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당제가 박근혜 씨를 파면했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전적인 소선거구-단순다수제도 아니고, 다인선거구제도 아닙니다. 독일과 같은 '지역구는 소선거구-단순다수제, 전체 의석은 비례대표제'도 아닙니다. 다수 의석은 소선거구-단순다수제로 선출하고, 소수인 일부 의석만 정당 지지율에 비례해서 배분합니다. 일본도 같은 제도입니다. 이를 '병립식 비례대표'라고 합니다. 비례 대표식으로 배분되는 의석이 부분적으로나마 있으니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비례성이 얼마간 더 높지만, 전체 의석을 정당 지지율에 맞춰 나누는 나라보다는 비례성이 현저히 낮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시도되는 선거제도 개혁은 독일을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지역구 소선거구 체제를 유지하되 비례성을 높이는 방도입니다. 아직 다인선거구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탓이 큽니다. 하지만 독일식으로 가는 길도 험난합니다. 한국은 현재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가 47석인데 독일처럼 지역구와 비지역구 비례대표 의석을 비슷하게 맞춰주려면, 비례대표 의석을 대거 늘리면서 전체 의석을 늘려주거나, 아니면 지역구 의석을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전자는 국민들의 의원수 증가 거부 정서에 막혀 있고, 후자는 지역구 현역 의원들의 반대를 넘기 힘듭니다. 또 무엇보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다수파 정치 세력은 비례성을 증대하는 선거제 개혁에 동조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가장 높고 두꺼운 장벽입니다.

그러나 2019년 12월 현재 국회에서는 차선이라고 할 만한 방안이 논의 중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지역구 대 비례대표를 253 대 47에서 225 대 75로 조정합니다. 둘째, 한정된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 지지율에 맞게 배분하는 종전의 방식을 벗어납니다. 지지율만큼의 의석수를 지역구에서 얻지 못한 정당에게 비례대표 의석을 우선 배분합니다. 그 차이를 모두 메워준다면 독일식 '연동형' 제도겠습니다만, 전체 의석의 1/4 남짓한 75석으로는 그것을 실현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 차이의 절반만큼의 의석을 보태주는 '준연동형'을 실시합니다.

만약 그렇게 보태주는 의석이 75석을 초과해버린다면 다시 계산합니다. 각 정당의 부족분을 겨루어서 그에 맞게 75석을 배분합니다. 가령 지역구 의석이 지지율에 비해 적은 정당이 A와 B 두 당이고, 그 당이 우선 받아야 할 의석이 각각 60석과 30석으로 계산된다면? 2대 1의 비율이니 75석을 그 비율로 나눠 각각 50석과 25석을 가져가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셋째, 이와는 반대로 배분하고 나서도 비례대표 의석이 남으면 이는 정당 지지율에 따라 배분합니다.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이 지지율만큼의 의석수를 초과한 정당도 이 의석은 추가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의석만큼은 종전의 비례대표 의석 배분 방식과 같습니다. 독일식과 일본식(현행 한국식) 중간쯤에 위치한 제도입니다.

각 정당으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그 정당이 내부에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도 변화가 생깁니다. 전국을 서울, 경기·인천, 충청·강원, 호남·제주, 대구·경북, 부산·경남·울산 등 6개 권역으로 나눕니다. 정당은 자신이 차지한 최종의석을 그 권역별로 나눕니다. 가령 전국적으로 1000만 표를 얻은 정당이 100석을 얻게 되었고, 그 당의 충청·강원에서 얻은 표가 전국 총득표의 1/10인 100만 표라면, 그 당은 충청·강원 쪽으로 10석을 보내줍니다. 충청·강원에서 얻은 지역구 의석이 8석이라면, 남은 2석은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워줍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6개 권역별로 비례대표 후보를 순번에 따라 올려둔 정당 명부를 작성해두어야겠죠. 그리고 비례대표 당선자 일부에는, 정당명부에 오른 후보뿐 아니라, 해당 권역의 지역구에 출마한 자당의 후보자 가운데 비교적 적은 차이로 떨어진 낙선자(석패자)도 포함시킵니다. 한국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의석을 휩쓸어가는 바람에 어떤 거대정당도 어떤 지역에서는 지지율보다 더 낮은 의석수를 거두기도 합니다. 이 제도는 그런 ‘지역주의’적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독일식 선거제도를 주창해온 바른미래당, 정의당, 평화당, 민중당, 녹색당 등의 끈질긴 요구에 이어, 거대양당 중 하나인 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안을 수용했습니다. 2019년 4월 말, 이들 정당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3/5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면서, 일정한 시일이 지나면 본회의로 법안이 자동 부의되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에도 성공했습니다. 선거법 개정안은 연말에 상정될 예정입니다. 가•부결은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나마의 안이 나온 것도 획기적입니다.

어떻게 이 과정이 가능했을까요? 앞에서 곧잘 언급한 '뒤베르제의 법칙'은 선거제도가 정당체제 형성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그 역순도 가능합니다. 정당 체제 형성이 선거제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온전한 다당제라고 평가받기에 한국 정당 체제는 아직 이르거나 부족합니다. 다만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바뀌어오는 과정은 선거제도 개혁 이전에도 이미 진행 중이었습니다. 국민들의 다당제 선호는 이미 높은 상황이고, 그래서 선거제 개혁이 성큼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 양당제의 클라이맥스, ‘대통령 박근혜’

찬성 234표. 2016년 12월 9일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가결에 필요한 국회의원 2/3인 200명을 훌쩍 넘겼다. 박근혜 씨를 당선시킨 2012년 12월 대선과 그해 4월 총선에 비하면 격세지감이었다. 그때 새누리당은 절반을 살짝 넘기는 의석을 확보했다. 박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당선된 1971년 대선 이후 최초로 과반 득표율을 올리며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 대통령이 국회의원 다섯 명 중 네 명꼴로 탄핵안을 찬성하는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박근혜는 고정 지지층이 가장 두껍고 딱딱하게 형성된 정치인이라 공인받았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국민 절반을 넘길 만한 수준도 아니었다. 그는 2012년, 진보정당이나 민주당의 구호였던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를 똑같이 외치며 정책적 쟁점을 지우거나 흐릿하게 만들었다.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 로고 색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뒤집으며 새로운 이미지도 만들었다. 마침 박근혜에게는 이명박 정부 출범 전후로 대통령과 불화한 이력이 있었다. 같은 새누리당 소속의 전임 대통령 이명박과 차별화에 성공한 덕분에,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던 시민 일부도 총선에서 새누리당에게 투표했다.

그전까지 야당들은 ‘반-이명박’, ‘반-한나라당’의 기치 아래 후보단일화 같은 선거연대를 하는 데 익숙해졌고 이는 2012년 총선에서 전면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그런 단결로는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이길 수 없었고 ‘여대야소’가 확정되었다. 그런 한편 민주당보다 ‘왼쪽’에 위치한 진보정당은 독자적 성공에서 멀어졌고, 진보정당의 이미지를 쓴 민주당도 중도 영역의 유권자를 잡는 데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은 중도 유권자의 지지를 받던 안철수와의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최종적으로 대선 후보 박근혜에게 패배했다.

Korea 18th Presidential Inaugural 06.jpg
By Korea.net /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Photographer name), CC BY-SA 2.0, 링크


대선은 승패를 정하기도 하지만 ‘선후’를 가리기도 한다. 박근혜의 배경인 박정희 향수는 문재인의 밑바탕인 노무현 향수보다 짙고 오래 묵었다. 박근혜가 문재인보다 먼저 태어났고 정치도 길게 했으며, 문재인은 첫 도전이었지만 박근혜는 두 번째였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표심이 확고하지 않은 부동층이나 중도층 유권자의 막판 선택에서는 중요한 요인이다. 심지어 ‘기호 순번’도 미미하지 않은 변수다. 투표장에 가는 시민이라고 마음이 굳건한 것은 아니다. 갑자기 결정을 내리거나 뒤바꾸는 ‘당나귀 투표’라는 행태가 있다. “왜 그 후보를 찍었어요?” “아, 손이 그냥 그리로 가버리더라고.” 이런 대화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런 이들일수록 투표용지의 맨 위 또는 맨 앞에 위치한 후보나 정당에 투표할 공산이 크다. 국정원 요원이 달아댄 저질 댓글보다는 차라리 박근혜의 ‘기호 1번’이 가진 힘이 더 컸을 것이다.
박근혜는 양당제가 만든 대통령이다. 35~40% 정도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졌다고 평가되던 박근혜는 50대 50의 팽팽한 승부를 통해 자신의 지지율을 더 끌어올렸다. 여기에 아까 열거한 몇몇 요인을 더해 과반 득표로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그 양당제에서 그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51.55% 득표율로 당선된 그에 대한 임기 초반의 국민 지지도는, 40%를 살짝 넘긴 득표율로 당선되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해 크게 낮았다. 박근혜 아닌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국민들 대다수는 박근혜에게 쉬 마음을 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박근혜의 지지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진 않았다. 박근혜 지지층 역시 야당에게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 장벽이 가장 높았던 시기가 박근혜 찬반 양측이 각자 결집했던 세월호 참사 때였을 것이다.


박근혜, 다당제에서 파면당하다

장벽을 무너뜨린 결정타는 바로 2016년 총선으로 탄생한 여소야대였다. 한 방송사는 탄핵안 가결 2년 전에 이미 최순실이 찍힌 동영상을 확보하고도 묵혀두었다. 여소야대가 아니었다면 그해 박근혜-최순실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터지는 일은 없었거나 늦춰졌을 것이다.

2016년 총선은 과반 의석 정당이 없고 원내교섭단체가 2개를 초과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여소야대와 한 쌍을 이룬다. 양당제였다면 치열한 경합 끝에 한 정당이 과반을 넘었을 수 있고 그 정당이 여당 새누리당일 수 있었다. 설령 과반에 못 미쳤다 해도 절반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올리며 제1당이 되었을 수 있고, 제2당이었더라도 제1당과 큰 차이는 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그로부터 갈라져나온 국민의당이 선거 기간 내내 서로 대립한 까닭에 새누리당의 압승을 점치는 관측가들이 숱했다. 그러나 결과는 민주당•국민의당 양쪽이 모두 새누리당 표밭을 잠식함으로써 새누리당의 비중이 찌그러진, '다당제 속 여소야대'였다.

새누리당은 1석 차이로 제2당이 되었고 의석률도 40%를 겨우 넘겼다. 그 후 출신 무소속 의원들을 다시 끌어들여 제1당이 되었지만 의석수는 129석에 머물렀다. 새누리당의 의석율은 역대 여당 치고 낮은 의석율이기도 했거니와,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에 포위된 상태였다. 새누리당은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나 예산안을 통과시키려 하더라도 민주당과 합의를 이루든 최소한 국민의당과 손을 잡든 해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상황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집권 세력의 오만이 꺾일 줄 모르는 동안, 야당 연합은 국회의장도 배출하고 장관 해임건의안도 통과시켰다. 그러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된 것이다.

각기 다른 야당이 모두 대여투쟁에 나서면서 반정부 여론은 대세를 굳혔다. 그중 가장 진보적이며 소수파인 정의당은 제일 먼저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온건하게 '대통령 2선 후퇴'를 견지하다가 국민 여론이 굳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탄핵을 대세로 만든다. 민주당보다 소수파인 국민의당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길거리 서명운동을 벌였고, 나중에는 새누리당 내부에서 대통령과 멀어진 세력을 설득하며 탄핵 찬성으로 끌어들인다. 당시 세 당의 노선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두고 제법 깊은 갈등이 있었지만, '역할 분담' 차원에서 다들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크다.

전말을 지켜본 국민이라면 몸으로라도 알아챘다. 다당제가 박근혜 씨를 파면했다. 양당제라면 대통령 탄핵 요구가 자동으로 '제1야당 지지'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러 세력이 에워싸고 방어망까지 절단함으로써 박근혜는 완전히 제압당했다. 게다가 국회의원의 탄핵 찬성률 78%는 국민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던 탄핵 찬성률과 거의 동일했다. 어떤 정치질서가 민의를 잘 대변하는지 드러났다.

2017년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선거에서 다당제는 더욱 완연해졌다. 새누리당에서 탄핵을 드러내놓고 찬성한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따로 창당했다. TV 토론에 출연한 대선 후보는 다섯 명이었다. 2012년 대선의 50 대 50 구도 속에서 중도 하차한 안철수 후보, 거대 보수정당에서 갈라져 나온 유승민 후보, 일찌감치 독자적 진보정당을 일구었던 심상정 후보는 모두 완주했고, 이들 후보의 득표 총합은 투표자 네 명 중 한 명꼴이었다. 2017년 대선에서 3위 이하 후보들의 득표는 (거꾸로 말해 1, 2위 후보의 득표는) 1987년 대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대선은 단 한 명의 승자를 가린다. 한국 대선은 결선투표제도 없다. 1990년부터 내내 진행된 양당제화에도 불구하고 2017년 대선이 거둔 성과다.

바른정당 의원 상당수는 대선 전후로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에 복귀하지만, 나머지 의원들은 국민의당과 합당해서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지 않은 의원들은 민주평화당을 만들고 정의당과 이들이 연대하기도 하면서, 2016년 총선이 만든 20대 국회는 그럭저럭 다당제의 면모를 유지해왔다.

2017년 대통령선거 선거벽보.jpg
By 메이 - 자작, CC BY-SA 1.0, 링크



필리버스터와 패스트트랙 사이

물론 박근혜 파면 이후 제20대 국회는 많은 비난과 질타를 받았다. 법안 처리가 부진했다. 그러나 이 원인은 여소야대나 다당제가 아니었다. 19대 때 마련된 국회법의 새 조항 때문에 50% 초과가 아닌 60%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법안을 처리할 수 있었다. 양당제가 강했던 당시에 과반수 제1당의 독단과 독주를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단독 과반 의석 정당이 없고 2개 이상의 정당이 합의해야 과반 찬성이 되는 정당체제로 바뀌어 있었다. 1개 정당의 폭주가 어차피 불가능한 상태에서 60%라는 선은 너무 높았다. 이를 폐지하자는 제안이 국회 안팎에서 이어졌지만, 그것을 실현하려면 역시나 의원 60% 이상의 찬성을 모아야 할 부담이 있다.

그러나 60%선을 넘어 법안 처리에 박차를 가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전체 의원의 60% 이상의 동의를 받거나, 해당 법안을 다루는 위원회에서 위원 60%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면, 나머지 의원들이 총력 반대해봤자 시간이 지나면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바로 신속처리안건 지정, 일명 '패스트트랙'이다. 그간 몇 가지 법안들이 패스트트랙에 올랐고, 거기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도 끼어 있다. 자유한국당을 빼고 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연합한 결과였다.

2016년 총선 전인 그해 초만 해도 한국 국회에는 과반 의석의 여당이 존재했다. 그들이 밀어붙인 한 법안은 40% 이상의 의원이 반대했다. 60%라는 선을 넘기지 못하자 여당 출신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했다. 국가안보상 시급한 테러방지법안이라 직권상정 요건이 된다고 의장은 주장했다. 야권의 반대 의원들은 직권상정이 위법하다고 맞섰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들은 마침내 최후의 저항으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신청한다. 그 본회의 기간 끝까지는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도록, 시간제한 없이 의원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와 발언하는 것이다. (결국 야권 의원 대다수는 그 회기 끝까지 가기 전 자신들이 알아서 토론을 끝맺으면서 테러법은 가결되었지만) 이런 한국 의정사상 최대의 진풍경 또는 명장면이었다. 그 무대는 양당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그때 그 법안을 추진했던 이들이 선거법 개정안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나선다. 다만 큰 차이가 있다면 당시와는 달리 이번에는 법안 추진 세력이 여러 정당이다. 여러 정당이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2016년 총선의 여소야대, 박근혜 파면, 2017년 총선의 다자구도, 그리고 선거제 개혁을 포함한 패스트트랙은 다당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에 가까웠을 일이다.

2019년 11월 현재, 앞으로의 정국과 내년 총선 결과를 관측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한국 정치는 그러나, 박근혜 파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못다 한 긴 이야기를 담은 짧은 에필로그

지금까지 연재에 동참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주어진 지면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걱정했지만, 막상 끝나고 보니 여러 이야기를 눌러 담는 과정에서 빠트리거나 미뤄둔 내용이 밟힙니다.

소수정당의 활동을 짓누름으로써 다당제 형성을 차단하는 요인에는 선거구제와 선출방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과 선거운동에 관련된 규제도 있습니다. 한국의 공직선거법이나 정당법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 만큼 세부적입니다. 해방 정국기 한국에 들어온 미국 군정이나 유력한 정치세력은, 다른 여러 정치 세력의 난립을 막아내려는 사고방식을 가졌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부를 거치며 이것은 풀리지 않았고, 민주화 이후에도 그대로 온존하였습니다.

정당의 난립은 선거를 통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의원을 배출하지 못하는 정당은 도태가 유력합니다. 의원을 낸 정당도 명멸을 겪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당법은 창당 자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정당을 창당하려면 광역시나 도에 하부조직을 꾸려야 하고, 그것은 각각 1천 명 당원이 있어야 꾸릴 수 있습니다. 5천 명에 미달하는 당원으로는 절대로 당을 만들 수 없게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원이 아무리 많아도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삼거나 그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정당은 만들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중앙당도 반드시 서울에만 두도록 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나라에 있는 ‘지방 정당(local party)’이 한국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선거운동의 제약도 매우 큽니다. 본격 선거운동 기간에는 정당에서 연설회를 가지거나 선전물을 배포할 수 없습니다. 그 기간 어떤 지역에서 정당이 활동하려면 그 지역 선거구에 후보를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례대표 후보도 확성기 연설을 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 미디어 선거’를 하라지만, 온라인에서 무작위 대중을 능동적으로 만나기는 점점 더 어렵고, 제도권 미디어가 각 정당에 제공하는 기회도 불평등합니다. 선거 후보가 등록할 때 내야 하는 기탁금도 타국에 비해 많은 편이고, 지출한 선거비용 가운데 몇몇 정해진 항목에 해당하는 것을 선거 공영제에 따라 돌려받을 수 있는 득표 기준선도 15%(반액 반환 기준은 10%)로 높은 편입니다. 비례성을 낮추는 선거제도를 확립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문턱들도 낮춰야 합니다.

정치체제를 다룰 때 선거제도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정부형태(권력구조), 즉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의회중심제)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기회로 뵙거나, 아니면 여러분의 관심과 공부가 거기까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아보시고 싶은 분들에게 참고문헌을 안내해드립니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책 중에서는 데이비드 파렐(전용주 옮김), 『선거제도의 이해』(한울아카데미, 2017)를 추천합니다. 세계 각국의 사례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싶은 분들에게는 http://www.aceproject.org/ 라는 사이트를 추천합니다.

더 공정하고 다양한 세상에서 또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김수민 /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자 · 전)구미시의회 의원