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는 있지만, 법조문에는 없는 이름

     

‘가족 돌봄의 사회화 전략’으로서 ‘가족요양보호사 되기’는 비록 제도 설계 시점에서 의도된 것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노인의 돌봄 방식에 대한 선택권을 존중하면서도, 가족 수발자의 권리를 실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시간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그간 가정 내에서 비공식적으로 제공되어왔던 돌봄을 어떻게 인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에서 노인 돌봄의 사회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도에서 가족 수발자들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를 위해 ‘노인장기요양보호법’ 에서 가족 수발자들의 지위와 역할, 책임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검토하겠습니다.


도입과정에서의 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된 해는 2008년이지만, 처음 제도가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0년 전후입니다. 한국 사회는 2000년에 이른바 고령화 사회[1] (ageing society)로 진입했지만, 노인 돌봄의 공식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시기의 서구 복지국가에 비해 고령화 수준 자체는 높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표1> 주요국가의 고령화 속도(자료 :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11)

세계에서 인구 고령화가 가장 먼저 진행되었던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 고령사회(Aged society)에 진입한 시점은 한국보다 몇 십년이 빨랐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진행되는 기간이 짧게는 40년(독일), 길게는 115년(프랑스)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의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구 고령화 속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빠르기 때문에, 고령사회, 더 나아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시기가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인구 고령화는 자연스럽게 노인 의료비 증가로 이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정부는 기존 국민건강보험제도 만으로는 노인 의료비 증가라는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고 예측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가파른 인구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의료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건강보험공단의 2009년 자료에 따르면, 1990년에 전체 의료비의 8.2%를 차지하던 노인 의료비가 2008년에는 전체의료비의 29.9%를 차지하게 됩니다.

한편 가족 구조와 돌봄에 대한 태도 변화 등의 사회적 변화로 인해서 ‘가족에 의한 돌봄’ 이라는 예전의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80년대 이후 3세대 가족 형태가 꾸준하게 줄어들고 있었으며, 여성의 유급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아지고 있었고, 동시에 전통적 의미의 ‘자식의 도리’ 혹은 ‘효(filial piety)의 실천으로서 부모를 집에서 모셔야 한다’는 사회규범이 점차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위의 두 가지가 아닌 ‘제 3의 요인’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 그것은 정부가 노인 돌봄을 포함한 사회서비스 분야를 ‘신 성장동력’의 하나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건강보험공단은 2008년 제도를 도입할 당시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 직후 최대 92,000명의 고용이 증대되리라 전망하였으며, 이후 매년 일자리가 새롭게 생겨나 2012년에는 최대 149,819명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건강보험공단 보도자료, 2008년 6월 27일 배포). 이러한 고용 창출효과로 인해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재정기획부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도입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습니다(박하정 2008: 55).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는 돌봄 ‘산업’에 민간 공급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입시키고자 했는데, 많은 학자들은 정부의 민간사업자 유도정책으로 인하여 장기요양 서비스 전달체계가 왜곡되고, 돌봄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악화될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제갈현숙 2009; 석재은 2010).

장기요양보험 도입 시기의 사회적 맥락과 당시 정부가 가진 의도와 더불어, 한국 복지 제도, 특히 사회보험제도가 가지는 ‘저보험료 저급여’라는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의 사회복지지출은 다른 OECD  가입국과 비교하여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5년 기준, OECD 평균 사회 복지 지출(social welfare expenditure)이 GDP의 20.5%에 달하는 데에 반해, 한국의 경우에는 GDP의 10.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OECD 2019).

<표 2>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2015/17 혹은 가장 최근 년도 기준)
(자료 : OECD (2019), Social Expenditure (SOCX)  via www.oecd.org/social/expenditure.htm. For detail on the underlying methodology regarding the detailed social expenditure programme data, see the manual to the OECD Social Expenditure database (SOCX).)

그러나 이제까지 '저보험료 저급여' 방식을 고수하고 사회복지의 책임을 가족에게 부과해온 한국 복지국가의 이런 특성이 새로운 보험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았습니다(석재은 2010: 39).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정부는 장기요양 공급과 관련한 인력 및 시설 기준을 완화하게 됩니다.

기존에 가정 내에서 수발을 담당하던 가족이 제도에 포괄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는 앞에서 언급했던 사회적 맥락, 정부 정책의 방향, 그리고 한국 복지 제도의 특성을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한국 복지국가의 특성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뒤따르게 됩니다.

  • 공적요양보험제도가 노인 혹은 수발자의 사회적 권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혹시 경제성장 동력 및 비용의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것은 아닌가?
  •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개인의 사회적 권리가 들어갈 자리는 사라지고, 원치 않는 부담과 책임을 누가 떠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만 남게 되는 건 아닌가?

이런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및 보건복지부 고시를 살펴보겠습니다. 법조문을 살펴봄으로써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1.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노인 개인만을 위한 제도인가, 아니면 노인을 돌보는 가족까지도  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당사자로 설정하고 있는가?
  2. 이 사회보험이 제공하는 급여의 종류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특정 형태의 급여를 권장하거나 배제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가?
  3. 기존의 가족 돌봄을 제도의 내부로 포괄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가족이 담당했던 책임의 변화가 있는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통해 본 가족 돌봄과 가족요양보호사

한국의 공적 노인 돌봄은 사회보험방식으로 보장되며,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이라는 형태로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이 법의 목적 및 원칙은 각각 제1조와 제3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제공하는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동법 제 1조는 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 역시 그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제도를 통해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이 해결되었네요! 하지만 제도의 구체적인 규정들이 실제로 법의 목적에 부합하고 있는지 문제가 됩니다. 제1조에서 언급된 제도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원칙은 제 3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해당 조항에는 장기요양급여 제공에 있어서 노인 뿐만 아니라 가족의 욕구 및 선택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2항에는  ‘재가 급여(in-home service) 우선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는데, 비용절감 혹은 ’주거지에서의 노년(ageing in place)’을 장려하는 정책 방향 양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가 급여(in-home service)는 어떠한 종류가 있을까요. 재가 급여를 비롯한 급여의 종류에 관한 규정은 법 제23조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조항에서는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 등을 비롯한 재가급여(1항)에 관한 사항 외에도, 시설급여(2항) 및 특별현금급여(3항)에 관한 사항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글에서 제가 한국에서는 현금급여를 허용하지 않고 현물(서비스)급여제공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가족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돌봄 노동자가 되는 방식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에서는 가족이 현금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네요.

그렇다면 혹시 가족이 이 법 제 23조의 존재를 몰랐던 것일까요? 그 조항에 명시된 특별현금급여는 어떻게 수급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해당 급여의 이름은 왜 현금급여가 아니라 ‘특별’현금급여일까요? 그 답은 제 24조에 있습니다.

제24조(가족요양비)
①    공단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수급자가 가족 등으로부터 제23조제1항제1호가목에 따른 방문요양에 상당한 장기요양급여를 받은 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당해 수급자에게 가족요양비를 지급할 수 있다.
  1.    도서ㆍ벽지 등 장기요양기관이 현저히 부족한 지역으로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자
  2.    천재지변이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사유로 인하여 장기요양기관이 제공하는 장기요양급여를 이용하기가 어렵다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하는 자
  3.    신체ㆍ정신 또는 성격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인하여 가족 등으로부터 장기요양을 받아야 하는 자
②    제1항에 따른 가족요양비의 지급절차와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제24조는 제 23조 제 1항 제 3호 가목의 가족 요양비, 즉 ‘특별’ 현금급여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현금급여는 방문요양(재가 급여)가 현저히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거나, 천재지변 등으로 재가 급여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특수한 경우에만 지급되므로, 한국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가족 요양비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법에는 매우 제한적으로 ‘가족 요양비’라는 이름의 가족을 위한 현금 급여항목이 명시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가족 수발자들은 이를 선택할 수 없으므로, 이들은 가족 돌봄을 공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즉 금전적 보상을 획득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가족요앙보호사 (family care halper, FCH)’ 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난 글 마지막에 제기했던 질문을 다시 가져 오겠습니다. ‘가족 돌봄의 사회화 전략’으로서 ‘가족요양보호사 되기’는 비록 제도 설계 시점에서 의도된 것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노인의 돌봄 방식에 대한 선택권(가족에 의한 돌봄)을 존중하면서도, 가족 수발자의 권리(돌봄에서 벗어날 권리/ 혹은 돌봄 행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권리, 돌볼 권리)를 실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회적 권리는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그 권리의 실현 여부를 권리의 상관물, 즉 제공되는 급여나 서비스의 보상 수준을 하나의 척도로 삼아 가늠하려고 합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서는 ‘가족요양보호사’의 존재를 별도로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급여 비용의 산정에 관한 조항인 제 39조와 제 41조를 살펴보아도, ‘가족요양보호사’ 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 41조 역시 가족으로부터 방문요양에 상당한 장기 요양을 받은 경우, 본인부담금을 감면하는 조치에 대해서만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앞에서 제기한 세 번째 질문, 즉 "기존의 가족 돌봄을 제도의 내부로 포괄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가족이 담당했던 책임의 변화가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법 제 39조에 따르면, 급여 비용은 장기요양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며, 구체적인 산정방법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고 있네요.

그럼,  보건복지부 고시에 나타난 ‘가족에 의한 돌봄에 대한 보상’을 살펴 보겠습니다.

윤태영 / 사회학 박사, 인하대학교 강사
▶ 다음글 : 시간은 줄이고, 책임은 늘리고 – 가족 요양에 대한 인정시간 변화


[1] UN에서 정한 고령화 기준, 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에서 7% 이상일 경우 고령화 사회(ageing society), 14%이상일 경우 고령 사회 (aged society), 그리고 20% 이상일 경우 초고령 사회(post-aged society)라고 정한다. 한국은 2000년(7.4%) 과 2017년(14.2%) 에 각각 고령화 사회 및 고령사회로 진입했으며, 통계청에 따르면, 2026년 경에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계청, 2019)

참고자료
- 국가법령정보센터, 노인장기요양보험법,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142990&efYd=20140214#0000 (Accessed on Nov. 10. 2019)
- 국민건강보험공단 (2008)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기대효과와 사회적 편익”, 국민건강보험공단 보도자료, 2008년 6월 27일 배포.
- 박하정 (2005) 사회복지정책결정과정의 정책네트워크 연구: 노인장기요양보험법과 노인복지입법사례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경희대학교.
- 석재은. (2010). 공급자 관점에서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개선방안. 보건복지포럼, 2010(10), 34-44.
- 제갈현숙 (2009). 노인장기요양 서비스 공급구조의 왜곡된 시장화: 시행 1 년을 맞이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문제점. 진보평론, (41), 211-233.
-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11
-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19
- OECD Social Expenditure (SOCX)  via www.oecd.org/social/expenditure.htm. For detail on the underlying methodology regarding the detailed social expenditure programme data, see the manual to the OECD Social Expenditure database (SOCX). (Accessed on Nov. 10.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