경쟁을 거치지 않고 특권을 받아 시장지배자(market dominant)가 된다. 가신이 아닌 개인이 산업 활동을 통해 이윤을 얻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정권 또는 국가기구와 결탁해야 한다. 권력의 특혜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 정권은 산업 활동과 관련한 특혜와 보호를 정권 유지에 긴요한 기관과 협조적인 세력에게 정치적으로 배분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북한 고유의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 전환을 할 때, 경험했던 과정이다. 전통적 자원 배분 메커니즘이 시장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에도 어김없이 발견된다.


3. 특권을 이용한 시장의 창출

1990년대 시장이 확산된 주된 원동력은 북한 당ㆍ군ㆍ정의 각종 기관 및 간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시장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 계기는 국가가 식량 배급을 중지하면서 내린 ‘자력갱생’을 지시로 촉발되었다. 통치자는 당ㆍ군ㆍ국가기구에 특권을 주고 시장에 지배력을 행사함으로써 불로소득과 높은 이윤을 보장해 주었다. 이들은 주민들을 임의대로 생산에 동원하거나 착취적 분배를 강요하여 창출된 부(wealth)를 강탈했다. 권력 기관들은 서로 흥정과 결탁을 통해 이권을 나눴다. 주민들은 작은 이익의 확보를 위해 청탁을 하거나, 상업 활동의 보장을 얻기 위해 뇌물을 바쳤다.

【그림 7-1】 북한의 권력 지형

김정일은 가산 지배자처럼 행동했다. 그는 당과 군대의 경제 활동을 국가 전체의 경제 운용과 분리하여 개인 소유처럼 관리했다. 또한 특수 권력기관들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보장해 주는 방향에서 경제를 운용하도록 간섭했다. 당과 군은 경제 위기 이후 자신들의 산하에 무역회사를 잇따라 설립했다. 내각 기관과 마찬가지로 당ㆍ군의 기관들도 경제 위기 속에서 일정 정도 자력갱생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오래지 않아 무역회사들의 난립으로 대외교역은 무질서해지고 이것이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급기야 2000년대 중반이 되면 김정일은 자신이 야기한 무질서를 정리할 것을 지시한다.

지금 사회의 기관, 기업소들과 (인민군이 아닌)다른 무력기관들에서 저마끔 수산기지와 외화벌이기지를 꾸려놓고 비법적인 장사행위를 하면서 무질서와 혼란을 조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인민군대에서 그것을 다 정리하여야 하겠습니다. 없앨 것은 없애고 넘겨받을 것은 넘겨받아 인민군대에 소속시켜 놓아야 합니다.
김정일,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에게 하신 말씀”(2004.4)
경제 위기를 지나면서 북한의 지도층은 일종의 국가계급으로 분화하였다. 당과 국가기구가 특권을 받아 시장에 개입하여 생산자 대중이 창출한 부를 전유하였다. 이 과정에서 획득한 화폐를 사회에 재투입하여 사회적 과정을 통제하는 권력을 확장했다. 그들은 전유한 부로 특권을 강화함으로 시장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키워갔다.


4. ‘돈주’들의 활약

북한 주민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하는 네트워크는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관료와의 관계이다. 특히 개인적 상행위를 하는 주체는 국가보위부와 사회안전부 등과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유용하다. 현재 북한에서 시장이 없는 경제는 상상하기 어렵다. 국가가 민생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는 시장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국영부문의 시장 의존은 심화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산물인 돈주와 국가 권력층과의 유대는 공생ㆍ공존관계로 발전하였다. 물론 권력계층과 돈주는 화폐를 매개로 사회적 결속을 다지며 이권을 거래한다. 돈주는 북한의 국가 권력이 지금과 같이 유지되는 한 북한경제를 뒤에서 움직이는 실세이다. 돈주는 현재 북한체제의 특성상 비공식적 혹은 비합법적 활동들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계급(관료계급)의 정치적 비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돈주들은 국가로부터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막대한 양의 공채를 사거나 헌금을 하기도 한다. 국가에 기부금을 내게 되면 감사장이나 표창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위법행위가 적발되더라도 안전할 수 있다. 돈주는 관료들과의 결탁을 통해서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있기 때문에, 급진적인 정치적 개혁이나 체제전환을 요구하기 어렵다. 돈주와 관료 사이의 유착관계 형성으로 발생하는 체제적 부패는 현상유지를 바라는 양 세력의 이해관계가 일치된 결과이다.

돈주와 권력층의 유착에서 이른바 ‘알쌈’관계가 형성된다. 후견-피후견 관계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을 북한용어로 알쌈이라고 한다. 상층(권력층)끼리는 주로 친한 사이, 중하층은 서로 보호해주는 사이를 말한다. 후견-피후견으로 묶인 사이에서는 상대를 “내 알쌈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림 7-2】 ‘돈주’와 ‘내부자들’(inner circle)


북한의 경제 환경은 이렇게 형성된 ‘내부자들’(inner circle)과 낮게 제도화된 시장으로 구축되어 있다. 권력층은 이해를 같이하는 ‘알쌈’들과 합작해 독점적인 시장 경제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수령과 소수 측근지배연합 네트워크로부터 각 지역 단위, 당ㆍ군ㆍ정의 권력 단위가 위계적 층위를 가진다. 중하층 관료, 외화벌이회사ㆍ기지장, 돈주, 상인, 이해를 가진 북한주민 등의 네트워크도 가동된다. 이 모든 관계망에서 결탁과 흥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령, 권력기관, 돈주, 주민 등이 공생을 위해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는 역동성을 보이며 진화하고 있다.

현재 돈주는 시장에서 독점적 가격 결정권을 기반으로 이익을 전유하고 있다. 독점적 시장이 형성된 이유는 국내 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주들은 공급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을 이용하여 거래와 생산을 독점하고 있다. 시장에서 가격 결정자(price-maker)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돈주의 경제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관료들과의 후견 관계 때문이다. 돈주들은 불법행위에 대한 보호막으로 보험의 성격을 띤 정치적 후원이 필요하게 된다. 돈주들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전유한 독점 렌트(monopoly rent)의 일부를 권력 엘리트에게 상납한다. 이는 곧 사회적 비용 증가로 나타난다. 사회적 비용은 독점 가격으로 주민들에게 전가된다.

돈주들은 전통적 지배 질서의 회복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면적 시장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비록 돈주들이 시장화를 주도하고 있지만, 그들은 독과점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시장은 경쟁 체제이다. 돈주들은 당분간 경쟁 체제를 수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시장에서 확고한 지배자의 지위를 확보할 때, 더 많은 이윤을 목적으로 시장 규모를 키우기 원할 때, 경쟁 체제를 받아들일 것이다. 시장화를 주도하는 돈주들의 우선적 관심은 주민들의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의 관심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화폐적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시장은 돈주들과 권력 엘리트들의 흥정의 장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시장은 주민들의 소박한 기대를 실현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새로운 지배 질서를 회임(懷妊)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민영기 / 동국대학교 외래교수,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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