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어지럽지 않은가? 다당제에 대한 의문들

     

모기나 파리를 막으려고 문을 닫아버리면 사람도 소도 못 들어가고 환기에도 지장이 생긴다. 극우파나 반민주세력을 저지하려 다당제를 가로막는다면 다른 소수파도 정치적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들 가운데 극우파의 천적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떤 정치 세력이 우려된다면 그들의 득표가 커지지 않게 여러 노력을 기울일 일이다. 그들이 표를 아예 얻을 수 없도록 골몰하는 건 해법이 아니다.

지금까지 ‘소선거구-단순 다수제’와 그것이 낳는 양당제의 문제점을 살피며, 다당제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소선거구는 다인선거구제로, 단순 다수제는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어떤 분들의 뇌리에 남아 있었을 의문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꼭 다당제를 해야 해?”

어떤 분들은 “양당제에도 단점이 있지만, 다당제도 또 다른 결점이 있지 않을까?” 상식적인 질문을 해보았을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다당제 옹호론이 현실에서 부딪혔던 의문들에 직면해보겠습니다.

Q 양당제와 다당제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의회 내에 두 당만 있어야 양당제라면, 한국 국회는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 3개 이상의 정당이 있었기 때문에 다당제가 아닌가?

A 말씀하신 대로 양당제와 다당제는 단지 존재하는 정당 또는 국회에 의석을 둔 정당의 수만 갖고 가릴 수는 없다. 각 정당의 비중이 더 중요하다. ‘의회 내 유효 정당수’라는 개념이 있다. 락소(M. Laakso)와 타게페라(R. Taagepera)라는 학자가 고안했다. 계산 방식은 다음과 같다. 1)각 정당의 의석이 의회 의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구한다. 2)의석점유율을 제곱하고, 3)그렇게 해서 나온 값을 모두 더한 다음, 4) 1을 그 값으로 나눈다.

N=의회 내 유효 정당수
Pa=a당의 의석점유율
Pb=b당의 의석점유율
Pc=c당의 의석점유율

한국의 2016년 총선 결과로 계산해보자. 총 의석 300석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차지했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122석,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38석, 정의당 6석이었다. 이들의 의석점유율은 각각 0.41, 0.4066, 0.1267, 0.02. 이를 제곱하면, 0.1681, 0.1653, 0.0160, 0.0004. 모두 더하면 0.3498. 1/0.3498을 해서 구한 유효 정당수는 약 2.8588이다. 2.85당 체제, 대략적으로 3당 체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현재 미국 하원의회는 총의석 435석에 민주당 235석, 공화당 199석이다. 각 당의 의석점유율은 0.5402, 0.4575이고, 이를 각각 제곱하면 0.2918, 0.2093. 1을 이 총합인 0.5011 로 나누면 1.9956당 체제. 양당체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Q 보통 다당제는 다양한 여론을 대변하지만 정국 불안을 조성할 공산이 크고, 양당제는 정국을 안정시키는 장점이 있다는 게 중평이다.

A 당이 많다고 해서 정국이 불안해진다는 법은 없다.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자신이 좀 더 다수를 이뤄 자기 소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다. 정당이 저마다 뿔뿔이 갈라져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시민은 이에 더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는 정당을 심판하고 다른 정당에게 더 힘을 몰아줄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정당의 수가 많은 데 원인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정치권과 시민을 연결하는 언론이나 교통 및 통신, 시민사회단체 등이 미약해서일 수 있다.

당들이 여럿 각개약진하고 있더라도 사안에 따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 표를 합칠 수 있다. 제가끔 다른 개인들도 한 집단에 모이는데, 집단과 집단이 힘을 합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여기에 대해 ‘처음부터 한 집단으로 더 크게 뭉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집단이 커지고 내부의 다양성이 커지면 그 집단의 향방을 놓고 싸우는 힘도 더 커진다. 결국 집단이 깨지거나 아니면 억지로 동거하면서 ‘헤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사이’가 될 수 있다. 억지로 뭉쳐놓았다가 갈라지느니, 어느 정도 갈라져 있으면서 중간 중간 의견 접근을 이루며 의사결정을 이끄는 게 낫다.

Q 다당제에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도 끼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이민자들이라든가 이런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며, 민주주의의 조건인 관용, 소수자 존중을 뒤흔든다. 과거 독일의 나치 정권도 다당제를 통해 국회에 진출하고 결국 집권까지 했다. 다양성을 공격하는 세력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품어도 되는가?

A 양당제라고 해서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념적으로 유럽 극우파와 흡사하다. 양당제에서 극우파는 제도 정치권 가장자리를 맴돌 수도 있지만, 어느 한쪽 정당을 선택해 들어가는 길도 있다. 당내에서 소수파로 그칠 수도 있지만, 당의 주도권을 잡고 집권 세력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그렇다. 이렇듯 양당제는 의외로 극우파를 예방하는 측면이 취약하다. 당내 극우파와 그렇지 않은 세력이 한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으면서 제대로 분간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극우파가 당내에 침투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기성정당이 여론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극우화될 가능성도 막지 못한다. 물론, 소량의 소금이 대량의 물에 녹아봐야 짠맛이 강하지 않은 소금물이 되듯, 극우는 그래도 거대정당 속에서 순치될 여지가 크다고 본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다당제에서도 마찬가지거나 그 이상이다. 극우가 독자 창당하고 점점 지지세를 넓혀 의석수를 늘린다 한들, 다른 정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비토를 받으면 큰 힘을 쓰지 못한다. 포위되어 묶여 있거나, 아니면 당의 색채를 어느 정도 바꿔야 한다. 요즘은 유럽 극우파도 노동자 서민을 위한 공약을 만들고, 생태나 여성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모기나 파리를 막으려고 문을 닫아버리면 사람도 소도 못 들어가고 환기에도 지장이 생긴다. 극우파나 반민주세력을 저지하려 다당제를 가로막는다면 다른 소수파도 정치적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들 가운데 극우파의 천적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떤 정치 세력이 우려된다면 그들의 득표가 커지지 않게 여러 노력을 기울일 일이다. 그들이 표를 아예 얻을 수 없도록 골몰하는 건 해법이 아니다. 또한 그렇게 막힌 세력이 의회 밖에서 독단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한다면 그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는 더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Q 그래도 난립과 무질서를 막기 위해 진입장벽은 필요하지 않을까?

A 진입장벽의 높이가 그 나라 정치의 질을 가늠하진 않는다. 네덜란드 국회의원은 150석인데, 진입장벽이 따로 없어서 1/150, 그러니까 0.66% 이상의 득표를 전국적으로 얻은 정당은 1석을 가져간다. 독일은 5%다. ‘독일 정치가 네덜란드 정치보다 낫다’거나, ‘진입장벽이 높아 더 나은 것’이라거나, 이렇게 말할 근거는 없다. 터키는 10%다. 터키가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민주국가가 아님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석 가진 정당이 0석 가진 정당과 매우 큰 차이가 있을까? 오히려 높은 진입장벽에 가로막힌 세력은 ‘제도가 잘못되어서 진입을 못하고 있으니, 더 큰 힘을 모아 달라’고 선전할 수 있다. 하지만 진입장벽을 통과해서 얼마간의 의석을 가진 세력은, 자신들이 제도권에서 했던 일로 평가 내지 심판받는다. ‘다음 선거’가 있는 한 걸러낼 기회도 있다.

진입장벽을 살짝 넘긴 작은 정당이 과연 정국을 얼마나 혼란케 할 수 있을까도 고려해봐야 한다. 이런 정당들보다 오히려 지지율이 10%~25% 정도 되는 중규모 정당들이 의회 의석 분포를 애매모호하게 가르고,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게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입장벽을 그저 높게 쌓을 순 없지 않은가.

Q 정당은 정부를 준비하는 집단이다. 정부를 준비하기에는 아무래도 큰 정당이 낫지 않을까?
또, 다당제는 아무래도 과반 의석을 가진 정당의 출현을 막는다. 그렇다면 집권 정당의 의석이 의회에서 반이 되지 않는 ‘여소야대’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 있는데?

A 거대정당을 좋아하는 국민들이 있다면 국민들이 그렇게 선택하도록 놔두면 된다. 다당제를 보장하는 제도에서도 거대정당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소수정당의 진로를 막아가면서 억지로 만들 이유가 없다.

소수파가 정부 운영을 맡을 수 없다는 것도 편견이다. 다당제에서는 특정 정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할 수 없으므로 여러 정당이 정부를 꾸릴 가능성이 높다. ‘연립정부’다. 둘 이상의 정당이 정부 정책에서 합의를 보고 각 정당이 장관직 등 권력을 나눠 갖는다. 소수파도 다른 소수파나 어떤 다수파와 힘을 합쳐서 정부를 운영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다수파 정당 입장에서도 연립정부는 당의 진로에 바람직하다. 혼자 과반을 얻으면 독주가 되어, 이것이 점차 민주주의를 저해하거나, 혹은 유권자의 불만을 다 뒤집어쓴 채 과격하게 심판받을 수 있다. 반면 타 정당과 손을 잡는 태도와 기술을 익힌다면, 다른 라이벌 거대정당을 제치고 오래도록 집권하는 것이 가능하다.

Q 의원내각제는 국회 다수파를 형성한 세력이 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정당들이 타 정당과 손을 잡고 정권을 잡으려는 습성이 생긴다. 반면 한국은 대통령을 따로 직선으로 뽑는 나라다. 여기서 다당제가 형성되면, 대통령 소속 정당은 혼자 집권하면서 국회 과반 의석에 미달하고 그 밖의 야당 의석이 더 큰 여소야대가 되기 일쑤다. 정부가 야당 주도의 국회에 부딪혀 제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A 대통령중심제라도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국회의원도 국무총리나 장관을 겸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당이 이런 각료들을 추천하거나 임명할 권한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통령이 정당의 의사를 보장해서 임명권을 쓰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립정부 구성 여부를 떠나, 여소야대 자체를 두려워하는 태도가 그르다고 지적하고 싶다. 어차피 여소야대는 대통령중심제면서 양당제인 정치체제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심지어 의원내각제에서도, 정당 간 연합에도 불구 최종적으로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 못하고 정부를 꾸리는 헝(hung) 의회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소야대가 된 이상, 집권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고 타협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연립정부를 만들지는 않더라도, 여당과 일부 야당의 사안별 협력은 가능하다. 더욱이 다당제에서는 야당이 여럿이라서 여당이 어떤 야당을 설득해서 과업을 추진할 수 있다. 여당보다 더 큰 하나의 거대야당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용이하다. 같은 여소야대라면, 여당 입장에서도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나은 것이다. 야당도 다당제에서는 여당의 처지를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고, 야당끼리 뭉쳐서 과반 의석 이하인 여당을 주저앉힐 수도 있다. 이쪽저쪽 모두에게 경우의 수가 좀 더 열린다. 반면 양당제에서는 여대야소가 되면 여당이 독주하고, 여소야대면 야당이 정부를 사사건건 방해할 수 있다. 국민 입장에서도 어느 쪽이든 제어하기 힘들다.

Q 현실적으로 대통령중심제 국가이면서 다당제가 형성된 경우가 민주주의 선진국에 별로 없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A 우선, 민주주의 선진국 가운데 대통령중심제 국가가 드물다. (같은 대통령중심제라도 제법 상이하긴 하지만) 한국, 미국, 프랑스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다당제적인 국가는 프랑스인데, ‘프랑스가 한국이나 미국보다 민주주의가 뒤떨어진다’고 확언하거나 ‘다당제라서 그렇다’고 진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양당제/다당제를 떠나 ‘대통령중심제가 의원내각제보다 민주주의 완성도가 뒤떨어진다’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대통령중심제-다당제 국가 가운데 정치가 혼란스럽다고 평가받는 나라들은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 쏠려 있다. 정당 체제에 대한 선거제도의 영향력 이상으로, 언론 자유나 공정선거, 시민 참여도 등 민주주의의 여러 제반 여건을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외도 있다. 우루과이는 대통령중심제면서 다당제를 형성했으며, 남미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꼽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18년에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서 세계 15위에 올랐다(참고로 한국은 21위, 미국 25위, 프랑스 29위였다).

2018 민주주의 지수

Q 연립정부에도 결점은 남는다. 정당끼리 협상을 해서 정부를 꾸리는 과정에서, 정당들은 서로 정책을 양보해야 한다. 선거 때 공약했던 내용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것은 유권자의 의사를 굴절시키는 것 아닌가?

A 우선 반대 사례를 보자. 양당제에서 어떤 정당이 혼자 정권을 잡았다. 야당이 된 정당과 정책 차가 클 것이다. 첫째, 야당 유권자들이 바랐던 정책은 멀리 뒷전으로 밀린다. 둘째, 거대정당 하나가 그 지지층을 두루 다 대변했는지 확실히 신뢰하기도 어렵다. 셋째, 두 거대정당이 의견 접근을 이룬다 해도, 그 과정에서 각자가 자기 지지층 일부를 배반할 수 있다.

다당제 하에서 연립정부를 건설하며 정당끼리 손을 잡을 때는 비교적 정책의 차이가 작은 정당끼리 손을 잡기 쉽다. 이렇게 해도 집권세력을 구성하지 못하면, 노선이 좀 더 멀리 떨어진 세력과도 협상해야 하지만, 다수를 이루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길이라 볼 수 있다. 어떻든 각 정당이 차지한 의석과 정당 간 노선 차이를 두고 이리저리 유연하게 조합해볼 수 있고, 다수가 동의하거나 소수만 반대할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

정책의 연속성에서도 연립정부가 더 효과적이다. 양당제하에서 두 당 사이에서 서로 정권이 왔다 갔다 하면, 그때마다 정책도 뒤집어진다. 반면, 어떨 때는 A당과 B당이, 어떨 때는 B당과 C당이 연립으로 정부를 꾸린다면, 연속으로 정권을 잡은 B당을 통해서 꺾이지 않고 지속되는 정책이 나온다. 특정 거대정당이 장기집권을 해도 연립정부가 받는 저항은 작다. A당이 어떨 때는 B당과 정권을 잡고 어떨 때는 D당과 정권을 잡는다면, 그때그때 정부의 정책을 다소 달리하면서 핵심 정책은 지속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 오래 집권하더라도 집권 기간에 비해 ‘독주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Q 여러 정당이 구성한 연립정부는 참가 정당끼리의 불화로 연합이 깨져 정부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

A 이 걱정은 대통령중심제에선 할 필요가 없다. 의원내각제라면 연립정부가 무너질 경우, 정당들이 새로운 조합을 찾아 정부를 구성하거나, 아니면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 대통령중심제에서는 대통령과 여당이 계속 국정을 운영하면 된다. 연립정부를 새로 꾸릴 수도 있고, 연립정부를 꾸리지 못하더라도 야당과의 사안별 협력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실제로 연립정부 붕괴에 따라 조기 총선이 치러지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반드시 국회가 4년이든 5년이든 임기를 채우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너무 빈번한 선거가 우려된다면 장치를 둘 수는 있다. 독일은 국회가 내각을 불신임할 때 반드시 차기 내각의 명단을 작성하는 조건부 불신임제도, ‘건설적 불신임제도’를 띠고 있다. 이렇게 내각을 새로 구성하면 새로 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Q 거대정당이 소수정당을 끌어들여 정권을 잡는다 치자. 많은 양보를 해야 한다. 다당제를 가능케 하는 선거제도에서 늘 ‘얻은 표만큼의 의석’을 중시해왔는데, 소수정당은 연립정부 구성에서 얻은 표보다 더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셈이다. 불공정하지 않은지?

A 단독으로 절대 다수를 이룬 세력이 있다면 소수파에게 몫을 떼 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머지 세력은 판판이 밀리기만 할 것이다. 이러한 단독 과반보다는 공동 과반이 낫다.

어떤 다수정당이 파트너인 소수정당에게 ‘과도한’ 몫을 챙겨주는 이유가 뭔가. 자신이 집권할 수 있으니까 하는 일이다. 파트너의 이득이 자신의 손해를 의미하지 않는다. 소수파와 손을 잡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계속 집권해도 되는 관용적인 정당임을 뽐낼 수도 있다.

세상은 의외로 공정하다. 캐스팅 보트를 쥐는 소수파도 언제까지고 이득을 볼 순 없다. 소수파는 다수파와 연합을 거듭할수록 제 차별성을 상실한다. 계속 소수파에 묶여 있거나, 다수파로 병합될 수 있다. 이질적인 세력과 손을 잡으면 지지층 이탈로 더 축소된다. 이쪽저쪽과 번갈아 손잡으며 몸값을 올리면 ‘기회주의’라는 비난에 시달린다. 독자노선과 연합노선 그리고 연합 상대를 두고 늘 갈림길에 서는 것이 소수파의 운명이다. 제 가치를 웃도는 몫을 가져갔다고 해서 경멸하거나 질투할 이유가 없다.

김수민의 정치현장 에피소드
내가 경험한 유사-다당제

앞장에서 이야기했듯, 2010년 제가 출마한 제7대 구미시의회 선거에는 기존의 전면적 2인 선거구가 깨지고, 일부 지역에서 3인 선거구가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그때는 당시 정부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어서, 지역 유력정당인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대한 주민들의 선호도가 꽤 낮아져 있었습니다. 개표 결과 소수파 정치신인이었던 저만 당선된 것이 아니라, ‘23석 중 한나라당 10석, 친박연합 4석, 민주당 1석, 민주노동당 1석, 무소속 7석’이라는 의석 분포가 나왔습니다. <연합뉴스>에서 기사화되어 전국적으로 이 소식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 차지에 실패한 것이 경북 구미 지역에 대한 편견을 깼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직전의 제6대 구미시의회는 ‘한나라당 22석, 민주당 1석’이었습니다.

무소속 의원 7명 중 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나라당 당원 경력이 있었습니다. ‘박정희-박근혜 지지’를 강조한 친박연합도 한나라당과 이념차이는 없었습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 그리고 (나중에 녹색당 창당멤버가 되기도 하는) 저만 가리켜 “3명만 반-한나라당”이라는 진단이 있었습니다, “명확한 진보 성향 의원은 민주노동당 의원과 김수민 2명뿐이라 고립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습니다. 저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길이 펼쳐졌습니다. 한나라당 의원 10명은 구미 갑 지역과 을 지역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같은 당이라고 해서 똘똘 뭉쳐지지는 않았습니다. 친박연합이나 한나라당 출신 무소속도 직접적으로 한나라당의 통제를 받지 않으니 한나라당과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의원수가 많지 않아 한 명 한 명의 존재감이 컸던 측면도 있을 겁니다. 의회 안팎에서는 대충 4~5 묶음으로 의원들을 분류했습니다. 다수가 소수를 꺾어놓고 갈 수 있는 구도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안에서 다수/소수가 형성되더라도, 그 다수파는 굳건하지 않았고, 소수파는 여리지 않았습니다. 사안이 바뀌면 구도도 달라지고는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저도 제 기대보다 더 많은 공약들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만12세 이하 무상예방접종, 비정규직 권리보호 조례 제정, 독립영화제 개최, 환경미화원 비정규직화 저지 등 ‘보수적인 도시’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소수파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게 만든 의회의 구도가 만든 일이었습니다. 이제 직업정치를 벗어난 제게 남은 가장 큰 정치적 소명은, 보다 더 다양한 정치 세력이 시민들을 대변하며 의회를 꾸릴 수 있는 그런 제도를 만드는 일인 것 같습니다.

김수민 /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자 · 전)구미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