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못 타면 버스로 : 다인선거구제

     

‘한 선거구에서 뽑는 인원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으로’. 이것은 곧 선거제도 개혁운동사의 상당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택시를 잡기 힘들면 여럿이 타는 버스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태우는 승객이 많은 차일수록 여러 사람이 탈 수 있습니다.


단순 다수제든 절대 다수제든,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 사이의 비례성을 보장할 수 없으며,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과 다당제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연히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의원을 뽑는 선거제도로 조명을 돌리게 됩니다.

소선거구제는 거대정당도 우려할 만합니다. 소선거구제는 거대양당 이외의 정당을 배제하는 효과가 크지만, 혜택을 누리는 그 양당이 고정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있지만 새가 날아오르듯이, 소선거구제가 양당제를 유인한다는 뒤베르제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제3당이 부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이 2위권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1~2위였다가 3위로 밀려난 기성정당은 크나큰 불이익을 받기 시작합니다. 영국이 이런 사례입니다. 반면 그런 이치를 절감하고 소선거구를 없애는 나라도 있습니다. 노르웨이가 그렇습니다.

지금도 소선거구-단순 다수제만으로 의원을 뽑는 영국은 20세기 초반까지 보수당과 자유당이 양당체제에서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과 사회민주주의를 원동력으로 삼은 노동당이 치고 올라오자 기반을 잠식당한 자유당의 몰락은 가속화되었습니다. 1906년 총선에서 득표율 48.9%에 총의석의 59.3%를 차지한 자유당은 1918년 총선에서 득표율 13.3%에, 의석점유율은 득표율의 반도 되지 않는 5.4%였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 1983년 자유당은 25.4%를 득표했으나, 비례성 낮은 제도 때문에 의석점유율은 3.5%였습니다.

영국 자유당이 노르웨이와 같은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노르웨이도 1910년대에 보수당 대 자유당의 양당제 상황에서 노동당이 급부상했었습니다. 노동당이 거대양당 중 하나를 제치기라도 하면 급속히 몰락할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르웨이 정치권은 1919년 개헌 당시에 지지율만큼이라도 의석수를 챙겨갈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듭니다. 그때 도입된 것이 한 선거구에서 여럿을 뽑는 다인선거구제입니다.

‘한 선거구에서 뽑는 인원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으로’. 이것은 곧 선거제도 개혁운동사의 상당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택시를 잡기 힘들면 여럿이 타는 버스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태우는 승객이 많은 차일수록 여러 사람이 탈 수 있습니다.

다인선거구제는 선출되는 인원과 선출하는 방식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선거제도를 설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어주시면 더 좋을 것입니다.

중대선거구제는 민주 선진국에 없다?

다인선거구제(multi-member constituency)는 ‘중대선거구제’라고도 한다. 혹자는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선출하면 중선거구제로 분류하고, 선출 인원이 5인 이상이면 대선거구제로 분류한다. 어떤 이는 기준을 2~5인으로 잡기도 한다. 뚜렷한 구분선이 없으니 1명을 선출하는 선거구를 소선거구, 2명 이상을 뽑는 선거구를 ‘다인선거구’로 통칭한다. 또한 중대선거구가 ‘면적이 소선거구보다 큰 선거구’가 아니라 ‘한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인원이 여럿’이라는 점에서, 오해를 막는 데에도 ‘다인선거구’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소선거구제/다인선거구제는 선출 인원에 따른 구분임에도, 다른 구분에 따른 선거제도와 뒤섞어서 하나의 차원에 놓는 오류가 자주 일어난다. “귀하는 소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제 가운데 어느 제도를 선호하십니까?” 따위의 문항이 그렇다. “중대선거구제는 민주 선진국에 없다”는 진술도 마찬가지다.

한 선거구에서 의원 여럿을 선출하는 나라를 보자. 유럽만 해도 다음과 같다.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마케도니아, 몰도바, 몰타, 루마니아,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벨기에, 보스니아,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산마리노, 스페인, 스웨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체코, 포르투갈, 폴란드, 핀란드.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할 만한 국가가 다수 발견된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코스타리카, 페루를 포함해 남미에서도 다인선거구제가 흔하고, 중동에서는 이스라엘, 키프로스, 터키가 한 선거구에서 여럿을 뽑는다.

이 나라들은 비례대표제 실시국가이기도 하다. 다인선거구에서 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제는 단순 다수제/절대 다수제처럼 ‘선출 방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단순 다수제/절대 다수제가 ‘후보자에게 투표한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면, 비례대표제는 정당별로 지지율을 먼저 따져서 그에 따라 각 정당에게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다인선거구제는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실시되지 않으며, 정치개혁 방안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통념은 한국과 일본의 전례를 통해 강화되었다. 한국은 4.19 직후 1960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치른 참의원 선거에서, 각 도 및 특별시별로 4~8명을 선출했다(제주도는 2명). 다인선거구는 참의원 선거와 함께 5.16쿠데타로 사라졌고 나중에는 독재 이미지를 띤다. 1972년 유신독재 시기에 도입되어 역시 독재였던 5공화국 기간까지 유지된 것이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에 이어 치러진 1988년 총선에서 없어졌다.

일본은 다인선거구제의 대표 국가로 소개되었었다. 그것은 다인선거구제 국가 대다수가 비례대표제를 채택함으로써 ‘다인선거구제’가 아닌 ‘비례대표제’라고 소개된 것에서 기인한다(비례대표제에서는 정당별 득표율을 우선시하여 일단 의석을 정당별로 배분하지만, 일본은 후보자별 득표 순위를 따져 당락을 갈랐다). 그런 일본은 1994년에 소선거구제를 도입한다. 당내 파벌투쟁이 고질적인 정치 악습으로 지목되었고, 한 선거구에서 여럿을 뽑으므로 한 정당이 여러 명을 공천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 인해 파벌이 병립한다는 문제의식이 쌓여 있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처럼 소선거구제를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일본 버전의 정치개혁인 소선거구제 도입의 결과, 소수정당은 뒤떨어지고 온전한 다당제는 형성되지 않았다. 미국처럼 말이다. 한국도 소선거구 도입 이후 정치적 다양성이 만개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 이전에는 더 나빴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험은 중대한 의문을 던진다. 혹시 다인선거구제의 세부적 설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양한 방식의 선거제도

몇 사람을 뽑을 것인가?

유신(제4공화국) 시기와 제5공화국기 한국에서 시행된 다인선거구제는 정확하게는 ‘2인 선거구제’였다. 모든 선거구에서 각 2명을 뽑았던 이 제도는 다인선거구제 가운데서 가장 나쁜 제도다. 1위와 2위 득표자가 당선되는 이 선거는 제1당과 제2당에게만 유리하다. 소수정당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

2인 선거구는 표심을 소선거구보다 더 크게 왜곡할 수 있다. 제3당부터 그 이하가 득표율에 비해 의석점유율이 떨어지는 경향을 겪을 뿐만 아니라, 제1당과 제2당 사이의 지지율 격차도 의석 격차에 반영되지 않는다. 20석을 모두 2인 선거구제에서(10개 선거구에서) 선출한다고 가정하자. 10개 선거구의 표를 모두 모은 결과 A당은 40%, B당은 30%의 지지율을 얻었다면, 어쨌든 A당이 B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어야 표심이 반영된 공정한 선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2인 선거구제에서는 A당이 10석, B당이 10석을 얻을 공산이 대단히 높다. 선거구별로 2위까지 당선되니, 1위가 2위보다 몇 표를 더 얻든 1위나 2위나 똑같은 당선자다. A당이 10개 선거구에서 모두 1위를 하고 B당은 모두 2위를 해도, 두 당의 의석은 같은 것이다. 이런 선거 결과는 의회 운영에서 더욱 말썽이 된다. 40% 지지를 받은 A당이 제의한 안건이라도 30% 지지를 받은 B당의 반대에 부딪히면, 10대 10 가부동수로 부결되기 때문이다.

3인을 뽑는 선거구라면 사정은 다소 다르다. 첫째, 지지율 1, 2위인 A당과 B당이 아닌 다른 당이나 무소속 후보라도 3등 안으로 들어가 당선될 길이 더 넓게 열리는 것이다. 둘째, 어떤 선거구에서 A당과 B당만 당선자를 내더라도 각기 2석과 1석을 얻는 식으로 우열은 확실히 갈릴 수 있다. 선거구내 당선자를 한 명 더 늘려 4인 선거구가 되면 구도는 또 달라진다. 소수파 후보의 진입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득표력의 우열이 의석 차이를 만드는 수준도 더 높아진다. 예컨대 지지율이 각각 40%, 30%, 20%인 A, B, C 정당은 3인선거구라면 각 당에서 한 명씩의 당선자를 낼 수도 있다. A당으로서는 억울할 법하다. 하지만 4인 선거구가 되면 ‘A당 2석, B당 1석, C당 1석’ 이런 식으로 A당이 우위에 설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은 기초의원 선거에서만 다인선거구를 도입하고 있다. 선거구별 인구에 맞춰서 2~4인을 뽑는다. 거대정당은 2인 선거구를 선호하지만, 소수정당이나 정치다양성을 추구하는 세력은 4인 선거구를 기대한다. 한 선거구에서 여럿을 뽑을수록, 정당별 지지율과 의석수 사이의 비례성이 올라가고 소수정당의 진입 공산도 커지며 다당제 형성에 유리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다당제를 지지한다 해도, 무턱대고 선출 인원을 많이 잡을 수는 없다. 첫째, 선출 인원이 늘어날수록 후보자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후보자가 난립하면 유권자는 누구를 선택할지 곤란해지거나 혹은 무성의하게 투표할 수도 있다. 둘째, 의원 총수가 불변하다고 전제한다면, 선출 인원이 늘수록 선거구별 면적은 커지고 인구는 늘어난다. 후보자의 선거운동 부담이 깊어진다. 이런 부담은 소수정당과 그 후보일수록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 딜레마 속에서 적절한 선출 인원과 선거구 수를 정해야 한다.

한편 다인선거구제에는 비례성 제고, 다당제 촉진 말고도 또 다른 큰 이점이 있다. 선거구 획정이 쉽다. 소선거구의 경우 선거구별로 인구 격차가 너무 크지 않도록 짜야 하고, 구역별 인구에 변화가 생기거나 선거구수를 조정할 때마다 선거구를 나누거나 붙이는 일에 애를 먹는다. 그러나 다인선거구에서는 선거구별 선출 인원을 통일하지 않는다면 선거구별 인구에 맞춰 선출 인원을 정하면 되니 인구 변화에도 편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 기초의원 선거에 2~4인 선거구가 도입된 주요 사유다.


몇 명에게 기표할 것인가?

한국의 모든 공직선거에서, 유권자는 한 후보에게만 투표한다. ‘단기명투표(單記名投票)’다. 1등만 당선되는 선거만이 아니라 유일하게 한 선거구에서 2~4인을 선출하는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그렇다. 이렇게 여럿을 뽑을 때 단기명투표는 한계를 지닌다. 여럿을 뽑는데도 자신이 직접 당선시킬 수 있는 후보는 1명뿐이며 나머지에는 관여하지 못한다.

선출하는 인원만큼의 후보자를 골라 투표할 수 있는 ‘연기명투표(連記名投票)’라는 대안이 있다. 선출 인원이 많을수록 연기명투표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후보 가운데 n명을 당선시키는 선거에서 이를 채택하면 한 유권자는 n명의 후보에게 투표한다. 연기명투표 가운데는 ‘제한적 연기명투표’도 있다. 투표 대상 후보의 인원이 2~(n-1)명 범위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연기명투표 사례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한 명에게 투표하는 선거가 가장 쉽다. 찍는 후보가 많을수록 어려워하는 유권자가 는다. 둘째, 누군가‘들’에게 투표한다는 것은 나머지를 배제하는 성격이 크다. 예컨대 후보가 3명이고, 찍는 후보가 2명이면, 나머지 1명을 배제하는 ‘반대투표’의 성격이 커진다. 어차피 여러 명을 한꺼번에 선출하는 선거라면, 상당수에게 배제당하는 후보더라도 일정한 득표력을 가졌다면 선출되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여러 명의 후보에게 표를 던져도, 그 지지를 받은 후보 사이에서 우열이 가려지지 않는다. 반드시 당선되었으면 하는 1순위 후보가 A후보이지만, 2명을 더 찍을 수 있어서 B후보와 C후보에게도 투표했다고 한다면, 그 세 후보는 모두 똑같이 한 표씩을 얻는다. 그래서 선호를 반영할 수 있도록 ‘누적투표’라는 대안이 나오기도 한다. 한 사람이 표를 여럿 갖되, 그 표를 한 명당 한 표씩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2표 이상을 줄 수 있는 제도다. 만약 2명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한 유권자가 2표씩 가지면, 어떤 유권자는 2명에게 한 표씩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유권자는 지지할 만한 후보가 1명뿐이라서든, 아니면 그 후보는 특별히 표를 더 얹어줘야 당선될 수 있을 것 같아서든 1명에게 두 표를 줄 수도 있다. 물론 누적투표 역시 단기명투표에 비해서는 어렵고 까다로운 제도다. 지지할 후보만이 아니라 그 후보에게 줄 표수(票數)까지 유권자가 정해야 한다.

넷째, 연기명투표는 소수파에게 불리하다. 가령 유권자가 2명을 지지할 수 있는 선거에서, A후보와 B후보가 연대하여 자신의 지지층에게 자신의 파트너를 찍어달라고 주문한다면, 이런 연대에 끼지 못하고 혼자서 운동하는 후보는 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다. 4명을 뽑으며 유권자당 3명을 찍을 수 있는(제한적 연기명투표) 선거에서, 거대정당 A당은 3명을 출마시켰고 소수정당 B당에선 1명이 출마했다고 가정하자. A당 지지자 상당수는 세 표를 A당 후보 3명에게 줄 것이다. B당 지지자 상당수는 1표를 B당 후보 1명에게 주면서 나머지 2표는 다른 후보에게 주며 ‘남 좋은 일’을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소수파인 후보도 당선기회를 주도록 다인선거구제를 실시해봤자, 연기명투표는 결과를 다수정당의 독과점쪽으로 민다.

연기명투표(제한적 연기명투표 포함)는 유권자나 후보자 입장에서 고려사항이 많고, 어떤 행위자에게는 리스크가 크다. 그래서 모든 유권자가 참가하는 공직선거가 아니라, 정당처럼 특정한 성향을 따라 모인 곳에서 내부 선거로 실시되고는 한다.


단기비이양식 단순다수제냐,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냐

다인선거구에서 한 정당은 후보를 여러 명 낼 수 있다. 그런데 만일 후보자별 득표로 당락을 가르는 ‘단순 다수제’를 채택한다면, 정당과 후보와 유권자 모두 고민에 휩싸인다. 같은 정당의 여러 후보들은 자기들끼리의 싸움을 감내해야 한다. 과거 일본의 중대선거구제가 그랬고, 한국의 현행 기초의원 선거가 그렇다.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정당이 선출 인원 이하의 인원을 출마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명의 대통령을 뽑을 때는 후보를 1명만 낼 수 있고, 기초의원 4인 선거구에서는 최대 4명을 낼 수 있다. 법으로 더 내라고 해도 선출 인원을 초과해서는 내지 않을 것이다. 많이 낼수록 자당의 표밭은 분산되고, 그 당의 후보들은 다 같이 개인별 득표력과 당선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렇다고 적게 낼 수도 없다. 적은 후보에게 표를 뭉쳐서 줌으로써 당선율을 높인다 한들 차지할 수 있는 의석도 그만큼 적어지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투표가 다가올수록, 다른 정당 지지자를 자당의 지지자로 만들기보다 자당 지지자를 자신에게 당겨오는 데 골몰하게 된다. 그것이 더 손쉽기 때문이다. 지지자도 고민이다. 가장 선호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지지하는 정당의 의석수를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지지한 후보만 당선되고 같은 당의 나머지 후보는 저조한 득표로 낙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지정당 후보 중 당선이 유력한 후보를 제쳐두고 당락 가능성이 애매한 후보를 찍는 유권자도 있다. 그러나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을 미리 가늠하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자신과 같은 유권자가 생각보다 많은 탓에 당선 가능성이 높아보였던 후보는 정작 탈락하고 낮게 느껴진 후보는 당선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앞에서 짚었듯 선출되는 인원이 많은 선거구일수록 다양한 성향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의회에 많이 입성한다. 하지만 이런 선거구에는 너무 많은 후보가 나올 길도 따라서 넓어진다. 유권자도 후보자 난립에 헷갈리지만, 선거 결과도 마뜩치 않을 것이다. 너무 많은 후보가 표밭을 잘게 쪼개서 미미한 득표로도 당선순위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 결과 각 당이 자기 지지율에 걸맞은 의석을 가져갔는지, 비례성도 장담할 수 없다. 선거는 복불복 난장판이 된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이러한 난점들을 극복하거나 보완한다. 이 제도에서는 후보자별 득표보다 정당별 득표가 우선시된다. 예를 들어 10명을 선출하는 선거구가 있고, 거기서 A당이 가) 나) 다) 라) 네 명을 후보로 내서, 세 후보의 득표 총합, 즉 정당별 득표(후보를 지목하지 않고 정당만 지목할 수도 있다면 이런 표도 합산된다)에서 30%를 얻는다면, 10석의 30%인 3석을 확보한다. 정당별 득표를 따져서 그것과 의석수를 비례 관계에 놓는다.

여기서 후보자별 득표는 정당별 득표에 직결되어 그 정당의 의석수를 늘릴 수 있다. 어느 후보에게, 같은 당 다른 후보의 득표가 도움이 되는 것이다. 누가 얻은 표를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없는 ‘비이양식’과는 정반대이므로, 같은 정당 후보끼리의 협동을 추동하거나 적어도 과열경쟁을 완화한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지지하는 정당과 특정 후보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정당도 출마 인원부터 선거운동과정까지 고민을 던다.

이 예시에서, A당 후보가 4명인데 의석이 3석인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라마다 다양한 방식이 있다. 후보자별 득표를 따져 그 4명 중 1~3위가 당선될 수도 있고,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도 있다. 당내 당락자 결정 이전에, ‘각 정당의 득표율을 두고 어떻게 계산해서 의석을 배분하는지’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이는 다음 편에서 살펴보겠다.



김수민의 정치현장 에피소드
제게 굴러온 3인 선거구

제가 2010년 구미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시점은 2009년 12월입니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구미시의회 지역구 의원은 모두 2인 선거구에서 선출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2006년 선거에서 10개 선거구에서 2명씩 선출된 구미시의회 의원은 모두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소속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초강세 지역이었기에 소선거구로 하든 2인 선거구로 하든 한나라당이 모두 석권하기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저는 출마를 결심할 당시에는 당선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즈음 중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초의원 선거구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더 쪼개서 정합니다. 구미는 갑/을 두 개의 국회의원 선거구가 있습니다. 종전에는 갑/을 모두 각각 2인 선거구 5개로 분할되어 기초의원을 10명씩 뽑았습니다. 그러나 기초의원 선거구를 정할 권한을 지닌 경북도의회 의원들(그리고 그 배후의 국회의원과 정당조직)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구미 갑 지역이 을 지역보다 인구가 많다는 명분으로, 갑쪽이 갑/을 기초의원 정수를 10대 10에서 11대 9로 바꾸려고 시도해 성공시켰습니다.

갑쪽은 11명을 뽑아야 하다 보니 2인 선거구 4개에 더해 3인 선거구 1개가 생겼고, 을쪽은 3인 선거구 3개로 변했습니다. 제가 출마하려는 지역도 3인 선거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한나라당 후보 3명과 무소속 후보 2명이 출마해서 경쟁률도 낮았는데, 더구나 무소속 후보 중 다른 한 명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넓은 범위에서의 한나라당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를 모으면 너끈히 당선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법원에서 일하던 한 고교 동창이 전화로 제게 멋모르는 소리를 했습니다. “3명 뽑으면 사람들이 3표씩 찍을 텐데, 한나라당 지지자는 그 당 후보 3명을 찍지 않겠냐? 너한테 불리하겠네?” 그 친구는 ‘연기명투표제’인 줄 알았나 봅니다. “단기명투표라서, 한나라당 지지자 표는 세 후보로 흩어진다”고 설명해주니, 조금 민망한 듯 빨리 전화를 끊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의원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그렇게 알고 있는 시민들은 고학력 유권자가 많다는 경험담이 나왔습니다. “보통은 그냥 한 표씩 찍는데, 고학력이면서 동시에 제도를 모르는 사람은 꼭 머리를 자기가 알아서 한 번 더 굴리더라고.”(당시 어느 4선 의원)

한나라당의 한 후보가 23% 득표로 1위, 저 말고 다른 무소속 후보가 22%로 2위, 제가 21%로 3위를 차지하면서 동반 당선되었습니다. 4위를 한 한나라당의 어느 후보는 20%, 5위를 한 한나라당 후보는 14% 가량 나왔습니다. 초접전이었죠. 3인 선거구가 아니었으면 저는 당선되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 한나라당이 욕심을 누르고 후보를 2명만 냈다면 그 2명이 모두 당선되었을 것이고, 제가 저 아닌 다른 무소속 후보를 제치지 못했다면 전 낙선했을 겁니다.

‘단기비이양식 단순다수제’가 아니라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였다면? 제도가 바뀌면 구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라 어차피 정확한 계산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저 한나라당 후보 세 명이 다 합쳐 57%를 득표한 걸 감안하면, 한나라당이 2석을 가져가고 저는 3위안에 들지 못했을 공산이 높습니다.

인생은 모를 일입니다. 저는 2006년 당시 기초의원선거에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될 때, “중대선거구제를 하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식으로 해야 하고, 그게 아니면 소선거구제를 하는 게 더 낫다”면서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한 지인과 심하게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그 제도로 당선된다는 건 물론이고 4년 뒤에 출마하게 될지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김수민 /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자 · 전)구미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